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가니까야 DN 3. 암밧타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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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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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밧타 경(Ambhattha sutta. D3)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500명 정도의 많은 비구들과 함께 꼬살라 지방에서 유행(遊 行)하시다가 잇차낭깔라라는 꼬살라들의 바라문 마을에 도착하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잇차낭깔라의 깊은 숲 속에 머무셨다. 그 무렵에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욱깟타에 정착해 있었는데, 그곳은 유정들로 붐비고 풀,나무,곡식이 풍부하였으며,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가 왕의 하사품이자 거룩한 마음의 표시로 그에게 영지(領地)로 준 곳이었다.
주) 주석서는 잇차낭까라(Icchānaṅkala 혹은 Icchānaṅgala)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고 Ijjhānañgala라고 읽기도 한다고 적고 있다.『중부』「와셋타 경」(Vaseṭṭha Sutta, M98)등에 의하면 짱끼 바라문, 따룩카 바라문, 뽁카라사띠 바라문, 자눗소니 바라문, 또데야 바라문과 다른 아주 잘 알려진 바라문의 큰 가문 출신들이 잇차낭까라에 살고 있었으며 와셋타와 바라드와자 두 바라문 학도도 이곳 출신이라고 한다. 이 두 바라문 학도는 본서 「삼명경」(D13)과 본서 제3권「세기경」(D27)에서도 세존께 질문을 드리는 자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당시에 유명했던 바라문 마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2.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이와 같이 들었다.
"존자들이여, 사문 꼬따마는 사까의 후예인데 사까 가문으로부터 츌가하여 500명 정도의 많은 비구들과 함께 꼬살라를 유행하시다가 잇차낭깔라에 도착하여 잇차낭깔라의 깊은 숲 속에 머물러 계십니다. 그분 고따마 존자께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따릅니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시며, 바르게 깨달은 분(正等覺, 正遍智)이시며, 명지(明智)와 실천을 구족하신 분이시며(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깨달은 분(佛.Buddha.붓다)이시며, 세상의 존귀하신 분(世尊.세존)이시다'라고.
그분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중생들, 즉 마라들,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및 인간들에게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추신 것을 널리 알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법을 설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그런 아라한을 뵙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라고.
3. 그 당시때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 암밧타라는 바라문 수행승이 제자로 있었다. 그는 베다를 공부하는 자였고 만뜨라를 호지 하였으며 어휘와 제사와 음운과 어원에 이어 역사를 다섯 번째로 하는 삼베다에 통달하였고 언어와 문법에 능숙하였으며 자연의 이치와 대인상(大人相. Mahapurusa/Salakapurusa) 능통하였다. 그는 세가지 베다에 통달한 자신의 스승에 의해서 '내가 아는 것을 그대도 알고, 그대가 아는 것을 나도 안다'라고 인정받았다.
*대인상 : 독특한 신체적 특징이나 징표로써 보통 사람들과 구분된다. 그러한 인물들은 우주의 지배자 즉 전륜성왕(carkravartin)이나 위대한 정신적 스승이 된다. 불교에서는 붓다의 32상과 80종호(80種好)라고 하며 이 둘을 합쳐서 상호(相好)라고 한다. 상(相(은) 32가지 커다란 신체적 특징을 호(好)는 80가지 미세한 특징을 가리킨다. 32가지 대인상은「삼십이상경」(三十二相經, D30)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바라문 수행승(학도)’로 옮긴 māṇava는 청년, 어린이를 뜻하며 특히 초기경들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바라문 가문 출신으로 아직 결혼하지 않고 스승 밑에서 학문과 기술을 연마하는 사람들을 칭한다. 그래서 바라문 수행승(학도)라고 옮겼다. 당시 인도의 전통 바라문 지식계급의 청년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래서 다른 초기경들에서도 상당수 바라문 학(수행승)도들이 본경에서처럼 베다와 바라문의 권위에 대해서 세존과 격론을 벌이고 있다.
4.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을 불러서 말하였다.
"그대 암밧타여, 사문 꼬따마는 사까의 후예인데 사까 가문으로부터 츌가하여 500명 정도의 많은 비구들과 함께 꼬살라를 유행하시다가 잇차낭깔라에 도착하여 잇차낭깔라의 깊은 숲 속에 머물러 계신다고 한다. 그분 고따마 존자께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따른다고들 한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시며, 바르게 깨달은 분(正等覺, 正遍智)이시며, 영지(靈智)와 실천을 구족하신 분이시며(明行足)',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사는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깨달은 분(佛.Buddha.붓다)이시며, 세상의 존귀하신 분(世尊)이시다'라고.
그분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중생들, 즉 마라들,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및 인간들에게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추신 것을 널리 알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법을 설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그런 아라한을 뵙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라고.
그대 암밧타여, 너는 사문 고따마에게 가거라. 가서는 사문 고따마가 소문처럼 그러한지 그렇지 않은지, 그분 고따마 존자는 (실제로) 그런 분인지 그런 분이 아닌지 사문 고따마 존자에 대해서 알아보아라. 그러면 너를 통해서 우리는 그분 고따마 존자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다."
5. "스승님시여, 그분 고따마 존자가 소문처럼 그러한지 그렇지 않은지, 그분 고따마 존자는 (실제로) 그런 분인지 그런 분이 아닌지 제가 어떻게 알아보면 되겠습니까?"
"그대 암밧타여, 우리의 만트라들에는 서른두 가지 대인상들이 전해 내려온다. 그런 대인상을 갖춘 분에게는 두 가지 길만이 열려 있고 다른 것은 없다. 그가 만일 재가에 머물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다. 그는 정의로운 분이요 법다운 왕이요 사방을 정복한 승리자가 되어 나라를 안정되게 하고 일곱 가지 보배(七寶)를 두루 갖추게 된다. 그에게는 이런 일곱 가지 보배들이 있으니, 그것은 윤보(輪寶), 상보(象寶), 마보(馬輔), 보배보(寶賠寶), 여인보(女人寶), 장자보(長子寶), 그리고 주장신보(主臧臣寶)가 일곱 번째이다. 천명이 넘는 그의 아들들은 용감하고 준수하며 적군을 정복한다. 그는 바다를 끝으로 하는 전 대지를 징벌과 무력을 쓰지 않고 법으로써 승리하여 통치한다. 그런데 만일 그가 집을 나와 출가하면 아라한·정등각이 되어 세상의 어둠과 무명을 벗겨버릴 것이다.
그대 암밧타여, 나는 이 만트라들을 너에게 전해 주노니 너는 이 만트라로 그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만트라(mantra. 眞言) : 베다 문헌은 삼히타.브라마나.아란야카.우파니샤드.수트라의 다섯부분으로 분류된다. 이 중에서 삼히타는 리그베다.야주르베다.사마베다.아타르바베다의 4종의 삼히타를 말한다. 이 4종의 삼히타는 힌두교의 정전(正典)을 이루며, 특별히 4종의 베다 정전이라는 의미의 '투리야'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들 삼히타야 들어가 있는 개별 시구를 만트라라고 한다. 엄선된 베다 만트라들은 오늘날에도 힌두교에서 기도.종교행사.기타 상서로운 의식등에 낭송되고 있다.
*‘베다를 공부하는 자’로 옮긴 원어는 ajjhāyka이다. 이 단어는 adhi(~로 향하여)+√i(to go)에서 파생된 명사인데 주석서에서 “만뜨라를 공부한다.(mante parivatteti)”(DA.i.247)라고 설명하듯이 산스끄리뜨adh-yāya도 베다를 공부하는 것을 뜻한다.주석서에서는 “처음에는 禪(jhāna)이 없는 바라문들을 비난하는 말이었지만 요즈음은[베다를] 공부하는 자로 칭송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Ibid)고 흥미로운 해석을 하고 있다.인도의 베다 문헌은 고대로부터 삼히따(Sarṅhitā, 本集), 브라흐마나(Brāhmaṇa, 秘義書)의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삼히따(베다본집)에는 우리가 잘 아는『리그베다』,『야주르베다』『사마베다』『아타르와베다』가 있다. 이 베다본집을 토대로 하여 수많은 학파와 문도와 가문들로 구성된 것이 인도 바라문들이다. 그래서 각 학파나 문도에서는 각각 그들 고유의 제의서와 삼림서와 비의서를 가지고 있으며 그 학파는 수천 개가 넘었다고 한다. 그래고 이들은 제사에서 각각 네 가지 역할을 분장해서 관리하면서 인도 전통 바라문교를 유지해 오고 있다. 초기경들에서는 이 가운데『아타르와베다』를 제외한 앞의 세 베다만을 삼베다(tevijjā)라 하여 인정하고 있다.초기경에서『아타르와베다』는 베다로 인정되지 않는다. 사실『아타르와베다』는 그 내용이 흑마술(黑魔術, black magic)에 관한 것이 많기 때문에 신성한 베다로 인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야주르베다』와 『사마베다』의 거의 모든 만뜨라는 『리그베다』에 모두 나타난다. 『리그베다』가운데서 제사의식을 관장하는 야주스(Yajus) 바라문이 의식을 거행하면서 읊는 만뜨라를 모은 것이 『야주르베다』이며, 리그베다 가운데서 제사에서 창(唱)을 하는 사만(Sāman) 바라문들의 창에 관계된 만뜨라를 모은 것이 『사마베다』이다. 『야주르베다』와 『사마베다』는 그 분량이 『리그베다』의 5분의 1정도도 되지 않는다. 각파에 속하는 바라문들은 그들 제파의 베다 문헌들, 특히 베다본집(Sarṅhitā)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불교가 태동하기 전부터 음운(Śikṣā), 제사(Kalpa), 문법(Vyākaraṇa), 어원(Nirukta), 운율(Chan-das), 점성술(Jyotṣa)의 여섯 가지 측면에서 많은 연구를 하였고, 이들은 베당가(Vedāṅga)라는 여섯 갈래로 정착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이 베당가에 속하는 많은 문헌들이 전승되어 오고 있다.불교에서는 여섯 베당가 가운데서 운율과 점성술을 제외하고 대신에 역사를 넣어 이렇게 다섯 가지로 베다의 학문방법을 정리하고 있다. 아마 초기 불교 시대에는 아직 운율과 점성술이 베당가의 영역으로 정리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그러나 주석서에서는 “『아타르와베다』(Āthabbaṇada)를 네 번째로 하고 ‘참으로 그러하였다.’(iti ha āsa)는 말과 상응하여 오래된 이야기(purāṇakathā)라 불리는 역사(itihāsa)를 다섯 번째로 한다고 해서 역사를 다섯 번째로 하는 베다들이라 한다.”(DA.i.247)라고 설명하여 『아타르와베다』를 네 번째로 간주하여 주석을 하고 있다.그리고 여기서 역사(itihāsa)에 속하는 것이 바로 인도의 『마하바리따』(Mahābhārata)이며 이 이후에 전개된 『뿌라나』(Purāṇa) 문헌도 역사서에 넣는다. 그래서 힌두에서는 여섯 배당가 다음 단계로 이띠하사-뿌라나라는 영역을 넣어서 인도 문헌의 발전을 기술하고 있다.
