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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밀린다왕문경

출처 수집자료

밀린다왕문경

밀린다팡하(王問經, Milindapanha)

 

한역에서는 「미란왕문경(彌蘭王問經)」 또는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이라고 한다. 이 책은 기원전 2세기 후반에 서북 인도를 지배하고 있었던 그리스 국왕인 밀린다(Milinda)와 비구 나가세나(Nagasena)가 불교의 교리에 대하여 문답한 후, 왕이 출가하게 된 과정을 대화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이스적 사유와 불교적 사유의 대비라는 점에서 중요시되며, 불교의 실천을 상좌부(上座部) 입장에서 다루고 있다.

내용은 ‘밀린다’왕과 ‘나가세나’의 전생 이야기를 기술하는 부분, 두 사람이 3일간 대화를 하는 동안 서로 스승과 제자가 되기에 이르는 부분, 밀란다가 불교 교리에서 어려운 문제들을 질문하여 ‘나가세나’에게 답을 구하는 부분, 그리고 수행자가 지켜야 할 규칙을 비유로써 밝히는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경전의 후미에 보면 왕이 던진 질문은 304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236문이 전하여져 있다.

왕이 그리이스적 사유 방법으로, 불교 신자가 아닌 입장에서 질문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인에게도 매우 친밀감을 주며, ‘나가세나’는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 풍부한 비유로써 명쾌하게 답하여, 불교의 입장을 번잡한 사고(思考)나 설명방법에 의하지 않고 해답해 주고 있다. 개인 존재에 대해서는 영혼론(靈魂論), 개체(個體)의 구조, 윤회의 주체(主體)와 과보, 불교의 독자적인 지식론(知識論)과 심리현상의 고찰, 그리고 열반에 대한 실천 수행론 등 다방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경에는 팔리어본과 한역본이 있다. 팔리어본에는 영국의 ‘리스 데이비스’가 영역할 때에 참조한 「스리랑카본」과, 영국의 ‘트랜크너’가 교정 출판한 「트랜크너본」, 태국에서 출판된 「샴 본」등이 있다. 현존하는 한역본은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으로 역자(譯者)는 불명(不明)이지만 동진대(東晋代, 317~420)의 번역이라고 한다. 한역본은 팔리어본에 비해서 서화(序話)라든가 기타 부분에서 취향을 달리하는 점이 있고, 한역본은 ‘나가세나’를, 팔리어본은 ‘밀린다’왕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그 계통이 달랐으리라 생각된다.

 

 

서장(序章)


옛날, 유명한 수도 사아가라의 미린다 왕은
세계에서 저명한 현인 나아가세나에게로 갔다.
마치 간지스 강이 보다 깊은 바다로 흘러 들어 가듯이.
담론에 솜씨 있는 왕은
진리의 햇불을 들고
마음의 어두움을 쫓아버린 나아가세나에게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여러 가지 점에 대하여
미묘하고 어려운 질문을 했다.
이 질문에 주어진 해답은
듣는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귀를 즐겁게 하며
신기하고 오묘함을 느끼게 했다.
나아가세나의 담론은
수우트라경의 모든 그물코를 이루고
비유와 논증으로 강하게 반짝이며
비나야와 아미달마의 신비한
심연에 까지 스며 들었다.
오라. 그대들이여,
와서, 그대의 머리를 빛나게 하고
그대의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고 모든 의심의 실마리를 풀어 주는
이들 미묘한 질문가 해답에 귀를 기울이라.

 

 

1) 그리스인의 도시


전설에 의하면, 오나카 인(그리스인) 나라에 여러 가지 물건을 교역하는 중심지 사아가라 도시가 있었다. 산수가 수려한 아름다운 지방이었다. 조시에는 공원과 정원과 작은 숲과 호수와 연못이 갖추어 있었고, 산수와 숲이 아름다운 낙원을 이루었다. 솜시 있는 기술자가 설계한 도시라 한다. 그리고, 모든 적과 반역자들이 추방되었기 때문에 그 곳 사람들은 위험이라곤 전혀 모르고 살았다. 여러 모양의 튼튼한 망탑과 성벽이 있고, 우뚝 솟은 성문과 탑문이 있었다. 한가운데에 흰 성벽과 깊은 참호로 둘러 싸인 국왕의 성채가 보였다. 거리와 광장과 십자로와 장터가 잘 나뉘어져 있고, 상점에는 값비싼 많은 상품이 수북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또 수백 개의 보시당도 화사하게 꾸며져 있고, 수많은 커다란 저택이 히말라야 산봉우리처럼 늘러서 있었다. 거리는 코끼리와 말과 마차와 보행자들로 붐볐으며, 상냥한 남녀들이 짝을 지어 빈번히 출입하곤 했다. 온갖 신분의 사람들, 즉 크샤트리아(왕족)와 바라문(사제자). 바이샤(평민). 수우드라(노예)들이 붐볐다. 사람들은 모든 종족의 스승-수행자와 바라문-을 환대했다.
그리고 도시에는 여러 학파의 지도자들이 많이 왕래했다. 상점에는 카아시이와 코톰바라에서 짜낸 옷감과 갖가지 의류로 가득했다. 보시당에서는 향내가 흘러 나 가득 차 있어 눈부신 보물의 나라와도 같았다. 곡식과 재산과 일용의 물자가 창고에 가득 가득 차 있어 눈부신 보물의 나라와도 같았다. 곡식과 재산과 일용의 물자가 창고에 가득했다. 부유하기로는 울타라쿠루-수미산 북쪽에 있다는 이상향-에 비길 만하고 영광스럽기로는 비사문천의 수도인 알라카만다를 닮았다.

 

 

2) 전생이야기


옛날 카아샤파 부처가 불법을 펴고 계실 때, 간지스 강 근방에 많은 비구들이 살고 있었다. 계율과 본분을 잘 지키는 비구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긴 빗자루를 들고 마을 속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외우며 경내의 청소를 하는 것이 일과의 하나였다. 쓰레기가 모여 산더미처럼 쌓였다. 어느 날, 한 비구가 사미에게 그 쓰레기 더미를 치우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미는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 버렸다. 비구는 그를 아주 고집 센 풋나기로 알고 화를 내며 빗자루로 때렸다. 사미는 감히 거역할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울면서 그 일을 해치웠다. 그리고 사미는 최초의 발원을 세웠다.
"이 쓰레기를 치우는 공덕으로 열반에 이를 때까지 다시 어디에 태어나든지, 한낮 태양처럼 커다란 위력과 광채를 갖게 해 주십시오" 라고. 그는 쓰레기를 치우고 한지스 강가로 목욕하러 나갔다. 거기서 그는 강물이 세차게 물결치는 것을 보고 두 번째 발원을 세웠다.
"열반에 이를 때까지 다시 어디에 태어날지 간지스 강 물경이 파도치는 것처럼 척척 대답하는 말재주와 다할 줄 모르는 말재주를 갖게 해 주십시오" 라고.
그런데 비구도 빗자루를 헉간에다 치워 놓고 목욕하러 간지스 강가를 배회하다가 우연히 그 풋나기 사미가 발원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때 그는 마음속으로 사미도 저렇게 발원을 하는데, 나라고 어찌 발원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발원을 세웠다.
"열반에 이를 때까지, 어디에 태어나든지 간지스 강의 세찬 파도와 같이 다할 줄 모르는 말재주를 갖게 해 주시고, 저 사미가 묻는 하나 하나의 질문과 난제를 환하게 풀어 줄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이 두 사람은 각기 천사과 인간계를 윤회하면서, 한 부처의 출현에서 다음 부처의 출현까지의 기간을 지냈다. 그런데 카아샤파 부처에 의하여 이들의 미래는 다음과 같이 예언 되었다.
"내가 죽은 5백 년 뒤, 두 사람은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르친 오묘한 진리와 계율은 두 사람의 문답과 비유의 적용으로 풀기 어려운 실마리가 풀리고 분명하게 될 것이다." 고
뒷날 이 두 사람은 예언대로 각기 왕과 비구로 태어났다.

 

 

3) 해후(邂逅)


오랜 뒤의 어느날, 미린다 왕은 사군으로 조직된 무수한 병력을 시외에서 사열했다. 사열을 끝낸 뒤 쾌락론자. 궤변론자들과 토론하기를 바란 왕은, 높이 솟은 해를 쳐다보고 나서 신하들에게 말했다.
"날이 아직 훤하다. 이처럼 일찍 시내에 들어간들 무엇하겠는가. 현자든 수행자든 바라문이든 또는 교단이나 학파의 지도자든, 대중의 조사이든 -심지어 부처라든가 정등각자라고 자칭하는 사람까지도 - 누구든 나와 토론하여 나의 의문을 풀어줄 사람은 없을까"
이 무렵 수많은 아라한들이 히말라야 산록의 랏기다라에 모여 나아가세나 존자를 만나고자 하였다. 아라한들의 만나고자 하는 전갈을 받은 나아가세나 존자는 아라한들 앞에 나타났다. 수 많은 아라한들은 나아가세나 존자에게 말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미린다 왕을 굴복시켜 주십시오"
"존자들이여, 미린다 왕 뿐 아니라 전인도의 왕들이 나에게 와서 질문하더라도 나는 모든 난문(難問)에 대답하여 해결해 보겠습니다. 그대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사아가라 시로 가십시오."
그래서, 장로와 비구들은 사아가라로 돌아 갔다.
한편, 한 바라문을 난문으로 물리친 미린다 왕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정말 전인도는 빈 껍질이다. 정말 왕겨와 같다. 대론하여 나의 의심을 없애 줄 수 있는 출가자나 바라문은 한 사람도 없구나"
그러나, 미린다 왕은 주위의 요나카(그리스) 군중들이 아무 두려움 없이 침착해 있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아니다. 이 요나카 군중들이 조용히 있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나와 대론할 수 있는 박식한 비구가 있을 거야."
그래서 미린다 왕은 요나카 인들에게 물었다.
"신하들이여, 나와 대론하고 나의 의심을 없애 줄 수 있는 다른 박식한 비구가 있는가."
이때, 나아가세나 존자는 비구들을 거느리고 촌락. 읍. 도시를 탁발하여 돌아다니면서 점차 사아가라에 가까이 오고 있었다. 나아가세나 존자는 승단의 지도자요. 가나(제자의 집단)의 우두머리였다. 그의 이름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명성이 높았고, 박식하고, 교양 있고, 자신 있는 수도승이었다.
미린다 왕의 신하 데바만티야는 왕에게 말했다.
"대왕이여, 잠간만 기다려 주십시오. 나아가세나라는 장로가 오고 있습니다. 그 분은 박식하여 유능하고 지혜로우며, 용기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들었으며, 담론에 뛰어나고, 말솜씨가 시원시원합니다. 부처님의 정신가 가르침을 해설함에 있어서나 이단자를 굴복시킴에 걸림이 없고, 자재한 능력을 가진 아주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 분은 지금 상케이야 승방에 살고 계십니다. 대왕이여, 그 곳에 가서 그 분에게 질문을 해 보십시오. 그 분은 대왕과 대론하여 대왕의 의문을 풀어 줄 수 있을 줄로 압니다."
미린다 왕은 나아가세나에 대한 소개의 말을 듣자, 갑자기 두렵고 불안하여 머리 끝이 오싹했다. 그리고 그는 데바만티야에게 다그쳐 물었다.
"정말 그러한가"
"대왕이여, 그 분은 인드라. 마야. 바루나. 쿠베라. 푸라쟈아파티. 수야아마. 상투시타 등의 수호신들과 또 사람의 조상인 부라흐마아와도 대론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과의 대론이겠습니까?"
"그러면 데바만티야, 그 분에게 내가 찾아 뵈러 간다는 전갈을 보내라."
데바만티야는 왕의 분부대로 전갈을 보냈다. 그리고 나아가세나 존자는 와도 좋다는 회답을 했다. 왕은 5백 명의 요나카인을 이끌고 훌륭한 수레에 올라 거대한 수행원들과 함께나아가세나 존자가 있는 상케이야 승방으로 갔다. 그때 나아가세나 존자는 8만 명의 비구들과 함께 뜰 안 정자에 앉아 있었다. 미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와 거기 모인 무리를 멀리서 보고, 데바만티야에게 물었다.
"데바만티야, 저 큰 모임은 누구의 회상인가?"
"대황이여 나아가세나 존자의 회상입니다."
그때, 미린다 왕은 그 대회중을 멀리 바라보자, 다시 두렵고 불안하기 시작헸다. 미린다 왕은 마치 코뿔소에게 포위 당한 코끼리와 같이, 가루라새에게 포위 당한 용과 같이, 뱀에게 쫒기는 사슴과 같이, 고양이를 만난 쥐와 같이, 무당에게 쫒기는 개구리와 같이, 표범에게 쫓기는 사슴과 같이, 고양이를 만난 쥐와 같이, 무당을 만난 악마와 같이, 새장에 갇힌 새와 같이, 그물에 걸린 물고기와 같이, 임종을 맞이한 천자와 같이 부들부들 떨며 두려워 하고, 불안해 하다가 공포의 괴로움으로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는 것만을 피해야겠다고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 용기를 내어 데바만티야에게 말했다.
"데바만티야, 나에게 어느 분이 나아가세나 존자인가를 가르쳐 줄 필요는 없다. 일러 주지 않아도 나는 나아가세아 존자를 알아낼 수 있다."
"그렇습니다. 대왕께서는 틀림없이 그를 알아보실 것입니다."
나아가세나 존자는 비구들 가운데서 앞쪽에 앉은 4만 명의 비구보다 젊고, 뒤쪽에 앉은 4만명의 비구보다 연장이었다. 미린다 왕은 멀리서 앞자리와 뒷자리와 중앙에 앉은 모든 비구의 무리를 둘러 보고, 나아가세나 존자가 바로 중앙에 앉아 있음을 알았다. 왕은 주려움이나 놀람이 없고, 공포와 전율이 전혀 없는 모습을 보고, 그 분이 바로 나아가세나 존자임을 알아 차렸다. 왕은 데바만티야에게 저 분이 바로 나아가세나 존자냐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저 분이 바로 나아가세나 존자입니다. 대왕께서는 나아가세나 존자를 잘 알아 보셨습니다."
왕은 남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나아가세나 존자를 알아 보았을 때 기뻐했다. 그러나, 미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를 보자마자, 두렵고 얼떨떨하고 또 불안해졌다. 이 때의 정경을 읊은 시는 다음과 같다.

 

현명하고 청정(淸淨)하며,
가장 훌륭하고 유감없이 자신을 잘 다스리는
나아가세나 존자를 보고,
미린다 왕은 이렇게 말했도다.
많은 논사(論師)를 만났고 많은 대론을 해 보았으나
오늘처럼 놀람과 두려움으로
마음을 압도당한 일은 결코 없었다.
아마도 오늘은 내가 패배하고,
승리는 나아가세나 존자에게 갈 것이다.
내 마음은 몹시 불안하도다.

 

 

제1장
 
1. 이름에 관한 문답  
- 현자의 대론, 제왕의 대론 -


밀린다왕이 말하였다.
나가세나 스님, 나와 대론(對論)하겠습니까?
나가세나는 왕의 물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임금님, 현자(賢者)로서 대론을 원한다면 나도 응하겠습니다. 그러나 제왕의 권위로써 대론을 원한다면 나는 응할 뜻이 없습니다.
나가세나 스님, 현자로서 대론한다 함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대체로 현자의 대론에 있어서는 문제가 해명되고 해설되고 서로 비판되고 수정되고 반박당하는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 현자는 결코 성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제왕으로서 대론한다 함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제왕은 대론에 있어 대개 한 가지 것을 주장하고 한 가지 것만을 밀고 나가며 그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는 왕의 권위로 벌을 주라고 명령합니다.
알았습니다. 저는 제왕으로서가 아니라 현자로서 스님과 대론하겠습니다. 스님은 비구나 사미나 신도들과 대론하듯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대론하십시오.
좋습니다.

그럼 질문하겠습니다.

 

 

1. 이름에 관한 문답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가까이 가서 공손히 예배드린 다음 다정하고 정중하게 인삿말을 나누고 예의 바르게 한 편에 비켜 앉았다. 나아가세나 존자도 답례로서 왕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밀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를 향하여 질문을 시작했다.
존자는 어떻게 하여 세상에 알려졌습니까. 그대의 이름은 무어라고 합니까.
대왕이여. 나는 나아가세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나의 동료 수행자들은 나아가세나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모는 나에게 나아가세나(龍軍),또는 수우라세나(勇軍), 또는 비이라세나(雄軍), 또는 시이하세나(獅子軍)라는 이름을 부쳐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대왕이여 이 나아가세나라는 이름은 명칭 호칭, 가명, 통칭(通稱)에 지나지 않습니다. 거기에 인격적 개체(人格的 個體 즉 육체 속에 있는 영원 불변한 것)는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때 밀린다 왕은 5백명 요나카 인과 8만명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아가세나 존자는 (이름 속에 내포된 인격적 개체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지금 그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다시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를 향하여 질문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만일 인격적 개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대에게 의복과 음식과 좌침구(床座)와 질병에 쓰는 약물 등의 필수품을 제공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또 그것을 받아서 사용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계행(戒行)을 지키는 자는 누구입니까. 수행(修行)에 힘쓰는 자는 누구입니까. 수도(修道)한 결과 열반에 이르는 자는 누구입니까. 살생(殺生)을 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남의 것을 훔치는 자는 누구입니까. 세속적인 욕망 때문에 바르지 못한 행위를 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거짓말을 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술을 마시는 자는 누구입니까.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5역죄(五無間業)를 짓는 자는 누구입니까. 만일 인격적 개체가 없다고 한다면, 공도 죄도 없으며, 선행 악행의 과보(果報)도 없을 것입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설령 그대를 죽이는 자가 있더라도 거기에 살생의 죄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대 승단에는 스승(和尙)도 수계사(아사리)도 구족계(具足戒)도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대는 나에게 말하기를 `승단의 수행 비구들은 그대를 나아가세나라 부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나아가세나라고 불리우는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나아가세나 존자여, 머리털이 나아가세나라는 말씀입니까.
대왕이여,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대의 몸에 붙은 털이 나아가세나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손톱,살갗,살,힘줄,뼈,뼛골,콩팥, 염통,간장,늑막,지라,폐,창자, 창자막, 위, 똥,담즙,담,고름, 피,땀,굳기름(脂肪),눈물,기름(膏), 침,콧물, 관절액(關節滑液), 오줌,뇌 들 중 어느 것이 나아가세나라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이들 전부가 나아가세나라는 말씀입니까.
나아가세나 존자는 그 어느 것도, 그것들 전부도 모두(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나아가세나 존자여, 물질적인 형태(色)나 감수작용(受)이나 표상작용(想)이나 형성작용(行)이나 식별작용(識)이 나아가세나입니까.
나아가세나 존자는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들 색,수,상,행,식을 모두 합친 것(五蘊)이 나아가세나라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대왕이여.
그러면, 5온(五蘊) 밖에 어떤 것이 나아가세나입니까.
나아가세나 존자는 여전히 `아니'라고 또 대답했다.
존자여, 나는 그대에게 물을 수 있는 데까지 물어 보았으나 나아가세나를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나아가세나란 빈 소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있는 나아가세나는 어떤 자입니까. 존자여, 그대는 `나아가세나는 없다'고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씀하였습니다.
그때 나아가세나 존자는 밀린다 왕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대왕이여, 그대는 귀족 출신으로 호화롭게 자랐습니다. 만일, 그대가 한 낮 더위에 뜨거운 땅이나 모랫벌을 밟고 또 울퉁불퉁한 자갈 위를 걸어 왔다면 발을 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몸은 피로하고 마음은 산란하여 온 몸에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도대체 그대는 걸어서 왔습니까 아니면 탈것으로 왔습니까.
존자여, 나는 걸어서 오지 않았습니다. 수레를 타고 왔습니다.
대왕이여, 그대가 수레를 타고 왔다면 무엇이 수레인가를 설명해 주십시오. 수레채(轅)가 수레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굴대(軸)가 수레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퀴(輪)나 차체(車體)나 차틀(車棒)이나 멍에나 밧줄이나 바큇살(輻)이나 채찍(鞭)이 수레입니까.
왕은 이들 모두를 계속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것들을 합한 전체가 수레입니까.
아닙니다. 존자여.
그렇다면, 이것들 밖에 (수레)라는 것이 따로 있습니까.
왕은 여전히 (아니)라고 대답했다.
대왕이여, 나는 그대에게 물을 수 있는 데까지 물어 보았으나 수레를 찾아낼 수 없습니다. 수레란 단지 빈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타고 왔다
는 수레는 대체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그대는 (수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씀하신 셈이 됩니다. 대왕이여, 그대는 전 인도에서 제일 가는 임금님입니다. 무엇이 두려워서 거짓을 말씀했습니까.
이렇게 물은 다음 나아가세나 존자는 5백명 요나카 인과 8만명 비구들에게 말했다.
밀린다 왕은 여기까지 수레로 왔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수레인가 설명해 달라는 질문을 했을 때 어느 것이 수레라고 단정적인 주장을 내세울 수없었습니다. 그대들은 대왕의 말씀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5백 명 요나카 인은 환성을 올리고, 왕에게 말했다.
대왕이여, 말씀을 해 보십시오.
그래서 밀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에게 다시 말했다.
존자여, 나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수레는 이들 모든 것, 즉 수레채, 굴대, 바퀴, 차체, 차틀, 밧줄, 멍에, 바큇살, 채찍 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에 반연(緣)하여 (수레)라는 명칭이나 통칭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왕께서는 (수레)라는 이름을 바로 파악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대가 나에게 질문한 모든 것, 즉 인체의 33가지 유기물과 존재의 다섯 가지 구성 요소를 반연하여 (나아가세나)라는 명칭이나 통칭이 생기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바지라라 비구니는 세존 앞에서 이같은 시구를 읊었습니다.

마치 여러 부분이 모이므로
(수레)라는 말이 생기듯,
다섯 가지 구성 요소(五蘊)가 존재할 때,
생명 있는 존재(有情)라는 이름 생기노라.

훌륭하십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정말 희한합니다.
내가 그대에게 한 질문은 매우 어려웠습니다만 훌륭하게 해답하셨습니다. 만일, 부처님께서 여기 계신다면 그대의 대답을 입증하실 것입니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정말 잘 말씀하셨습니다.

