[1부] 2. 라치 설산(雪山)으로 향하며
보석 골짜기에 머물던 미라래빠는 스승 마르빠의 예언대로 라치 설산으로 향하였다.
라치 설산 입구에 있는 냐낭짜마르 마을에 당도했을 때, 마을에서는 때마침 연회가 베풀어지고 있었다.
“미라래빠라는 위대한 수행자가 있다는데 혹시 알고 있소?
그분은 아무도 살지 않는 산 속에서 사시면서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엄격한 고행을 한다고 합니다. 혹시 그분에 대해 들어봤소?”
마을 사람들이 미라래빠에 대한 칭송의 말을 늘어놓고 있는 가운데 미라래빠는 어느 집 문전에 당도했다. 온갖 보석으로 화려하게 단장한 아름다운 소녀가 미라래빠를 맞이했다.
소녀의 이름은 레쎄붐이었다.
“선생님은 누구시며 어디서 오셨어요?”
“나는 미라래빠라고 하오. 산 속에서 살고 있는데, 음식을 좀 구하러 왔소.”
“아니, 선생님이 정말 미라래빠이신가요? 음식이야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만.”
“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어디 있겠소.”
소녀는 활짝 밝은 얼굴이 되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르신들, 어르신들께서 입이 마르도록 칭송했던 바로 그 수행자가 지금 문 앞에 와 계셔요!”
모두가 문으로 뛰어나왔다.
어떤 이들은 미라래빠의 발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 어떤 이들은 여러가지 질문을 쏟아놓았다.
그들은 미라래빠을 집 안으로 맞아들여 음식을 대접했다.
젊고 부유한 안주인 센드로모가 미라래빠에게 말했다.
“존경하는 선생님, 어디로 가시는 길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나는 명상 수행을 하기 위해 설산으로 가는 중이라오.”
“선생님이 제룽쪽모에 머무시면서 그곳을 축복해주신다면 정말 좋겠어요. 필요한 음식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제룽쪽모는 유령들이 사는 골짜기였다. 마침 그 집에 모여든 사람들 중에서 싸까구나라고 불리는 라마승이 있었는데 그도 그 땅을 축복해 주시도록 청했다.
어떤 농부는 심지어 대낮에도 자기 농장에서는 유령이 나타난다고 하며 애원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미라래빠에게 간청했다.
미라래빠가 응답하였다.
“곧 그리로 가겠소. 당신들의 농장이나 가축을 위해서 거기 가는건 아니오.
스승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오.”
마을 사람들은 음식을 준비하여 미라래빠에게 바쳤다. 그러자 미라래빠가 말했다.
“나는 지금껏 혼자 살아왔고, 거기에 익숙해졌소.
은둔처에서 살다보니 좋은 음식이나 친구도 필요하지 않게 되었소, 하지만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에 보답하고자 하니 내 뜻을 받아들여주시요.
나는 혼자서 농장에 가고 싶소. 나중에 오셔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도록 하시오.”
미라래빠가 산기슭에 당도하자 비인간의 존재들이 미라래빠를 겁먹게 하려고 여러가지 무서운 환상을 만들어 냈다. 산꼭대기로 나있는 길은 하늘에 닿아 있는 것처럼 보였고, 번개불이 번쩍이며 하늘을 찢고 천둥이 울려 퍼졌다. 큰 산들이 요동치고, 강물은 범람하여 둑을 무너뜨렸다. 골짜기는 곧이어 큰 호수로 바뀌었다. 그 호수는 훗날 ‘악마호(惡魔湖)’로 불리게 되었다.
미라래빠는 일어나 손을 펼쳐 항마(降魔)무드라를 지었다.
그러자 환상이 사라졌다.
조금후 골짜기 입구에 도착하자 산이 다시 흔들리고 바윗돌이 소낙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언덕의 여신은 미라래빠을 위해 달리는 뱀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만들어내었다.
훗날 이 길은 ‘여신의 언덕길’로 불리게 되었다.
미라래빠가 서 있던 바위에는 발자국이 새겨졌다.
미라래빠가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자 검은 하늘은 완전히 개었다.
그는 언덕 위에 앉아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삼매(三昧)에 들었다. 온 우주의 일체 중생을 향한 다함이 없는 자비심이 그의 가슴속에 일어났다. 그 언덕은훗날’대자비(大慈悲)의 언덕’으로 불리게 되었다.
미라래빠는 강가에 가서 ‘유동삼매(流動三昧)’에 들었다.
병인년 가을 초열흘날 네팔에서부터 ‘바로’라 불리는 악마가 하늘과 땅을 메울 정도의 마군을 거느리고 와서 미라래빠에게 대적하였다. 마군들은 산을 들어 미라래빠에게 집어던졌다. 또한 천둥과 벼락과 온갖 무기의 소낙비를 퍼부었다.