6. "그러겠습니다, 스승님시여."라고 암밧타는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 대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되에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물러났다. 그는 암말이 끄는 마차에 올라 많은 바라문 수행승들과 함께 잇차낭깔라의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마차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마차에서 내린 뒤 걸어서 숲으로 들어갔다.
7. 그 무렵에 많은 비구들이 노지에서 포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그 비구들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존자들이여, 지금 그분 고따마 존자는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우리는 그분 고따마 존자를 뵙고자 여기에 왔습니다."
8. 그러자 비구들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자는 유명한 가문 출신이여 잘 알려진 바라문의 사문인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이다. 세존께서 이러한 좋은 가문의 아들들과 대회를 나누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라고. 그들은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암밧타여, 저 문이 닫혀있는 처소입니다. 그러니 소리를 내지 말고 다가가서 서두르지 말고 현관에 들어간 뒤 '흠'하고 소리를 낸 후 빗장을 두드리시면 됩니다. 그러면 세존께서 그대에게 문을 열어 드릴 것입니다."
9. 그러자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문이 닫혀있는 처소로 소리를 내지 않고 다가가서 서두르지 않고 현관에서 '흠'하고 소리를 낸 후 빗장을
두드렸다. 세존께서는 문을 열어주셨고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바라문 수행승들도 역시 안으로 들어가서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그러나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걸으면서도 앉아 계신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었고 그리고 선 채로도 앉아계신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10. 세존께서는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암밧타여, 그대는 나이가 많고 늙거나 또는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바라문들과 대화를 할 때도 걷거나 선 채로, 지금 않아 있는 나에게 하듯이
이렇게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대화를 하는가?"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여, 바라문은 서있는 바라문과는 서서 대화를 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바라문은 앉아 있는 바라문과는 앉아서 대화를 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바라문은 누워있는 바라문과는 누워서 대화를 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그러나 머리깎은 사문, 비천한 검은피부들을 가진 자들은 우리 조상의 발에서 태어난 자들 입니다. 내가 그들과 대화를 할 때는 지금 고따마 존자와 하듯이 이렇게 합니다."
* 원어 bandhupādapaccā는 bandhu(친척의)-pāda)발[에서 난]-apaccā(후손들)로 분석 된다. 주석서에서는 “여기서 친척이란 범천(brahmā)을 두고 한 말이다. 그래서 바라문들은 그를 조상(pitamaha, 할아버지)이라 부른다.”(DA.i.254)라고 설명한다.『리그베다』열 번째 장(만달라)의 「뿌루샤 숙따」(Puruṣa Sūkta, 原人에 대한 찬미가)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바라문은 그(뿌루샤)의 입(mukha)이고그의 팔(bāhu)로부터 끄샤뜨리아가 만들어졌고그의 넓적다리(Ūru)로부터 와이샤가발(pad)로부터 수드라가 태어났다.”(Rv.x.90:12)
11. "암밧타여, 그대가 여기온 것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목적이 있어서 왔다면 그 목적을 잘 새기고 기억하도록 하라.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아직 삶을 완성하지 못했구나. 그대가 삶을 완성했노라고 자만하는 것은 아직 삶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12.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세존께서 아직 삶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말씀을 하시자 '사문 고따마는 나를 경멸하는구나'라고 생각하여 화가 나고 마음이 몹시 불쾌해서 세존께 거친 말을 하고 세존을 경멸하고 세존을 비난하면서 이와 같이 말했다.
"고따마 존자여, 사꺄 출신들은 거칩니다.
고따마 존자여, 사꺄 출신들은 성미가 급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사꺄 출신들은 포악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사꺄 출신들은 아주 비천하면서도 바라문들을 존경하지 않고, 바라문들을 존중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숭상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예배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공경하지도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사꺄족 들이 비천히고 비천한 출신이면서도 바라문들을 존경하지 않고, 바라문들을 존중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숭상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예배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공경하지도 않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고 올바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삭까족들에 대해서 첫 번째로 비천하다는 말로 비난하였다.
* ‘삭까들’은 Sakkā(pl.)의 역어이다. 부처님의 족성(族姓)이며 우리에게 석가족(釋迦族)으로 알려진 종종과 관련되어 Sakyā, Sākiyā의 세 가지 표현이 초기경에는 섞여서 나타난다. 초기경에서 종족과 지명은 항상 복수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도 모두 복수로 표기하였음을 밝힌다.본경 §1.16에 있듯이 석가족의 이름은 사까(sāka) 나무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사까 나무에 속하는’이라는 뜻에서 샤꺄(sākā)가 되자만 빠알리 표기법에 의하면 복자음 앞에는 항상 단모음이 오게 된다. 그래서 ‘-ky-’라는 복자음 앞에 단모음 ‘-a’가 와서 Sakyā라고 표기한다. 본서에서 ‘사꺄들’로 옮긴 단어는 모두 이 Sakyā이다. 초기경에서는 주로 사꺄족의 종족을 나타내는 경우에 쓰이고 있다. 이 경우 모두 ‘사갸들’로 옮겼다. 합성어에서는 단수 Sakya로 쓰여 ‘사꺄의, 사까에 속하는’ 이라는 형용사로도 나타난다. 앞 문단에서 ‘사까 출신’으로 옮긴 원어는 ‘Sakya-jāti’인데 ‘사꺄의 태생’이라 직역할 수 있다.
13. 세존께서는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그런데 암밧타여, 사꺄족들이 그대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고따마 존자여, 한번은 제가 저의 스승인 뽁카라사띠 바라문의 어떤 일 때문에 까삘라왓투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사까들의 집회소에 들어갔습니다. 많은 사꺄들과 사꺄의 소년들이 집회소와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서로 손가락 끝으로 쿡쿡 찌르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이 제게는 저를 업신여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제게 자리를 권하지 않았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사꺄족 들은 비천히고 비천한 출신이면서도 바라문들을 존경하지 않고, 바라문들을 존중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숭상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예배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공경하지도 않는 것은 적당하지 않고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삭까들에 대해서 두 번째로 비천하다는 말로 비난하였다.
14. 세존께서는 암맛타 바라문 수행승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암밧타여, 메추리라는 새도 자기들 둥지에서는 자기들 좋을 대로 지저귀기 마련이다.
암밧타여, 까삘라왓투는 사꺄들의 보금자리다. 암밧타가 이런 사소한 것으로 그들을 비난해서야 되겠는가?"
"고따마 존자여, 끄샤뜨리아, 바라문, 와이샤, 수드라의 네가지 계급이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이 네 가지 계급 가운데 끄샤뜨리아와 와이샤와 수드라의 세 계급은 완전히 바라문의 하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사꺄족들은 비천히고 비천한 출신이면서도 바라문들을 존경하지 않고, 바라문들을 존중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숭상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예배하지도 않고, 바라문들을 공경하지도 않는 것은 적당하지 않고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삭까들에 대해서 세 번째로 비천하다는 말로 비난하였다.
15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런 생각이 드셨다.
'이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삭까들을 비천하다는 말로 비난하니 아주 지나치구나. 나는 이 자의 씨족을 물어봐야겠다.'
세존께서는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암밧타여, 그대의 씨족의 이름은 어떻게 되는가?"
"고따마 존자여, 나는 깐하야나(깐하의 후예)입니다."
* 깐하(Kaṇha)는 산스끄리뜨로 꾸리슈나(Kṛṣṇa)이다. 그러므로 이 깐하는 『바가왓기따』에서 아르쥬나에게 힌두 최고의 철학을 설하는 자인 끄리슈나와 비교해 볼만하다. 본경 §1.23에서 깐하(끄리슈나)는 굉장한 선인(仙人)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힌두의 끄리슈나 신앙과 무관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끄리수나 신앙도 북인도에서부터 비롯되어 인도의 대서사시『마하바라따』(Mahābhārata) 안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이 끄리슈나는 후대에 위슈누의 8번째 화신으로 힌두신화에 정착이 되고, 부처님은 9번째 화신으로 정착이 된다.
16 "암밧타여, 그대의 조상들의 이름과 성을 기억하건데 사꺄들은 주인이고 그대는 사꺄들의 여자 노비의 아들이다.
암밧타여, 사꺄들은 옥까까 왕을 선조로 여긴다.
암밧타여, 엣날에 옥까까 왕에게는 사람스럽고 마음에 드는 (새) 왕비가 있었는데 그녀가 낳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서 욱까무까, 까라깐두, 핫티니까, 시미뿌라라는 (전 왕비가 낳은) 손위의 왕자들을 왕국에서 추방하였다. 그들은 왕국에서 추방되어 히말라야 산 기슭의 연못가에 있는 큰 사까 나무 숲속에서 삶을 영위하였다. 그들은 혈통이 섞이는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누이들과 함께 살았다.
암밧타여, 그러던 어느 날 옥까까 왕은 대신들과 측근들을 불러서 말하였다. '대신들이여, 지금 왕자들은 어디에 살고 있는가?''왕이시여, 히말라야 산 기슭의 연못가에 있는 큰 사까 나무 숲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혈통이 섞이는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누이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암밧타여, 그러자 옥까까 왕은 감흥어를 읊었다.'오, 참으로 왕자들은 사꺄들이로구나.오, 참으로 왕자들은 최상의 사꺄들이로구나.'라고.암밧타여, 그후로 그들은 사꺄족라고 알려지게 었다. 그가 사꺄족들의 시조이다.
* 원어는 Okkāka이다. 산스끄리뜨 문헌에 나타나는 이름은 익슈와꾸(lkṣvāku)로 『뿌라나』(Purāṇa) 문헌에서 최초의 인간인 마누(Manu)의 열 명의 아들 중 첫 번째 아들로 등장한다. 그러나 『마하바리따』에 의하면 익슈와꾸는 마구의5대째 후손이다. 그런데 어떤 학자는 빠알리어 문헌에 등장하느 옥까까 야야기가 산스끄리뜨 『뿌라나』의 익슈와꾸는 이러한 빠알리 전설을 『뿌라나』로 의도적으로 편인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Thomas 6)아무튼 그 당시 사꺄족이 믿고 있던 조상에 대한 전설로 북인도에서는 잘 알려진 전설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익슈와꾸 신화를 인도의 여러 문헌에서 강조하는 이유는 익슈와꾸(옥까까)를 선조로 하는 가문 혹은 씨족은 인도신화에서 최초의 인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마누(Manu)의 적통(嫡統)이라는 것을 천명하기 위한 것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옥까까 왕은 다섯 명의 왕비가 있었으며 첫 번째 왕비와의 사이에서 본경에서 언급되는 네 왕자와 다섯 공주를 낳았다. 첫 번째 왕비가 죽자 또 다른 왕비를 맞아서 첫 번째 왕비[正妃]로 삼았는데 그에게서는 잔뚜(Jantu)라는 왕자를 낳았으며 이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자 이전의 왕비에서 난 왕자들을 추방하게 하였다고 한다.(DA.i.258f)* 사까(sāka) 나무는 학명으로는 Tectona grandis인데 요즘 최고의 목재로 인기 있는 티크(Teak) 나무를 말한다.
17. 그런데 암밧타여, 옥까까 왕에게는 다사라는 하녀가 있았다. 그녀는 깐하(검둥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깐하는 태어나자마자 이렇게 외쳤다.
