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주돈이의 애련설 외, 연꽃을 사랑한 선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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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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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
학자 주돈이는 연꽃을 사랑하였다. 그는 「애련설」이라는 짧은 글을 통해 연꽃에 대한 예찬론을 폈는데, 그가 연꽃을 사랑한 이유는 연꽃의 특성이 군자의 덕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물과 뭍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에서 피는 꽃 중에 사랑할 만한 것이 매우 많지만, 도연명만 유독 국화를 사랑하였다. 당나라 이래 세상 사람들은 모두 모란을 사랑하였는데 나만 유독 연을 사랑하니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나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기면서도 요염하지 않으며, 줄기 속은 텅 비어 통하고 겉은 곧으며, 넝쿨도 가지도 뻗어 나가지 않고, 향기는 멀리 퍼져나갈수록 더욱 맑고, 꼿꼿한 자태로 깨끗하게 서 있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는 것은 좋지만 가까이 가서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 나는 국화가 꽃의 은자요, 모란은 꽃의 부자요, 연꽃은 꽃 중의 군자라 하겠다. 아, 국화를 사랑하는 자는 도연명 뒤에 들은 적이 없는데 연꽃을 사랑하는 뜻을 나와 함께 할 사람은 누구인가? 모란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水陸草木之花 可愛者甚蕃 晉陶淵明 獨愛菊 自李唐來 世人甚愛牡丹 予獨愛蓮之出於泥而不染 濯淸漣而不夭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淸 亭亭淨植 可遠觀而不可褻翫焉. 予謂 菊花之隱逸者也 蓮花之君子者也. 噫 菊之愛 陶後鮮有聞 蓮之愛 同予者何人 牡丹之愛 宜乎衆矣.]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나지만 맑고 깨끗하다. 그렇다고 너무 요염하지도 않다. 줄기는 속이 비어 있어 서로 통하고 겉은 곧다. 넝쿨이 뻗어 나가지도 않고 가지가 벌어지지도 않으니 군자의 지조와 절개, 청렴함을 닮았다.
그러면서 그 향기는 멀리 퍼져나갈수록 더욱 맑고 향기롭다.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가까이 가서 가지고 놀 수는 없으니 고고함의 표상이다. 그래서 연꽃은 꽃 중의 군자다. 연꽃에 빗대어 군자의 덕을 이야기한 것이다. 연꽃을 이처럼 군자의 상징으로 올려놓은 주돈이는 어떤 사람인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시인이자 서예로 유명했던 황정견黃庭堅(1045~1105)은「염계시서濂溪詩序」에서 “용릉의 주무숙周茂叔은 인품이 너무도 고매해서, 흉중이 쇄락하기가 마치 맑은 바람이요 갠 달과 같았다.[胸中灑落如光風霽月]”라고 하였다.
주무숙은 바로 주돈이의 자字이다. 고매한 인품의 군자가 사랑할 만한 꽃이 바로 연꽃이다.
연꽃을 사랑한 조선의 선비들
성리학을 신봉한 조선의 선비들에게 주돈이의「애련설」은 많은 영향을 주었다. 연꽃이 당당히 군자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맑고 깨끗한 꽃을 피워 혼탁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고고함의 상징으로 사랑받았다.
조선후기의 문인화가 이윤영李胤永(1714~1759)은 평생 연꽃을 좋아해 집 근처 서지西池에서 직접 연꽃을 가꾸고, 연꽃이 필 무렵이면 친구들과 모여 이를 감상하였다. 이윤영이 연꽃을 감상하면서 쓴 글에 “향기는 난초와 같이 맑으며, 줄기는 대나무와 같이 비어 있고, 잎은 파초나 오동잎처럼 크고, 금을 녹인 듯 광택이 난다네. 그 꽃은 마치 모란처럼 풍성하고, 다듬은 옥과 같이 고결한데, 잔물결에 씻겨 스스로를 깨끗이 하기까지 한다네.”라고 하고 있어 연꽃에 대한 상찬이 「애련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을 볼 수 있다(『丹陵遺稿』 권12, 「西池嘗荷記」). <서지백련도西池白蓮圖>(도1)는 이인상이 이윤영의 집에 가서 서지의 백련을 함께 감상하고 그린 그림이다. 조선후기의 문인화가 강세황姜世晃(1713~1791)의 <향원익청도香遠益淸圖>(도2)는 향기는 멀수록 맑다는 뜻으로 「애련설」 중의 구절을 그림 제목으로 삼은 작품이다. 강세황은 이어 “염계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연꽃은 멀리서 보는 것이 좋지 함부로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린 연꽃 또한 멀리서 보는 것이 좋다’고 하겠다[濂溪先生謂 蓮可遠觀 不宜藝玩 余則曰 畵蓮亦宜遠觀焉. 豹菴]”라고 제발을 썼다. 이렇듯 주돈이의 연꽃 사랑은 조선의 선비들이 다투어 추종하였고, 「애련설」은 문인화가들의 그림 소재로 애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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