 

 

 

2. 나이에 관한 문답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는 법랍(法臘)이 몇 살입니까.
대왕이여, 7살입니다.
존자여, 그대가 말씀하신 (일곱)이란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그대가 (일곱)이란 것입니까. 아니면 수(數)가 (일곱)이란 것입니까.
바로 그때 온 몸을 화려하게 장식한 밀린다 왕의 그림자가 땅과 물항아리 속에 비쳤다. 나아가세나 존자는 왕에게 말했다.
대왕이여, 그대의 그림자가 땅 위와 물항아리 속에 비쳤습니다. 도대체 그대가 왕입니까. 아니면 저 그림자가 왕입니까.
나아가세나 존자여, 내가 왕입니다. 그림자는 나로 인하여 생긴 것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법랍의 햇수가 (일곱)이라는 것이요, 내가 (일곱)인 것은 아닙니다. 대왕이여, 그대의 그림자의 경우처럼, 나로 인하여 (일곱)이 생긴 것입니다.
훌륭하십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정말 희한합니다.
나의 질문은 아주 어려웠는데 훌륭하게 해답하셨습니다.

 

 


 3. 장로의 엄숙한 약속 

 - 대화를 성립시키는 근거 -

 

 

왕은 말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나와 다시 대론하시겠습니까.
대왕이여, 만일 현자(賢者)로서 대론을 원한다면, 나는 그대와 대론하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왕자(王者)로서 대론을 원한다면, 나는 그대와 대론하지 않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현자로서 대론한다 함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대왕이여, 대체로 현자의 대론에 있어서는 문제가 해명되고 해설되고 비판받고 수정받고 반박(反駁)받지만, 그러나, 그것으로 성내는 일이 없습니다. 대왕이여, 현자는 진정 이렇게 대론합니다.
또 왕자로서 대론한다 함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대왕이여, 왕자들은 대개 대론에 있어서 한 가지 일을 주장하고 한 가지 점만을 밀고 나가며, 만일 그 일과 그 점을 따르지 않으면 `이 사람에게는 이러 이러한 벌을 주어라'고 명령합니다. 대왕이여, 왕자는 바로 이렇게 대론합니다.
좋습니다. 나는 왕자로서가 아니라 현자로서 대론하겠습니다. 존자께서는 마치 비구나 사미나 신도나 원정(園丁)과 대론하는 것처럼 마음놓고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대론해 주십시오. 조금도 염려 마시길 바랍니다.
대왕이여, 좋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는 동의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질문하겠습니다.
대왕이여, 말씀해 보십시오.
존자여, 나는 이미 질문했습니다.
대왕이여, 벌써 해답하였습니다.
그대는 무엇을 대답하였습니까.
대왕이여, 그렇다면 무엇에 대하여 물었습니까.

밀린다 왕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 비구는 위대한 현자다. 정말 나와 대론할 수 있다. 나는 그에게 물을 것이 많다. 그에게 모든 것을 묻기 전에 해는 서쪽으로 질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일 궁정(宮廷)에서 대론함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왕은 데바만티야에게 말했다.
데바만티야야, 너는 존자에게 왕과의 대론은 내일 궁정에서 하자고 알려라.
밀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말에 올라 `나아가세나, 나아가세나'를 외우면서 사라졌다.
데바만티야는 나아가세나 존자에게 그 전갈을 아뢰었다. 나아가세나 존자는 그 제의(提議)를 즐겁게 받아드렸다.
다음날 아침 일찍 데바만티야와 아난타카아야와 만쿠라와 삽바딘나는 밀린다 왕에게 가 이렇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나아가세나 존자가 오늘 오십니까.
그렇다, 그 분은 오늘 오실 것이다.
그 분은 얼마나 많은 비구들과 오십니까.
그 분이 원하는 만큼 많은 비구들과 함께 오실 것이다.
삽바딘나는 왕에게 말했다.
그 분더러 열 사람의 비구와 함께 오시라고 하십시요.
왕은 삽바딘나에게 다시 말했다.
모든 준비는 다 되었다. 몇 사람이든 그 분이 원하는 만큼 많은 비구와 함께 오시라고 하라.
삽바딘나는 왕에게 거듭 말했다.
그 분더러 열 사람의 비구와 함께 오시라고 하십시요.
만반 준비가 되어 있다. 너에게 거듭 말하노니, 몇 사람이든 그 분이 원하는 만큼 많은 비구와 함께 오시라고 하라. 삽바딘나는 나의 뜻을 어기고 사람 수를 제한하려고 하는구나. 그렇게 되면 내가 비구들에게 음식을 공양할 수가 없는 것으로 그 분은 생각하지 않겠는가.
이 말을 듣고 삽바딘나는 무안해 했다.

 

 

 

4. 아난타카-야의 영혼에 관한 문답 


 
데바만티야와 아난타카아야와 만쿠라는 나아가세나 존자에게 가서 `밀린다 왕은 얼마든지 그대가 원하는 만큼 많은 비구와 함께 오시라고 하십니다'고전했다.
나아가세나 존자는 그날 오전 장삼을 입고 바루와 가사를 손에 들고 8만명 비구와 함께 사아가라로 갔다.
아난타카아야가 나아가세나 존자에게 가까이 가 이렇게 물었다.
존자여, 내가 나아가세나라고 말할 때 그 나아가세나란 무엇입니까.
장로는 대답했다.
그대는 나아가세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들이 쉬고 내 쉬는 숨(呼吸)이 나아가세나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나간 숨이 돌아오지 않거나 들어 온 숨이 나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살아 있을 수 있겠는가.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나팔 부는 사람들이 나팔을 불 때 그들이 내 쉰 숨이 다시 그들에게로 돌아오는가.
아닙니다.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피리 부는 사람들이 피리를 불때 그들이 내 쉰 숨이 다시 그들에게로 돌아오는가.
아닙니다. 존자여.
그렇다면 그들은 왜 죽지 않는가.
저는 그대와 같은 논자(論者)와는 논의할 수 없습니다. 존자여, 그 뜻이 어떠한가를 말씀해 주십시오.
호흡에는 영혼이 없다. 들이 마시는 숨과 내 쉬는 숨은 신체 구조의 계속적인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장로는 대답했다. 그리고 그에게 아비담마론을 설명해 주었다. 그 결과 아난타카아야는 승단의 시주가 되겠다고 서약했다.

 

 

 

 5. 출가의 목적


 
나아가세나 존자는 밀린다 왕의 궁정으로 가, 미리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밀린다왕은 나아가세나 존자와 그의 회중에게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충분히
대접하고 각 비구에게는 장삼 한 벌씩을 나아가세나 존자에게는 승복 세 벌을 친히 선사했다. 그리고 나서 나아가세나 존자에게 말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비구 열 사람과 함께 여기에 앉으시고 나머지 비구는 돌려보내 주십시오.
밀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가 공양을 마치고 바루를 손에서 내려놓은 것을 보고 곧 허술한 좌석을 잡아 그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나아가세나 존자에게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무엇에 관해 대론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진리에 이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진리에 관해서 대론하면 어떻겠습니까.
왕은 물었다.
존자여, 그대가 출가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또 그대의 최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장로는 대답했다.

왜 물으십니까. 우리가 출가한 목적은 (이 괴로움을 없애고 다시는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세속에 대한 집착은 없고 완전히 해탈하는 것
이 최고 목적입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런데 비구들은 모두 그러한 고상한 이유로 출가했습니까.
대왕이여,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이유로 출가했습니다만, 어떤 사람은 폭군에 대한 공포 때문에, 또 어떤 사람은 도적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또 어떤 사람은 생활 수단으로서 출가했습니다.
존자여, 그대는 무슨 목적으로 출가하였습니까.
대왕이여, 실은 나는 어려서 출가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나는 궁극적인 목적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들 사문(沙門)은 현자(賢者)이다. 이분들은 나를 공부시켜 줄 것이다'고.
그리고 나는 그분들에게 배워 지금은 출가하는 목적과 자제(自制)하는 이익이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생사윤회를 벗어나지 못함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죽은 뒤 다시 태어나지(轉生) 않은 자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다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은 다시 태어나고, 어떠한 사람은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까.
죄 있는 사람은 다시 태어나고 죄 없는 사람은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대는 다시 태어날 것입니까.
죽을 때 마음이 생존에 대한 집착(執着)을 가지고 죽는다면, 다시 태어날 것이요, 생존에 대한 집착이 없이 죽는다면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제2장

 


 1. 무아설은 윤회의 관념과 모순되지 않는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재생한 자와 사멸(死滅)한 자는 동일합니까, 또는 다릅니까.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습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는 일찍이 갓난애였고, 유약한 애였고, 꼬마였고, 등에 업혀 있었습니다. 어릴 적 그대가 어른이 된 지금 그대와 같습니까.
아닙니다. 어릴 적 나와, 지금 나와는 다릅니다.
만일, 그대가 그 어린애가 아니라면, 그대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또 선생도 없었다는 것이 됩니다. 학문이나 계율(戒律)이나 지혜도 배울 수 없었다는 것이 됩니다. 대왕이여, 잉태 후 첫 7일 동안의 어머니와, 셋째 7일 동안의 어머니와, 넷째 7일 동안의 어머니가 각각 다릅니까. 어릴적 어머니와 어른이 되었을 적 어머니가 다릅니까. 지금 배우고 있는 자와 이미 배움을 마친 자가 다릅니까. 죄를 범한 자와 죄를 범하여 손발이 잘린 처벌을 받은 자가 다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존자여, 무엇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장로는 대답했다.
내 자신은, 등에 업힌 연약한 갓난아이적 나와 어른이 된 지금의 나와 같습니다. 모든 상태는 이 한 몸에 의하여 하나로 포괄(包括)되어 있는 때문입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여기 어떤 사람이 등불을 켠다고 합시다. 그 등불은 밤새도록 탈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밤새도록 탈 것입니다.
그런데, 대왕이여, 초저녁에 타는 불꽃과 밤중에 타는 불꽃이 같겠습니까.
아닙니다.
또, 밤중에 타는 불꽃과 새벽에 타는 불꽃이 같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초저녁의 불꽃과 밤중의 불꽃과 새벽의 불꽃은 각각 다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불꽃은 똑 같은 등불에서 밤새도록 탈 것입니다.
대왕이여, 인간이나 사물의 연속은 꼭 그와 같이 지속됩니다. 생겨나는 것과 없어지는 것은 별개의 것이지만,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지 않고 동시에 지속(순
환)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존재는 동일하지도 않고 상이(相異)하지도 않으면서 최종 단계의 의식에로 포섭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우유가 변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짜낸 우유는 얼마 후엔 응유(凝乳)가 되고, 다음엔 버터가 되고, 그 다음엔 버터기름으로 변해 갑니다. 만일 우유가 응유나 버터나 버터기름과 똑 같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왕은 그 말이 옳다고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유로부터 만들어진 것입니다.
대왕이여, 인간이나 사물의 연속은 꼭 그와 같이 지속됩니다. 생겨나는 것(生)과 없어지는 것(滅)은 별개의 것이지만, 서로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지 않고 동시에 지속됩니다. 이리하여 존재는 동일하지도 않고, 상이하지도 않으면서 최종 단계의 의식에로 포섭되는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2. 윤회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사람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까.
대왕이여,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그것을 압니까.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원인 즉 인(因)과 연(緣)이 정지하므로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음을 압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한 농부가 땅을 갈고 씨를 뿌려 곡식을 가꾸어 창고에 채워 둔 후 얼마 동안은 땅을 갈아 씨를 뿌리거나 하지 않고 저장되어 있는 곡식을 먹거나 다른 물품과 바꾸고 또 필요할 때 쓰기도 하며 살아간다고 합시다. 대왕이여, 그 농부는 이때 창고에 곡식이 가득차 있지 않음을 알고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응당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여 그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까.
창고를 채우는 인과 연이 정지함에 의하여 알고 있습니다.
대왕이여, 그대 말씀과 꼭 같습니다.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인과 연이 정지함에 의하여 사람은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음을 압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3. 해탈하면 지식은 없어지는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지식을 갖는 자는 지혜도 갖습니까.
그러합니다. 대왕이여.
지식과 지혜는 둘 다 같은 것입니까.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지식과 함께 지혜를 갖는 사람은 당혹(當惑)되는 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어떤 일에 대해서는 당혹되고 어떤 일에 대해서는 미혹되지 않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당혹되고 어떤 일에 대해서 당혹되지 않습니까.
아직 배우지 않은 기술의 영역이나, 아직 가본 적이 없는 지방이나, 아직 들어보지 못한 명칭과 술어 등에 대해서는 당혹될 것입니다.
어떤 일에 대하여 당혹되지 않습니까.
통찰(智慧)에 의하여 달관(達觀)한 것 즉, (무상이다)(고다)(무아다) 하는 데 대해서는 당혹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깨친 사람의 미망(痴)은 어디로 갑니까.
지혜가 생기자마자 곧 미망은 사라져 버립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사람이 어둔 방 안으로 등불을 가져 왔을 때 어둠이 사라지고 밝음이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렇다면 지혜는 어디로 갑니까.
지혜는 자신의 해야할 일을 성취하자마자 곧 사라집니다. 그러나, 지혜에 의하여 성취된, (무상이다) (고다) (무아다)라고 하는 깨침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존자여, 방금 말씀에 대하여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어떤 사람이 밤중에 서기에서 등불을 밝혀 편지를 쓴 다음, 등불을 끄는 경우와 같습니다. 이 경우 등불은 꺼져도 편지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지혜는 사라지지만 지혜에 의하여 성취된 (무상) (고),(무아)의 깨침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동쪽 어떤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5개의 물병을 준비해 두었다가 화재가 일어나면 끄는 풍속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집에 불이 나면 그 5개의 물병을 집에 내 던져 불을 끈다고 합니다. 불이 꺼진 다음에도 그 사람들은 물병을 계속 사용하려고 생각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존자여. 물병들은 이젠 소용없습니다. 불을 끈 다음에 물병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대왕이여, 5개의 물병은 5개의 뛰어난 수행력, 즉 신앙,정진,전념,정신 통일,지혜와 같고 시골 사람들은 수행자와 같으며, 불은 번뇌와 같습니다. 5개의 물병으로 불을 끄는 것과 같이 5개의 뛰어난 수행력에 의하여 모든 번뇌불을 끕니다. 이리하여 이미 없어진 번뇌는 두 번 다시 일어나는 일이 없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이를테면 의사가 약초로 만든 다섯 가지 약을 환자에게 먹여 병을 낫게 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이 경우 병이 나은 다음에도 의사는 다시 그에게 약의 효과를 보이려고 생각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약은 이제 할 일을 다했습니다. 병이 나은 사람에게 약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대왕이여, 꼭 그와 같습니다. 다섯 가지 약은 5개의 뛰어난 수행력과, 의사는 수행자와 병은 번뇌와 환자는 범부(凡夫)와 같습니다. 다섯 가지 약에 의하여 병이 낫는 것처럼 5개의 뛰어난 수행력에 의하여 모든 번뇌는 없어지며, 지혜는 사라지지만 성취된 깨달음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전쟁에 용감한 병사가 싸움터에 나가 5개의 화살을 쏘아 적을 격파했다고 합시다. 용사는 그 이상 계속 화살을 쏠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화살에 의한 일은 이미 다했습니다. 무엇때문에 더 필요가 있겠습니까.
대왕이여, 꼭 그와 같습니다. 5개의 화살에 의하여 적군이 격파되는 것처럼, 5개의 뛰어난 수행력에 의하여 모든 번뇌가 타파되고, 타파된 번뇌는 두 번 다시 일어나는 일이 없습니다. 이같이, 지혜는 할 일을 마치자마자 곧 없어지지만 그 지혜에 의하여 성취된, (무상이다), (고다), (무아다)라고 하는 깨침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4. 해탈한 사람도 육체적 고통을 느끼는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저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사람도 고통(苦受)을 느낍(感受)니까.
장로는 대답했다.
어떤 괴로움은 느끼고, 어떤 괴로움은 느끼지 않습니다.
어떤 것을 느끼고 어떤 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대왕이여, 육체적인 고통을 느끼나 정신적인 고통은 느끼지 않습니다.
어찌하여 그러합니까.
대왕이여, 육체적인 고통의 인(因)과 연(緣)은 계속하기 때문에 느끼지만, 정신적인 고통의 인과 연은 끝나기 때문에 느끼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한 가지 괴로움 즉, 육체적인 괴로움만을 느끼며, 정신적인 괴로움은 느끼지 않는다.'
존자여, 그렇다면 그 사람(육체적인 괴로움만을 느끼는 해탈한 사람)은 왜 완전한 반열반(般涅槃)에 들지 않습니까.
대왕이여, 아라한은 어떤 것을 애호(愛好)하는 일도, 혐오(嫌惡)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는 익지 않은 과일(즉 몸)을 흔들어 떨어뜨리지 않고 익기를 기다립니다. 대왕이여, 이것을 법장(法將) 샤아리풋타 장로는 이렇게 읊었습니다.

나는 죽음을 환영하지도 않으며,
삶을 환영하지도 않는다.
고용인이 품삯(賃金)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다가 올) 때를 기다린다.
나는 죽음을 바라지도 않으며
삶을 바라지도 않는다.
바로 알고(正知) 바로 생각하며(正念),
나는 때가 오는 것을 기다린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5. 감각이 성립하는 근거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쾌감은 선입니까.
악입니까. 아니면 무기입니까.
그것은 선일 수도 있고, 악일 수도 있으며, 또 무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존자여, 만일 선이 괴로움도 아니오 또 괴로움이 선도 아니라면, 선인 동시에 괴로움이란 것은 일어날 수 없겠습니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기 한 사람이 한 손에 뜨거운 쇠붙이를 잡고, 또 한 손에 차가운 눈덩이를 갖고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양손 다 아프겠습니까.
그러합니다. 양 손 다 아플 것입니다.
양 손 다 뜨겁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잘못 알고 있습니다. 만일 뜨거움이 아프게 한다면, 양손 다 뜨거운 것이 아니므로 고통은 뜨거움에서 생길 수 없으며, 또 만일 차가움이 아프게 한다면, 양 손 다 차가운 것이 아니므로 고통은 차가움에서 생길 수 없습니다. 대왕이여, 그렇다면 어찌하여 양손 다 아플 수 있겠습니까. 양손 다 뜨거운 것도 아니오, 양 손 다 차가운 것도 아니므로 고통은 뜨거움에서도 차가움에서도 생길 리가 없습니다.
존자여, 나는 그대와 같은 논사(論師)와는 토론에 대적할 수 없습니다. 존자여, 그 문제가 어째서 그러한가를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장로는 아비담마론으로부터 유도된 문제를 설함으로써 밀린다 왕을 설복시켰다.
대왕이여, 세속(世俗) 생활에 관계된 여섯 가지 기쁨이 있고, 세속을 버림(出離)에 관계된 여섯 가지 기쁨이 있으며, 세속 생활에 관계된 여섯 가지 슬픔이 있고, 세속을 버림에 관계된 여섯 가지 슬픔이 있으며, 세속 생활에 관계된 여섯 가지 평정(平靜)이 있고, 세속을 버림에 관계된 여섯 가지 평정이 있습니다. 이같이 6계열에 각각 여섯 가지 감각이 있습니다. 즉 현재의 36가지 감각이 있고 과거의 36가지 감각이 있으며, 미래의 36가지 감각이 있습니다. 모두 합치면 총계 백 여덟 가지 감각이 됩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6. 윤회의 주체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무엇이 저 세상에 바꿔 태어납니까.
명칭(名, 즉 인간의 정신 활동)과 형태(色, 즉 물질과 육체)가 바꿔 태어납니다.
현재의 명칭과 형태가 저 세상에 바꿔 태어납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의 명칭과 형태에 의하여 선이나 악의 행위(業 카르마)가 행해지고, 그 행위에 의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명칭과 형태가 저 세상에서 바꿔 태어납니다.
존자여, 만일 현재의 명칭과 형태 그대로 저 세상에 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은 악업(惡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장로는 대답했다.
만일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인간은 악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왕이여,실은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한, 악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남의 망고나무(암바) 과일을 훔쳤다고 합시다. 망고나무 주인이 그를 붙잡아 왕 앞에서 처벌해 달라고 했을 때, 그 도적이 말하기를 `대왕이여, 저는 이 사람의 망고를 따 오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심은 망고와 제가 따온 망고와는 다릅니다. 저는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고 한다면 왕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사나이를 처벌하겠습니까.
존자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무슨 이유로 그럽니까.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처음 망고는 현재 보이지 않지만, 마지막 망고에 대해서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인간은 현재의 명칭과 형태에 의하여 선악의 행위가 행해지고, 그 행위에 의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명칭과 형태로 저 세상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태어난 인간은 그의 업(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남의 쌀이나 고구마를 훔쳤다고 하는 경우도 망고 과일의 경우와 똑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추울 때 불을 피워 몸을 녹이고 나서 불을 끄지 않고 가 버렸는데, 불이 번져서 남의 밭을 태웠다고 합시다. 밭 주인이 그 사람을 왕 앞에 데리고 와 처벌을 내려 달라고 했을 때, 밭을 태운 사람이 말하기를, `대왕이여, 저는 이 사람의 밭을 태우지 않았습니다. 제가 끄지 않은 불과 이 사람의 밭 태운 불은 다른 불입니다. 저는 죄가 없습니다.'고 한다면 왕은 그 사나이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존자여, 그러할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처음의 불을 원인으로 해서 일어난 다음의 불에 대하여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인간은 현재의 명칭과 형태로 인하여 선행 악행을 하게 되고, 그 행위로 인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명칭과 형태로 저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 태어난 인간은 그의 업(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등불을 가지고 자기 집 꼭대기 방으로 들어가 식사를 했는데, 등불이 지붕을 태우고 이어서 마을을 태웠다고 합시다. 마을 사람들이 그 사나이를 붙잡아 `당신은 어찌하여 마을을 태웠소'하고 물었습니다. 사나이는 `왜요, 나는 마을을 불태우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식사를 하기 위하여 밝힌 불과 마을을 태운 불은 다릅니다' 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입씨름을 하다가 왕에게 가서 그렇게 말한다면 왕은 어느 쪽 말이 옳다고 하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의 말이 옳다고 하겠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마을을 태운 불은 그 사람이 식사하기 위하여 사용한 불로부터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사람은 죽음과 함께 끝나는 현재의 명칭 형태와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명칭 형태가 다르기는 하지만, 두 번째 것은 첫 번째로부터 나온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악업(惡業)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나이가 한 소녀에게 구혼하여 값을 치르고 갔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소녀가 장성하여 묘령의 처녀가 되었을 때, 딴 사나이가 값을 치르고 결혼했다고 합시다. 먼저 사나이가 와서 `당신은 왜 나의 아내를 데리고 갔소'라고 따졌습니다. 나중 사나이가 `나는 당신의 아내감을 데려간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구혼하여 값을 치른 어린 소녀와 내가 구혼하여 값을 치른 신부는 딴 여성입니다.'고 대답했다고 합시다. 그들이 입씨름을 하다가 왕 앞에서 재판을 요구한다면 왕은 어느 쪽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먼저 사나이가 옳다고 할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나중 사나이가 무슨 말을 하든 장성한 그 아가씨는 어린 소녀로부터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습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현재의 명칭 형태와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명칭 형태는 딴 것이긴 하지만, 저 세상 것은 이 세상 것에서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악업(惡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소치는 사람으로부터 우유 한병을 사서 그에게 맡기고 가면서, `내일 가지러 오겠소'라고 했다고 합시다. 다음 날이면 그 우유는 응유(凝乳)로 변할 것입니다. 그 사나이가 와서 우유를 달라고 하므로 소치는 사람은 응유로 변한 그대로 내주었습니다. 사나이는 `내가 산 것은 응유가 아닙니다.
내 우유병을 내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소치는 사람은 `나에겐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당신의 우유가 응유로 변했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입씨름을 하다가 왕 앞에서 재판을 바란다면, 왕은 어느 편이 옳다고 하겠습니까.
소치는 사람이 옳다고 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유를 산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응유는 그가 산 우유가 변해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습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현재의 명칭 형태는 저 세상에 태어나는 명칭 형태와 다르지만, 응유가 우유로부터 나온 결과이듯이 사람은 악업(惡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7. 윤회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는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것입니까.
대왕이여, 그만 둡시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나는 이미 `죽을 때 만일 생존에 대한 집착을 갖는다면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것이요, 집착을 버린다면,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왕의 정무(政務)를 처리한다고 합시다. 왕은 그에게 만족하여 정무를 맡길 것입니다. 그는 왕의 정무를 수행하는 동안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부여받아 그것에 전적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가 `우리 임금은 어떤 정무도 처리하시지 않는다'고 여러 사람에게 공언했다고 합시다. 왕은 그 사람이 옳게 말했다고 하겠습니까.
정말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습니다. 그런 질문을 다시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는 벌써 `만일 죽을 때 생존에 대한 집착(執着)이 있다면,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것이오, 집착이 없다면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고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는 진작 말씀하셨습니다. 