'저를 씻어 주세요, 어머니 저를 목욕시켜 주세요. 어머니, 이 더러움으로부터 저를 벗어나게 해주세요. 어머니, 저는 어머니께 이익이 될 것입니다.'라고.
암밧타여, 요즘 사람들이 유령을 두고 유령이라고 부르듯이 그때 사람들은 유령을 두고 깐하라고 불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하였다. 깐하가 태어 났다. 유령이 태어났다.'라고.
암밧타여, 그때부터 깐하야나(깐하의 후예)들은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바로 깐하야나의 시조이다.
암밧타여, 이와 같이 그대의 조상들의 이름과 성을 기억하건데 사꺄들은 고귀한 후손이고 그대는 사까들의 여자 노비의 아들이다."
18.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바라문 수행승들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는 암밧타 수행승을 꾸짖지 마십시오.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좋은 가문의 아들입니다.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많이 배웠습니다.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선한 말씨를 가졌습니다.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현자입니다.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고따마 존자와 함께 이 담론에 참여할 능력이 있습니다."라고.
19. 세존께서는 바라문 수행승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만일 그대 바라문 수행승들이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나쁜 가문의 아들입니다.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적게 배웠습니다.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말을 제대로 못합니다.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우둔합니다.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고따마 존자와 함께 이 담론에 참여할 능력이 없습니다."라고 생각한다면,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가만히 있게 하고, 그대들이 나와 더불어 이 담론에 참여하라. 그러나 만일 그대들이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좋은 가문의 아들입니다.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많이 배웠습니다.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선한 말씨를 가졌습니다.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현자입니다.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고따마 존자와 함께 이 담론에 참여할 능력이 있습니다."라고 생각한다면 그대들은 가만히 있고,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나와 더불어 이 담론에 참여하게 하라."
20. 바라문 수행승들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여,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좋은 가문의 아들입니다.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많이 배웠습니다.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선한 말씨를 가졌습니다.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현자입니다.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고따마 존자와 함께 이 담론에 참여할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을 것입니다.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이 고따마 존자와 더불어 이 담론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21. 세존께서는 압밧타 바라문 수행승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암밧타여, 이것은 그대에게 주는 법에 입각한 질문이다. 비록 그대가 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설명해야 한다. 만일 그대가 설명하지 않고 다른 것으로 얼버무린다든지, 침묵하고 있다든지, 도망한다든지 하면, 그대의 머리는 바로 이 자리에서 일곱 조각이 날 것이다.
암밧타야,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늙고 나이든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바라문들이 깐하야나(깐햐의 후예)들이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는지, 누가 깐하야나의 선조인지에 대해서 설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는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침묵하였다.
두 번째로 세존께서는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암밧타야,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늙고 나이든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바라문들이 깐하야나(깐햐의 후예)들이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는지, 누가 깐하야나의 선조인지에 대해서 설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는가?"
두 번째도 역시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침묵하였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암밧타여, 이제 설명을 하여라. 지금은 그대가 묵묵부답할 때가 아니다.
암밧타여, 여래가 세 번 법다운 질문을 했는데 설명을 하지 않으면 그대의 머리는 마로 이 자리에서 일곱 조각이 날 것이다."
22. 그때에 금강수(金剛手) 약카가 시뻘겋게 달구어지고 불꽃을 튀기고 빛을 내는 철 곤봉을 들고 '만일 이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이 세존께서 세번 째 법에 입각한 질문을 했는데도 설명을 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그의 머리를 일곱 조각 내어 버리리라.'라고 (벼르면서)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 바로 위의 허공에 나타났다.
세존께서도 금강수 약카를 보셨고,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도 그를 보았다. 그러자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두렵고 털이 곤두서서 세존께 보호를 찾고 세존께 의지처를 찾으면서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지금 고따마 존자께서 말씀하신 것을 다시 제게 말씀해 주소서."
"암밧타야,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늙고 나이든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바라문들이 깐하야나(깐햐의 후예)들이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는지, 누가 깐하야나의 선조인지에 대해서 설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 말씀하신 바 그대로 저는 들었읍니다. 깐하야나는 그분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분이 바로 깐하야나의 시조입니다."
* 법에 입각한: 주석서에는 "원인(hetu)와 이유(karana)를 가진 것"이라고 설명하며 복주석서에는 여기서 법(damma)는 법무애해처럼 이유를 뜻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즉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질문이 아니라 암밧타가 사꺄들을 근거없이 비난하는 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충분한 이유를 갖추어서 던지는 질문이라는 의미다. * 금강수 약카(Vajirapani):'그의 손에 금강저를 가진'이란 의미이며, 주석서에는 이 금강수 약카는 다름 아닌 신들의 왕 삭까(Sakko devaraja, 인드라, 제석)라고 설명하고 있다.
23. 이렇게 대답하자 바라문 수행승들에게 큰 소동이 일어나 시끄럽고 큰 소리로 떠들썩하게 되었다.
"오, 참으로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천한 태생이로구나. 오, 참으로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좋은 가문의 아들이 아니구나. 오, 참으로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사꺄들의 여자 노비의 아들이로구나. 사꺄들은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의 주인이로구나. 참으로 우리는 법답게 말하는 사문 고따마를 업신여기려고 했구나."
24.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런 생각이 드셨다.
'이 바라문 수행승들은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을 여자 노비의 아들이라는 말로 심기를 건드리니 아주 지나치구나. 그러니 이제 나는 그가 여기서 벗어나게 해야겠다.
세존께서는 그 바라문 수행승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바라문 수행승들은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을 여자 노비의 아들이라는 말로 지나치게 건드리지 말라. 깐하는 굉장한 선인(仙人)이었다. 그는 남쪽 지방으로 가서 바라문의 만뜨라를 공부한 후에 옥까까 왕에게로 와서 그의 딸 맛다루삐와 결혼하게 해 달라고 하였다. 옥까까 왕은 "이것보게, 이 작자는 여자 노비의 아들이 되어가지고는 내 딸 맛다루삐와 결혼할려고 하는구나.'라고 화가 나고 마음이 몹시 언짢아서 그의 활에 화살을 겨누었다. 그러나 그는 그 활을 쏠 수도 없었고 거둘 수도 없었다.
바라문 수행승들이여, 그러자 대신들과 측근들이 깐하 선인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존귀하신 분이시여, 왕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존귀하신 분이시여, 왕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만일 왕이 화살을 아래로 향하여 쏘면 왕은 안전하겠지만 그의 전 국토에는 지진이 일어날 것입니다. 존귀하신 분이시여, 왕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존귀하신 분이시여, 왕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만일 왕이 화살을 위로 향하여 쏘면 왕도 안전하고 영토도 안전하겠지만 칠 년 동안 가뭄이 들것이다.' '존귀하신 분이시여, 왕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존귀하신 분이시여, 왕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만일 왕이 화살을 왕자에게 겨누면 왕자는 무탈하고 안전할 것이고 왕도 안전하고 영토에도 비가 내릴 것입니다.'
바라문 수행승들이여, 그러자 대신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옥까까왕은 왕자에게 화살을 겨누십시오. 왕자는 전적으로 안전하게 될 것입니다.' 바라문 수행승들이여, 그러자 옥까까 왕은 왕자에게 화살을 겨누었고 왕자는 전적으로 안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옥까까 왕은 천벌을 받을까 두렵고 겁이 나서 그의 딸 맛다루삐를 그에게 주었다. 바라문 수행승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에게 여자 노비의 아들이라는 말로 지나치게 비난하지 말라. 깐하는 굉장한 선인이었다."
* ‘선인(仙人)’으로 옮긴 원어 isi(Sk. ṛṣi)는 √rṣ(to rush, to push)에서 파생된 단어로‘질리를 찾아서 다니는 자’라는 의미에서 서양에서는 seer라고 옮긴다. 산스끄리뜨 문헌에서는 “지혜로 윤회의 피안으로 달려가는 자(ṛṣati jñānena sarṅsārapāram)” (Uṇ. iv.119에 대한 주석)라고 정의하고 있다.한편 불교 주석서들에서는 “제어와 절제 등을 찾는다는 뜻에서(esana-tthena) 선인이라 한다.”(PvA.98)라거나 “禪 등의 공덕(guṇa)을 찾는다는 뜻에서 선인이라 한다.”(PvA.163)라거나 “무학(asekkha)들의 계온(戒蘊) 등을 찾는다는 뜻에서 선인이라 한다.”(PvA.265)라는 등으로 설명하는데 여기서 보듯이 isi를 esana로 설명한다. esana는 ā(앞으로)+√iṣ(to seek, to desire)에서 파생된 명사로 ‘구함, 찾음’등을 뜻한다.
25. 그런 다음 세존께서는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암밧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끄샤뜨리아 청년과 바라문 처녀가 결혼하여 산다고 하자. 그들이 함께 살아서 아들을 낳는다 하자.
그러면 그 끄샤뜨리아 청년과 바라문 아내 사이에서 난 아들은 바라문들 사이에서 자리나 마실 물을 얻게 되는가?
"얻게 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바라문들은 그에게 조령제(힌두교의 제사의 일종)와 탈리빠까와 제사와 손님 접대에서 음식을 베푸는가?"
"음식을 베풉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바라문들은 그에게 만트라를 전수해 주는가?"
"전수해줍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그는 (바라문)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는가, 맞이할 수 없는가?
"맞이할 수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그러면 그는 끄샤뜨리아의 관정식을 통해서 관정(灌頂. 머리에 물을 붓는 의식)을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는 어머니 쪽을 (순수하게) 깆추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 ‘조령제(祖靈祭)’로 옮긴 원어는 saddha인데 일반적으로 믿음으로 옮기는 saddhā와 같이 ṣrad+√dhā(to put)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주석서에서는 “죽은 사람을 지목해서 음식을 만드는(matake uddissa katabhatte)”(DA.i.267)이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음식을 뜻한다. 그래서 조령제라고 옮겼다. saddha의 산스끄리뜨는 ṣsāddha인데 제의서에 의하면 슈랏다는 가정제사(pāka-yajña, grhya-yajña)가운데 하나로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를 뜻한다. 제의서에 의하면 가정제사(pāka-yajña)에는 일곱 종류가 있다.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① 아슈따까(Aṣṭakā); 겨울철 넉 달의 하현의 8일(요즘 음력 24일)에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➁ 빠르와나(혹은 스딸리빠까, Pārvaṇa/Sthālīpāka); 아래 주해 참조,③ 슈랏다(Śrāddha);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를 통칭하는 말이다.④ 슈리와니(Ṣrāvaṇī): 슈리와나 달(음력 7~8월) 저녁에 올리는 음식 제사.⑤ 아그라하야니(Āgrahāyaṇī): 마르가쉬르샤(Mārgaśirṣa) 달의 보름에 올리는 제사.⑥ 짜이뜨리(Caitrī); 짜이뜨라(Caitra) 달의 보름에 올리는 제사.⑦ 아슈와유지(Āṣvayujī): 아슈위나(Āśvina) 달의 보름에 올리는 제사. 탈리빠까(thālipāka)를 주석서에서는 결혼식(maṅgala)이나 축제 등에서 준비하는 음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Ibid)『증지부 주석서』에서는 “존경하는 사람에게 드리기에 적당한 밥(bhatta)”(AA.ii.266)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탈리빠까의 산스끄리뜨는 스탈리빠까(sthālīpāka)인데, 바라문들의 제의서에 의하면 스탈리빠까는 가정제사(pāka-yajña)가운데 하나이다. 본경의 주석서에서도 결혼식에서 준비하는 음식이라고 했듯이 이 제사의식은 특히 결혼을 한 부부가 결혼 후 처음 맞이하는 보름날에 올리는 제사의식이며, 그 후 일생 동안 매달 그믐과 보름에 실행하는 제사이다.(DVR)
여기서 ‘제사’로 옮긴 yañña는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가 아니다. 신들에게 올리는 큰 공공제사(Sk, havir-yajña)를 말한다.
