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증시랑 천유에게 답하다 ②
증시랑 천유에게 답하다 ②
식정을 내려놓고, 선의 종지를 면밀히 참구하라
01
그대가 육신은 부귀에 있으면서도 부귀를 위한다고 공부하는 마음이 꺾이거나 부족하지 않으니, 일찍이 반야지혜를 심지 않았다면 어찌 이와 같았겠습니까?
다만 걱정되는 것은 중도에 이러한 의지를 잊어버리거나, 예리한 근기와 총명함이 장애되고, 얻은 것이 있다고 목전에서 놓아버리고, 그 때문에 고인이 바로 내어주신 지름길에서도 일도양단 하여 바로 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병통은 뛰어난 사대부 뿐만 아니라 오래 공부한 구참 수행자들도 그러하여서, 생력처에 나아가 공부를 이어나가기를 기꺼워 하지는 않고 물러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저 총명한 의식으로 사량계교하며 밖을 향해서만 내달려 구하고 있습니다.
잠깐이라도 선지식이 총명한 의식으로 사량계교 밖에서 보이는 본분사를 위한 양식같은 가르침을 잠깐 듣고서는 대부분이 어긋나거나 지나치는 것을 보게됩니다. 예로부터 선사들이 사람들에게 전하는 법이 실재한다고 잘못 생각하기도 하는데, 조주 선사의 방하착이나 운문 선사이 수미산과 같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02
암두 전활 선사가 말했습니다.
“경계를 물리치는 것이 상근기이며, 경계를 따라가는 것이 하근기이다.”
또 말하였습니다.
“대강의 종지는 한마디를 반드시 알아야 하니, 그 한마디가 무엇인가? 그 무엇도 생각하지 못하는 [꽉막힌] 때를 바로 그 한마디라 부른다. 정수리에 머문다고도 하고, 마음 둘곳을 얻었다고도 하며, 역력하다고도 성성하다고도 하며, 시절인연[恁麽時]이라고도 한다.”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일체 시비 분별을 깨부수는 것과 같습니다. 시절인연이 열리자마자 바로 시절인연은 아니라서 이 한마디도 남아있고, 한마디 아닌 것도 남아있는 것이 마치 한덩어리 불과 같습니다. 닿는 순간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데, 한 물건 어딘가로 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대부들은 다분이 사량계교를 토굴로 여겨서 한 물건의 이야기를 듣고 말들합니다.
“공에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배가 뒤집히지도 않았는데, 먼저 물로 뛰어드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몹시 가련한 일입니다.03
얼마전에 강서에 가서 여거인을 만났습니다. 거인은 이 일대사인연에 마음을 둔지 매우 오래되었는데, [이렇게 공에 떨어지거나 사서 걱정하는] 병통이 매우 깊었습니다. 그 분이 총명하지 않아서이겠습니까? 내가 일찍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여 거사님이 공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시니, 두려움을 아는 그놈은 ‘공’이겠습니까 ‘공’이 아니겠습니까? 한번 말해 보십시오.”
여거인이 우두커니 생각하더니 헤아리고 따지다 겨우 대답하려했습니다. 그때 대번에 ‘악!’하는 고함 한번 질러주었더니 지금까지도 아득히 채 그놈을[巴鼻] 비 : 사람이 태어날 때 콧구멍부터 생겨난다. 그래서 태어나는 생의 근본자리를 비유한다. 또한 소를 끌기 위해 코뚜레를 뚫기에 코는 손잡이를 가리키기도 한다. 마음의 소를 끌고가는 일종의 단서이다.
을 못 찾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 앞에 펼쳐져 있어서 스스로 장애와 어려움을 만드는 것이지 다른 일이 간여한 것이 아닙니다.
04
공도 이와 같이 살피면서 공부를 지어가며, 날이 가고 달이 가다보면 자연히 축착합착 축착합착 築着磕着
딱 맞아 떨어질 것입니다. 만약 깨달음을 기다리는 마음이나 영원히 쉴 수 있는 마음을 내려한다면, 지금 당장 참구하여 미륵불이 하생하는 날까지 하더라도 깨달을 수도 없고, 쉴 수도 없을 것입니다. 도리어 미욱함만 더할 뿐입니다.