 

 


 8. 명칭과 형태 


 
왕은 물었다.
그대는 아까 명칭 형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에서 '명칭'이란 무엇이며 '형태'란 무엇입니까.
모든 사상(事象)에서 조잡한 것(감각적인 것)은 '형태'이고, 미묘한 것 즉, 정신적인 것은 '명칭'입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어찌하여 명칭만이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거나, 형태만이 다시 태어나거나 하지 않습니까.
대왕이여, 이들 사상(事象,諸法 즉 명칭과 형태)은 서로 의존하여 하나가 되어 함께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암탉은 노른자나 달걀 껍질이 없다면 달걀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노른자와 달걀껍질은 둘이 다 서로 의존하여 함께 한 물건으로 생겨납니다. 마찬가지로 만일 명칭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형태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은 명칭과 형태는 양자가 서로 의존해 있고 하나의 존재로 함께 생겨남을 의미합니다. 사실은 오랫동안 그렇게 있어 왔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잘 알겠습니다. 

 

 


9. 생사윤회를 벗어남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사람은 이치에 맞는 주의작용(如理作意)에 의하여 벗어나는 것입니까.
대왕이여, 바른 주의작용과 지혜와 그 밖의 모든 선법(善法)에 의하여 생사윤회를 벗어납니다.
바른 주의작용과 지혜는 똑같은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른 주의작용과 지혜는 다른 것입니다. 양과 산양과 소와 물소와 낙타와 노새에게도 바른 주의작용은 있지만 지혜는 없습니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0. 지혜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주의작용의 특징은 무엇이며, 지혜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주의작용은 파지(把持, 움켜잡음)를 특징으로 하고, 지혜는 끊어버림(斷切)을 특징으로 합니다.
주의작용은 어떻게 하여 파지를 특징으로 하며, 지혜는 어떻게 하여 끊어버림을 특징으로 합니까. 비유(譬喩)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그대는 보리를 베는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보리를 벱니까.
왼 손으로 보릿대를 움켜잡고 오른 손으로 낫을 들어 보리를 벱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그와 같습니다. 출가자(修行者)는 사고력에 의하여 자기 마음을 움켜 잡고(把持) 지혜에 의하여 자기의 번뇌를 끊어버립(斷切)니다. 이같이 하여, 주의작용은 파지(把持)를 특징으로 하고, 지혜는 끊어버림(斷切)을 특징으로 합니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1. 계행의 특징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또 그밖의 선법이라고 하셨는데 그 선법이란 어떤 것입니까.
대왕이여, 계행,신앙,정진(精進),전념(專念),정신통일(禪定),지혜(智慧)등이 선법입니다.
계행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계행은 일체 선법의 근거가 됩니다. 즉 5개의 도덕적 능력(五根과 五力), 7개의 깨침에 필요한 것(七覺支), 8개의 신성한 길(八聖道), 4개의 전념의 확립(四念處), 4개의 바른 노력(四正勸), 4개의 자재력의 구족(四神足), 4단계의 선(四禪), 8가지의 해탈(八解脫), 네 가지의 정신 통일(四定), 8가지의 마음 통일(八等至)등 하나 하나가 모두 계행을 근거로 확립됩니다. 대왕이여, 계행이 확립된 사람에게서 일체의 선법은 결손되는 일이 없습니다.
실례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성장하고 장성하고 번성하는 모든 동, 식물은 어느 것이든 땅에 의존하고 땅을 근거로 하여 성장하고 장성하고 번성합니다. 마찬가지로 출가자는 계행에 의존하고 계행을 근거로 하여 5개의 도덕적 능력 등을 증진시킵니다.
다시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땅에서 해야 할 일은 무슨 일이든 땅에 의존하고 땅을 근거로 하여 행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출가자는 계행에 의존하고 계행을 근거로 하여 구경(究竟)에 이릅니다.
더 좋은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도시의 설계자가 도시를 건설하려고 할 때 맨 먼저 도시의 터를 깨끗이 닦고 나무 밑둥이나 가시덤불을 치우고 바닥을 반반하게 한 다음, 거리와 광장과 십자로와 상가 등을 배열하여 도시를 건설합니다.
마찬가지로, 출가자는 계행에 의존하고 계행의 기반을 확립시킴으로써 5개의 도덕적 능력을 자기 스스로 증진시킵니다.
하나 더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곡예사가 자기 기술을 보이려고 할 때, 땅을 파고 돌과 깨진 기와를 제거하여 땅을 반지럽게 한다음, 그 부드러운 땅 위에서 자기 요술을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출가자는 계행에 의지하고 계행에 기반을 확립시키므로 5개의 도덕적 노력을 발전시킵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혜있는 사람은 계행을 근거로 하여 마음을 단련시키고 지혜를 키울 수 있다.
열의있고 깨우친 비구는 인생의 모든 얽매인 끈(繫縛)을 풀 것이다.
마치 대지가 생물의 근거가 되듯이 계행을 엮은 최상의 파아티목카는 선(善)을 증대시키는 근본이요.
또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들어가는 문지방이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2. 신행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신앙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청정(淸淨)과 대망(大望)입니다.
청정은 어떻게 하여 신앙의 특징이 됩니까.
대왕이여, 마음에 신앙심이 솟아날 때 신앙심은 다섯 가지 장애(五蓋)(즉 탐욕,성냄,나태,자만,의심)를 쳐부수며, 또 장애를 벗어난 마음은 가라앉고(明澄) 깨끗해지고 흐림이 없어질 것입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가령 전륜성왕(轉輪聖王)께서 4군을 거느리고 행군하는 도중 조그만한 강을 건넌다고 합시다. 강물은 상군과 기마군과 전차군과 보병군들에 의하여 흐려지고 흙탕물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강을 다 건너고 나서 왕은 부하들에게 `누가 마실 물을 가져 오너라. 물을 마시고 싶다.'고 명령했습니다. 그때 왕에게는 물을 맑게 하는 작용을 가진마니(摩尼珠 또는 淸水珠)가 있었습니다. 부하들이 왕의 명령을 받들어 그 마니를 강물에 던졌습니다. 마니가 던져지자, 곧 상카와 바아라 같은 물풀(水草)은 없어지고 흙탕물은 가라앉아 강물은 깨끗해졌습니다.
그때 비로소 부하들은 마실 물을 왕에게 가져다 바쳤습니다. 여기 마음은 강물과 같고, 출가자는 부하들과 같습니다. 또 번뇌는 풀이나 흙탕물과 같고, 신앙은 물을 맑게하는 마니와 같습니다. 물을 맑게 하는 작용을 하는 마니를 물 속에 던지자마자 물 속의 풀이 없어지고 흙탕물이 가라앉아 물이 맑아지듯이 신앙심이 솟아날 때, 다섯 가지 장애는 없어지고 마음이 청정하게 됩니다.
그럼 대망은 어찌하여 신앙의 특징이 됩니까.
대왕이여, 출가자는 남들의 마음이 어떻게 해탈했는가를 성자류(聖者流)에 든 경지(預流果)와 한번 이 세상에 왔다 가는 경지(一來果)와 두 번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경지(不還과)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한 경지 등에 뛰어 들어 아직 이르지 못한 곳에 이르고, 아직 느끼지 못한 것을 경험하고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수행합니다. 이같이 신앙의 특징은 대망입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마치 이와 같습니다. 큰 비가 산마루에 내린다고 합시다. 그 빗물은 낮은 곳을 따라 흘러 산골짜기와 벌어진 바위틈을 메우고 강을 채우고 강의 양 뚝에 범람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차례 차례로 거기 와서 강의 깊이나 넓이를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 망설이며, 강기슭에 서 있다고 합시다. 이 때 어떤 사람이 자기의 체력과 역량을 알아 허리띠를 졸라매고 강물에 뛰어들어 저쪽 뚝으로 건너 갔다면, 나머지 사람들도 그 사람이 건너 간 것을 보고 그 강을 건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출가자는 나머지 사람들이 강물에 뛰어드는 것처럼, 앞에 말한 4 단계의 경지에 이르기 위하여 수행합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신앙에 의하여 격류(激流)를 건너고,
근면에 의하여 생사의 바다를 건넌다.
정진(精進)에 의하여 모든 괴로음을 뛰어넘고,
지혜(智慧)에 의하여 청정하게 된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3. 정진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정진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일체 선법을 지탱하는 것이 정진의 특징입니다. 정진에 의하여 지탱된 일체의 선법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집이 쓰러지려고 할 때 딴 목재로 그 집을 떠받친다고 합시다. 이렇게 떠받쳐진 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진의 특징은 선을 떠받치는 것입니다. 정진에 의하여 떠받쳐진 일체의 선법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대군이 적은 소군을 공격한다고 합시다.
그때 소군을 가진 왕은 장병(將兵)을 규합하고 원군(援軍)과 협력하여 소군을 증강하므로서 대군을 물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진의 특징은 지원(支援)하는 것입니다. 정진에 의하여 지원 받는 일체의 선법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아, 정진하는 제자는 악을 버리고 선을 계발하며 잘못된 것을 버리고 바른 것을 발전시켜 자신을 청정하게 한다.'  

 

 


 14. 전념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전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열거(列擧)와 집지(執持)입니다.
열거가 어떻게 전념의 특징이 됩니까.
대왕이여, 출가자에게 전념이 일어날 때, 그는 선악과 정사(正邪)와 존비(尊卑)와 흑백(黑白)등 대조적인 성질을 반복해서 열거합니다. 즉 이것들은 4개의 전념(四念處)의 확립이요, 4개의 바른 노력(四正勸)이요, 4개의 자재력의 근거(四神足)이요, 5개의 정신력의 작용(五根)이요, 5개의 비상한 힘(五力)이요, 7개의 깨침에 필요한 것(七覺支)이요, 바른 관찰(觀)이요, 밝은 지혜(明智)요, 해탈 등입니다. 이리하여 출가자는 배워야 할 것을 배우(修習)고, 배워서는 안될 것을 배우지 않으며, 가까이 할 것을 가까이 하고 가까이 해서는 안될 것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전념은 열거를 특징으로 합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이를테면 전륜성왕의 이재관(理財官)이 왕에게 조석으로 왕의 재력(財力)을 상기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이재관이 `대왕이여, 그대의 상군은 얼마이며, 기마군은 얼마이며, 전차군은 얼마이며, 보병군은 얼마이며, 황금은 얼마이며, 금화(金貨)는 얼마이며, 재보(財寶)는 얼마입니다. 그것을 기억해 주소서'라고 왕의 재산을 열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존자여, 집지(執持)가 어떻게 하여 전념의 특징이 됩니까.
대왕이여, 전념이 생길 때 출가자는 이익되는 것(善法)과 이익되지 않은 것(不善法)의 범주를 추구합니다. 즉 이러 이러한 것은 선이고, 이러 이러한 것은 악이며, 이러 이러한 것은 유용하고, 이러 이러한 것은 유용하지 않다(顚倒)고 가려내어 추구합니다. 이리하여 출가자는 자신에게 악한 것을 소멸하고 선한 것을 보존(執持)합니다. 이와 같이 전념은 집지를 특징으로 합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이를테면 전륜성왕에게 믿음직한 신하(將軍寶)가 있어 왕에게 이롭고 이롭지 않은 것을 알아, 이것들은 이익되고 이것들은 이롭지 않으며, 이것들은 유용하고 이것들은 유용치 않다(顚倒)고 충언을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리하여 왕은 자신에게 악한 것을 소멸시키고 선한 것을 보존합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아, 나는 전념이야말로 어느 때 어느 경우에나 유익한 것이라고 말한다.'

 

 


15. 정신통일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정신 통일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수령(首領)됨을 특징으로 합니다. 일체의 선법은 정신 통일을 수령으로 하여 그곳으로 기울고 통솔되고 또 쏠려 갑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대들보는 꼭대기에 있어 모든 서까래가 그 곳으로 향하고, 그 곳에서 만나며 또 대들보는 집 전체의 꼭대기로 인정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신 통일은 일체의 전법에 대하여 그와 같은 관계에 있습니다.
비유를 다시 한번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이를테면 왕이 4군을 거느리고 싸움터에 나간다고 합시다. 모든 군사 즉 상군과 기마군과 전차군과 보병군은 모두 왕을 수령으로 하여 그에게로 향하도록 인솔됩니다. 그리고 각자가 왕의 부하로서 왕을 수령으로 전열이 모두 정돈됩니다. 일체 선법이 정신 통일에 대한 관계도 이와 꼭 같습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아 정신 통일을 수련하라. 정신통일을 성취한 사람은 모든 것을 진실상(眞實相) 그대로 보는 것이다.'   

 

 


16. 지혜의 특징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지혜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나는 이미 지혜는 끊어버림(斷切)을 특징으로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또 광명(光照)을 특징으로 합니다.
지혜의 특징은 어떻게 하여 광명입니까.
대왕이여, 지혜가 생길 때 지혜는 무지(無明)의 어두움을 타파하고, 명지(明知)의 광채를 발하며 지식의 등불을 밝히고 고상한 진리(聖諦)를 드러냅니다. 이리하여, 출가자는 무상(無常)이다. 고(苦)다, 무아(無我)다, 라고 하는 가장 밝은 지혜(正慧)로써 모든 존재를 비춰 보는 데 정력을 쏟습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어두운 집안으로 등불을 가지고 들어온다고 합시다. 어둠을 깨고 광채를 발하며 밝은 빛을 비추어 거기에 있는 대상물을 밝게 볼 수 있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수행자는 가장 밝은 지혜로써 모든 존재를 바로 비추어 봅니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7. 일체의 선법은 번뇌를 끊는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이들 선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동일한 목적을 성취합니까.
그러합니다. 이들 선법은 각각 다르지만 모두 동일 목적을 성취합니다. 즉 이들 선법은 번뇌를 끊는 것을 동일 목적으로 합니다.
어떻게 하여 그러합니까.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그것들(諸法)은 여러 부분의 군대 즉 상군,기마군,전차군,보병군들이 싸움터에서 적군을 쳐부순다는 동일 목적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제3장


 
1. 시간이 존재하는가
 
왕은 물었다.
그대는 오랫 동안(長時間)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랫 동안이라는 (시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대왕이여,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합니다.
도대체 시간이란 존재합니까.
존재하는 시간도 있고, 존재하지 않는 시간도 있습니다.
어떤 시간은 존재하고, 어떤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까.
대왕이여, 지나가 버렸거나, 끝나 버렸거나, 없어져 버린 과거에 대해서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결과를 낳거나(異熟法) 결과를 낳는 선천적인 가능성을 갖거나(異熟法), 딴 곳에 다시 태어나게 될 사상(事象)에 대해서 존재합니다. 죽어서 딴 곳에 다시 태어날 존재(有情)에는 시간이 존재하며, 죽어서 딴 곳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존재에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자유롭게 된(완전한 열반-般涅槃-에 도달한)존재에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해탈(완전한 열반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잘 알겠습니다. 

 

 

 

2. 영원한 시간은 어떻게 성립하는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과거 시간의 근거는 무엇이고, 현재 시간의 근거는 무엇이며, 미래 시간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과거 현재 미래 시간의 근거는 무명(無明 진리에 대한 무지)입니다. 무명을 반연하여 형성력(形成力=行)이 생기고, 형성력을 반연하여 식별작용(識別作用=識)이 생기고, 식별작용을 반연하여 명칭 형태(名色)가 생기고, 명칭 형태를 반연하여 6개의 감관(六處)이 생기고, 6개의 감관(感官)을 반연하여 감관과 대상과 식별작용과의 접촉(觸)이 생기고, 접촉을 반연하여 감수(感受=受)가 생기고, 감수를 반연하여 갈애(渴愛=愛)가 생기고, 갈애를 반연하여 집착(執着=取)이 생기고, 집착을 반연하여 생존 일반(有)이 생기고, 생존 일반을 반연하여 태어남(生)이 있고, 태어남을 반연하여 늙음과 죽음과 비애와 비통과 쓰라림과 괴로움과 절망 등이 생깁니다. 이 모든 시간의 과거의 궁극점(최초의 시작)은 분명히 인식되지 않습니다.
잘 대답하셨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3. 시간의 시원은 인식되지 않는다


 
 왕은 물었다.
그대는 모든 시간의 근원적 시작(始源)은 인식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조그마한 씨알 하나를 땅에 심는다고 합시다. 그 씨알은 싹이 터서 점차로 성장하고 무성하여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씨알을 받아 다시 땅에 심으면 또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이 종자(個體)의 연속에 끝이 있겠습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시간의 근원적 시작은 인식되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닭이 알을 낳고, 그 알에서 닭이 생기고 또, 그 닭에서 알이 생겨납니다. 이 연속에 끝이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끝이 없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시간의 근원적 시작은 인식되지 않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그때 나아가세나 존자는 땅에 원을 그려놓고 왕에게 물었다.
이 원둘레에 끝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은 순환(循環)을 세존께서는, 눈(眼)과 형태(色)에 의하여 눈의 식별작용(眼識)이 생기고, 이들 셋이 화합했을 때 접촉(觸)이 생기고, 접촉을 연유하여 감수(受)가 생기고, 감수를 연유하여 갈애(愛)가 생기고, 갈애를 연유하여 갈구하는 행동(取 와 業)이 생기고, 행동(業)으로부터 또 다시 눈이 생겨난다.'고 하셨습니다. 연속에 끝이 있겠습니까.
끝이 없습니다.
나아가세존자는 그 밖의 감각 기관(귀,코,혀,몸,마음)의 하나 하나에 대해서 거기 알맞은 순환을 들어 반문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왕의 대답은 언제나 꼭 같았으므로 존자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시간의 근원적 시작은 인식되지 않습니다.
잘 대답하셨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4. 윤회하는 생존은 시작이 없다.


  
 왕은 물었다.
그대가 근원적 시작은 인식되지 않는다고 할 때, 그 `근원적 시작'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대왕이여, 사라져 버린 과거 시간은 모두 근원적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근원적 시작은 인식되지 않는다고 할 때, 그 근원적 시작은 어느 것이나 인식되지 않습니까.
어떤 것은 인식되고, 어떤 것은 인식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은 인식되고 어떤 것이 인식되지 않습니까.
대왕이여, 그 이전에는 무명이 어떤 형태나 양태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 그러한 근원적 시작은 인식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지금은 생겨나고, 생겨나기 시작하자마자 또 다시 사라져 가는, 그러한 시작은 인식됩니다.
존자여,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것이 이제 생겨나고, 생겨나자 마자 곧 다시 사라져 간다면, 전후 양 끝에서 끊겨 없어지는 것입니까.
대왕이여, 만일 그것이 양 끝에서 끊겨 없어진다면, 끊겨진 것은 증대(增大)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증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묻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끊긴 지점(끝)에서 다시 증대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증대할 수 있습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존자는 나무와 씨알의 비유를 되풀이 하고, 5온(五蘊)들이 모든 괴로움을 낳는 씨알이라고 설명했다. 왕은 아주 만족해 했다.