26. "암밧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바라문 청년과 끄샤뜨리아 처녀가 결혼하여 산다고 하자. 그들이 함께 살아서 아들을 낳는다
하자. 그러면 그 끄샤뜨리아 청년과 바라문 아내 사이에서 난 아들은 바라문들 사이에서 자리나 마실 물을 얻게 되는가?
"얻게 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바라문들은 그에게 조령제와 탈리빠까와 제사와 손님 접대에서 음식을 베푸는가?"
"음식을 베풉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바라문들은 그에게 만뜨라를 전수해 주는가?"
"전수해줍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그는 (바라문)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는가, 맞이할 수 없는가?
"맞이할 수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그러면 그는 끄샤뜨리아의 관정식을 통해서 관정(灌頂)을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는 아버지 쪽을 (순수하게) 깆추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7. "암밧타여, 이와 같이 여인과 여인을 비교해 보고 남자와 남자를 비교해 봐도 끄샤뜨리아가 뛰어나고 바라문은 저열하다."
"암밧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바라문들이 어떤 바라문을 어떤 일 때문에 머리를 깎고 재를 뒤집어 씌운 채로 나라나 도시로부터
추방한다면 그는 바라문들 사이에서 자리나 물을 얻게 되는가?
"얻게 못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바라문들은 그에게 조령제와 탈리빠까와 제사와 손님 접대에서 음식을 베푸는가?"
"음식을 베풀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바라문들은 그에게 만트라를 전수해 주는가?"
"전수해주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그는 (바라문)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는가, 맞이할 수 없는가?
"맞이할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28. "암밧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끄샤뜨리아들이 어떤 끄샤뜨리아를 어떤 일 때문에
머리를 깎고 재를 뒤집어 씌운 채로 나라나 도시로부터 추방한다면 그는 바라문들 사이에서 자리나 물을 얻게 되는가?
"얻게 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바라문들은 그에게 조령제와 탈리빠까와 제사와 손님 접대에서 음식을 베푸는가?"
"음식을 베풉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바라문들은 그에게 만트라를 전수해 주는가?"
"전수해줍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그는 (바라문)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는가, 맞이할 수 없는가?
"맞이할 수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이처럼 끄샤뜨리아가 머리를 깎이고 재를 뒤집어씌운 채로 나라나 도시로부터 추방되는 것은 최악의 상황에 처한 것이다.
암밧타여, 이처럼 끄샤뜨리아가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 하더라도 그런 끄샤뜨리아가 (바라문보다) 더 뛰어나고 바라문은 저열하다."
29. "암밧타여, 사낭꾸마라 범천이 이런 게송을 읊었다.
'가문의 전통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끄샤뜨리아가 단연 으뜸이고
신과 인간들 가운데서는
명지(明知)와 실천을 구족한 자(明行足.vijjacaranasampanna)가 단연 으뜸이다.'
암밧타여, 이런 게송은 사낭꾸마라 범천이 잘 노래한 것이지 잘못 노래한 것이 아니며, 잘 설한 것이지 나쁘게 설한 것이 아니며, 의미를 구족한 것이지 의미를 구족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고 나도 동의한다. 암밧타여, 나도 역시 이와 같이 말한다.
'가문의 전통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끄샤뜨리아가 단연 으뜸이고
신과 인간들 가운데서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자(明行足)가 단연 으뜸이다.'
* 사낭꾸마라(Sanankumara) 문자적으로 "항상(sanam) 동자(kumara, 소년)인 자'라는 뜻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는 전생에 머리를 다섯 가닥으로 땋아 다니던 소년이었을 때(pañca-cūḷaka-kumāra-kāle) 禪을 닦아 그 선의 힘으로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고, 그래서 범천이 되어서도 동자의 모습을 하기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Ma.ii.584; DA.ii.647; cf. SA.i.171.)사낭꾸마라의 산스끄리뜨인 사낫꾸마라(Sanatkumāra)는 이미 고층 우빠니샤드인 『찬도갸 우빠니샤드』(Chāṇḍ ogya Upaniṣad, 7.26;2)에서 언급이 되고 있으며, 『마하바라따』(iii.185)에서도 그는 여기에 나타나는 게송과 비슷한 게송을 읊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본서 제2권의 「대회경」(D20)과 특히 「자나와사바 경」(Janavasabha Sutta, D18) §18과「마하고윈다 경」(D19) §1에서도 그가 등장하는데 빤짜시카 동자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마하고윈다 경」(D19) §1의 주해를 참조할 것.그는 신들 가운데 세존께 귀의한 신으로 신들의 왕인 삭까(인드라)와 함께 자주 언급된다. 범천은 바라문들의 신이요, 삭까(인드라)는 끄샤뜨리아들의 신인 점을 감안해 볼 때 상징성이 크다하겠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찬도가 우빠니샤드』의 해당 구절(7.26:2)은 마음챙김으로 옮기고 있는 sati의 산스끄리뜨인 smṛti가 강조되고 있어서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한편 세존께서 성도하신 뒤에 전법을 하실 것을 권청한 범천은 사함빠띠(Sahampati)범천이며, 거만한 바까(Baka) 범천과 세존의 대화가「브라흐마 니만따니까 경」(Brahmanimantanika Sukka, 범천의 초대, M49)에 나타난다. 이렇게 높은 천상인 범천의 세상에서도 여러 유력한 범천의 우두머리들이 존재하고 있다.사낭꾸마라 범천이 읊었다는 이 게송은 여기 외에도「세기경」(D27) §32와 『중부』(M.i.358), 『상응부』(S.i.153), 『증지부』(A.v.327) 등에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상응부』(S.ii.284)에서는 세존이 읊으신 것으로 나타난다.
30.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실천이란 무엇이며 명지란 무엇입니까?
"암밧타여,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하기 위해서는(明行足) '그대는 나와 동등하다'거나 '그대는 나와 동등하지 못하다.'라고 태생을 논하거나 가문을 논하거나 자부심을 논하지 않는다.
암밧타여, 장가 들이거나 시집보내는 이러한 결혼이 있을 때에나 '그대는 나와 동등하다.'거나 '그대는 나와 동등하지 못하다.'라고 태생을 논하거나 가문을 논하거나 자부심을 논하는 것이다. 태생을 논함에 묶이거나, 가문을 논함에 묶이거나, 자부심을 논함에 묶이거나, 결혼을 논함에 묶인
자들은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함을 멀리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암밧타여, 태생을 논함에 묶이거나, 가문을 논함에 묶이거나, 자부심을 논함에 묶이거나, 결혼을 논함에 묶이는 것을 멀리한 뒤에라야 없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함을 실현하게 된다."
* '명지’로 옮긴 원어는 vijjā인데 중국에서는 明으로 옮겼다. 무명으로 옮긴 avijjā의 반의어이다. 한편 vijja에 해당하는 산스끄리뜨 vidyā는 베다에 대한 지식을 뜻한다. 그래서 초기경에서는 『리그베다』, 『야주르베다』, 『사마베다』에 능통한 자를 tevijjā(三明)하고 하고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을 tevijja-brahmaṇa(삼명 바라문)라고 부르고 있다. 바라문은 베다 공부가 생명이므로 암밧타는 세존께 이렇게 vijjā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세존께서는 이를 오히려 불교의 통찰지(혜, 반야)와 관련지어 설명하신다. 불교의 입장에서 삼명은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와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와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를 말한다.
31.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실천이란 무엇입니까?"
"암밧타여, 여기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는 아라한(應供)이시며, 바르게 깨달은 분(正等覺, 正遍智)이시며, 영지(靈智)와 실천이 구족하신 분이시며(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깨달은 분(佛.Buddh. 붓다)이시며, 세상의 존귀하신 분(世尊.세존)이시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중생들, 즉 마라들,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및 인간들에게,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춘 것을 널리 알린다.
그는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법을 설하며,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낸다.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서 태어난 자가 듣는다. 그는 이 법을 듣고서 여래에게 믿음을 가진다. 그는 이런 믿음을 구족하여 이렇게 숙고한다. '재가의 삶이란 번잡하고 때가 낀 길이지만 출가의 삶은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완전무결하고 청정무구한 잘 닦여진 자개껍질과 같은 청정범행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이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하리라.'라고. 그는 나중에 재산이 적건 많건 간에 모두 다 버리고, 일가친척도 적건 많건 간에 모두 떠나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한다.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무른다.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잘못됨을 보며, 학습계목들을 받아지녀 닦는다. 선한 몸의 업과 말의 업을 잘 갖추고, 생계를 청정히 하고, 계를 구족하고, 감각의 근들의 문을 보호하고,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고, 얻은 필수품으로 만족한다.
32. "암밧타여, 그러면 비구는 어떻게 계를 구족하는가?