05
평전보안 선사가 말씀하셨습니다.
“신령한 광명은 어둡지 않아 만고에도 빛나는 도리이니, 이 선문에 들어와서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또한 옛 어른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은 마음을 가지고 구할 수 없고, 마음 없이 구할 수도 없다. 언어로 지을 수도 없고, 침묵으로 통할 수가 없다.”
이런 말씀이야말로 진창에 들어가 흙탕물을 뒤집어 써가면서 하신 노파심의 간절한 말씀이건만, 참선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그런가 한번 생각하고는 지나쳐버리고는 이것이 무슨 도리인지 자세히 살피지도 않습니다.
06
만약 근골을 가진 자라면, 들어 보인 것을 언뜻 듣고서도 바로 그 자리에서 금강왕보검을 가지고 한 칼에 이 네 갈래로 뒤엉킨 것 사로갈등四路葛藤
을 끊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생사의 길머리도 끊어지고, 범부와 성인의 길머리도 끊어지고, 사량 계교도 끊어지고, 시비나 득실도 끊어질 것입니다.
당사자의 발아래에서 깨끗하게 발가벗겨지고 붉게 씻겨내려서 잡을 수 있는 것도 없어질 것입니다. 어찌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속시원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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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못했습니까? 예전에 관계화상이 처음 임제의현 선사를 참배하였는데, 임제선사는 관계화상이 오는 것을 보고는 의자에서 내려와 돌연 멱살을 움켜잡았습니다. 관계화상이 바로 말했습니다.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임제 선사는 관계화상이 이미 확철한 것을 알고는 곧바로 밀어젖히고는 더 이상 그와 언구로 상량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 관계화상이 어떻게 사량계교하기를 기다리겠는가? 예부터 다행히도 이같은 본보기가 있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전혀 일대사를 해결하려 하지는 않고 머트러운 마음만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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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화상이 애초에 한점이라도 깨닫기를 기다리거나 크게 쉬어버리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앞에 있었다면, 당시 멱살잡히면서 바로 깨달음을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손발이 묶인 채로 사천하를 돌면서 한 바퀴 끌고다닌다고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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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계교하여 안배하는 것이 식정(의식과 감정)이며, 생사를 따라 옮겨다니는 것도 바로 식정이며, 두려워 허둥대는 것도 역시 식정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참선을 배우는 사람들은 이러한 병통은 모르고서 그저 그 속에만 앉아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화엄경] 교설에서 “식을 따라서 행하고 지혜는 따르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본지풍광의 본래면목에서 어둡게 된 것입니다. 만약 일시에 내려놓아 사량계교 하지 않는다면, 홀연 발을 헛디뎌 콧구멍을 밟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식정이란 것도 바로 진공묘유이니, 따로 증득할 수 있는 지혜도 없습니다. 만약 얻을 것이 따로 있고 깨달을 것이 따로 있다면, 도리어 옳지 않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리석을때는 동쪽을 일컫어 서쪽이라고 하다가 깨달을 때에 서쪽이 그대로 동쪽이니, 별도의 동쪽이 없는것과 같습니다.
10
이러한 진공의 묘한 지혜는 크나큰 허공과 수명을 나란히 합니다. 다만 저 크나큰 허공 가운데에 어느 한 물건이라도 허공을 장애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한 물건도 가로막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허공 속을 오가는 온갖 것을 꺼리지도 않습니다.
이 진공의 묘한 지혜도 역시 그러하여 생과 사, 범부와 성현의 얼룩이 한 점도 생길 수 없습니다. 비록 얼룩이 생길 수 없어도 생과사 범부와 성인이 진공의 묘한 지혜속을 오가는 것을 장애하지도 않습니다.
이와같은 믿음을 얻고 보아 확철하면, 바야흐로 이것이 삶에서 벗어나 죽음에 들어가는 대자유를 얻은 사람이며, 비로소 조주선사의 방하착과 운문선사의 수미산에서 조금이라도 상응함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부족하고 내려놓지 못한다면, 자! 도리어 수미산 하나를 짊어지고 도처로 행각하다가 눈밝은 사람을 만나거든 분명하게 들어 보이십시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