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명상 수행자 미라래빠가 보석 골짜기에 있는 ‘독수리 성’에서 마하무드라의 수행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시장기를 느끼자 음식을 준비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굴 안에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소금도 물도 연료도 없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게을렀어. 밖에 나가서 땔감이라도 구해와야겠구나’ 그는 동굴에서 나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나뭇가지를 주워 모았다. 순간 느닷없이 폭풍이 몰아치더니 나뭇가지를 날려버리고 그의 넝마옷을 찢어버렸다. 옷자락을 움켜잡으면 나뭇가지들이 날아가고, 나뭇가지를 끌어안으면 옷이 찢어졌다.
미라래빠는 생각했다. ‘그렇게도 오랜 세월을 진리를 수행한답시고 살아왔건만 나는 여전히 자아를 향한 집착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구나! 자아에 대한 집착을 이기지 못한다면 진리를 수행하는 일이 무슨 쓸모가 있으랴? 바람아, 불어라. 네 좋을대로 나뭇가지 날려보내라. 바람아, 불어라. 내 옷을 날려보내라!’ 이리하여 미라래빠는 저항의 몸짓을 그만두었다. 이때 또 한 차례 강풍이 몰아쳤다. 허기에 지친 미라래빠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높은 나뭇가지 위에는 그의 넝마 조각이 산들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세상사의 덧없음이 미라래빠를 덮쳤고, 그런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싶은 강렬한 느낌이 끓어올랐다. 미라래빠는 바위 위에 앉아 명상하기 시작했다.
멀리 동쪽 하늘가에는 흰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 아래 밀밭골에는 스승 마르빠와 마나님이 계신다. 지금 그분들은 제자들을 입문시켜 가르침을 베풀고 계시리라. 아, 나의 스승은 저기에 계신다. 지금이라도 그리 가서 스승님을 한번만 뵐 수 있다면……!’ 스승에 대한 한없는 열망으로 그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에 미라래빠는 ‘스승을 그리워 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미라래빠가 노래를 마치자마자 스승 마르빠가 오색 무지개빛 그름속에 나타나셨다. 화려하게 장식한 사자를 타고 다가온 스승의 얼굴은 천상의 광명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아들아, 왜 그렇게 간절히 나를 찾느냐? 왜 그렇게도 괴로와 하느냐? 그대는 스승과 불타에 대한 불변의 신심을 갖고 있지 않느냐? 바깥 세상의 유혹이 네 생각을 어지럽히더냐?
여덟 가지 세상 바람(고통, 쾌락, 칭찬, 질책, 가난, 부귀, 명예, 치욕)이 네 동굴에도 몰아 닥치더냐? 두려움과 갈망이 그대를 괴롭히더냐? 그대는 삼보(三寶)와 스승에게 끊임없이 예배드리지 않았더냐? 육도 중생(천상 수라 인간 축생 아귀 지옥)에게 그대의 공덕을 회향하지 않았더냐? 죄업을 정화시켜 공덕을 성취하는데 이르지 않았더냐?
우리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니 진리를 위하여, 중생의 행복을 위하여 그대는 명상을 계속하여라.”
이에 미라래빠는 기뻐하며 응답의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고 나자 미라래빠는 가슴속이 후련해졌다. 옷을 매만지고 나서 나뭇가지를 한아름 안고 동굴로 돌아왔다. 그러다 동굴에 들어선 그는 깜짝놀랐다. 동굴에는 다섯 악마들이 접시만한 눈을 부라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 명은 침상 위에 앉아 설법을 하고 있었고, 둘은 설법을 듣고 있었다. 또 한명은 음식을 준비하여 바쳤고, 나머지 한 명은 미라래빠의 경전을 놓고 공부하고 있었다.
미라래빠는 생각했다. ‘이들은 이 지방의 지신(地神)이로구나. 오랫동안 여기서 살아오면서도 아무것도 바치지 않는다고 나를 싫어하는 모양이야.’ 그는 ‘붉은 바위 보석 골짜기의 신들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악마들은 여전히 떠나지 않은 채 미라래빠를 노려보았다. 더러는 험상궂은 인상으로 아랫입술을 깨물기도 하고, 이를 갈기도 하고, 흉칙한 모습으로 웃기도 하고 고함을 지르며 덤벼들기도 하며, 미라래빠를 겁에 질리게 하려고 하였다.
미라래빠는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주문(만뜨라)을 외웠다. 하지만 악마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내 미라래빠는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마르빠 스승의 은총으로 모든 존재들과 일체의 현상이 마음의 표현임을 이미 깨달았다. 마음 그 자체(一心)는 투명한 깨달음의 공성(空性)이다. 그러니 이 모든 현상들이 어찌 나를 해치리오? 악마를 물리치고 몰아내려 하다니, 나야말로 얼마나 어리석은가!”
미라래빠는 ‘깨달음의 노래’를 불렀다.
미라래빠는 일어나서 동굴 속에 있는 마귀에게로 곧장 나아갔다. 마귀들은 절망과 공포에 떨며 눈알을 굴리더니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더니 소용돌이처럼 함께 어우러졌다가 한 덩어리로 녹아서 사라졌다.
미라래빠는 이런 현상이 마왕 비나야까가 자신을 시험하려고 나타낸 것임을 알았다. 폭풍도 또한 마왕의 짓이 틀림없었다. 다행이도 스승의 자비를 입어 해를 당하지 않게 되었지만, 이후 미라래빠는 한층 깊은 영혼의 정화를 성취하였다.
마왕 비나야까의 시험에 대한 이야기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에 그 이름도 세 가지로 불린다. ‘스승을 그리워하는 여섯 가지 길’. ‘붉은 바위 보석 골짜기이 이야기’, ‘나뭇가지를 주워 모은 미라래빠의 이야기’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