[짧은 길이의 계: 모두 26가지로 계를 지님]
① 여기 비구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버리고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멀리 떠난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는다. 모든 살아있는 중생들을 향하여 관대하고 자비한 마음을 갖고 머무른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② 그는 주지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를 버리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를 멀리 떠난다. 준 것만울 받고 준 것만을 받으려고 하며 스스로훔치지 않아 청정하게 머문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③ 그는 금욕적이지 못한 삶을 버리고 청정범행을 닦는다. 독신자가 되어 성행위의 저속함을 멀리 떠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④ 그는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버리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멀리 떠난다. 그는 진실을 말하며, 믿을만 하고, 신뢰할 수 있고, 기대할 수 있고,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⑤ 그는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를 버리고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를 멀리 떠난다. 여기서 듣고서 이들을 이간하려고 저기서 말하지 않는다.저기서 듣고서 저들을 이간하려고 여기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와 같이 이간된 자들을 합치고, 우정을 장려하며,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⑥ 그는 거친 말(욕설)을 하는 행위를 버리고 거친 말을 하는 행위를 멀리 떠난다.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이고, 예의 바르고, 대중들이 좋아하고, 대중들이 들어서 즐거운 그런 말을 하는 자이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⑦ 그는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를 버리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를 멀리 떠난다. 그는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자이며, 담아둘 만하며, 이유가 있고, 의미가 분명하며, 이익을 줄 수 있는 말을 시의 적절하게 하는 자이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⑧ 그는 씨앗류와 초목류를 손상시키는 것을 멀리 떠난다. 그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자이다. 그는 밤에 먹는 것을 그만두고 때 아닌 때 먹는 것을 멀리 떠난다.그는 춤,노래,음악,연극을 관람하는 것을 멀리 떠난다.그는 화환을 두르고 향수를 바르고 화장품으로 꾸미는 것을 멀리 떠난다.그는 높고 큰 침상을 멀리 떠난다.그는 금과 은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그는 요리하지 않은 날곡식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그는 생고기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그는 여인이나 어린 소녀를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그는 하인과 하녀를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그는 염소와 양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그는 닭과 돼지등의 가축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그는 코끼리,소,말,암말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그는 농토나 토지등의 전답을 소유하는 것을 멀리 떠난다.그는 남의 심부름꾼이나 전령으로 가는 것을 멀리 떠난다.그는 중개하거나 사고 파는 것을 멀리 떠난다.그는 저울을 속이고 돈을 속이고 치수를 속이는 것을 멀리 떠난다.그는 어떠한 종류의 속이는 부정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다.그는 남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죽이거나 또는 누군가를 강제하고 구속하여 폭력을 행하는 것을 멀리 떠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중간 길이의 계: 모두 10가지로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멀리함]
①어떤 사문이나 어떤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뿌리로 번식하는 것, 줄기로 번식하는 것,마디로 번식하는 것, 싹으로 번식하는 것, 다섯번째로 종자로 번식을 하는 씨앗과 초목을 손상시키는 행위를 하면서 머문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씨앗류와 초목류를 손상시키는 행위를 멀리 떠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②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음식을 축적하고, 마실 것을 축적히고, 옷을 축적히고, 탈 것을 축적하고, 침구와 좌구를 축적하고, 향을 축적하고, 재산을 축적하는 등 축적하는 것을 즐기는 행위를 하면서 머문다. 그러나 그는 축적하는 것을 즐기는 이런 행위를 멀리 떠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③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춤, 노래, 연주, 연극, 낭송, 박수치며 하는 공연, 마술 공연, 북치며 하는 공연, 예술품 전람회, 쇠공놀이, 죽봉놀이, 곡예, 코끼리 싸움, 말싸움, 황소싸움, 물소싸움, 염소싸움, 숫양싸움, 닭싸움,봉술, 주먹싸움, 레슬링, 모의전투, 군대의 행진, 군대의 집합, 열병등 갖가지 구경거리를 보고 즐기거나 행하는데 빠져서 머문다. 그러나 그는갖가지 구경거리를 보고 즐기거나 행하는데 빠져서 머무는 이런 행위를 멀리 떠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④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8목 체스장기, 10목 체스장기, 허공에 판이 있는 양 가정하고 하는 체스장기, 돌차기 놀이, 쌓기 놀이, 주사위놀이, 자치기, 손에 물감을 묻혀 그림 그리는 놀이, 풀피리 불기, 장난감 쟁기질 놀이, 재주 넘기, 잎으로 만든 팔랑개비 돌리기, 장난감 저울놀이, 장난감 수레놀이, 장난감 활쏘기, 허공이나 등뒤에 쓴 글자 맞히기 놀이, 불구자 흉내 내기, 도박등 갖가지 놀이나 도박을 하고 즐기는데 빠져서 머문다. 그러나 그는 갖가지 놀이나 도박을 하고 즐기는데 빠져서 머무는 이런 행위를멀리 떠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⑤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큰 침구와 좌구를 사용하면서 지낸다. 즉 아주 큰 침상, 다리에 동물 형상을 새긴 자리, 긴 술을 가진 이불, 울긋불긋한 천 조각을 덧댄 이불, 흰색 양털 이불, 꽃들을 수놓은 양털 이불, 솜으로 채운 누비이불, 동물을 수놓은 양털이불, 한쪽이나 양쪽에 술을 가진 양털이불, 보석을 박은 이불, 비단 이불, 무도장의 양탄자, 코끼리 등덮개, 수레 깔게, 사슴가죽 깔게, 영양가죽 깔게, 차양있는 양탄자, 붉은 베게와 붉은 발 한 받침이 있는 긴 의자등 높고 큰 침상이나 좌구를 사용하면서 머문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높고 큰 침구와 좌구를 사용하는 이런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⑥)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몸에 향가루 바르기, 기름으로 안마하기, 향수로 목욕하기, 사지를 안마하기, 거울 보기, 속눈썹 검게 칠하기, 화환과 향과 화장품으로 치장하기, 얼굴에 분칠하기, 화장 팔찌 차기, 머리띠, 장식용 지팡이, 장식한 약통, 긴 칼, 일산을 쓰고, 수놓은 가죽 신발을 신고, 터번이나 관모를 쓰고, 야크꼬리로 만든 총채를 잡고, 긴 술로 장식된 흰옷을 입는등 몸을 꾸미고 치장하고 장식하는 일을 즐기고 몰두하는데 빠져서 머문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몸을 꾸미고 치장하고 장식하는 일을즐기는 이런 행위를 멀리 떠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⑦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왕에 대한 이야기, 도둑에 대한 이야기, 대신들에 대한 이야기, 군대에 대한 이야기, 공포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음료에 대한 이야기, 의복에 대한 이야기, 침상에 대한 이야기, 화환에 대한 이야기, 료에 대한 이야기, 친척에 대한 이야기, 탈것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성읍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나라에 대한 이야기, 여자에 대한 이야기, 영웅에 대한 이야기, 거리에 대한 이야기, 우물에 대한 이야기, 전에 죽은 자에 대한 이야기, 잡다한 이야기, 세상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대한 이야기, 번영과 불운에 대한 이야기(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등 하챦은 이야기를 하면서 머문다. 그러나 그는 이런 하챦은 이야기들을 멀리 떠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⑧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제대로 모른다. 나야말로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안다.''어찌 그대가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알겠는가?' '그대는 그릇된 법을 닦는 자이고, 나는 바른 법을 닦는 자이다.''내 말은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는다.''그대는 먼저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했고, 뒤에 설해야 할 것을 먼저 설했다.' '그대가 (오랫동안) 주장해온던 것은 (한 마디로) 논파되었다''나는 그대의 (교설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대는 패했다. 비난으로부터 도망가라. 혹은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 설명해 보라.'등 불필요한 논쟁에 몰두하면서 머문다. 그러나 그는 이런 불필요한 논쟁을 멀리 떠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⑨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왕, 대신, 왕족, 바라문, 장자, 젊은이들이 '여기에 가시오, 저기에 가시오, 이것을 저기로 가지고 가시오, 저것을 여기로 가지고 오시오.'라는 등의 심부름이나 전령을 하면서 머문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전령이나 심부름꾼 노릇을 멀리 떠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⑩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계략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암시를 주고, 비방하고, 이득으로 이득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계략과 쓸데없는 말을 멀리 떠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긴 길이의 계: 모두 7가지로 삿된 생계를 멀리함]
①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몸의 툭징으로 예언하기, 벼락이나 하늘의 조짐에 따라 점치기, 해몽, 관상, 쥐가 파먹은 옷의 구멍에 따라서 점치기, 불을 섬김, 주걱으로 헌공함, 쌀가구 헌공, 쌀 헌공, 버터 헌공, 기름 헌공, 잎으로 하는 헌공, 피의 헌공, 수상(手相)보기, 집터 보기, 대지 보기, 묘지의 귀신 물리치기, 망령 물리치기, 흙집에 사는 자의 주술, 뱀 부리는 기술, 독극물 제조술, 전갈 부리는 기술, 쥐 부리는 기술, 새 부리는 기술, 까마귀 부리는 기술, 수명 예언하기, 화살에 대항하는 주문, 동물들의 울음을 아는 등의 하천한 지식과 기술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문다.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과 기술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②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보석의 특징, 옷감의 특징, 지팡이의 특징, 칼의특징, 긴 칼의 특징, 화살의 특징, 활의 특징, 다른 무기의 특징, 마차의 특징, 귀걸이의 특징, 여자의 특징, 남자의 특징, 소년의 특징, 소녀의특징, 남녀 노비의 특징, 코끼리의 특징, 말의 특징, 물소의 특징, 황소의 특징, 암소의 특징, 염소의 특징, 양의 특징, 닭의 특징, 사슴의 특징,큰 도마뱀의 특징, 거북이의 특징 등을 이용하여 갖가지 방법으로 점을 치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문다. 그러나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③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왕들의 진격이 있을 것이다. 왕들의 퇴각이 있을 것이다. 우리 쪽 왕들의 공격이 있을 것이고, 저쪽 왕들의 후퇴가 있을 것이다. 저쪽 왕들의 공격이 있을 터이고, 우리쪽 왕들의 후퇴가 있을 것이다. 우리 쪽 왕들이 승리할 것이고, 저쪽 왕들이 패배할 것이다. 저쪽 왕들이 승리할 것이고, 우리 쪽 왕들이 패배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이편이 승리할 것이고 저편이 승리할 것이다.'라는 등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문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④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월식이 있을 것이다. 일식이 있을 것이다. 행성의 합삭이 있을 것이다. 해와 달이 올바른 항로로 운행할 것이다. 혹은 잘못된 항로로 운행할 것이다. 유성이 떨어질 것이다. 짙은 노을이 낄 것이다. 지진이 일어날 것이다. 천둥이 칠 것이다. 해와 달과 별들이 뜨거나 지거나 흐리거나 깨끗할 것이다. 월식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일식은 저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별이 가려지는 일은 다시 저러한 일을 가져올 것이다. 해와 달이 올바른 항로로 운행함은 이러한 결과를가져올 것이고 잘못된 항로로 운행함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별들이 올바른 항로로 운행함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잘못된 항로로 운행함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유성이 떨어짐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짙은 노을은 저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천둥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의 지고 흐리고 깨끗함도 각각 여러가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는 등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문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⑤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비가 내릴 것이다, 가뭄이 들 것이다, 퐁년이 들 것이다, 흉년이 들 것이다, 민심이 안정될 것이다, 민심이 흉흉할 것이다, 질병이 들 것이다, 건강하게 될 것이다,' 라거나 계산법, 암산법, 셈법, 시작(詩作)법, 처세술등 하천한 지식을 통한 생계수단으로 머문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⑥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결혼할 때에 신부 집에 들어가는 날 또는 떠나는 날을 택일하고, 약혼이나 이혼의 길일을 택해 주고, 돈을 모으거나 지출하는 날을 택해 주고, 불행이나 행운울 가져오게 하는 주문을 외우고, 발육부진인 태아의 원기를 회복하도록 주문을 외우고, 말더듬이나 벙어리가 되도록 주문을 외우고, 손에 풍이 들도록 주문을 외우고, 귀머거리가 되도록 주문울 외우고, 거울에 신울 모셔와서 물어보는 점을 치고, 소녀의 몸에 신을 모셔와서 물어보는 점을 치고, 하녀의 몸에 신을 모셔외서 물어보는 점을 치고, 태양을 숭배하고, 대범천을 숭배하고, 입에서 불을 내뿜고, 행운의 여신을 부르는 등의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문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활수단을 멀리 떠난다. 이것이 이 비구의 계이다. ⑦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신의 축복을 비는 의식, 귀신을 부르는 의식, 흙집에 들어가서 주문을 외우는 의식, 정력을 왕성하게 하는 의식, 성불구자가 되게 하는 의식, 집지을 땅을 마련하는 의식, 집 지을 땅을 신성하게 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의식을 위해 입을 씻고 목욕재계하고 불에 제사를 지낸다. 구토 의식, 정화 의식, 아래를 깨끗이 하는 의식, 위를 깨끗이 하는의식, 귀약과 안약과 코약과 연고와 연고 제거제를 주고, 안과의사, 외과의사, 소아과의사 일을 하고, 뿌리 약을 처방하고, 필수적인 약용식물을처장하는 등의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문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다. 이것이이 비구의 계이다.