 

 


5. 윤회하는 생존이 성립하는 근거


 
 왕은 물었다.
생겨나는 형성력(形成力=諸行)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입니까.
눈(眼)과 형태(色)가 있는 곳에 눈의 식별작용(識)이 있고, 눈의 식별작용이 있는 곳에 눈의 접촉(觸)이 있고, 눈의 접촉이 있는 곳에 감수(受)가 있고, 감수가 있는 곳에 갈애(渴愛=愛)가 있고, 갈애가 있는 곳에 집착(取)이 있고 집착이 있는 곳에 생존 일반(有)이 있고, 생존 일반이 있는 곳에 생겨남(生)이 있고, 생겨남이 있는 곳에 늙음과 죽음과 비애와 비통과 쓰라림과 괴로움과 실망 등이 있습니다. 이리하여 모든 괴로움이 생겨납니다. 이에 반하여 눈과 형상이 없는 곳에 눈의 식별작용이 없고, 눈의 식별작용이 없는 곳에 눈의 접촉이 없고, 눈의 접촉이 없는 곳에 감수가 없고, 감수가 없는 곳에 갈애가 없고, 갈애가 없는 곳에 집착이 없고, 집착이 없는 곳에 생존 일반이 없고, 생존 일반이 없는 곳에 생겨남이 없고, 생겨남이 없는 곳에 늙음과 죽음과 비애와 비통과 쓰라림과 괴로움과 실망 등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모든 괴로움에 종말이 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6. 개인의 존재의 형성력

 


 
 왕은 물었다.
점차로 생성됨이 없이 생겨나는 형성력(諸行)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형성력은 모두 점차로 생성합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가 지금 앉아 있는 이 집은 갑자기 생겨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존자여, 갑자기 생겨난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이 집의 각 부분은 점차적으로 생성되었습니다. 즉 집의 재목은 숲에서 나왔고, 진흙은 땅에서 나왔으며, 사람들의 노동에 의하여 이 집은 건축되었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습니다. 점차적인 생성이 없이 생겨나는 형성력(諸行)은 하나도 없습니다. 형성력은 발전 과정에 의하여 생겨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모든 나무와 식물은 씨알이 땅에 심어지고 점차로 자라고 무성하고 성장하여 꽃이나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들은 점차적인 생성이 없이 생겨 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존재하는 발전 과정에 의하여 생겨나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점차적인 생성이 없이 생겨나는 형성력이란 없습니다. 형성력은 발전의 한 과정에 의하여 생겨납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옹기장이(陶工)는 땅 속에서 진흙을 파 가지고 여러가지 옹기를 만듭니다. 그 옹기들은 형성함이 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오, 현재 존재하는 발전 과정을 거쳐 생겨난 것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점차적인 생성이 없이 생겨나는 형성력이란 없습니다. 형성력은 발전 과정을 거쳐 생겨납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가령 만돌린에 줄 받침과 가죽과 빈 공간이 없고, 몸체(器體)와 목(頸部)과 줄과 활이 없고, 또 그것을 타는 사람의 알맞은 연주가 없다면 음악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존자여.
그러한 모든 것이 있다면 소리가 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물론입니다.
대왕이여, 꼭 그와 같습니다. 점차적인 생성이 없이 생겨나는 형성력이란 없습니다. 형성력은 발전 과정을 거쳐 생겨납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가령 불을 일으키는 막대(鑽木)와, 비비 돌리는 막대(小鑽木)와, 돌리는 막대의 줄과, 매트릭스(上鑽木)와, 부시깃(火絨)이 없으며, 또 사람의 불을 일으키기에 적합한 노력이 없다면 불이 일어나겠습니까.
안 납니다.
그 모든 조건이 구비된다면 불이 일어나겠습니까.
일어납니다.
대왕이여, 꼭 그와 같습니다. 점차적인 생성이 없이 생겨나는 형성력이란 없습니다. 형성력은 발전 과정을 거쳐 생겨납니다.
비유를 더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가령 불을 일으키는 돋보기와 태양열과 말린 쇠똥이 없다면, 불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안 납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이 구비되면 불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일으킬 수 있습니다.
대왕이여, 꼭 그와 같습니다. 점차적인 생성이 없이 생겨나는 형성력은 없습니다. 형성력은 발전과정을 거쳐 생겨납니다.
또 하나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가령 거울도 광선도 없으며 거울 앞에 오는 얼굴이 없다면 얼굴 모습(相)이 나타나겠습니까.
안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주어진다면 얼굴 모습이 거울에 비치겠습니까.
대왕이여, 꼭 그와 같습니다. 점차적인 생성이 없이 생겨나는 형성력은 없습니다. 형성력은 발전의 한 과정에 의하여 생겨납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7. 배다구우(영적인 것)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베다구우(靈的인 것)가 있습니까.
장로는 반문했다.
대왕이여, 베다구우란 대체 무엇입니까.
왕은 말했다.
안에 있는 생명 원리(個我)는, 눈에 의하여 형상(色)을 보고, 귀에 의하여 소리를 듣고, 코에 의하여 냄새를 맡고, 혀에 의하여 맛을 보고, 몸(身)에 의하여 촉감을 느끼고, 마음(意)에 의하여 사상(事象 즉 法)을 식별합니다. 마치 여기 궁전에 앉아 있는 우리가 동, 서,남,북,어느 창문으로든 내다보고 싶은 창문으로 내다 볼 수 있는 것처럼, 안에 있는 생명 원리는 내다 보고 싶은 어느 문으로든지 내다 볼 수 있습니다.
장로는 대답했다.
대왕이여, 5개의 문에 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잘 주의해 들어주십시오. 만일 안에 있는 생명원리가 대왕이 말씀하신 것처럼, 창문을 마음대로 고르듯이 눈에 의하여 형상을 볼 수 있다면, 눈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그 밖의 5개의 감관의 하나 하나에 의해서도 형상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소리를 듣는 것, 냄새를 맡는 것, 맛을 보는 것, 촉감을 느끼는 것, 사상(法)을 식별하는 것에 있어서도 다른 5개의 감관(感官)의 어느 것에 의해서나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즉 한 경우만이 아니라 모든 경우를 다 지적해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말한 것(창문과 감관을 비교하는 것)은 앞 뒤가 잘 들어 맞지 않습니다. 여기 궁전에 앉아있는 우리가 창문을 모두 열어 제치고 얼굴을 밖으로
내밀어 큰 허공을 본다면 모든 대상을 보다 분명하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눈의 문이 제거(除去)될 때 안에 있는 생명 원리는 모든 대상을 보다 더 명백하게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뿐 아니라 소리를 듣는 것, 냄새를 맡는 것, 맛을 보는 것, 촉감을 느끼는 것, 사상을 식별하는 것 등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 문들이 제거될 때 역시 그렇지 않겠습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말한 것은 앞 뒤가 잘 들어 맞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여기 딘나(사람 이름)가 밖에 나가 문간에 서 있다고 합시다. 대왕은 딘나가 밖에 나가 문간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딘나가 다시 돌아와 대왕 앞에 서 있다고 합시다. 대왕은 딘나가 다시 돌아와 대왕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어떤 맛을 지닌 것이 혀 위에 놓여졌을 때, 식별하는 생명 원리(個我)는 그것이 시다던가 짜다든다 쓰다던가 맵다던가 떫다던가 달다든가 하는 사실을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나, 맛을 지닌 것이 위(胃) 속으로 들어갔을 때도 생명 원리(個我)는 맛을 알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그대 말은 앞뒤가 잘 들어맞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가령 어떤 사람이 백 개의 꿀 접시를 꿀통에 쏟은 다음, 어떤 사람의 입을 틀어막고 꿀이 가득들어 있는 그 통 속에 던졌다고 합시다. 통속에 던져진 사람은 단맛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겠습니까.
존자여, 그는 꿀맛을 모릅니다.
어째서 모릅니까.
꿀이 그 사람의 입속으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그대의 말은 앞 뒤가 잘 들어맞지 않습니다.
존자여, 나는 그대와 같은 논자에게는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 도리를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장로는 아비담마 론으로부터 도출된 이론으로 써 밀린다 왕을 설득시켰다.
대왕이여, 눈과 형상(色)에 의하여 눈의 식별작용이 생기고 그 밖에 접촉(觸)과 감수(感受 )와 표상(表象態)과 의사(思)와 통일작용(作意 즉 추상)과 생명감과 주의력 등이 함께 생겨납니다. 그리고 이것들과 유사한 인과(因果)의 연속은 감각 기관이 작용하게 될때 일어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상(事象=法)은 연(緣)을 따라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베다구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8. 감각과 통각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눈의 식별작용(眼識)이 일어나는 곳에는 어디나 마음의 식별작용(意識)도 일어납니까.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눈의 식별작용(眼識)이 일어나는 곳에는 어디나 마음의 식별작용(意識)도 일어 납니다.
둘 중 어느 것이 먼저 일어납니까.
안식(眼識)이 먼저 일어나고 의식(意識)이 다음에 일어납니다.
그러면 안식이 의식에게 `내가 일어나는 곳에 너도 일어나라'고 명령합니까. 아니면, 의식이 안식에게 `네가 일어난 곳에 나도 일어나겠다'고 일러줍니까.
대왕이여, 그렇지 않습니다. 양자 사이에는 아무런 상의(相議)도 없습니다.
그러면, 존자여, 안식이 일어나는 곳에 어떻게 하여 의식이 일어납니까.
경향(傾向=下行)과 문(門=向門)과 습관(習慣)과 습숙(習熟)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여 그러합니까.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안식이 생기는 곳에 의식이 생기는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비가 내릴 때 물은 어디로 흘러갑니까.
지면의 경사를 따라 흐릅니다.
비가 또 내린다면 그 물은 어디로 흘러 갑니까.
첫 번째 물이 흘러간 것과 같은 길로 흘러갑니다.
그러면, 어째서 그러합니까. 첫 번째 물이 두 번째 물에게 `내가 흘러가는 곳으로 너도 흘러가라'고 명령합니까. 아니면 두 번째 물이 첫 번째 물에게 `네가 흐르는 곳으로 나도 흐르겠다'고 일러줍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양자 사이에는 아무런 상의도 없습니다. 각자가 지면의 경사(傾斜)를 따라 흘러갑니다.
대왕이여, 꼭 그와 같습니다. 안식이 일어나는 곳에 의식이 일어나는 것은 경향성(傾向性) 때문입니다. 안식이 의식에게 `내가 일어난 곳에 너도 일어나라'고 명령하지도 않으며, 의식이 안식에게 `네가 일어난 곳에 나도 일어나겠다'고 상의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없습니다. 그와 같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가 경향성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러면 안식이 생기는 곳에 의식이 생기는 것은, 문이 있기 때문이라는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가령 어떤 왕에게 변방 도성(都城)이 있는데, 그 성은 망탑(望塔)과 성벽으로 튼튼하게 쌓여 있고 문이 단 하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 도성으로부터 나가려고 한다면 어떻게 나가겠습니까.
그 성문으로 나가겠습니다.
만일 딴 사람이 또 그 도성을 떠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또 어떻게 나가겠습니까.
첫 번째 사람과 꼭 같은, 성문으로 나가겠습니다.
어째서 그러합니까. 먼저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너는 내가 나가는 곳으로 나가라'고 일러주었습니까. 아니면 다음 사람이 먼저 사람에게 `네가 나가는 곳으로 나도 나가겠다'고 말했습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성문이 있기 때문에 그 곳으로 나갑니다.
대왕이여, 안식과 의식에 있어서도 꼭 그러합니다.
그러면, 안식이 생기는 곳에 의식이 생기는 것은 습관이 있기 때문이라는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한 수레가 앞서 갔다면 다음 수레는 어느 길로 가겠습니까.
처음 수레와 똑같은 길로 가겠습니다.
앞수레가 뒷수레에게 `자기가 간 곳으로 가라'고 말했습니까. 아니면, 뒷수레가 앞수레에게 `내가 간 곳으로 가겠다'고 말했습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두 수레 사이에는 아무런 통화도 없었습니다. 다음 수레가 습관성에 의하여 처음 수레를 따라 갑니다.
대왕이여, 안식과 의식에 있어서도 꼭 그러합니다.
그러면 습숙(習熟)이 있기 때문에 안식이 생기는 곳에 의식도 생긴다는 것을 비유로 설명해 주십시오.
대왕이여, 부호술(符號術 또는 印術) 산술(算術), 목산(目算), 습자(習字)의 기술에 있어서 초보자는 처음에 서투르지만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세심한 주의와 연습에 의하여 숙달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습숙에 의하여 안식이 일어나는 곳에 의식도 일어납니다.
존자는 그 밖에 청각이나 미각이나 후각이나 촉각들의 식별작용이 있는 곳에 마음의 식별 작용(意識)도 일어난다는 것을 같은 방법으로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의식(통각)은 어느 경우에나 감각에 이어 일어나지만, 양자 사이에는 교제나 통신이 있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언명했다.
왕은 또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의식(통각)이 있는 곳에 언제나 감수도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의식이 일어나는 곳에는 접촉(觸)과 감수(受)와 표상(想)과 의향(思)과 성찰(省察)과 고찰(考察)들이 있습니다.   

 

 


 9. 접촉의 특징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존자여, 접촉(觸 팟사)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맞부딪침입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두 마리 숫양이 (뿔)싸움을 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눈(眼)은 한편의 숫양으로 볼 것이오, 형상(色)은 딴 편의 숫양으로 볼 것이며, 접촉(觸)은 두 양의 맞부딪침으로 볼 것입니다.
다시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그것은 두 개의 심벌로 (악기 이름 婆羅)마주치는 경우와 같습니다. 눈은 한 쪽의 심벌로 볼 것이오, 형상은 다른 한 쪽의 심벌로 볼 것이며, 접촉은 두개의 심벌이 마주치는 것으로 볼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0. 감수의 특징에 관하여
 


 존자여, 감수(受)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경험함으로 고락을 향수하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왕의 정무(政務)를 맡아 처리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왕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어 정무를 맡겼습니다. 그는 정무를 수행하는 동안 5가지 욕망을 달성하고 만족하여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즉 `왕은 나에게 만족하여 정무를 맡기셨고, 나는 정무를 처리해 왔다. 나는 정무를 수행함으로 지금 이러한 감수(受)를 경험하고 있다.'고. 또 이런 경우와도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선행(善業)을 짓고 죽어서 육신이 없어진 다음, 천국(天界)에 축복받는 행복한 상태로 왕생하여 천국의 5욕(五欲)을 이루고 만족하여,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즉, `나는 전생에 선행을 닦았으므로 지금 이러한 감수(受)를 경험하고 있다.'고. 대왕이여, 이와같이 경험함으로 고락을 향수하는 것이 감수의 특징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1. 표상의 특징에 관하여


 
 나아가세나 존자여, 표상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인식함(認知)입니다. 즉 파랑, 노랑, 빨강, 백색, 갈색 등을 인식함과 같습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이를테면 왕의 재무관(守藏官)이 왕의 보물 창고에 들어가서 청,황,적,백,갈색의 보물을 보고, 그것들이 왕의 재보(財寶)라고 인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인식함(認知)이 표상의 특징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2. 의사의 특징에 관하여


 
 나아가세나 존자여, 의사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그것은 마음 먹음(意思,思已)과 형성함(形成, 爲作)을 특징으로 합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독을 마련하여 자기 자신도 마시고, 남에게도 마시게 하면 자신도 고통을 받고, 남도 고통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나쁜 짓(不善行)을 하려고 마음먹고, 그렇게 하면 죽어서 육신이 없어진 다음, 지옥의 괴로움에 찬 불행한 상태로 다시 태어날 것이며, 그의 말을 따라간 사람들도 역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또, 이런 경우와도 같습니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버터 기름과 버터와 기름과 벌꿀(蜂蜜)과 당밀(糖蜜)의 혼합물을 만들어 자기 자신도 마시고 남에게도 마시게 한다면, 자신도 즐겁고 남도 즐거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착한 일(善業)을 하려고 마음 먹고 그렇게 하면, 죽어서 육신이 없어진 다음, 천국(天界)에 축복받는 행복한 상태로 다시 태어날 것이며, 그 사람의 충고대로 따라간 사람들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마음먹음과 형성함이 의사(意思)의 특징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3. 식별작용의 특징에 관하여

 


 
 나아가세나 존자여, 식별 작용(識)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구별해 앎(三別)입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이를테면, 도시의 수위가 도시 한 복판 네거리에 앉았을 때, 사람들이 동,서,남,북 4방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사람은 식별 작용에 의하여 눈으로 보는 대상물과 귀로 듣는 소리와, 코로 맡는 냄새와, 혀로 맛보는 맛과, 몸으로 닿는 접촉물과, 마음으로 인식하는 사상(事象=法)들을 압(三別)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구별해 알아봄이 식별작용의 특징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4. 성찰의 특징에 관하여

 


 
 나아가세나 존자여, 성찰(尋)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목적 수행을 특징으로 합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이를테면 목공이 잘 다듬어진 목재를 잇장(이음매)에다 고정시키는 목적을 수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목적 수행이 성찰의 특징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5. 고찰의 특징에 관하여 

 


 
 나아가세나 존자여, 고찰(伺)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계속해서 생각해 냄(繼續的 追思惟)입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동라(징같이 생긴 타악기)를 칠 때, 계속 여운이 생기는 경우와 같습니다. 이때 동라를 치는 것은 성찰로 볼 것이며, 여운은 고찰로 볼 것입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계속해서 생각해 냄이 고찰의 특징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제4장

 

 

 1. 여러 가지 정신 작용의 협동 

 


 
 왕은 물었다.
나아세나존자여, 모든 사상(諸法)이 혼합되어 있을 때, 그것들을 하나 하나 분리시켜 `이것은 접촉(觸)이요, 이것은 감수(受)요, 이것은 표상(態)이오, 이것은 의사(思)요, 이것은 식별(識)이오, 이것은 성찰(尋)이오, 이것은 고찰(伺)이다,'고 구별을 명백하게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따로 따로 구별할 수 없습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궁정의 요리사가 시럽이나 소스를 만든다고 합시다. 그는 거기에다 굳기름과 소금과 생강과 마늘과 후추와 그 밖의 조미료를 넣었습니다. 그때, 왕은 요리사에게 `나에게 굳기름 양념을 갖다 다오, 소금 양념을 갖다 다오, 생강 양념을 갖다 다오, 마늘 양념을 갖다 다오, 후추 양념을 갖다 다오, 모든 조미료가 든 맛있는 양념을 갖다 다오'라고 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그 혼합해서 만든 소스를 일일이 분해하여 `이것은 시고, 이것은 짜고, 이것은 맵고, 이것은 떫고, 이것은 답니다'고 양념을 따로 따로 분해해서 가져 올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양념은 하나 하나 특징에 의하여 나타나 있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꼭 같습니다. 모든 사상이 한데 혼합되어 있는 것을 하나 하나 떼어서 `이것은 접촉이다.
이것은 감수다. 이것은 표상이다. 이것은 의사다. 이것은 식별이다. 이것은 성찰이다. 이것은 고찰이다'고 구별지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상을 하나 하나의 특징에 의하여 논의할 수 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장로가 왕에게 말했다.
대왕이여, 소금은 눈으로 알(識別)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대왕이여, 주의해 주십시오. 눈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소금이 갖고 있는 흰 빛에 지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러면 혀로 알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모든 종류의 소금은 혀로써만 식별합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만일 소금을 혀로만 식별할 수 있다면, 황소는 왜 전체를 짐차로 실어 나릅니까. 짠 맛만을 나르면 되지 않겠습니까.
대왕이여, 그것은 짠 맛만을 나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짠 맛과 무게라는 두 가지 성질(二法)은 실제 소금에서는 하나로 되어 있으나, 원래 영역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대왕이여, 대체 소금은 저울로 달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달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대왕이여, 소금은 저울로 달 수 없습니다.
그 무게를 저울로 달 수 있을 뿐입니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여기서 밀린다 왕에 대한 나아가세나 존자의 질문은 끝난다.)   

 

 


2. 통각작과 자연 법칙의 문제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5개의 영역(眼,耳,鼻,舌,身,5개 감각 기관의 대상에 대한 대응 관계)은 각기 다른여러 가지 행위에 의하여 생깁니까. 아니면, 한 가지 행위에 의하여 생깁니까.
대왕이여, 한 가지 행위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고 각기 다른 여러 가지 행위에 의하여 생깁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한 뙤기 밭에 다섯 가지 씨알을 뿌린다면, 여러 가지 씨알에서는 각기 다른 여러 가지 열매가 맺어지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5개의 영역은 각기 다른 여러가지 행위에 의하여 생깁니다. 한 가지 행위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3. 인격의 평등과 불평등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모든 사람은 어찌하여 똑같지 않습니까. 즉, 어떤 사람은 단명하고, 어떤 사람은 장수하며, 어떤 사람은 잘 앓고, 어떤 사람은 잘 앓지 않으며, 어떤 사람은 밉상이고, 어떤 사람은 미인이며, 어떤 사람은 힘이 약하고, 어떤 사람은 힘이 세며,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어떤 사람은 부자이며, 어떤 사람은 비천하게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고귀하게 태어나며, 어떤 사람은 우둔하고, 어떤 사람은 영리합니까.
나아가세나 존자는 왕에게 반문했다.
모든 식물은 왜 똑같지 않습니까. 어떤 것은 신 맛이 나고, 어떤 것은 짠 맛이 나고, 어떤 것은 쓰고, 어떤 것은 맵고, 어떤 것은 떫은맛이 나고, 어떤 것은 단맛이 납니까.
존자여, 그것들은 각기 다른 종자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전생의 행위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같지 않습니다. 즉, 전생 행위의 결과로 수요(壽夭),빈부,귀천,미추,현우 등 차이가 있습니다. 대왕이여, 이것은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라문 학도들아, 생존은 제 각기 자기의 업(業)을 가지고 있고, 그 업을 이어 받으며, 그 업을 모태(母胎)로 하고 친척으로 하며, 또 그 업에 의존하는 것이다. 업은 생존을 비천한 것과 존귀한 것으로 차별짓는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4. 수행의 시기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들이 출가 수행하는 목적은 괴로움이 사라지고 다시 다른 괴로움이 생기지 않도록 함이라고 그대는 말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출가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출가 수행은 미리부터 노력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까. 아니면, 때가 왔을 때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까.
장로는 대답했다.
때가 왔을 때 비로소 노력한다 함은 실은 해야 할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미리부터 노력함이야 말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왕은 목이 말랐을 때 비로소 물이 마시고 싶다고 우물이나 저수지를 파게 합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때에 닥쳐 비로소 노력함은, 실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오, 미리 노력함이 바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왕은 배가 고팠을때 비로소 음식을 먹고 싶다고 밭을 갈아 곡식을 심고 가꾸어 거둬들이게 합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때에 닥쳐 비로소 노력함은, 실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오, 때에 앞서서 노력함이 바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또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왕은 전쟁이 터졌을 때 비로소 참호를 파고, 성문을 만들고, 망탑(望塔)을 세우고, 보루(堡壘)를 쌓게 하며, 식량을 실어 들이게 합니까. 그때야 비로소 상술(象術)과 마술(馬術)과 전차술과 궁술과 검술 등 전술을 익히게 합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때에 닥쳐 비로소 노력함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이오, 때에 앞서서 미리 노력함이야말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이것을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자기에게 복되는 일을 미리부터 해 치울 것,
마부와 같은 생각을 하지 말고,
슬기로운 사람은 깊이 생각하며 매진할지어다.
마부가 탄탄한 대로를 버리고,
울퉁불퉁한 지름길을 가다가,
마차 축을 부러뜨리고 낙담하는 것처럼,
정법(正法)을 등지고 잘못된 길을 따라 가다가,
사마(死魔)의 입에 떨어져 비탄에 잠긴다.
바닥 난 노름꾼이 파경에 처할 때처럼.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5. 업의 존재에 대한 증명에 따라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들(佛子)은 `지옥불은 자연불(自然火)보다도 훨씬 더 강열하다. 자연불 속에 던져진 조약돌은 하루 동안 태워도 녹지 않지만, 큰 집채 만한 바위도 지옥불 속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녹아 버린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또, 한편 그대들은 `지옥에 태어난 생명체(有情)는 수십만년 동안 지옥불 속에서 타더라도 녹아 없어지는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런 말도 믿지 않습니다.
장로는 대답했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암상어와 암악어와 암거북과 암공작과 암비둘기들은 단단한 돌이나 자갈이나 모래를 먹습니까.
존자여,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돌이나 자갈이나 모래는 뱃속에 들어가면 녹아 버립니까.
그렇습니다. 녹아 버립니다.
그렇다면, 뱃속에 든 그들의 태아(胎兒)도 녹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째서 녹지 않습니까.
존자여, 업의 제약(制約)에 의하여 녹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지옥에 태어나는 생명체는 수천년 동안 지옥(의 불)속에 있어도 숙업의 제약에 의하여 녹지 않습니다. 지옥에 있는 생명체는 거기서 태어나 거기서 성장하고 또 거기서 죽습니다. 대왕이여,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그는 악업(惡業)이 소멸될 때까지는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암사자와 암호랑이와 암표범과 암캐들은 단단한 뼈나 고기를 먹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런 것을 먹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것은 뱃속에 들어가면 녹아버립니까.
그렇습니다. 녹아버립니다.
그들의 뱃속에 든 태아도 녹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째서 녹지 않습니까.
존자여, 숙업(宿業)의 제약에 의하여 녹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지옥에 태어난 생명체는 수천년 동안 거기 있어도 숙업의 제약에 의하여 녹지 않습니다.
또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요나카 인의 부녀자와 크샤트리야의 부녀자와 바라문의 부녀자와 궁성의 부녀자들은 단단한 과자와 고기를 먹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은 단단한 것을 먹습니다.
단단한 것들이 뱃속에 들어 있을 때 녹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녹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뱃속에 든 어린애도 녹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째서 녹지 않습니까.
존자여, 숙업의 제약에 의하여 녹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지옥에 있는 생명체는 수천년동안 태우더라도 숙업의 제약 때문에 녹지 않습니다.
만일, 지옥에 태어나면 그들은 거기서 성장하고 거기서 죽습니다. 대왕이여,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는 악업이 소멸되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6. 불교의 우주구조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들은 `이 세계(大地)는 물(水)위에 있고 물은 바람(風) 위에 있고 공기는 허공 위에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때 장로는 법병(法甁)에 물을 담아다가 밀린다 왕에게 보이고 말했다.
이 물이 대기(風)에 의하여 지탱되는 것처럼 세계의 물도 공기(風)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7. 이상의 경지, 열반(涅槃)은 지멸 (止滅)인가