마군이 미라래빠를 향해 소리쳤다.
“그대를 죽이겠다! 그대를 죽여 갈가리 찢어버리겠다!”
그들은 계속 고함을 지르며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모습으로 위협하였다.
그러나 미라래빠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미라래빠는 이때 마군들의 저의를 눈치채고 ‘까르마의 진리’를 노래하였다.
“그런 하찮은 이야기로 우리를 속이려 하지 마시오. 그대가 아무리 그래도 마법을 그치고 당신을 놓아줄 수는 없소!”
그들은 초현상적인 무기와 마군을 더욱 동원하여 미라래빠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미라래빠는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외쳤다.
“마군들이여, 나의 말을 들을지어다! 스승의 은총으로 나는 궁극적인 진리를 완전히 체득하였다. 그대들이 행하는 방해와 공포는 명상 수행자인 나의 마음에는 도리어 큰 영광이 될 뿐이다.이런 고통이 크면 클수록 깨달음의 길에서 얻는 수확은 더욱더 풍성해지는 법이다.
자, 그럼 ‘일곱가지 장엄상(莊嚴相)’에 관한 노래를 들어보라.”
이 노래를 듣자 많은 마군들이 마음을 돌이켰다. 그들은 미라래빠에 대한 신심과 존경심이 생겨나 마법을 행하기 그만두었다.
“당신이야말로 경탄스러운 힘을 가진 위대한 수행자이십니다. 선생님이 진리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지 않았다면, 선생님이 기적적인 힘을 드러내 보여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결코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끝없는 무지에 사로잡혀 습관적인 망상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우리가 이해하고 따르기 쉬운 가르침을 베풀어주소서.”
이에 미라래빠는 ‘일곱 가지 진리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듣고 대부분의 마군들은 신심이 더욱 깊어졌다. 그들은 미라래빠의 주위를 여러 번 돌면 절한 뒤 자기들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러나 마군들의 우두머리인 바로와 나머지 몇몇 마군들은 여전히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한번 끔찍스런 환상의 세계를 펼치며 미라래빠를 공포에 떨게 하려고 애썼다.
미라래빠는 이에 ‘선악에 관한 진리의’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교리에 통달한 체하는 그대의 그 교묘한 흉내내기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구나. 하지만 진리 수행으로 도대체 무엇을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이에 미라래빠는 ‘온전한 화신에 대한 노래’로 응답하였다.
이 노래를 듣자 마군의 두목과 권속은 자신들의 해골을 미라래빠에게 바쳤다. 그들은 미라래빠의 둘레를 여러 번 돌면서 절을 한 뒤에 한 달 동안 미라래빠에게 음식을 공양하기로 약속하고 하늘의 무지개처럼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마군들은 다시 나타나서 술과 고기와 음식을 공양하고 사라졌다.
이런 체험으로 미라래빠는 위대한 진보를 이루었다.
그는 한 달 동안 거기에 머물며 영적으로 더욱 발전하고, 더 많은 기쁨을 알았다.
어느 날 미라래빠는 물맛이 좋은 라치 설산의 아름다운 장소를 기억하고 그곳으로 가기로 하였다. 그는 출발하여 따마리스끄 나무가 무성한 평원에 당도하였다.
거기 있는 바위에 앉아 쉬고 있을때 많은 천녀(天女)들이 나타나 음식을 공양하였다.
미라래빠가 다시 길을 걷고 있는데, 마군들은 그가 가는 길에 여자의 커다란 성기를 여기저기 만들었다. 그는 마음을 모으면서 짐짓 발기한 성기의 모양을그려 내었다. 환영으로 나타난 여자의 성기를 아홉 개 지난 뒤 질(膣) 모양을 한 바위 앞에 이르자 그는 남근 모양의 돌을 구해서 바위 구멍을 틀어막았다. 그러자 마군들이 만든 색정적인 환영들이 안개 같이 사라졌다. 이 장소는 뒤에 ‘라구룽구’라고 불리게 되었다.
미라래빠가 평원의 중앙에 이르렀을 때 마군의 두목 바로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법단(法壇)을 만든 뒤 예물을 바치고 법을 청했다. 미라래빠는 까르마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게 설해 주었다. 그러자 바로는 법단 앞에 있는 거대한 바위 속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미라래빠는 한 달 동안 평원에서 기쁨에 젖어 보낸 뒤 냐낭짜마르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제 그 골짜기와 평원은 악마들이 사라지고 수행하기에 적합한 장소가 되었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이 일이 있은뒤 냐낭의 주민들은 미라래빠에 게 더욱 깊은 신심을 지니게 되었다.
이 장(章)은 ‘라치로의 여행길’에서 있었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