암밧타여, 이와 같이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써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허물을 보지 못한다.
암밧타여,예를 들면 관정(灌頂)한 끄샤뜨리야 왕은 적을 정복하였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허물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암밧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서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는 곳에서도 허물을 보지 못한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戒蘊)을 구족하여 안으로 비난받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암밧타여, 이와 같이 비구는 계를 구족한다."
33. "암밧타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감각의 근을 잘 지키는가? 1) 암밧타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보면서 그 표상(相)을 붙잡지 않으며, 또 뒤따르는 (세세한) 느낌(受)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근(眼根)이 보호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간탐과 고뇌) 삿되고 선하지 않은 형색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 길들이기 위해, 고요하게 하기 위해 닦고 익힌다. 2) 암밧타여, 여기 비구는 귀로 소리를 들으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 않으며, 또 뒤따르는 느낌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귀의 근(耳根)이 보호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소리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귀의 근을 근을 제어하기 위해, 길들이기 위해, 고요하게 하기 위해 닦고 익힌다. 3) 암밧타여, 여기 비구는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 않으며, 또 뒤따르는 느낌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코의 근(鼻根)이 보호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냄새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코의 근을 근을 제어하기 위해, 길들이기 위해, 고요하게 하기 위해 닦고 익힌다. 4) 암밧타여, 여기 비구는 혀로 맛을 보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 않으며, 또 뒤따르는 느낌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혀의 근(舌根)이 보호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맛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혀의 근을 근을 제어하기 위해, 길들이기 위해, 고요하게 하기 위해 닦고 익힌다. 5) 암밧타여, 여기 비구는 몸으로 감촉을 느끼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도 않으며, 또 뒤따르는 느낌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몸의 근(身根)이보호되어 않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감촉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몸의 근을 근을 제어하기 위해, 길들이기 위해, 고요하게 하기 위해 닦고 익힌다. 6) 암밧타여, 여기 비구는 마음으로 (마음현상)을 지각하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 않으며, 또 뒤따르는 느낌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마음의 근(意眼))이 보호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귀의 마음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 길들이기 위해, 고요하게 하기 위해 닦고 익힌다. 암밧타여, 여기 비구는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구족하여 안으로 더렵혀지지(오염되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께왓다여, 이와 같이 비구는 감각의 근을 잘 지킨다.
34. "암밧타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는가?암밧타여, 여기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갈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아 차리면서(正知)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아 차리면서 행한다.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아 차리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아 차리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아 차리면서 행한다. 걸으면서 · 서면서 · 앉으면서 · 잠들면서 · 잠을 깨면서 말하면서 · 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알아 차리면서 행한다. 암밧타여,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잘 갖춘다." 35. "암밧타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얻은 필수품만으로) 만족하는가?암밧타여, 여기 비구는 몸을 보호하기 위한 옷과 몸을 지탱하기 위한 음식으로 만족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을 지키며 머문다.
암밧타여, 예를 들면, 양 날개를 가진 새는 어디를 날아가더라도 오직 자기의 양 날개만으로 날아간다.
암밧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몸을 보호하기 위한 의복과 몸을 지탱하기 위한 음식으로 만족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을 지키며
머문다. 암밧타여, 이와 같이 비구는 얻은 필수품만으로 만족한다.
36. "암밧타여, 여기 비구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잘 갖추고,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의 근들의 단속을 잘 갖추고, 이러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어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비어 있는 장소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는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서 가부죄를 틀고 상체를 똑바로 세우며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암밧타여, 여기 비구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머문다. 욕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악의의 오점을 제거하여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머문다.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여 악의의 오점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여 해태와 혼침이 없이 머문다. 광명상(光明想)을 가져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들뜨지 않고 머문다. 안으로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뜸과 후회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의심을 제거하여 의심을 건너서 머문다. 선한 법들에 아무런 의문이 없어서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암밧타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빚을 내어 장사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은 성공하여 오래된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부인을 한 명 부양할 수 있는 여분의 재산도 생길 것이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빚을 내어 장사를 했다. 그런 나는 장사에 성공하여 이제 오래된 빚을 다 갚았다. 그뿐만 아니라 부인을 한 명 부양할 수 있는 여분의 재산도 생겼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심을 내고 기뻐한다.
암밧타여, 예를 들면 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과도 같다. 그 사람은 음식을 먹을 수 없어 그의 몸에 힘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며칠 후 그는 병에서 회복될 것이다. 음식을 먹으면서 힘도 다시 생겨날 것이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렸다. 음식을 먹을 수 없어 나의 몸에 힘이라고는 하다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병에서 회복되었다. 음식을 먹을 수 있고, 힘도 다시
생겨났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심을 내고 기뻐한다.암밧타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옥에 갇혔다가 얼마 뒤 옥에서 풀려난 것과도 같다. 그 사람은 이제 안전하고 두려울 것도 없고 또 재산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옥에 갇혔다. 그런 나는 이제 옥에서 풀려났다. 나는 안전하고 두려울 것도 없고 또 재산도 줄어들지 않았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심을 내고 기뻐한다.
암밧타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노예가 되어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지도 못하고, 남에게 속박되어서 가고 싶은 곳에도 갈 수 없이 지내다가 얼마 뒤 노예의 신분에서 풀려난 것과도 같다. 그 사람은 이제 자유롭게 되어 더 이상 남에게 속박되지 않고, 그가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노예가 되어 내 생각대로 행동하지도 못하고, 남에게 속박되어서 가고 싶은 곳에도 갈 수 없이 지내다가 이제 노예의 신분에서 풀려났다. 이제 나는 자유롭게 되어서 더 이상 남에게 속박되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심을 내고 기뻐한다.암밧타여, 예를 들면 어떤 부유한 사람이 재물을 가지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사막을 걷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은 얼마 뒤 그 사막을 다 건너서위험이 없는 안전한 장소인 마을에 도착을 했고 또 재산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부유하고 재물을 가지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사막을 걸었다. 이제는 나는 그 사막을 다 건너서 위험이 없는 안전한 마을에 도착을 했고 또 재산도 줄어들지 않아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심을 내고 기뻐한다.암밧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五蓋)가 제거되지 못한 것을 관찰할 때 비구는 스스로를 빚진 사람(욕심) , 환자(악의), 옥에 갇힌 사람(해태와 혼침), 노예(들뜸과 후회), 사막을 걷는 사람(의심)로 여긴다. 그러나 자신에게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관찰할 때, 비구는 스스로를 빚에서 벗어난 사람, 병이 쾌유한 사람, 감옥의 굴레에서 벗어난 사람, 자유인, 그리고 안전한 곳에 도착한 사람으로 여긴다."
37. "암밧타여, 비구는 자신에게서 다섯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관찰할 때 환희가 생겨난다. 환희로운 자에게는 기쁨이 생긴다. 기쁨을 느끼는 자의 몸은 편안하다. 몸이 편안한 자는 즐거움을 느낀다. 즐거운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①암밧타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과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를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喜)과 즐거움(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무른다. 이것 역시 그의 실천이다.
그는 분리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자신의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 넘치게 하고 가득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온 몸 어디라도 분리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암밧타여, 예를 들면 어떤 목욕하는 사람이 그릇에 목욕가루를 담고 물을 뿌리면서 둥글게 뭉치면 그 목욕가루에 물기가 젖어들고 스며들어
그 목욕가루 덩어리가 물기를 흘려보내지 않는 것과 같다.
암밧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분리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자신의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 넘치게 하고 가득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온 몸 어디라도 분리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②암밧타여, 다시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무른다. 이것 역시 그의 실천이다.
그는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자신의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 넘치게 하고 가득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온 몸 어디라도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암밧타여, 예를 들면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물로 채워지는 호수가 있다. 그런데 그 호수에는 동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서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북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남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또 하늘에서 때때로 소나기마저도 내리지 않는다. 그러면 호수의 밑바닥에서 차가운 물줄기가 솟아올라 그 호수를 차가운 물로 충만하게 하고 흘러 넘치게 하고 가득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할 것이다. 그러면 그 호수의 어디라도 이 차가운 물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암밧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자신의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 넘치게 하고 가득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온 몸 어디라도 분리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③암밧타여, 다시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 역시 그의 실천이다.
그는 기쁨이 사라진 즐거움으로 자신의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 넘치게 하고 가득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온 몸 어디라도 분리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암밧타여, 예를들면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이 피어있는 호수에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들이 물 속에서 생기고 자라서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 물 속에 잠긴 채 무성하게 어우러져 있는데, 차가운 물이 그 꽃들을 꼭대기에서 뿌리까지 충만하게 하고 흘러 넘치게 하고 가득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그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의 전체 어디라도 차가운 물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암밧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기쁨이 사라진 즐거움으로 자신의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 넘치게 하고 가득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온 몸 어디라도 분리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④암밧타여, 다시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무른다. 이것 역시 그의 실천이다.
그는 이 몸을 지극히 청정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고루 채우고서 앉아 있다. 온 몸 어디라도 지극히 청정하고 깨끗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은 데가 없다.
암밧타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얀 천을 덮어쓰고 앉아 있다면, 그의 몸 어느 부분도 하얀 천으로 덮이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암밧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이 몸을 지극히 청정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고루 채우고서 앉아 있다. 온 몸 어디라도 지극히 청정하고 깨끗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은 데가 없다.
38. "암밧타여,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지(知)와 견(見)으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이와 같이 철저히 안다.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성장되었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의식은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있다.'라고.
암밧타여, 예를 들면 깨끗하고 빛나고 팔각형으로 잘 가공된 하늘 색 보석이 흠이 없고 완전한 품질을 갖추었다. 그 보석에 푸른 색이나 노란 색이나 붉은 색이나 흰 색이나 갈색의 실이 묶고 있다. 그것을 눈이 있는 사람이 손에 놓고서 생각할 것이다. '이 보석은 깨끗하고 빛나고 팔각형으로 잘 가공된 하늘 색 보석이 흠이 없고 완전한 품질을 갖추었다. 그 보석에 푸른 색이나 노란 색이나 붉은 색이나 흰 색이나 갈색의 실이 묶고 있다.'라고.
암밧타여, 이와 같이 그는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지(知)와 견(見)으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이와 같이 철저히 안다.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성장되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의식은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있다.'라고. 이것이 그의 명지이다.
암밧타여,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마음으로 만든 몸으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이 몸으로부터 다른 몸을 만든다. 모습을 지닌, 마음으로 이루어진, 일체의 수족과 뼈마디와 온전한 감관을 만들어 낸다.