 
왕은 물었다.
열반이란 제지해 없어짐(止滅)입니까.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어찌하여 열반이 지멸입니까.
대왕이여, 모든 어리석은 개체들은 내외 6개의 영역(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을 즐겨하고 반겨하고 집착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욕정의 흐름에 끌려, 나고 늙고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고통과 쓰라림과 절망으로 부터 벗어나지(解脫) 못합니다. 즉, 괴로움(苦)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왕이여, 슬기로운 제자들은 내외 6개의 영역을 즐겨하지 않고 반겨하지도 않고 또 거기에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것을 환희, 환영, 집착하지 않는 만큼 그에게는 애착(愛執)이 지멸(止滅)하고, 애착이 지멸하므로 집착(執着)이 지멸하고, 집착이 지멸하므로 생존 일반(生存一般)이 지멸하고, 생존 일반이 지멸하므로 태어남(生)이 없고, 태어남이 없으므로, 늙고 죽음(老, 死)과 근심과 슬픔과 고통과 쓰라림과 절망이 없어집니다. 이리하여 모든, 고통의 덩어리가 지멸합니다. 그러므로 열반은 지멸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8. 누구나 열반을 얻는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모든 사람이 열반을 얻습니까.
대왕이여, 누구나 열반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른 길을 걷고, 잘 알아야 할 법을 잘 알고, 완전하게 알아야 할 법을 완전하게 알며, 끊어야 할 법을 끊고, 닦아야 할 법을 닦으며, 실현(現證)해야 할 법을 실현하는 사람은 열반을 얻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9. 열반이 즐거움(安樂)이란 것을 어떻게 아는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아직 열반을 얻지 못한 사람이 열반이 얼마나 행복한 상태인가를 압니까.
그렇습니다. 알다 뿐입니까.
아직 열반은 얻지도 않고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손발을 잘린 적이 없는 사람들이 손발을 잘린 이가 얼마나 슬픈 일인가를 압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그런 줄을 압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것을 압니까.
손발을 잘린 사람들이 비통해 하는 소리를 듣고서 슬픈 일인 줄을 압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아직 열반을 얻지 못한 사람들도 열반을 체득한 사람들의 즐거운 말을 듣고 열반이 얼마나 행복한 상태인 줄을 압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제5장

 


1. 부처님(佛陀)은 실재(實在)한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부처님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대왕이여.
그러면 그대의 선생께서는 부처님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대왕이여.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렇다면 부처님은 계시지(實在) 않습니까.
대왕이여, 그대는 히말라야 설산에 있는 우아하아 강을 보신 일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존자여.
아니면 그대의 아버지께서 우아하아 강을 보신 일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존자여.
대왕이여, 그렇다면 우아하아란 강은 없습니까.
존자여, 그 강은 있습니다. 나도 아버지도 우아하아 강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아하아 강은 실지로 있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나도 선생님도 부처님을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란 분은 실지로 계셨습니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2. 부처님은 뛰어난 분이신가 1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부처님은 출중한 분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無上者)입니다.
그대는 한번도 본 일이 없을텐데, 그분이 출중하시다(無上)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해(大海)를 본 일도 없는 사람들이 `대해는 광대 무변하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으며, 5대 강 즉 간지스 강, 줌나 강, 아키라바티아 강, 사라부우 강, 마히이 강 등이 대해로 흘러 들어가지만, 대해는 더 줄거나 더 차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나는 위대한 불제자(聲聞)들이 완전한 열반(涅槃)에 도달하는 것을 보고 부처님은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3. 부처님은 뛰어난 분이신가 2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딴 사람들도 부처님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딴 사람들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딴 사람들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대왕이여, 옛날 팃사 장로(長老)라는 서예사(書藝師)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죽은 뒤 많은 세월이 지났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그 서예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까.
존자여, 그분이 남긴 서예물에 의하여 알 수 있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진리(法)가 무엇인가를 본 사람은 누구나 부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는 진리(法)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진리(法)를 보는 사람은 부처님을 본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는 진리를 보신 일이 있습니까.
대왕이여, 우리들 불제자는 사는 동안, 부처님의 지조와 부처님의 가르침(명령)을 따라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4. 윤회의 주체는 전생하지 않는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사람이 죽었을 때 윤회의 주체가 저 세상에 옮아감(轉移)이 없이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옮아감이 없이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그럴 수 있습니까.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한 등에서 딴 등에 불을 붙인다고 합시다. 이런 경우 한 등이 딴 등으로 옮아간다(轉移)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윤회의 주체가 한 몸에서 딴 몸으로 옮아감이 없이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그대가 어렸을 때, 어떤 스승(詩師)으로부터 배운 시를 기억(회상)합니까.
그렇습니다.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시는 스승으로부터 그대에게로 옮긴(轉移)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몸이) 옮김 없이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5. 영혼같은 것은 없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영혼 같은 것이 있습니까.
대왕이여, 참 뜻(第一義, 勝義)에 있어서 영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옮겨가는(轉移) 주체(主體)가 있는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생명체(有情)에는 이 몸에서 저 몸으로 옮겨가는 것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자기의 악행(惡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만일,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악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악행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남의 망고(菴婆) 과일을 훔쳤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처벌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남이 심은 망고 과일과 똑 같은 망고 과일을 훔친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왜 처벌을 받아야 합니까.
그 사람이 훔친 망고는 딴 사람이 심은 망고로부터 생긴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사람은 현재의 명칭, 형태에 의하여 선행이나 악행을 짓고 그 행위에 의하여 다른 명칭, 형태로서 저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행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6. 업은 어디에 있는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이 명칭, 형태(정신과 육체 즉, 인격적 개체)에 의하여 선행이나 악행을 짓게 되는 업(業)은 어디에 머뭅니까.
대왕이여, 그림자가 형체를 떠나지 않는 것처럼 업은 인격적 개체에 수반됩니다.
업은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직 열리지도 않은 과일을 `여기 있다 또는 저기 있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까.
존자여, 그럴 수 없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생명체(個體)의 연속이 끊어지지 않는 한 `그 업이 여기 있다 또는 저기 있다'고 지적할 수 없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7. 과거나 미래에 대한 의식의 연속  
  - 다시 태어날 것을 알 수 있다 -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것을 압니까.
대왕이여, 알고 있습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한 가장인 농부가 곡식을 땅에 심고 나서 비가 알맞게 나린다면 그는 곡식이 나오리라는 것을 알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는 압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저 세상에 장차 태어날 자는 자기가 태어날 것을 미리 압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8. 열반하신 부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부처님이란 분이 실지로 계십(實在)니까.
그렇습니다. 계십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렇다면 여기 계신다던가 저기 계신다던가 하며 지적할 수 있습니까.
대왕이여, 부처님은 번뇌를 소멸하고 남은 육체를 여읜 완전한 열반의 경지(無餘依涅槃界)에서 완전한 열반(般涅槃)에 들었습니다. 부처님은 실지로 여기 계신다던가 저기 계신다던가 하며 지적할 수는 없습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큰 불이 타고 있을 때, 그 불꽃이 사라졌는데도 불꽃이 여기 있다 또는 저기 있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존자여, 불꽃이 없어진다면 불꽃을 지적할 수 없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번뇌불을 끔과 동시, 남은 육체를 떠난 완전한 열반의 경지에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미 가 버린 부처님을 여기 계신다
던가 저기 계신다던가 하며 지적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왕이여, 진리를 몸으로 삼고 있는 것(法身)에 의하여 부처님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法)는 부처님에 의하여 가르쳐졌기 때문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제6장

 


1. 출가한 자에게 육신은 소중한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출가한 자에게 육신은 소중합니까.
아닙니다. 출가한 자는 육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대들은 육신을 아끼고 사랑합니까.
대왕이여, 그대는 싸움터에 나가 화살에 맞은 일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있습니다.
대왕이여, 그런 경우 그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기름 약을 칠하고 붕대를 감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했습니다.
그렇다면, 연고를 바르고 기름약을 칠하고 붕대로 감은 것은 그 상처가 소중해서였습니까.
아닙니다. 상처가 소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처의 살이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그러했을 뿐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출가한 자에게 육신은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출가한 자는 육신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청정한 수행(梵行)을 조성(助成)하기 위하여 육신을 유지합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육신은 상처와 같은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출가한 자는 육신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상처처럼 보호합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은 끈적 끈적한 살갗에 덮인, 9개의 구멍이 있는 큰 종이와 같다. 부정(不淨)하고 악취(惡臭) 있는 것이 여기 저기서 흘러 나온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2. 부처님 가르침이 실천적 성경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부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예견하신 분입니까.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모든 것을 아실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예견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어째서 제자들에게 비구 승단의 규율을 한꺼번에 제정하지 않으시고 기회 있을 때마다 마련해 주었습니까.

대왕이여, 지구상에 모든 의약을 알고 있는 의사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마 있을 것입니다.
대왕이여, 의사는 이미 병들었을 때 환자에게 투약을 합니까, 아니면 앓기도 전에 투약을 합니까.
존자여, 병든 다음에 투약합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예견하신 분입니다. 제자들에 대하여 때가 아닌 때에 익혀야 할 규율을 마련해 주시지는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이 생활하는 동안 필요성이 생겼을 때 범해서는 안 될 규율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3. 부처님의 32가지 위인의 특징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부처님은 위인이 지니는 32 가지 신체상 특징(三十二大人相)을 갖추시고(具足), 80가지 부수적인 특징(八十隨形好)으로 빛나시며, 금빛과 같은 피부가 빛나며, 몸 주위에도 1 심(尋, 약 6 피이트) 거리까지 빛이 둘러 퍼져 있습니까.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그러하셨습니다.
그 분의 부모도 그러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부모를 닮아 그렇게 태어나셨다고 해야 합니다. 아들은 부모 중의 어느 한 쪽과 같거나 비슷하거나 해야 합니다.
장로는 대답했다.
대왕이여, 잎이 백 개나 된 연꽃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서 성장합니까.
진흙 속에서나 물 속에서 성장합니다.
그렇다면, 그 연꽃은 색깔이나 향기나 맛이 자라난 연못의 진흙을 닮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색깔이나 향기나 맛이 자라난 물을 닮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부모는 위인이 지니는 32 가지 신체상의 특징을 갖추지도 않고, 80 가지 부수적인 특징으로 빛나지도 않으며, 피부가 금빛으로 된 몸도 아니며, 몸 주위에 1 심 거리의 빛이 둘러 퍼져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세존은 그대가 말한 것과 같이 신체상 여러 가지 특징을 가졌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4. 부처님은 지혜를 가진 최고의 인격자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부처님은 청정(淸淨)한 수행자(梵行者)였습니까.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청정한 수행자였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러면 부처님은 범천(梵天)의 제자였습니까.
대왕이여, 그대는 훌륭한 코끼리를 가지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그 코끼리는 전에 학의 울음 소리를 낸 일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코끼리는 학의 제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범천은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까, 있지 않습니까.
지혜를 가지고 있는 분(有覺者)입니다.
대왕이여, 그렇다면 범천은 정말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5. 부처님은 계행을 갖춘 최고의 인격자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원만하게 갖춘 계행(具足戒)은 훌륭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착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부처님은 원만하게 갖춘 계를 받았습니까. 아니면 받지 못하였습니까.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보리수(菩提樹) 아래서 몸소 모든 것을 아는 지혜(一切知智)와 함께 원만하게 갖춘 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존이 불제자들에게 생활하는 동안 범해서는 안 될 규율을 마련해 준 것처럼, 딴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은 아닙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6. 이전을 초월하는 것과 진리를 사랑하는 정신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어머니가 죽어 우는 사람도 있고, 진리를 사랑해 울부짖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 두 사람 중 어느 쪽에 대하여 약이 있습니까.
대왕이여, 한쪽 사람에겐 세 가지 정념 즉, 탐욕(貪)과 노여움(嫌惡=瞋)과 미망(迷妄=癡)으로 타오르는 열뇌(熱惱)가 있으며, 또 한쪽 사람에게는 기
쁜 마음으로 진리를 들어 얻는, 티없는 청량(淸凉)이 있습니다. 그런데, 청량과 정적(靜寂)은 약이 되지만, 열뇌와 정념(情炎)은 약이 될 수 없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7. 해탈을 얻은 사람의 생존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욕정(貪慾)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과 무정을 비워 버린 사람 사이에는 어떤 구별이 있습니까.
한 쪽 사람은 탐착(耽着)에 의하여 압도되고, 한 쪽 사람은 압도되지 않습니다.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대왕이여, 한 쪽 사람은 욕구하고, 한 쪽 사람은 욕구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나는 이렇게 봅니다. 탐욕을 갖는 사람이나 갖지 않는 사람이나 다같이 굳은 음식이든 부드러운 음식이든 먹기 좋은 것을 바라고 맛있는 것을 바라지않습니까.
대왕이여, 탐욕을 떠나지 않는 사람은 맛에 대한 탐착을 가지고 음식과 맛을 즐기지만, 탐욕을 떠난 사람은 음식 맛을 감지할 뿐이오 탐착은 하지 않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8. 지혜는 어디에 깃들고 있는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지혜는 어디 깃들고 있습니까.
대왕이여, 아무 데도 깃들고 있지 않습니다.
존자여, 지혜는 없습니까.

대왕이여, 바람은 어디 살고 있습니까.
존자여, 아무 데도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바람은 없습니까.
잘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9. 윤회란 생사의 연속을 말한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가 말씀하신 윤회란 무엇을 뜻합니까.
대왕이여, 이 세상에 태어난 자는 이 세상에서 죽고 이 세상에서 죽은 자는 저 세상에서 태어나며, 저 세상에서 태어난 자는 저 세상에서 죽고, 저 세상에서 죽은 자는 다시 딴 곳에 태어납니다.
윤회가 뜻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어떤 사람이 잘 익은 망고를 먹고 씨를 땅에 심었다고 합시다. 그 씨로부터 망고 나무가 성장하여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다시 그 나무에 열린 망고를 따 먹고 씨를 땅에 심으면 다시 나무로 성장하여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망고나무의 계속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윤회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0. 생각은 기억에 의존한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오래 전 과거에 행한 일을 상기하는 것은 무엇에 의합니까.
기억(記憶)에 의합니다.
우리가 상기하는 것은 마음(연속적 주체인 心)에 의하는 것이지 기억에 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왕이여, 그대가 잊어버린 일을 상기할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렇다면, 잊어버린 때에는 마음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그때에는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왜 마음에 의하여 상기하는 것이지 기억에 의하여 상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까.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1. 기억은 어디서 일어나는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기억은 주관적 의식으로부터 자각적으로 일어납니까. 또는 외부로부터 시사(示唆)에 의하여 조성(助成)됩니까.
주관적 의식(自識)으로부터도 일어나고, 외부로부터도 조성됩니다.
그렇다면, 모든 기억은 근원적으로 주관적 의식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지 외부로부터 조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왕이여, 만일 외부로부터 조성되는 기억이 없다고 한다면 학습자(기술공)가 일이나 기술이나 학문에 관해서 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스승도 소용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조성되는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일이나 기술이나 학문에 관해서 해야 할 것이 있고 스승도 필요한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7장

 