암밧타여, 예를 들면 사람이 문자 풀로부터 갈대를 뽑아낼 수 있는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문자 풀이고 이것은 갈대이다. 문자 풀과 갈대는 다르다. 그러나 문자 풀로부터 갈대를 뽑아냈다.'라고.
암밧타여, 다시 예를 들면 사람이 칼을 칼집으로부터 뽑아낼 수 있는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칼이고 이것은 칼집이다. 칼과 칼집은 다르다. 그러나 칼집으로부터 칼을 뽑아냈다.'라고.
암밧타여, 다시 예를 들면 사람이 뱀을 뱀의 껍질로부터 벗겨낼 수 있는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뱀이고 이것은 껍질이다. 뱀과 껍질은 다르다. 그러나 껍질로부터 뱀을 벗겨 냈다.'라고.
암밧타여,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렴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마음으로 만든 몸으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이 몸으로부터 다른 몸을 만든다. 모습을 지닌, 마음으로 이루어진, 일체의 수족과 뼈마디와 온전한 감관을 만들어 낸다. 이것 역시 그의 명지이다.
암밧타여,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여러 가지 신통의 지혜(神足通)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이와 같은 다양한 종류의 신통을 체험한다.
하나가 된 후 여럿이 된다. 여럿이 된 후 하나가 된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 달린 새와 같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브라흐마(범천)의 세상에 이르기까지 몸으로써 위력을 미친다.
암밧타여, 예를 들면 숙련된 도기공이나 도기공의 제자가 잘 준비된 진흙으로부터 그릇을 원하는 대로 만들고 생산하는 것과 같다.
암밧타여, 다시 예를 들면 숙련된 상아 세공자나 그의 제자가 잘 준비된 상아로부터 어떤 상아 제품이든 원하는 대로 만들고 생산하는 것과 같다.
암밧타여, 다시 예를 들면 숙련된 금세공자나 그의 제자가 잘 준비된 금으로부터 어떤 금제품이든 원하는 대로 만들어내고 생산하는 것과 같다.
암밧타여,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렴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여러 가지 신통의 지혜(神足通)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이와 같은 다양한 종류의 신통을 체험한다.
하나가 된 후 여럿이 된다. 여럿이 된 후 하나가 된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 달린 새와 같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브라흐마(범천)의 세상에 이르기까지 몸으로써 위력을 미친다. 이것 역시 그의 명지이다.
암밧타여,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청정한 귀의 계(界)로 이루어진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귀의 계를 통해 멀거나 가까운 하늘과 사람의 소리를 듣는다.(天耳通)
암밧타여, 예를 들면 먼 길을 여행하는 자가 큰 북소리, 무딩가 북소리, 고옫소리, 빠나와 북소리, 딘디마 북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큰 북소리다, 이것은 무딩가 북소리다, 이것은 고동 소리다, 이것은 빠나와 북소리다, 이것은 딘디마 북소리다.'라고
암밧타여,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렴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청정한 귀의 계로 이루어진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귀의 계를 통해 멀거나 가까운 하늘과 사람의 소리를 듣는다. 이것 역시 그의 명지이다.
암밧타여,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다른 중생,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 차린다.(他心通)
탐냄을 지닌 마음을 탐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탐냄을 떠난 마음은 탐냄을 떠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성냄을 지닌 마음을 성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성냄을 떠난 마음을 성냄을 떠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을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을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집중된 마음을 집중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산란한 마음(집중되지 않은)을 산란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고귀한 마음(광대한)을 고귀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고귀하지 않은 마음을 고귀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위가 없는 마음을 위가 없는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삼매를 얻은 마음을 삼매를 얻은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을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암밧타여, 예를 들면 젊은 여인이나 남자가 치장하기를 좋아하며 깨끗하고 흠 없는 거울이나 맑은 물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점이 있는 것은 점이 있다고 알고 점이 없는 것은 없다고 아는 것과 같다.
암밧타여,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렴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다른 중생,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 차린다.
탐냄을 지닌 마음을 탐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탐냄을 떠난 마음은 탐냄을 떠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성냄을 지닌 마음을 성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성냄을 떠난 마음을 성냄을 떠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을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을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 차린다. 집중된 마음을 집중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산란한 마음(집중되지 않은)을 산란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고귀한 마음(광대한)을 고귀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고귀하지 않은 마음을 고귀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위가 없는 마음을 위가 없는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삼매를 얻은 마음을 삼매를 얻은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을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알아 차린다. 이것 역시 그의 명지이다.
암밧타여,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전생에 대해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천 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고통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고통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고.'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쟁의 거처를 기억한다.
암밧타여, 예를 들면 사람이 자기 마을로부터 다른 마을로 갔다가 다시 또 다름 마을로 갔다가 자기 마을로 되돌아 온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우리 마을로부터 다른 마을로 갔다. 그곳에서 이와 같이 서있었고, 이와 같이 앉아있었고, 이와 같이 말하였고, 이와 같이 침묵하였다. 나는 그 마을로부터 다시 다른 마을로 갔다. 그곳에서 이와 같이 서있었고, 이와 같이 앉아있었고, 이와 같이 말하였고, 이와 같이 침묵하였다. 그리고 그 마을로부터 다시 우리 마을로 되돌아왔다.'라고.
암밧타여,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렴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전생에 대해 기억하는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천 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고통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고통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고.'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쟁의 거처를 기억한다. 이것 역시 그의 명지이다."
암밧타여,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렴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중생들의 죽음과 삶에 관련한 지혜(天眼通)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 차린다.'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거룩한 분)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비참한 곳, 나쁜 곳(惡處),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거룩한 분)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善處)에 나아가 천상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 차린다.
암밧타여, 예를 들면 사거리 가운데에 높은 누각이 있는데 시력이 좋은 사람이 거기에 서서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과 길을 걷거나 사거리 가운데 앉아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사람들은 집에 들어가는구나, 이들은 나오는구나, 이들은 길을 걷고 있구나, 이들은 사거리 가운데 앉아 있구나.'라고.
암밧타여,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렴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중생들의 죽음과 삶에 관련한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 차린다.'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거룩한 분)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비참한 곳, 나쁜 곳(惡處),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거룩한 분)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善處)에 나아가 천상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이것 역시 그의 명지이다.
암밧타여,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렴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쾌락의 번뇌(慾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有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無明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에서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라고 안다.
암밧타여, 예를 들면 깊은 산에 호수가 있어 맑고 고요하고 깨끗하다. 그곳에서 시력이 좋은 사람이 둑에서서 조개껍질, 자갈, 조약돌, 멈춰있거나 움직이는 고기 떼를 보는 것과 같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호수는 참 맑고 고요하고 깨끗하다. 여기에 이런 조개껍질, 자갈, 조약돌이 있고 고기 떼는 멈춰있거나 움직이는구나.'라고.
암밧타여,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렴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쾌락의 번뇌(慾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有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無明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에서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안다. 이것 역시 그의 명지이다.
암밧타여, 이를 일러 비구는 명지를 구족했다고 하며, 실천을 구족했다고 한다.(明行足)
암밧타여, 이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함 이외에 또 다른 더 높고 더 수승한 명지의 구족과 실천의 구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39. "암밧타여, 이런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함에는 네 가지 타락의 입구가 있다. 무엇이 그 넷인가?"
1) 암밧타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러한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하지 못하자, '떨어지는 열매나 먹는 자가 되리라.'며 필수품을 나르는 막대기를 (어깨에) 메고 숲으로 깊이 들어간다. 이리하여 그는 전적으로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자를 시중드는 자 정도가 되고 만다.
암밧타여, 이것이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함에 관련된 첫 번째 타락의 입구다.
2) 암밧타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러한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하지 못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지도 못하게 되자, '구근류나 뿌리를
먹는 자가 되리라.'며 삽과 바구니를 가지고 숲으로 들어간다. 이리하여 그는 전적으로 영지와 실천을 구족한 자를 시중드는 자 정도가 되고
만다.
암밧타여, 이것이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함에 관련된 두 번째 타락의 입구다.
3) 암밧타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러한 위없는 지혜와 실천을 구족하지도 못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지도 못하고 구근류나 뿌리를 먹지도 못하게 되자, 마을의 경계나 성읍의 경계에 불 섬기는 집을 만들고는 불을 섬긴다. 이리하여 그는 전적으로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자를 시중드는 자 정도가 되고 만다.
암밧타여, 이것이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함에 관련된 세 번째 타락의 입구다.
4) 암밧타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러한 위없는 지혜와 실천을 구족하지도 못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지도 못하고 구근류나 뿌리를 먹지도 못하고 불을 섬기지도 못하게 되자, '이 사거리를 지나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내 능력과 힘이 되는대로 섬기리라.'며 사거리에 네 개의 문을 가진 집을 짓는다. 이리하여 그는 전적으로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자를 시중드는 자 정도가 되고 만다.
암밧타여, 이것이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함에 관련된 네 번째 타락의 입구다.
암밧타여, 위없는지혜와 실천을 구족함에는 이런 네 가지 타락의 입구가 있다."
40. "암밧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와 그대의 스승에게서 이러한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함(明行足)을 찾아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시여, 저와 스승이 누구이기에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다는 말입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저와 스승은 위없는 명지와 실천과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암밧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와 그대의 스승은 이러한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하지 못하자, '떨어지는 열매나 먹는 자가 되리라.'며 필수품을 나르는 막대기를 (어깨에) 메고 숲으로 깊이 들어가기라도 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여시여."
"암밧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와 그대의 스승은 이러한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하지도 못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지도 못하게
되자,'구근류나 뿌리를 먹는 자가 되리라.'며 삽과 바구니를 가지고 숲으로 깊이 들어가기라도 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여시여."
"암밧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와 그대의 스승은 이러한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하지도 못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지도 못하고,
구근류나 뿌리를 먹지도 못하게 되자,
마을의 경계나 성읍의 경계에 불 섬기는 집을 만들고는 불을 섬기기라도 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여시여."
"암밧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와 그대의 스승은 이러한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하지도 못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지도 못하고
구근류나 뿌리를 먹지도 못하고 불을 섬기지도 못하게 되자, '이 사거리를 지나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내 능력과 힘이 되는대로 섬기리라.'며
사거리에 네 개의 문을 가진 집을 짓기라도 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여시여."
"암밧타여, 이와 같이 그대와 그대의 스승은 이러한 위없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함을 저버렸을 뿐만 아니라 이런 위없는 지혜와 실천을 구족함에 관련된 네 가지 타락의 입구조차도 저버렸다.
암밧타여, 그러면서도 그대의 스승인 뽁카라사띠 바라문이 그대에게 이렇게 가르쳤단 말인가? '머리깎은 사문, 비천한 깜둥이들은 우리 조상의 발에서 태어난 자들인데 그들이 감히 삼베다를 갖춘 바라문들과 대화하려드는가?라고. 그러나 그 자신은 타락의 (입구조차도) 완성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암밧타여, 그대의 스승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그대를 잘못 가르쳤다.
암밧타여,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의 하사품으로 산다. 그러나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그와 공개적으로 직접 대면을 하지 않는다. 그와 대면할 때면 장막을 치고 대면한다.
암밧타여, 왜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법답고 정당한 세금을 받아서 (살수 있는 영지를 하사)해 준 그와 공개적으로 대면을 하지 않겠는가?