1. 열여섯 가지 기억 형식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기억은 몇 가지 방법에 의하여 일어납니까.
대왕이여, 기억은 열여섯 가지 방법에 의하여 일어납니다. 첫째 기억은 자각적 회상에 의하여 일어나며, 둘째, 외부로부터 조성에 의하여 일어나며, 셋째, 어느
기회에 주어진 강한 인상에 의하여 일어나며, 넷째, 이익을 식별하는 데서 일어나며, 다섯째, 이익 아님을 식별하는 데서 일어나며, 여섯째, 서로 비슷한 것(相)으로부터 일어나며, 일곱째, 서로 다른 것(相)으로부터 일어나며, 여덟째, 담화한 지식으로부터 일어나며, 아홉째, 특징으로부터 일어나며, 열째, 상기로부터 일어나며, 열 한째, 기호로부터 일어나며, 열 두째, 셈하는 것으로부터 일어나며, 열 셋째, 암송(暗誦)으로부터 일어나며, 열 넷째, 수행(修行)으로부터 일어나며, 열 다섯째, 서적을 참고하는 데서 일어나며, 열여섯째, 저당물(抵當物)로부터 일어납니다.
어찌하여 기억은 자각적 회상으로부터 일어납니까.
아아난다는 부인 신도 쿠줏타라아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전생을 상기하는 사람들이 전생을 회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기억은 자각적 회상으로부터 일어납니다.
어찌하여 외부로부터의 조성에서 일어납니까.
본래 잊어버리기 쉬운 사람에게 딴 사람이 그에게 상기시키기 위하여 반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기억은 외부로부터의 조성에서 일어납니다.
어찌하여 기억은 어느 기회에 주어진 강한 인상으로부터 일어납니까.
이를테면 왕위에 오르는 대관식을 했을때나 성자(聖者)의 경지에 도달한 자로서의 과보(果報)를 얻었을 때 처럼, 기억은 어느 기회에 주어진 강한 인상에 의하여 일어납니다.
어찌하여 기억은 이익을 식별하는 데서 일어납니까.
이를테면 어떤 일에서 행복을 얻은 사람이 이러한 일에서 이러한 행복을 얻었다고 상기하는 것처럼, 기억은 이익을 식별하는 데서 일어납니다.
어찌하여 기억은 이익 아님을 식별하는 데서 일어납니까.
이를테면 어떤 일에서 고통을 받은 사람이 이러한 일에서 고통을 받았다고 상기하는 것처럼, 기억은 불이익 아님을 식별하는 데서 일어납니다.
어찌하여 기억은 서로 비슷한 것으로부터 일어납니까.
이를테면 비슷한 사람을 보고 어머니나 아버지나 형제나 자매를 상기하는 것과 같고, 또 낙타나 숫소나 노새를 보고 그와 비슷한 낙타나 숫소나 노새를 상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하여 기억은 서로 다른 것으로부터 일어납니까.
이를테면 어떤 것에 대하여 모양은 이러하고, 소리는 이러하고, 향기는 이러하고, 맛은 이러하고, 만지면 이러하다고 상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하여 기억은 담화한 지식으로 부터 일어납니까.
이를테면 본래 잊어버리기 쉬운 사람이 있을 때, 딴 사람이 상기하게 하여 상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하여 기억은 특징으로부터 일어납니까.
이를테면 소를, 찍힌 도장에 의하여 알아보고 특징에 의하여 알아보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하여 기억은 상기로부터 일어납니까.
이를테면 본래 건망증이 있는 사람에게 상기하라, 상기하라고 되풀이하여 상기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하여 기억은 기호(記號)로부터 일어납니까.
이를테면 서예(書藝)를 배운 사람이 이 글자 다음에는 저 글자를 써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하여 기억은 셈하는 것으로부터 일어납니까.
이를테면 산술을 배움으로서 계산하는 사람이 큰 수도 셈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하여 기억은 암송으로부터 일어납니까.
이를테면 암송하기를 배운 사람이 많은 것도 암송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하여 기억은 수행으로부터 일어납니까.
이를테면 한 생존, 두 생존이라고 하는 것처럼 전생의 생존을 그 모습과 특징에 의하여 상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하여 기억은 서적을 참고하는 데서 일어납니까.
이를테면 왕이 이전의 명령을 상기할 때 책을 가져오라고 함으로써 그 서적에 의하여 상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하여 기억은 저당물로부터 일어납니까.
이를테면 저당한 물건을 보고서 그것이 저당된 사정을 상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하여 기억은 경험한 일로부터 일어납니까.
이를테면 전에 보았으므로 모양을 상기하고, 전에 들었으므로 소리를 상기하고, 전에 냄새 맡았으므로 냄새를 상기하고, 전에 맛보았으므로 맛을 상기하고, 전에 만져 보았으므로 만진 것을 상기하고, 전에 식별했으므로 사상(法)을 상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2. 염불로써 구하는 것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백년 동안 악행을 했더라도 죽을 때 한 번만 부처님을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천상(天上)에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
고. 나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또 그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 번 살생(殺生)을 했더라도 지옥에 태어날 것이라'고. 나는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조그마한 돌이라도 배에 싣지 않고 물 위에 뜰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대왕이여, 백 개의 수레에 실을 만한 바위라도 배에 싣는다면 물 위에 뜰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물 위에 뜰 수 있습니다.
대왕이여, 선업(善業)은 마치 그 배와 같이 볼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3. 수행의 목적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들은 과거의 괴로움을 버리기 위하여 노력합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미래의 괴로움을 버리기 위하여 노력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현재의 괴로움을 버리기 위하여 노력합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만일 그대들이 과거의 괴로움이나 미래의 괴로움이나 또 현재의 괴로움을 버리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아니 무엇 때문에 그처럼 노력합니까.
하면 장로는 대답했다.
대왕이여, 우리들은 `이 괴로움은 사라지고 저 괴로움은 생기지 말아 주기를 바라는 소원 때문에 노력합니다.
존자여, 미래의 괴로움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들은 지금 있지도 않는 괴로움을 버리기 위하여 노력한다고 하니 지나치게 슬기롭습니다.
대왕이여, 그대는 전에 어떤 적국의 왕이 원수나 대항자로서 맞선 일이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그대는, 그때에야 비로소 참호를 파고, 보루(堡壘)를 쌓고, 성문을 달고 망탑을 세우고, 양곡을 실어 오게 하였습니다.
아닙니다. 그것들은 모두 미리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대는 그때에야 비로소 상술을 익히고, 마술을 연습하고, 차술을 훈련하고 궁술을 수련하게 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존자여, 그것들을 미리부터 익혀 두게 하였습니다.
어떤 목적 때문에 그러했습니까.
장차의 위험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대왕이여, 미래의 위험이 지금 존재합니까.
존재 안합니다.
대왕이여, 그대는 지금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하여 그런 일을 한다니 지나치게 슬기롭습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는 목이 말랐을때 비로소 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여 우물을 파고 저수지를 만듭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모두 미리부터 준비해 둡니다.
무엇 때문에 그럽니까.
장차 목마름에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목마름은 지금 존재합니까.
존재 안합니다.
대왕이여, 그대는 지금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목마름에 대비한다니 지나치게 슬기롭습니다.
다시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대는 배가 고팠을 때 비로소 무엇이 먹고 싶다고 하여 밭을 갈고 곡식을 심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일을 미리부터 준비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럽니까.
미래의 공복(空腹)을 막기 위하여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배고픔은 지금 존재합니까.
아닙니다.
대왕이여, 그대는 지금 존재하지도 않은 미래의 공복에 대비한다니 지나치게 슬기롭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4. 신통력을 갖는 자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범천계(梵天界)는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여기서 참으로 멉니다. 대궐만큼 큰 바위가 그곳에서부터 떨어진다면, 일주야에 4만 8천 요자나씩 떨어져 넉 달만에 비로소 땅위에 닿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힘센 사람이 구부러진 팔을 펴고 또는 펴진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신통력이 있어 마음이 자재(自在)롭게 된 수행승은 잠부디이바에서 살아지면 범천계에 나타날 것이라'고. 나는 그런 말을 믿지 않습니다.
이와같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빨리 몇 백 요자나까지도 다달을 수 있습니다.
장로는 대답했다.
그대의 출생지는 어딥니까.
알라산다라는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알라산다는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2백 요자나입니다.
그대는 전에 거기에서 어떤 일을 치렀는지 지금 그것을 상기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대왕이여, 그대는 2백 요자나를 아주 쉽게 갔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5. 사후(死後), 다시 태어나기 까지의 시간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여기(이 세상)서 죽어 범천계에 태어나는 사람과 여기서 죽어 카슈미일(迦濕彌羅 인도의 한 지방)에 태어나는 사람과 어느 쪽이 먼저 도착합니까.
둘 다 동시에 도착합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은 어느 도시에서 태어났습니까.
칼라시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거기서 태어났습니다.
칼라시는 여기서 얼마나 멉니까.
약 2백 요자나입니다.
카슈미일은 여기서 얼마나 멉니까.
12 요자나입니다.
대왕이여, 자아, 칼라시를 생각하시오.
생각했습니다.
자아, 카슈미일을 생각하시오.
생각했습니다.
어느쪽이 더 빨리 생각했습니까.
어느 쪽이나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여기서 죽어 범천계에 태어나는 것이나, 여기서 죽어 카슈미일에 태어나는 것이나 동시입니다. 빠르고 늦은 것이 없습니다. 대왕이여, 말씀해 보십시오. 두 마리 새가 공중을 날고 있었는데, 한 마리는 높은 나무에 앉고 또 한 마리는 낮은 나무에 앉았다고 합시다. 두 마리가 동시에 내려 앉았다면 어느 쪽 그림자가 먼저 땅에 비치겠습니까.
두 마리 그림자가 동시에 땅에 비치겠습니다.
대왕이여, 그대가 말한 경우도 꼭 이와 같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6.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가지 지혜(칠각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깨달음에 이르는 데 몇 가지 지혜가 있습니까.
대왕이여, 일곱 가지 있습니다.
몇 가지 지혜에 의하여 깨치게 됩니까.
한 가지 지혜 즉 `진리의 추구'라는 지혜에 의합니다.
그렇다면 왜 일곱 가지 있다고 하였습니까.
대왕이여, 말씀해 보십시오. 칼이 칼집에 들어 있고 손에 쥐어져 있지 않다고 합시다. 베고 싶던 것을 벨수 있습니까.
벨 수 없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진리의 추구라는 한 가지 지혜가 없으면, 그 밖의 여섯 가지 지혜에 의하여 깨달음에 이를 수(覺證) 없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7. 공덕을 증대시킴으로써 얻는 것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선행의 과보로서 얻는) 공덕(福)과 (악행의 과보로서 얻는) 죄과(非福)는 어느 쪽이 더 큽니까.
공덕 즉, 복이 더 큽니다.
어째서 그러합니까.
대왕이여, 죄과를 짓는 사람은 자기의 악행을 알아차리고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과는 증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덕(복)을 짓는 사람은 후회하는 일이 없으며 자기에게 기쁨이 생기고, 환희가 생기며, 몸이 편안해지고, 안락감을 가지며, 그 사람의 마음은 통일 평정되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여실하게 봅니다.
그러므로 공덕(복)은 증대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예를 들면 죄를 짓고 손발을 잘린 사람이라도 한 묶음의 연꽃을 부처님께 바친다면 91 겁(劫)동안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왕이여, 이것이 내가 `공덕은 죄과보다 더 크다'고 한 이유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8. 모르고 짓는 악행은 지과가 더 크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알면서 악행을 짓는 사람과 몰라서 악행을 짓는 사람은, 누가 더 화가 큽니까.
대왕이여, 몰라서 악행을 짓는 사람이 화가 더 큽니다.
존자여, 그렇다면 우리 왕자나 대신들이 모르고 잘못을 범한다면 그에게 갑절의 벌을 내려야 하겠습니다.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글 이글 불에 단 쇳덩이를, 한 사람은 모르고 붙잡았고, 한 사람은 알고 붙잡았다면 어느 쪽이 더 심하게 데겠습니까.
모르고 붙잡은 사람이 더 심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모르고 악행을 짓는 사람이 더 화가 큽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9. 신통력(神通力)과 마음의 자재력(自在力)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이 육신을 가진 채로 웃타라쿠루(북방의 이상경)나 범천계나 딴 대륙으로 갈 수 있는 자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어떻게 하여 갈 수 있습니까.
대왕이여, 그대는 전에 지상에서 반 길이나 한 길을 건너뛴 것을 기억합니까.
그렇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나는 8 라디니를 건너 뛸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여 그렇게 뛸 수 있었습니까.
나는 뛰겠다 마음먹고 결심한 순간 내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신통력이 있고 마음의 자재력을 가진 수행자(比丘)는 어떤 경우, 자기가 뛰어 오르겠다고 마음 먹는다면 마음의 힘에 의하여 공중을 날라갑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0. 장장 7백마일이 뼈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 비구들은 백 요자나나 되는 긴 뼈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나무도 백 요자나 되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하여 그렇게 긴 뼈가 있을 수 있습니까.
대왕이여, 말씀해 보십시오. 바다에 5백 요자나나 긴 고기가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그런 고기가 있다면 그 고기는 백 요자나 되는 뼈를 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잘 알겠습니다.나아가세나 존자여.     

 

 


11. 초인적인 생리현상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비구들은 들이마시는 숨과 내 쉬는 숨을 멈출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멈출(止滅)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여 멈출 수 있습니까.
대왕이여, 말씀해 보십시오. 그대는 어떤 사람이 코고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는 몸을 구부리면 그치지 않습니까.
그칩니다.
코 고는 소리는 몸과 행위(戒律)와 마음과 지혜의 수련이 없는 사람도 몸을 구부리므로 멈출 수 있습니다. 하물며, 모든 방면의 수련을 거쳐 제 4선(第四禪)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겠습니까.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2. 큰 바다에 관한 논의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바다)란 말(表現)이 있습니다. 어째서 그 물을 바다라고 부릅니까.
장로는 대답했다.
대왕이여, 물 만큼 많은 소금이 있고, 소금만큼 많은 물이 있기 때문에 바다라고 부릅니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어째서 대양은 한결같이 짠 맛을 가지고 있습니까.
대왕이여, 물이 영원히 있기 때문에 바다는 한결같이 짠 맛을 갖고 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3. 지혜는 가장 미세한 것도 끊을 수 있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극히 미세한 것도 쪼갤 수 있습니까.
존자여, 만물 중에서 가장 미세한 것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가장 미세하고 미묘한 것은 진리(法)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물(諸法 즉 모든 現象)이 다 미세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법은 어떤 것은 미세하고 어떤 것은 조대(粗大)합니다. 쪼갤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지혜(般若)로써 쪼갤 수 있으며, 지혜를 쪼갤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4. 영혼과 정신 작용의 구별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식별(識)과 지혜(慧)와 생명체의 정신(命, 즉 정신적 자아 또는 영혼)등 세 가지는 본질(義)과 말(語)이 각기 다른 것입니까, 아니면 본질은 같고 말만이 다릅니까.
대왕이여, 식별은 분별해 아는 지각을 특징으로 하고, 지혜는 이성으로 식별해 아는 것을 특징으로 하지만, 생명체의 정신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정신과 같은 것이 없다면, 무엇이 눈으로 형상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촉감을 느끼고, 마음(意)으로 사물(法)을 식별합니까.
만일 정신 같은 것이 있어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식별한다면, 눈의 문이 제거될때 정신(個我)은 머리를 밖으로 뻗고 더 큰 공간을 통하여 전보다 훨씬 더 똑똑하게 형상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귀나 코나 혀나 피부가 제거될 때에도 마찬가지로, 그 전보다 훨씬 더 똑똑하게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알고, 감촉을 느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육신 안에 정신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5. 뛰어난 심리현상의 분석

 

 

장로는 말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이러한 말을 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하나의 감관 대상에 대하여 작용하는 물질적이 아닌 것, 즉 마음이나 마음의 작용인 사상(諸法)의 구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접촉(觸)이오, 감수(受)요, 표상(態)이오, 의사(意思)요, 마음(心)이라고 하셨습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손 주걱으로 바다 물을 떠서 맛본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이것은 간지스 강 물이다, 이것은 줌나 강 물이다, 이것은 아키바티이 강 물이다, 이것은 사라부우 강 물이다, 이것은 마히이 강 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물이라고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존자여, 구별할 수 없습니다.
대왕이여, 그보다도 더 어려운 일을 세존은 치렀습니다. 즉 하나의 감관 대상에 대하여 작용하는 물질적이 아닌것. 즉 마음이나 마음의 작용인 사상(諸法)의 구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접촉이오, 감수요, 표상이오, 의사요,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6. 대론을 끝내며

 

 

장로는 물었다.
대왕이여, 지금 몇 시인지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초저녁(初更)이 지나고 밤중(中更)으로 접어들었을 뿐입니다. 등불용 횃불이 켜져 있습니다. 네 개의 기가 세워지고 선물이 그대를 위하여 창고로부터 운반되고 있습니다.
요나카 인들은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왕이여, 참으로 이 수도승은 현자입니다.
정말 그렇다. 장로는 현자이다. 그 분과 같은 스승이 있고, 나와 같은 제자가 있다면, 현자는 진리를 깨우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장로의 해답에 만족한 왕은 나아가세나 장로에게 10만금의 값어치가 있는 모직 옷을 선사하고 이렇게 말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오늘(사흘 째)로부터 8백일 동안 나는 그대에게 식사 공양을 드리겠습니다. 궁정에 있는 것 중에서 그대에게 알맞은 것은 무엇이든 바치겠습니다.
대왕이여, 그만 하십시오. 나는 생활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가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 자신을 옹호하고 또 나를 옹호해 주십시오, 즉 `나아가세나 존자는 밀린다왕에게 청정한 신앙을 불러 일으켰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고 하는 세평이 닥쳐올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선물을 받음으로 그대 자신을 옹호하십시오. 또 `밀린다 왕은 청정한 신앙을 얻었지만, 그러한 신앙을 얻었다는 표시를 하지 않았다'는 세평이 빗발 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선물을 받으심으로 나를 옹호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존자여, 사자왕은 금궤에 들어가더라도 얼굴을 밖으로 향합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속가(在家) 생활을 하더라도 출가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얼굴을 밖으로 향하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집을 버리고 출가하더라도 출가 생활을 오래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출가하려고 생각하자 나의 적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때, 나아가세아존자는 밀린다 왕과의 문답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승방으로 돌아갔다. 나아가세나 존자가 돌아간 뒤 얼마 안되어 밀린다 왕은 `나는 무엇을 물었던가, 존자는 무엇을 대답했던가'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밀린다 왕은 `나는 모든 것을 똑바로 질문했고 존자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대답했다'고 결론지었다.
승방에 돌아온 나아가세나 존자도 역시 `밀린다 왕은 무엇을 물었던가, 나는 무엇을 대답했던가'고 생각했다.
그리고 존자는 `밀린다 왕은 똑바로 질문했고, 나는 정확하게 대답했다'고 결론지었다.
나아가세나 존자는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아침 옷을 입고 바루(鉢)와 가사를 들고 밀린다 왕의 궁정으로 갔다.
자리에 앉자 밀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에게 인사 드리고 한 편으로 앉았다. 그리고 밀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 하지는 마십시오. 즉 `나는 나아가세나에게 질문했다는 즐거움 때문에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존자여, 나는 밤새도록 생각에 잠겼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무엇을 질문했는가, 존자는 무엇을 바르게 대답하셨는가'라고. 또 `나는 모든 것을 똑바로 질문하고 존자는 모든 것을 바르게 해답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장로는 또 이렇게 말했다.
대왕이여, 아무쪼록 이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즉 `존자는 밀린다 왕의 질문에 대답했다는 즐거움 때문에 뜬 눈으로 새웠다'고 대왕이여, 나는 밤새도록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즉 '밀린다 왕은 무슨 질문을 했던가 나는 무슨 해답을 주었던가'고. 또 `밀린다 왕은 모든 것을 똑바로 질문하고 나는 모든 것을 바르게 해답했다'고.이리하여 두 현자는 서로 올바르게 말한 일을 만족하게 생각했다.      

 

 

 


 
 Ⅲ. 논란

 

 

의론가(議論家)이고 궤변가인 뛰어난 지성의 총명한 밀린다 왕은 지혜를 계발하기 위하여 나아가세나 존자를 방문했다.
나아가세나의 비호 아래 있으며 질문을 함으로써 지혜를 계발하는 자가 되어 삼장(三藏)에 정통한 사람이 되었다.
한 밤, 고요한 곳에 홀로 가서 가르침(九分敎)을 연찬(硏鑽)하여 풀기 어렵고 논난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난문(難問)을 발견했다.
왕은 이렇게 생각했다.
`세존(法王)의 가르침은 차례로 설명된 것도 있고, 연관해서 설명된것도 있다. 그리고 진리 그것(本質)을 설명한 것도 있다.
세존께서 설하신 난문에서 그 뜻을 식별하지 못하면 장차 논쟁이 일어나리라.
이제 나는 나아가세나 논사(論師)를 믿고 난문을 풀 것이며, 그가 보여 주는 길을 따라 미래의 광명을 얻으리라.'
날이 밝고 아침 해가 돋았을 때, 밀린다 왕은 머리를 감고 합장하여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 완전히 깨달은 부처들(正等覺者)을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서 여덟 가지 서약(誓戒)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혼자 이렇게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7일 동안 나는 여덟 가지 덕목(德目)을 지키고 고행(苦行)을 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고행을 닦으므로 스승을 만족시키고 여러 가지 난문을 물을 것이다.'밀린다 왕은 평복을 벗고 여러 가지 장식을 푼 다음, 가사(袈裟)를 몸에 걸치고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침묵하는 성자(聖者)의 모습으로 8 가지 덕목을 지키기로 맹세했다. 즉 `이 7일 동안 나는 왕으로서 할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 나는 탐내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서도 안된다. 미망(迷妄)을 수반하는 마음을 일으켜서도 안된다. 모든 종과 사역인(使役人)과 시신(侍臣)들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할 것이다. 몸으로 짓는 행실(身業)과 말로 나타내는 행위(業)는 악한 탐심으로부터 막아야 한다. 여섯 가지 영역도 남김 없이 악으로부터 수호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음(意)의 작용은 자비의 실천으로 돌리지 않으면 안된다' 이들 8가지 덕목을 마음에 새기고 마음의 작용을 이 8가지 덕목에 집중시켜,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었다. 이리하여 7일이 지나 8일째 된 날, 날이 밝자 왕은 일찍이 아침밥을 마쳤다. 그리고 눈을 내리숙이고 말을 삼가하며 위의(威儀)를 바르게 갖추었다. 그리고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게 가다듬고 춤출 듯이 기뻐 만족하고 깨끗한 신심으로 나아가세나 장로에게로 갔다.
장로의 발에 머리 숙여 경례하고, 한편으로 비켜 서서 이렇게 말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나는 그대와 조용히 담론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한 사람이라도 그대 옆에 있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8가지 조건(八支)을 구비하고 출가한 자에게 알맞은 조용한 장소, 마을에서 떨어진 숲속(阿蘭若)에서 질문을 해야 하겠습니다. 거기서 나는 아무 것도 숨기고 감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깊은 담론에 들어갈 때, 나는 비장된 가르침(秘密義)을 들을 자격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은 비유로써 밝혀질 것입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이를테면 재보(財寶)를 숨기려고 할 때, 땅만큼 숨길 만한 곳이 다시 없는 것 처럼, 우리가 깊은 담론에 들어갈 때, 나는 비장된 가르침을 들을만한 자격이 있을 것입니다.
왕은 스승과 함께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숲 속으로 들어가 이렇게 말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담론하려고 하는 사람이 피해야 할 곳이 8곳이 있습니다. 그 8가지 장소에서 지자(智者)는 담론하지 않습니다. 만일 담론을 한다면, 문제가 산란되어 결론에 이르지 못합니다. 8개의 장소란, 즉 평탄하지 않는 곳, 위험한 곳, 바람이 지나치게 센 곳, 은폐된 곳, 신역(神域), 도로, 다리, 수영장(水泳場)들 입니다. 이 8개 장소는 피해야 합니다.
장로는 물었다.
그러한 곳에는 어떠한 결점이 있습니까.
나아가세나 존자여, 평탄하지 않은 곳에서 담론하면 문제가 흩어지고 흘러버려 결론에 이르지 못하며, 위험한 곳에서는 두려움에 쌓여 문제를 바르게 관찰할 수 없으며, 바람이 센 곳에서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리지 않으며, 은폐된 곳에서는 사람들이 엿들으며, 신역에서는 문제가 심각해지기 쉬우며, 도로에서는 문제가 공허하게 되며, 다리에서는 문제가 흔들리며, 수영장에서는 통속적인 이야기로 될 것입니다. 그래서 `평탄하지 않은 곳, 위험한 곳, 바람이 지나치게 센 곳, 은폐된 곳, 신역, 도로, 다리, 수영장 등 이들 8개 장소는 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또 다음 8종류의 사람은 담론할때 담론하는 문제를 손상시킵니다. 8가지 사람이란, 탐욕에 찬 생활을 하는 사람, 성내는 생활을 하는 사람, 미망(迷妄)의 생활을 하는 사람, 오만한 생활을 하는 사람, 탐욕에 찬 사람, 태만한 사람, 한 가지 일에만 집착하는 사람, 바보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 8종류 사람은 담론하는 문제를 손상시키는 자들입니다.
장로는 물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결점이 있습니까.
나아가세나 존자여, 탐욕에 찬 생활을 하는 사람은 탐욕스럽기 때문에 담론하는 문제를 손상시키며, 성내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화를 내기 때문에 담론하는 문제를 해치며, 미망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미망으로 인하여 담론하는 문제를 해칩니다. 오만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오만 때문에, 탐욕적인 사람은 탐욕 때문에, 태만한 사람은 게으름 때문에, 한가지 일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한가지에만 집념하기 때문에, 바보같은 사람은 어리석기 때문에 담론하는 문제를 손상시킵니다.
그래서, `탐욕에 찬 사람(貪者)과, 성내는 사람(瞋者)과, 미망에 찬 사람(癡者)과, 오만한 사람과, 탐욕적인 사람과, 게으른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들은 담론하는 문제를 손상시킨다.'고 말합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다음의 9종류 사람은 이야기한 비밀을 폭로하여 비밀을 지키지 못합니다. 9종류 사람이란, 탐욕에 찬 생활을 하는 사람, 성내는 생활을 하는 사람, 미망의 생활을 하는 사람, 소심한 사람, 재물을 중시하는 사람, 부녀자, 술을 좋아하는 술고래, 거세 당한 사람(黃門, 또는 宦官)들입니다.
장로는 물었다.
그러한 사람들은 어떠한 결점이 있습니까.
나아가세나 존자여, 탐욕에 찬 생활을 하는 사람은 탐욕스럽기 때문에, 성내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화를 내기 때문에, 미망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미망 때문에, 소심한 사람은 소심하기 때문에, 재물을 중시하는 사람은 재물(財物) 때문에, 부녀자는 지혜가 저열(低劣)하기 때문에, 술고래는 스라아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거세 당한 사람은 정욕이 과도하게 억제되기 때문에, 어린애는 마음이 잘 흔들리기 때문에, 각각 이야기한 비밀을 폭로하여 비밀을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탐욕적인 사람과 성내는 사람과 미망된 사람과 소심한 사람과 재물을 중시하는 사람과 부녀자와 술고래와 거세 당한 사람과 어린애 등, 이들은 세상에서 저열하고 경박하여 잘 흔들리는 자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에 게서는 이야기한 비밀이 잘 폭로되어 곧 속된 것이 되고 만다고, 말합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지혜(覺)는 8가지 방법에 의하여 발전되고 성숙합니다. 8가지는 이러합니다. 즉 지혜는 나이가 듬에 따라 발전 성숙하며,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발전 성숙하며, 질문을 함으로 발전 성숙하며, 조사(祖師)와 함께 살므로 발전 성숙하며, 바른주의력을 가짐으로(如理作意) 발전 성숙하며, 대담(對談)하므로 발전 성숙하며, 친애할 만한 사람과 사귐으로 발전 성숙하며, 알맞은 곳에 살므로 발전 성숙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늘어남과 명성이 자라남과 질문하는 것과 조사와 함께 사는 것과 바른 주의력을 갖는 것과 대담해지는 것과 친애할 만한 사람을 사귀는 것과 알맞은 곳에 사는 것 등 이들 8가지 방법(八支)은 지혜를 순수하게 하고 또 이런 것을 구비한 사람에게 지혜의 꽃은 핀다'고 말합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이곳은 담론에 관한 8가지 장애로부터 벗어난 곳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세상에서 담론에 있어 비밀을 잘 지킬 수 있는 최상의 친구입니다. 나는 살아 있는 동안 비밀을 지킬 것입니다. 또 나는 8가지 방법에 의하여 지혜를 발전시켰습니다.
나와 같은 제자를 만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바르게 실천하는 제자에 대하여 스승은 25 가지 스승의 덕을 바르게 실천해야 합니다. 25 가지 덕은, 스승은 제자에 대하여 반드시 계속해서 보살펴야하며, 제자가 배워야 할 것과 배워서는 안 될 것을 가려 주어야 하며, 제자가 열심인가 태만한가를 알아야 하며, 제자가 잠자는 시간을 알아야 하며, 제자가 건강을 잘 유지하는가를 알아야 하며, 제자가 먹어야 할 음식과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을 알아야 하며, 제자의 특성을 알아야 하며, 바루의 음식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며, 성적이 나아질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어야 하며, 다른 사람과의 교제 관계를 알아야 하며, 마을에서 누구와 교제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며, 승방에서 누구와 교제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며, 제자와 쓸데 없는 이야기를 말 것이며, 제자의 허물에 대하여 관대해야 하며, 철저하게 가르쳐야 하며, 빠뜨리지 않고 가르쳐야 하며, 숨기지 않고 가르쳐야 하며, 남겨 두지 않고 가르쳐야 하며, `나는 학예(學藝)에 있어 이런 제자를 낳았다.'고 그를 자식처럼 생각해야 하며, `어떻게 하면 이 제자는 퇴보하지 않을 것인가'고 그를 향상 시키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나는 학예(學藝)에 있어 그를 유능한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제자를 유능하게 만들 결심을 해야하며, 인자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어려운때 버려 두지 말 것이며, 제자에게 해주어야 할 일을 등한히 해서는 안되며, 제자가 실패했을 때는 똑바로 격려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덕목(德目)으로 그대는 나를 대해야 합니다.
존자여, 나에게 의문이 생겼습니다. 세존께서 설하신 난문(難問)이 있는데, 그것들에 대하여 장차 논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그대 같이 지혜 있는 분을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난문에 대하여 나에게 지혜의 광명을 주어 반대자의 논난을 극복하게 해 주십시오.
장로는 왕의 말을 승낙하고, 재가 신도가 지켜야 할 열 가지 덕목을 설했다.
대왕이여, 신도의 덕목에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즉 신도는 승단과 고락을 같이 해야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길잡이로 해야 하며, 될 수 있는 한 보시하는 것을 기쁘게 여겨야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함을 보면 회복시키려고 노력해야 하며, 바른 견해를 가져야 하며, 흥미를 끄는 일에 마음이 쏠리지 말며, 생계를 위하여 딴 스승을 쫓아 다니지 말아야 하며, 몸과 말로 짓는 행위(身業과 口業)을 삼가해야 하며, 화합(和合)을 기뻐하고 좋아해야 하며 시새우지 말고, 또 부처님(佛)과 부처님의 가르침(法)과 승단에 귀의(歸依)할 것 들입니다. 대왕이여, 이 열 가지 덕목은 모두 그대가 실천하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대가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함을 보고, 번창시키려 함은 그대에게 알맞고 정당하고 또 가능한 일입니다. 나는 그대가 말씀하는 것을 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무엇이든 질문해 보십시오.   