암밧타여, 그대의 스승 뽁카라사띠는 그대를 잘못 가르쳤다."
41. "암밧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코끼리의 목에 앉거나 말의 등에 앉아서 수장들이나 지방의 왕들과 더불어 어떤 회의를 주재한 뒤에 (회의를 마치고 모두) 그 장소를 떠나서 다른 곳에 가 있다 하자. 이제 어떤 수드라나 수드라의 하인이 와서 그 장소에 서서 회의를 주재하는 (흉내를 내면서)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이와 같이 말했다.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이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하자. 그런데도 그는 왕의 말을 한 것이 되고 왕의 회의를 주재한 것이 되어 그가 왕이 되고 왕의 위엄을 가지게 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그대의 경우도 그와 같다. 그대는 '바라문들의 선조가 되는 분이 있었나니 그들은 만트라를 만들고 만트라를 설하는 선인들이셨다. 지금의 바라문들은 (그 선조들이) 노래하고 설하고 모은 오래된 민뜨라 구절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설하고, 설한 것을 다시 따라 설하고, 말한 것을 다시 따라 말하나니,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웻사미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이다. 이제 나와 나의 스승은 그들의 만트라를 배운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그대가 선인이 될 것이라거나, 그대가 선인이 되기 위해 수행할 것이라는 그런 경우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42. "암밧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늙고 나이 든,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바라문들이 '바라문들의 선조가 되는 분이 있었나니 그들은 만트라를 만들고 만트라를 설하는 선인들이셨다. 지금의 바라문들은 (그 선조들이) 노래하고 설하고 모은 오래된 민뜨라 구절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설하고, 설한 것을 다시 따라 설하고, 말한 것을 다시 따라 말하나니,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웻사미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이다. 이제 나와 나의 스승은 그들의 만뜨라를 배운다'라고 설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가? 그들은 지금의 그대와 그대의 스승이 하듯이,
머리와 수염을 잘 감고 기름을 발라서 단장하고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을 갖추고 완비하여 즐겼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들은 지금의 그대와 그대의 스승이 하듯이, 잡곡이 섞이지 않은 최상의 쌀밥과 여러 가지 국과 여러 가지 반찬들을 먹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들은 지금의 그대와 그대의 스승이 하듯이, 주름지고 옷단을 장식한 옷을 입은 여인들의 시봉을 받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들은 지금의 그대와 그대의 스승이 하듯이, 꼬리를 땋은 암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긴 작대기로 때려가며 다녔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들은 지금의 그대와 그대의 스승이 하듯이, 주위에 도랑을 파고 빗장을 건 도시의 장벽 안에서 긴 칼을 찬 사람들의 보호를 받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여, 이와 같이 그대와 그대의 스승은 선인도 아니며, 선인이 되기 위한 닦음을 실천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암밧타여, 그대가 나에 대한 의심과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나에게 질문을 하라. 나는 상세한 설명(記別,授記.수기)을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43. 그런 다음 세존께서는 거처에서 나가서 포행을 하셨고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도 거처에서 나가서 포행을 하였다. 그러고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포행하시는 세존을 따라 포행하면서 세존의 몸에서 서른두 가지 대인상들을 찾았다. 그는 두 가지를 제외하고 대체적으로 세존의 몸에서 서른 두 가지 대인상들을 보았다. 음경이 감추어 진 것이 마치 말의 그것과 같은 것(馬陰藏相)과 혀가 아주 긴 것(廣長舌相)의 두 가지 대인상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의심을 하고 확신하지 못하고 결정하지 못했다.
세존께서는 이런 생각이 드셨다.
'이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내게서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서른두 가지 대인상들을 보았다. 그러나 음경이 감추어 진 것이 마치 말의 그것과 같은 것(馬陰藏相)과 혀가 아주 긴 것(廣長舌相)의 두 가지 대인상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의심을 하고 확신하지 못하고 결정하지 못하는구나.'
세존께서는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이 음경이 감추어 진 것이 마치 말의 그것과 같은 것을 볼 수 있도록 그런 형태의 신통변회를 나투셨다. 그 다음에 혀를 빼서 두 귓구멍을 이리저리 건드리셨고, 두 콧구멍을 이리저리 건드리셨고, 온 이마를 혀로써 덮으셨다.
그러자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문 고따마 존자는 서른두 가지 대인상드을 구족하셨구나, 구족하지 않은 것이 아니구나.'
그리고 나서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제 저희는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저는 바쁘고 할 일이 많습니다."
"암밧타여,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라면 그렇게 하여라."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암말이 끈 마차에 올라 돌아갔다.
44.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밖으로 나가서 많은 바라문들과 함께 자신의 숲에 앉아서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이 숲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마차가 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마차에서 내린 뒤 걸어서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로 다가갔다.
"그대 암밧타여, 너는 고따마 존자를 만나 보았느냐?"
"스승님이시여, 저는 고따마 존자를 만났습니다."
"그대 암밧타여, 너는 고따마 존자는 소문처럼 그러하더냐, 그렇지 않더냐? 그분 고따마 존자는 (실제로) 그런 분이더냐, 다른 분이더냐?"
"스승님시여, 그분 고따마 존자는 소문처럼 그러하셨습니다. 그분 고따마 존자는 (실제로) 그런 분이셨고 다른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 고따마 존자는 서른두 가지 대인상을 모두 구족하셨으며 구족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대 암밧타여, 너와 사문 고따마 사이에 어떤 대화가 있었느냐?"
"스승님시여, 저와 사문 고따마 사이에 대화가 있었습니다."
"그대 암밧타여, 너와 사문 고따마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그대로 말해 보거라."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세존과 더불어 있었던 대화를 모두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그렇게 말하자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오, 우리가 현자라고 하는 놈이 이렇다니! 오, 많이 배웠다는 놈이 이렇다니! 오, 삼베다에 능통하다는 놈이 이렇다니! 참으로 목적을 성취하러 간 놈이,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생겨나게 되었구나.
암밧타야, 네가 그분 고따마 존자에게 이렇게 모욕에 모욕을 늘어놓았으니 고따마 존자는 우리에게 이와 같이 더 많은 사실을 말하였구나.
오, 우리의 현자임네 하는 놈을 보게나, 오, 우리의 많이 배웠다는 놈을 보게나, 오, 이런 삼베다에 능통하다는 놈을 보게나, 참으로 목적을 성취하러 간 놈이,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고통스러운 곳(苦界), 비참한 곳(惡處), 험난한 곳, 지옥에 생겨나게 되었구나."
그는 화가 나고 마음이 몹시 언짢아서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을 발로 차버렸다. 그는 바로 즉시 세존을 뵈러 가고자 하였다.
45. 그러자 거기 있던 바라문들이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스승님시여, 오늘 사문 고따마를 뵈러 가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니 뽁카라사띠 스승님께서는 내일 사문 고따마를 뵈러 가십시오."
그러나 뽁카라시띠 바라문은 자신의 집에서 맛있는 여러 음식을 준비하게 한 뒤 수레에 올라서 (주위에) 횃불을 들게하고 욱까타를 나가서 잇차낭깔라의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마차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마차에서 내린 뒤 걸어서 세존께 다가갔다. 세존께 다가가서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의 도제인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이 여기에 오지 않았습니까?"
"바라문이여, 그대의 제자인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이 여기에 왔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대와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 사이에 어떤 대화가 있었습니까?"
"바라문이여, 나와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 사이에 대화가 있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그대와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그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는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과 나눈 대화를 모두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말씀하시자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은 어리석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을 용서해 주십시오."
"바라문이여, 암밧타 바라문 수행승이 행복하기를!"
46. 그런 다음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포행하시는 세존을 따라 포행을 하면서 세존의 몸에서 서른두 가지 대인상들을 찾았다. 그는 두 가지를 제외하고 대체적으로 세존의 몸에서 서른 두 가지 대인상들을 보았다. 음경이 감추어 진 것이 마치 말의 그것과 같은 것(馬陰藏相)과 혀가 아주 긴 것(廣長舌相)의 두 가지 대인상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의심을 하고 확신하지 못하고 결정하지 못했다.
세존께서는 이런 생각이 드셨다.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내게서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서른두 가지 대인상들을 보았다. 그러나 음경이 감추어 진 것이 마치 말의 그것과 같은 것(馬陰藏相)과 혀가 아주 긴 것(廣長舌相)의 두 가지 대인상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의심을 하고 확신하지 못하고 결정하지 못하는구나.' 그러자 세존께서는 뽁카라사띠 바라문이 음경이 감추어 진 것이 마치 말의 그것과 같은 것을 볼 수 있도록 그런 형태의 신통변회를 나투셨다. 그 다음에 혀를 빼서 두 귓구멍을 이리저리 건드리셨고 두 콧구멍을 이리저리 건드리셨고 온 이마를 혀로써 덮으셨다.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문 고따마 존자는 서른 두 가지 대인상들을 구족하셨구나, 구족하지 않은 것이 아니구나.'
그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저의 공양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그러자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세존께서 침묵으로 허락하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세번 돌아 물러갔다. 그런 다음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그 밤이 지나자 자신의 집에서 맛있는 여러 음식을 준비하게 하여 세존께 시간을 알려 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음식이 준비되었습니다."
47.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시고 비구들과 함께 뽁카라사띠 바라문의 집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비구들과 함께 지정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자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 승가에게 맛있는 여러 음식을 자기 손으로 직접 대접하고 드시게 했다.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그릇에서 손을 떼시자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어떤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 순차적인 가르침을 설하셨다. 보시의 가르침, 계의 가르침, 천상의 가르침, 감각적 욕망들의 위험과 타락과 오염됨, 출리(出離)의 공덕을 밝혀주셨다.
세존께서는 뽁카라사띠 바라문이 마음이 준비가 되고,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의 장애가 없어지고, 마음이 고무되고, 마음에 깨끗한 믿음이 생겼음을 아시게 되었을 때, 모든 아라한.정등각들께서 찾아내신 괴로움(苦)과 일어남(集)과 소멸(滅)과 소멸에 이르는 길(道)라는 법의 가르침을 드러내셨다. 마치 얼룩이 없는 깨끗한 천이 바르게 잘 염색되는 것처럼 뽁카라사띠 바라문에게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은 무엇이든 모두 멸하기 마련인 법이다.(集法卽滅法)'라는 티 없고 때 없는 법의 눈(法眼)이 생겼다.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법을 보았고, 법을 얻었고, 법을 체득했고, 법을 간파했고 의심을 건넜고, 혼란을 제거했고, 무외를 얻었고, 스승의 교법에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게 되었다.
48. 그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이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고따마 존자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속에 등불을 가져 오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하옵고
또한 그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있는 날까지 귀의한 청신사로 받아 주십시오."
고따마 존자께서 욱깟타의 다른 청신사의 집들을 방문하시는 것처럼 그와 같이 고따마 존자께서는 뽁카라사띠의 집도 방문해 주십시오. 그러면 모든 바라문 수행승들이 고따마 존자께 예배드리고 일어나서 영접하며 자리와 물을 내어 드리고 마음에 청정한 믿을 낼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오랫동안 그들에게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참으로 잘 말했습니다."
(암밧타경이 끝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