 

 

 

1장

 

 

1. 부처님에 대한 공양(供養)은 결과를 맺는다

 

그때, 밀린다 왕은 질문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자, 스승의 발 아래 머리 숙여 합장 예배하고, 이렇게 말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다른 학파(異學)의 지도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부처님이 공양을 받는다면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般涅槃) 즉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에 드셨을 리가 없다. 부처님은 아직도 세상에 묶여 있고, 세상 안에 있으며, 아직 세상 일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위하여 공양을 드리는 것은 헛된 일이고 결과도 없는 일이다. 또 만일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드셔서 세상을 떠나 있고 세상에 있지 않다면, 부처님은 공양을 받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완전한 열반에 든(사멸한) 사람은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는 사람에게 드리는 공양은 무용하고 결과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고.
이것은 양도논법(兩刀論法 즉 두 뿔 사이로 피하는 딜렘마)입니다. 이것은 깨치지 못한 사람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뛰어난 사람들에게 적합한 문제입니다. 부디 이 사견(私見)의 그물코를 풀어서 결론을 내려 주십시오. 이 난문을 그대에게 제출합니다. 미래의 불자(佛子)들에게 지혜의 눈을 열어 반대자의 논난을 굴복시키도록 해 주십시오.장로는 대답했다.
대왕이여,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사멸)에 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공양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보리수(菩提樹) 아래서 조차 공양받는 일을 버리셨는데, 윤회하지 않는 열반의 경계(無餘依涅槃界)에서 완전한 열반에 드신 부처님에게 있어서는 당연합니다. 대왕이여, 법장(法將) 샤아리풋타 장로는 이렇게 게송(偈頌)을 읊었습니다.

이 세상 무엇과도 비길 때 없는 부처님,
여러 신과 사람들에게 공양을 받으시지만,
이러한 공양도 예배도 바라지 않으시니,
이는 부처님의 본성(本性)이니라.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아들이 아버지를 칭송하거나 또는 아버지가 아들을 칭찬하거나 그것은 반대자를 굴복시키는 근거는 되지 않습니다. 칭찬은 다만 그들 서로의 신뢰를 나타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 여기서, 그대 자신의 입장을 세워 사견(私見)의 그물코를 풀어헤쳐 나의 질문에 충분한 해답을 주십시오.
장로는 대답했다.
대왕이여,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般涅槃)에 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공양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신과 사람들은 이미 공양을 받지 않는 부처님의 유골(駝都寶)과 부처님의 지혜(智慧)에 의지하여 바른 행동을 한다면,세 가지 경계(三成就) 중 한가지에 이릅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커다란 불덩어리가 다 타서 꺼졌다고 합시다. 그때 불덩어리는 마른풀이나 땔나무를 필요로 합니까.
존자여, 당장 타고 있을 때도 커다란 불덩어리는 풀이나 땔나무 같은 마른 연료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정신작용이 없는 불덩어리가 소멸했을 때, 다시 연료를 필요로 하겠습니까.대왕이여, 불덩어리가 소멸했을때, 세상의 불은 완전히 없어지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땔나무는 불의 연료가 되고 불을 일으키는 소재가 됩니다. 불을 바라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정력과 힘과 노력으로 나무(鑽木)을 마찰시켜 불을 일으켜서 불이 필요한 일을 합니다.
대왕이여, 그렇다면 `공양을 받지 않는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은 무용하고 결과가 없는 것이라'고 하는 다른 학파 사람들의 말은 틀렸습니다. 대왕이여, 커다란 불덩어리가 타는 것처럼, 부처님도 수만 세계에서 광명을 비칩니다. 커다란 불덩어리가 다 타고 꺼지는 것처럼 부처님도 수만 세계에서 광명을 비친 다음, 윤회하지 않는 열반의 경계에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미 소멸한 불덩어리가 마른 풀이나 땔나무와 같은 연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세상을 이롭게하는 부처님은 공양을 받는 일을 그만 두셨습니다. 대왕이여, 불덩어리가 꺼지고 연료가 다했을 때, 사람들은 정력과 힘과 노력으로 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일으켜 불이 필요한 일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 신과 사람들은 완전한 열반에 들어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는 부처님의 유골과 지혜에 의지하여 바른 행동을 할때, 세 가지 경계 중 하나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대왕이여,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사멸)에 드셔서 이미 어떠한 공양도 받으시지 않지만,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은 무용하지도 않고 결과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대왕이여, 아직도 그대의 의심이 그치지 않는다면, 그 밖의 또 다른 비유를 들으시오. 대왕이여, 큰 바람이 불다가 그쳤다고 합시다. 그쳐버린 바람이 또 다시 불려고 하겠습니까.
존자여, 이미 그쳐 버린 바람은 또 다시 불 생각이나 계획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람은 정신작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또 이미 그쳐 버린 바람에 대하여 `바람'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합당한 일입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다아라 나무 잎사귀(多羅葉)와 부채는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입니다. 더위에 눌리고 열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아라 나무잎사귀나 부채를 가지고 정력과 힘과 노력으로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가라앉히며 열을 완화시킵니다.
대왕이여, 그렇다면 `공양을 받지 않는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은 무용하고 효과 없는 일이라'고 한 다른학파 사람들은 잘못입니다. 대왕이여, 큰 바람이 부는 것처럼, 부처님은 수만 세계에서 자비에 넘치는 시원한 바람과 훈훈한 바람과 잔잔한 바람과 산들산들한 바람을 보냅니다. 그리고 큰 바람이 불다가 멎는 것처럼, 부처님은 자비에 넘치는 바람을 보낸 다음, 윤회하지 않는 열반의 경계에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미 그쳐버린 바람이 또 다시 불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부처님은 공양을 받는 것을 그만 두셨습니다. 대왕이여, 사람들이 더위에 눌리고 열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여러 신이나 사람들은 세 가지 번뇌불(貪=탐욕, 瞋=노여움, 癡=어리석음)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아라 나무 잎사귀나 부채가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인 것처럼, 부처님의 유골(遺骨)과 지혜는 세 가지 경계에 도달하는 수단입니다. 더위에 눌리고 열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다아라 나무 잎사귀나 부채를 가지고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가라앉히고 열을 완화시키는 것처럼,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에 드셔서 이미 공양을 받지 않지만, 여러 신과 사람들은 부처님의 유골과 지혜를 공양하고 받들므로서 선근(善根)을 심고 그 선근에 의하여 3가지 번뇌불을 소멸시켜 갑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에 드셔서 이미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지만, 부처님에게 드리는 공양은 무용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결과를 수반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반대자의 논난을 굴복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비유를 들으시오. 어떤 사람이 큰 북을 쳐서 소리를 낸다고 합시다. 북소리는 곧 사라질 것입니다. 그 소리는 또 다시 울려고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존자여, 그 북소리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 북소리는 또 다시 울려는 생각이나 계획을 하지 않습니다. 그 북소리는 한 번 울렸다가 사라지면 이미 완전히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존자여, 그러나, 큰 북은 소리를 울리기 위한 도구,수단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자기가 필요할 때 자신의 노력으로 큰 북을 쳐서 소리를 울립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계행(戒行=戒)과 마음의 통일(定)과 지혜(慧)와 속박으로부터의 자유(解脫)와 속박으로부터의 벗어남으로써 얻어지는 통찰력(解脫知見)으로써 충만되어 있는 부처님의 유골과 교법(法)과 교계(敎戒=律)를 스승으로 삼은 뒤, 윤회하지 않는 열반의 경계에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에 드셨을 때, 세 가지 경계에 도달할 가능성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만일 생존(有)을 위한 괴로움에 시달리는 사람(有情)들이 부처님의 유골과 교법과 계율(戒律)을 의지(緣)하여 세 가지 경계에 도달하려고 한다면, 누구나 거기에 도달 성취할 수 있습니다. 대왕이여, 이러하여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에 드시어,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지만, 그 부처님에게 드리는 공양은 무용하지 않으며 결과를 가져 옵니다. 대왕이여, 부처님은 미래의 가능성을 이렇게 보고 말씀하고 지시해 주셨습니다. 즉 `아아난다야, 너희들은 `스승의 말씀은 이미 끝났고 이제 스승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아난다야,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들에게 보여 주고 가르쳐 준 진리의 가르침(法)과 계율(律)을 내가 죽은 뒤 너희들은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고, 그러므로,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에 드시어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지만, `부처님을 향하여 드리는 공양은 무용하고 효과없는 일이라'하는 다른 학파 사람의 말은 잘못이오, 거짓이며 진실치 못한 것이오, 허망한 것이오, 틀린 것이오, 전도(顚倒)된 것이오, 괴로움을 초래하는 것이오, 괴로운 결과를 낳는 것이오, 악한 생활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그 밖의 비유를 또 하나 들으시오. 대왕이여, 이 대지는 `일체 종자야, 내 속에서 생장하라'고 바랍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그렇다면 어찌하여 종자는 그렇게 바라지도 않는 대지 속에서 성장하여 뿌리를 강하게 붙이고, 줄기와 가지를 뻗고, 꽃과 열매를 맺습니까.
존자여, 대지는 그것을 바라지 않지만, 종자가 성장하기 위한 발판이 되고, 반연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종자는 발판을 의지하고, 반연을 따라 자라서 뿌리를 강하게 붙이고, 줄기와 가지를 뻗으며, 꽃과 열매를 맺습니다.
대왕이여, 그렇다면 다른 학파가 만일 `공양 받지않는 부처님에 대하여 드리는 공양은 무용하고 효과없는 일이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자기들의 학설에 의하여 파멸되고 격파되고 배반됩니다. 대왕이여, 여래(如來)와 아라한(阿羅漢)과 무상정등각자 (無上正等覺者)는 마치 넓은 대지와 같습니다. 대지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처럼 여래는 아무것도 받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종자가 대지를 의지하여 성장하고 결실을 맺는 것처럼, 여래는 완전한 열반에 드시어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지만, 모든 신과 사람들은 여래의 성골보(聖骨寶)와 지혜보(智慧寶)에 의지하여 선근(善根)을 뿌리박고, 마음을 통일하는 줄기와, 진리의 가르침인 뼈대(髓)와, 계행인 가지를 뻗치며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꽃과 출가자의 깨침인 열매(즉 預流,一來,不還,羅漢의 四沙門果)를 맺습니다. 대왕이여, 그러기 때문에 여래는 완전한 열반에 드시어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지만, 여래에게 드리는 공양은 무용하지 않고 결과를 가져 옵니다.
대왕이여, 그와 꼭 같은 것에 대한 또 하나의 이유를 들으시오. 낙타와 물소와 노새와 양과 숫소와 인간은 자기들 뱃 속에 기생충(키미)이 생기기를 바랍니까.
아닙니다. 존자여.
그러면 어찌하여 기생충들은 동물이 바라지도 않는데 그들의 뱃 속에 생겨서 무수한 자손을 번식시킵니까.
존자여, 악업(惡業)의 힘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여래는 완전한 열반에 드시어 아무것도 받지 않지만 여래의 성품과 지혜의 힘에 의하여 여래에게 드리는 공양은 무용하지 않고 결과를 가져 옵니다. 대왕이여, 그와 꼭 같은 또 하나의 이유를 들겠습니다.
대왕이여, 사람들은 자기들 몸에 98 가지 질병이 생기기를 바랍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그런 질병이 생깁니까.
전생(前生)에 행한 악행에 의하여 그러한 질병이 생깁니다.
대왕이여, 만일 사람이 전생에 행한 악행의 결과를 이 세상에서 받게(感受) 되는 것이라면, 전생이나 현세에서 행해진 악행은 결과가 없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가져 옵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완전한 열반에 드시어 아무것도 받지 않지만, 여래를 향하여 드리는 공양은 가치 있는 결과를 가져 옵니다.
그에 대한 또 하나의 비유를 들겠습니다. 대왕이여, 그대는 전에 난다카라고 하는 마귀(夜叉)가 샤아리풋타 장로를 해치려다 땅 속으로 빠져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까.
존자여, 들었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샤아리풋타 장로는 악마가 그렇게 되기를 바랐습니까.
존자여, 모든 천계(天界)와 인간계가 파멸되고 해와 달이 떨어지고 산중의 왕인 수메루 산왕(須彌山王)이다 분쇄되는 한이 있더라도 샤아리풋타 장로는 남이 고통을 받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샤아리풋타 장로는 성내는 원인이 배제되어 뿌리채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존자여, 그러기 때문에 샤아리풋타 장로는 자기의 생명을 앗아 가려는 자에 대해서까지도 화를 낼리가 없습니다.
대왕이여, 만일 샤아리풋타 장로는 난다카가 땅 속으로 빠져 버리기를 바라지 않았다면, 어찌하여 난다카는 땅속으로 빠져 들어 갔습니까.
난다카는 자신의 악행의 힘에 의하여 그렇게 되었습니다.
대왕이여, 만일 자신의 악행의 힘에 의하여 난다카가 땅속으로 빠져 들어 갔다면, 벌을 바라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저지른 행위(죄악)도 효력이 있고 결과를 낳습니다. 대왕이여, 그러므로 여래는 완전한 열반에 드시어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분에게 드리는 공양은 가치있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이 세상에서 땅 속으로 떨어진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그 점에 관하여 들은 적이 있습니까.
존자여,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해 보십시오.
친챠야라는 바라문 여인과 샤카족의 숩파부다와 데바닷타 장로와 마귀 난다카와 난다라는 바라문 청년입니다. 이들 다섯 사람은 땅속으로 떨어졌습니다.
대왕이여, 그들은 누구에게 죄를 지었습니까.
세존과 그분 제자들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면 세존이나 그분의 제자들은 그들이 땅속으로 떨어지기를 바랐습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그러므로, 여래는 완전한 열반에 드시어 어떠한 공양도 바라지 않으신데도, 그분에게 드리는 공양은 가치있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는 심오한 질문을 잘 해결해 주시고 해명해 주셨습니다. 오묘한 뜻(秘義)을 명백하게 해 주고, 얽어진 마디를 풀어 주고, 답답한 밀림(密林)을 개선해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반대론자의 주장은 논파되고, 그릇된 의견(謬見)은 잘못임이 입증되었으며, 여러 학파들도 가장 뛰어난 그대를 만났을 때 빛을 잃었습니다.

 

 

 

2. 부처님은 전지자(全知者)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부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부처님은 무엇이든지 알고 계셨습니다. 부처님이 모든 것을 아심은 숙고(熟考=傾注)에 의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숙고하시면,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알았습니다.
존자여, 부처님이 모든 것을 아시는 것이 추구(尋求)하므로 도달 되는 것이라면, 그는 모든 것을 아셨을리 없습니다.
대왕이여, 여기 쌀 7암마나(약 두 말)반 씩을 실은 수레 100대가 있다고 합시다. 사려없는 사람이 그것을 잠깐 훑어보고, 쌀알이 모두 얼마나 될런지 셈해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마음(心)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미망(癡)과 번뇌와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며 몸과 계행과 마음과 지혜의 수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사고력이 약하고 행동이 느립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수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대(竹)를 끌어 내는 것과 같습니다. 즉, 대가 번성하여 넓게 퍼져 있고 축 늘어져 있으며 얼크러져 있고 가지들이 서로 맞물고 있는 것을 끌어 낼 때 그 동작은 둔하고 더딥니다. 왜냐하면 가지들이 복잡하게 얼크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아까 말한 사람들의 마음은 활동이 느리고 둔합니다. 왜냐하면, 여러가지 번뇌로써 일그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첫째 종류의 마음(第一心)입니다.
다음에 이것과 구별되는 둘째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악한 생존의 길이 막히고, 정견(正見)을 얻어 스승의 가르침을 식별하여 성자류의 경지에 든 사람들은 세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에 있는 한, 마음의 활동은 빠르고 동작은 쉽습니다. 그러나, 보다 높은 영역에 관해서는 마음의 활동이 더디고 행동이 어려워 집니다. 왜냐하면 세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三處)에 있어서는 마음이 청정하지만, 그 이상의 영역에서는 여러 가지 번뇌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세마디까지 매끄럽고(淸淨), 그 윗 부분은 가지들이 휘감겨 맞물고 있는 큰 대를 끌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대를 끌어당길 때, 매끄러운 세 마디까지는 쉽게 움직이지만, 그 윗쪽은 꼼짝도 않습니다. 이것이 둘째 종류의 음(第二心)입니다.
다음에 이것들과 구별되는 셋째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탐욕과 노여움과 미망이 줄어들어 단한 번만 망집(妄執)하는 생존으로 돌아오는 경지에 이른(一來果) 사람들은, 다섯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五處)에 있어서는 마음의 활용이 빠르고 동작이 쉽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영역에 있어서는 마음의 활용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왜냐하면, 다섯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에서는 마음이 청정하지만, 그 이상의 영역에서는 여러 가지 번뇌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 마디까지는 매끄럽고 그 윗 쪽은 가지들이 휘감겨 얽히어 맞물고 있는 큰 대를 끌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대를 끌어 당길 때, 매끄러운 다섯마디까지는 손쉽게 움직이지만, 그 윗쪽에는 꼼짝도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탐욕과 노여움과 미망이 줄어 들어 단 한 번 망집하는 생존으로 돌아오는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다섯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에 있어서 마음의 활동이 빠르고 동작이 쉽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높은 영역에서는 마음의 활동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이것이 셋째 종류의 마음(第三心)입니다.
다음에 이것들과 구별되는 넷째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감각적 욕망이 생존을 일으키는 하위의 다섯 가지 속박(五下分結)을 벗어 나서 두 번 다시 생존으로 돌아오지 않는 경지에 이른(不還果) 사람들은 열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十處)에 있어서는 마음의 활동은 빠르고 동작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영역에 있어서는 마음의 활동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왜냐하면, 열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에서 마음이 청정하지만, 그 이상의 높은 영역에서는 여러 가지 번뇌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열 마디까지는 매끄럽고 그 윗 부분은 가지들이 휘감겨, 맞물고 있는 큰 대를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대를 끌어 당길 때, 매끄러운 열 마디까지는 손쉽게 움직이지만, 그 윗부분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넷째 종류의 마음(第四心)입니다.
다음에 이것들과 구별되는 다섯째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더러움이(四대악)이 그치고, 마음의 때를 씻고, 번뇌를 내쫓고, 청정한 수행을 완수하고, 해야 할 선행을 마치고, 속박의 짐을 버리고, 참뜻(眞實義)을 성취하고, 윤회하는 생존에 집착하는 속박을 끊고, 아무 것에도 걸리지 않는 지혜에 이르러 부처님의 제자로써 청정한 수행도를 성취한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른 사람입니다. 이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치는 경계(聲聞境)에 있어서는 마음의 활동은 빠르고 동작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높은, 스스로 깨친 사람의 경계(緣覺境)에 있어서 마음의 활동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왜냐하면 성문(聲聞)의 경계에서는 마음이 청정하지만, 스스로 깨친 연각(緣覺)의 경계에서는 마음이 청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줄기에 달린 모든 가지가 제거된 큰 대를 끌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대를 끌어당길 때, 모든 마디가 매끄럽고, 대 줄기에 얽히고 걸려있는 것이 없으므로 빠르고 쉽게 끌어당길 수 있는 것처럼, 아라한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성문의 경계에서는 마음의 활동이 빠르고 동작이 쉽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높은 스스로 깨친 사람의 경계에서는 마음의 활동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이것이 다섯째 종류의 마음(第五心)입니다.
다음에 이것들과 구별되는 여섯째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스스로 깨친 사람(緣覺)들은 독존(獨存)하고, 스승도 바라지 않고, 외뿔소처럼 홀로 행하고,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 청정 무구(淸淨無垢)한 마음을 가집니다. 이같은 사람들은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는 마음의 활동은 빠르고 동작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높은, 모든 것을 깨쳐 안 사람의 경계에서는 마음의 활동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 마음이 청정하지만, 모든 것을 깨쳐 안 사람의 경계는 보다 광대하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방에 있는 조그마한 시내는 밤낮 마음대로 두려움이 없이 건너는데, 깊고 넓고 깊이도 헤아릴 수 없으며, 끝이 없는 대양(大洋)을 보면 놀라고 주저하여 감히 건너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방에는 친숙해 있지만, 대양은 너무나 광대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깨친 사람들 즉, 독존하고 스승도 없고 외뿔소처럼 홀로 행하고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 청정 무구한 마음을 갖는 사람들은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 마음의 활동이 빠르고 동작이 쉽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경계에서 마음의 활동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왜냐하면 자기 경계에 있어서는 마음이 청정하지만, 모든 것을 깨쳐 안 사람의 경계는 광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여섯째 종류의 마음(第六心)입니다.

다음 이것과 구별되어야 할 일곱째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전지자요 열 가지 지혜의 활동을 지닌 자(十力者)는 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四無所畏)을 갖고, 열여덟 가지 뛰어난 부처님의 특성을 갖춘 승자(勝者)요, 무애의 지자(智者)입니다.
완전히 바르게 깨친 사람(佛陀)은 어느 곳에서나 마음의 활동은 빠르고 행동은 쉽습니다. 대왕이여, 잘 닦아 녹이 슬지 않고, 마디가 없으며 날카로운 촉이 붙어 있고, 휘거나 구부러짐이 없이 똑바르게 생긴 화살이 있다고 합시다. 그 화살을 힘센 궁수가 부드러운 마지나 면직이나 좋은 모직물에 쏘아댄다면 화살의 활동은 둔하겠습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과녁 바탕(布地)은 아주 훌륭하고, 화살은 고도로 조절되어 있고, 궁수는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내가 말한 부처님과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佛陀)은 어느 곳에서나 마음의 활동이 빠르고 행동이 쉽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면에 있어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일곱째 종류의 마음(第七心)입니다.
대왕이여, 이들 일곱 가지 마음 가운데서 모든 것을 깨쳐 안 부처님의 마음은 활동력에 있어 나머지 여섯 가지 마음의 활동에서와 같은 계량(計量)을 초월하여, 마음의 청정함과 활동의 민활함을 우리들이 추측하기 어려운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왕이여, 부처님이 행하는 마음의 활동력은 청정하고 민활하기 때문에, 그는 두 가지 신통 변화(神變)를 나타냅니다. 우리는 두 가지 신통 변화에서 `모든 부처님의 마음의 활동은 그처럼 민활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기서는 그 이상 아무런 이유를 말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신통 변화는 전지 전능한 부처님의 마음에 의거하는 것이므로, 셈하거나 계산하거나 쪼개거나 분간하거나 할 수 없습니다. 대왕이여, 모든 것을 아시는 부처님의 지혜는 숙고에 의합니다. 심사 숙고한 뒤,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압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사람은 이 쪽 손에 있는 것을 저 쪽 손에 옮겨 놓기도 하고, 입을 열어 말을 하기도 하고, 입에 들어간 음식을 뱉기도 하고, 눈을 감았다 떳다 하기도 하고, 팔을 폈다 굽혔다 하기도 하는데, 그런 것은 부처님의 지혜보다도 느립니다. 대왕이여, 모든 것을 아시는 부처님의 지혜는 보다 더 빠르고, 활동이 보다 더 용이하며, 심사숙고는 보다 더 빠르고 용이합니다. 심사숙고한 뒤 알고자하는 것을 아신다고 할지라도, 부처님을 심사숙고하지 않고 계신다는 이유로 부처님을 전지자(全知者)가 아니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숙고(傾注)는 추구(尋求)에 의하여 행해집니다. 이제 여기서 몇 가지 비유를 들어 이 사실을 확신시켜 주십시오.
대왕이여, 큰 재산가요, 많은 금,은부치며 재보와 곡식을 가진 사람이 사아리 미(米)와 비이히 미와 보리와 정미(精米)와 밀과 콩과 완두콩과 그 밖의 모든 식용의 곡식과 버터기름과 버터와 우유와 굳기름(凝乳)과 벌꿀과 설탕과 흑설탕 등, 이 모든 것을 단지와 항아리와 남비와 갖가지 그릇에 담아서 창고에 저장해 두었다고 합시다. 그 집에서 환대받을 만찬 손님이 환대를 기대하고 찾아 왔는데, 요리된 음식은 이미 먹어 없어졌으므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항아리에서 정미(精米)를 꺼내 음식을 만든다고 합시다. 식사때도 아닌 때, 먹을 음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부잣집 사람을 빈곤하다고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여, 왕중의 왕 전륜왕(轉輪王)의 궁전에서도, 식사 때 외에는 요리된 음식이 갖춰 있지 않습니다. 하물며 일반 사람들 가정에서이겠습니까.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부처님께서는 숙고(傾注)를 결하고 계실 때에도 모든 것을 아시는 지혜(一切知智)를 가지고 계시며, 숙고하신 뒤 무엇이든 마음대로 파악하십니다. 대왕이여, 한 그루의 나무에 과일이 열려 그 과일 무게 때문에 가지들이 휘어질 정도로 늘어져 있으나, 단 한개의 과일도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고 합시다. 떨어진 과일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라고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존자여, 과일은 저절로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과일이 떨어졌을 때 사람들은 마음대로 그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대왕이여, 숙고는 지혜의 필요한 조건입니다. 부처님은 숙고하심으로 무엇이든 마음대로 아십니다.
존자여,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숙고하실 때, 비로소 모든 것을 마음대로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마치 전륜왕이 그의 윤보(輪寶)가 나와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마음속에 일으키자 마자 윤보가 나타나는 것처럼, 부처님의 지혜는 숙고를 하시자마자 따라 일어납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것은 그대가 `부처님의 전지 전능하심'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는 확고한 이유입니다.
나는 `부처님은 전지자이시다'고 확신합니다.

 

 

 

3. 데바닷타(提婆達多)는 어찌하여 출가하게 되었는가

 

 

나아가세나 존자여, 데바닷타를 출가시킨 이는 누구였습니까.
대왕이여, 6명의 귀족(크샤트리아) 청년 즉, 밧디야, 아누룻다, 아아난다, 바구, 킴빌라, 데바닷타와 일곱번째 이발사인 우파알리등, 이들은 모두 세존께서 깨침을 얻었(覺證)을 때, 마음 속에 환희를 느끼고 샤카 족 가문을 떠나 세존을 따라 출가했습니다.
그러나, 출가한 뒤 승단(和合僧)에 분열을 일으킨 것은 데바닷타가 아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데바닷타는 출가한 뒤 승단에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속인도 비구니도 사미(沙彌)도 승단에 분열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을 하는 자는 일정한 계율 아래서 공동으로 생활하고, 일정하게 제한된 지역, 즉 결계(結界, 즉 攝僧界와 攝衣界와 攝食界)에서 생활하는 정규 비구입니다.
승단을 분열시키는 자는 어떤 업보(業報)를 받습니까.
1겁(劫, 칼파) 동안 줄곧 계속되는 업보(業報)를 받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러면 부처님은 데바닷타가 출가 한 뒤, 승단에 분열을 일으키고, 그 행위의 과보로 1겁 동안 지옥고(地獄苦)를 받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만일 부처님이 데바닷타가 출가한 뒤 승단에 분열을 일으킬 것이오, 그 과보로 1겁 동안 지옥고를 받을 것을 알고 계셨다면, `부처님은 모든 생명체(有情)를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고, 이롭게 하고, 해로운 것을 없이해 유익하게 하여 준다.'고 한 말씀은 잘못입니다.
또, 만일 그러하리라는 것을 모르고 데바닷타를 출가시켰다면, 부처님은 전지자였을리가 없습니다.
이 양도논법(兩刀論法)의 난문이 또 하나 그대에게 제출되었습니다. 이 난문을 풀어 반대자의 논난을 타파해 주십시오. 여기에서 그대의 역량을 보여 주십시요.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자비롭고 전지 전능하신 분입니다. 세존께서는 데바닷타가 어떻게 업 위에 또 업을 쌓아왔다는 그의 생애(生涯)를 아셨습니다. 또 자비와 전능하신 지혜로 그가 1겁 동안 지옥에서 지옥으로 지옥고를 치르리라는 것도 아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출가한다면, 그의 끝없는 업(業)은 종막을 고할 것이며, 전생에 지은 업에 의지하는 고통도 종막을 고할 것도 아셨습니다. 그러나, 출가하지 않는다면, 그 어리석은 자는 1겁 동안 업고를 받을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자비심으로 그의 출가를 허용했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렇다면 부처님은 사람에게 먼저 상처를 입힌 다음, 기름약을 발라 주고, 벼랑에서 떨어뜨린 다음 도움의 손 길을 펴 주시며, 죽인 다음 소생하기를 구합니다. 즉 부처님은 먼저 고통을 준 다음 그 결과로 오는 즐거움을 더해 주십니다.
대왕이여, 부처님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벼랑에서 떨어뜨리고, 사람의 목숨을 끊는 까닭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대왕이여, 마치 부모가 자식의 이익될 날을 생각하여 그들을 때리고 넘어뜨리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여, 만일 데바닷타가 출가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속인으로서 많은 악업을 짓고, 십만 겁(劫) 동안 지옥에서 지옥으로 전전하며 더 많은 지옥고를 받게 됩니다. 세존은 그의 운명을 알고 자비를 내려 출가시켰습니다. 또 출가한다면 데바닷타는 괴로움에 종막을 고할 날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지비를 내려 무거운 괴로움을 가볍게 하는 방법을 택하신 것입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재산,명성,명예,가문 좋고, 권세 있는 사람이, 친구나 친척이 무거운 형벌을 받았을 때, 왕이 자기를 대단히 신임하는 덕으로 무거운 형벌을 가볍게 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은 데바닷타가 십만 겁 동안 지옥고를 받을 것을 아시고, 그를 출가시켜 계행(戒)과 마음의 통일(定)과 지혜(慧)와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힘(解脫力)을 얻게 하여, 십만 겁 동안 치뤄야 할 무거운 고통을 가볍게 해 주셨습니다.
대왕이여, 또, 이를테면 독 있는 화살에 맞은 상처를 잘 치료하는 의사가, 화살을 맞고 중태에 빠진 환자에게 유효한 약을 써서 거뜬히 낫게 해 주는 것처럼, 세존께서는 데바닷타가 막중한 고통을 받을 것을 아시고, 그 고통을 가볍게 해주는 방법을 아시기 때문에, 그를 출가시켜 진리의(法) 약을 가지고 그의 고통을 가볍게 해 주셨습니다. 대왕이여, 데바닷타에게 막중하게 받아야 할 고통을 가볍게 해 주심으로써, 세존은 무슨 잘못(非福)을 범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여, 부처님은 추호도 잘못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대왕은 이것이 세존께서 데바닷타를 출가시킨 이유라고 충분히 믿으시오.
대왕이여, 세존께서 데바닷타를 출가시킨데 대한 또 하나의 이유를 들으시오. 사람이 어떤 강도를 붙잡아와서, `대왕이여, 이 사람은 강도입니다. 적절한 처벌을 내려 주소서'라고 했다 합시다. 그래서 왕은 그들에게 `여봐라, 이 강도를 교외로 끌어 내다 목을 베어라'고 분부했습니다. 그러면 부하들은 왕의 분부대로 그 사람을 교외 참수대로 끌고 갈 것입니다. 그런데, 왕의 총애를 받고 있으며, 명성과 재산이 있고, 말에 무게가 있고, 하고자 하는 일을 강력히 실행하는 한 대신이 그 광경을 보고 불쌍한 생각이 일어나, 끌고 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들, 잠깐 자네들은 그 사람의 목을 잘라서 무슨 좋은 일이 있지. 그 사람의 손이나 발이나 자르고 목숨은 살려주게.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대왕께 말씀 올릴 터이니.'라고. 그래서 그들은 유력한 대신의 말대로 강도의 손이나 발만을 자르고 목숨은 살려 주었다고 합시다.
자아, 강도에 대하여 그렇게 해준 유력한 대신은, 강도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습니까.
존자여, 대신은 강도의 생명을 건져 주었습니다. 생명을 건져 주었는데 해서는 안 될 일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유력한 대신은 강도가 손이나 발을 잘리는 고통을 받은(感受) 데 대하여 무엇인가 잘못(非福)을 범하지 않았습니까.
존자여, 강도는 자기 자신이 잘못한 결과로 그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의 생명을 건져 준 대신은 강도에게 아무런 해도 주지 않았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세존은 자기 가르침에 따라 출가한다면, 데바닷타의 고통은 경감(輕減)되리라 하여 사랑(慈悲)으로 그를 출가시키셨습니다.
대왕이여, 그리하여 데바닷타의 고통은 경감되었습니다. 그리고, 데바닷타는 임종할 때,
최상자 중의 최상자(最上者)이시고,

신 중의 신이시고,
신과 인간의 도사(導師)이시며,
세계를 두루 보시는 눈을 가진 분이시고,
백 개의 선복의 특징을 지니신 분인, 부처님께,
생명이 존속하는 한
신명(全身全靈)을 다하여 귀의(歸依)합니다.

하고 자기 생명이 존속하는 한 부처님께 귀의했습니다.
대왕이여, 1겁을 6등분 한다면 데바닷타가 승단을 분열시킨 것은 첫 1분의 시기에 해당합니다. 나머지 5등분 시기 동안 지옥에서 지옥고를 치르고, 그는 앗티사라라고 하는 스스로 깨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세존은 데바닷타에게 커다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부처님은 데바닷타를 위해서 잘못하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대왕이여, 그러나, 데바닷타는 승단을 분열시킨 뒤, 지옥에서 지옥고를 받았습니다. 세존께서는 그가 고통을 받은 것에 대하여 무슨 잘못(非福)이라도 범하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존자여, 데바닷타는 자기가 지은 죄과로 1겁 동안 지옥에서 지옥고를 치뤘습니다. 그의 고통을 경감시켜 준 세존은 조금도 그를 해롭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대왕은 이것을 세존께서 데바닷타를 출가시킨 이유라고 충분히 믿으시오.
대왕이여, 데바닷타를 출가시킨 이유를 또 하나 들으시오. 이를테면, 독시(毒矢)의 상처를 잘 치료하는 의사가 있다고 합시다. 그 의사는 화살이 오목한 곳에 꽂혀 고름과 피 범벅이된 상처(풍과 담즙(膽汁)과 가래(痰)가 화합된 것, 계절의 변화,불규칙한 생활,심한 상처를 입고 썩은 시체와 같은 악취로 찬 상처)를 치료할 때, 그는 상구(傷口)에 강력하고 극렬한 약을 발라 부풀어 오르게 한 다음, 말랑말랑해진 상구를 칼로 째고, 부식침(腐蝕針)으로 태우고, 그 다음 알카리 액을 뿌려 약을 발라 상처를 완치합니다. 대왕이여, 말해 보시오. 그 의사가 극약을 바르고, 칼로 째고, 부식침으로 태우고, 알카리 액을 뿌리고 한 것이 잔인하기 때문입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환자를 생각하는 친절한 마음으로 상처를 치료해 주려고 그러한 처치를 한 것입니다.
그러한 처치를 하므로 환자가 고통을 받는다면, 그 의사는 그 점에서 무슨 잘못이라도 있겠습니까.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그는 상처를 치료해 주고 환자를 행복하게 해 주려는 친절한 생각에서 그러한 처치를 했습니다. 어찌 거기에 잘못이 있겠습니까. 그는 오히려 천국에 태어날 축복을 받을 만합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세존께서는 데바닷타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출가시키셨습니다.
대왕이여, 데바닷타를 출가시킨 데 대한 이유를 하나 더 들으시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가시에 찔렸다고 합시다. 다른 사람이 친절한 마음으로 그를 치료해 주려고, 날카로운 침이나 칼로 찔린 곳을 째고 피를 흘리게 해서 그 가시를 빼 냈다면, 그는 잔인한 생각으로 그러했겠습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친절한 마음으로 남을 이롭게 해 주기 위하여 가시를 빼내 주었습니다. 만일, 가시를 빼내 주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은 죽었거나 죽을 만한 고통을 받았을 것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여래의 자비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데바닷타를 출가시켰습니다. 만일 그가 데바닷타를 출가시키지 않았더라면, 데바닷타는 십만 겁(劫) 동안 세세 생생(世世生生) 지옥에서 고통을 받았을 것입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여래는 번뇌의 흐름에 휩쓸려 가는 데바닷타를 그 흐름에 거슬러 올라가게 하시고, 밀림(密林) 속에서 길을 잃은 그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고, 벼랑에서 떨어진 그에게 발 디딜 곳을 마련해 주시고, 파멸의 구렁에 떨어진 그에게 평화를 안겨 주셨습니다. 그러나,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 같이 지혜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어떤 출가자도 거기 대한 이유와 의미를 교시해 줄 수 없습니다. 

 

 

 

4. 벳산타라 왕의 보시(布施)

 

 

나아가세나 존자여, 세존께서는 `비구들아, 대지 진동(振動)을 일으키는 데는 8가지 직접 원인과 간접 원인(八因과 八緣)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총괄적이고 보충할 여지가 없는 말씀이오, 완전무결한 말씀입니다. 대지를 진동시키는 아홉 번째 원인(이유)이 있을 수 있습니까. 만일, 아홉 번째 원인이 있다면 세존께서는 그 원인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밖의 원인이 없으므로 부처님은 그것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벳산타라 왕이 보시할 때 대지가 일곱 번 진동했다고 한다면, 우리는 대지 진동에 대한 아홉 번째 원인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만일 대지 진동이 일어나는데 8가지 직접 원인과 간접 원인만이 있다고 한다면, 벳산타라 왕이 보시를 행할 때 대지가 일곱 번 진동했다고 한 말은 잘못입니다. 또 만일 벳산타라 왕이 보시를 행할 때 대지가 일곱 번 진동했다면, 대지 진동이 일어나는 데 8가지 직접 원인과 간접 원인만을 말한 것은 잘못입니다.
이 양도론법(兩刀論法)의 난문도 미묘하여 해명하기 어렵고 현묘하여 뜻이 깊습니다. 이 난문이 이제 그대에게 제출되었습니다. 그대같이 지혜있는 분(具眼者)이 아니고서는 어떤 사람도 이 난문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대지진동에 8가지 직접 원인과 간접 원인이 있다고 하셨으며, 또 벳산타라 왕이 보시를 행할 때, 대지는 일곱 번 진동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어나야 할 때 정상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고, 우발적인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8가지 원인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8가지 직접원인 중의 하나로 계산하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세상에서 아는 비는 3종, 즉 장마철의 비와 겨울철의 비와 여름철의 비가 있습니다. 이 3종의 비를 제외한 딴 비는, 내리더라도 일반적인 비속에 넣지 않고 `철을 벗어난 비'라고 합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벳산타라 왕이 보시를 행할 때, 대지가 일곱 번 진동한 것은 정상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고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8가지 원인속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8가지 직접 원인 중의 하나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또 이를테면 히말라야 산으로부터 5백개의 강이 흘러 내리는데, 그 중 10개 만이 강 수에 계산되는 것과 같습니다. 즉 간지스,줌나,아지라바티이,사라부우,마히이,인더스,베트라바티이,비탐사아,사라스바티이,잔다바아가아 등입니다. 그밖의 강들은 언제나 넘실넘실 흐르지 않기 때문에 강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또 이를테면 왕의 신하가 1, 2백 명 있는데, 그 중 6명의 장관 만을 국왕의 신하로 간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사령장관(司令長官),수상 겸사제장(首相兼司祭長),대법원장,재무장관,지산장관(持傘長官),지검장관(持劍長官)들 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직무는 왕의 대권(大權)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는 신하로 간주 하지 않고 관료라고만 부릅니다. 대왕이여, 이런 경우 처럼 벳산타라 왕이 보시를 행할 때, 대지가 일곱 번 진동했지만, 그것은 정상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8가지 원인 속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8가지 직접 원인 중의 하나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왕이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헌신하는 자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는 행위를 하여 지상에서는 물론 신들에게까지 그 명성이 미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일곱 명 있습니다.
누구 누구입니까.
꽃집 주인인 수마나, 바라문인 에카사아타카, 하인인 푼나, 왕비인 말리카아, 고파알라의 어머니로 알려진 왕비, 여신도인 숩피야아, 하녀인 푼나입니다. 이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헌신하므로 이 세상에서 즐거운 과보를 받았으며, 그 명성은 신들에게까지 미쳤습니다.
대왕이여, 그대는 또 전생에 공덕을 지어 인간의 육신을 가진 채 33 천계(天界)로 승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누구 누구입니까.
음악가인 굿틸라, 사아디이나 왕, 니미 왕, 만다아타아 등입니다. 이 네 사람은 육신을 가진 채 33 천계에 승천했으며, 또 행하기 어려운 선행을 오래 오래 행했다고 들었습니다.
대왕이여, 그대는 또 전생과 현세에서 이러 이러한 보시를 행할 때, 한번, 두번 또는 세번 대지가 진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존자여,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대왕이여, 나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통달하여 박식하며, 그 가르침을 잘 외우고, 또 듣기를 좋아하고, 질문을 하며, 스승을 섬겨 왔지만 벳산타라 왕이 보시를 행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지가 진동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대왕이여, 캇사파 존자와 샤아카 세존 사이에 천만년이라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긴 세월이 흘렀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 이러 이러한 보시를 행할 때, 한번 두번 또는 세번 대지가 진율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대왕이여, 대지는 노력과 정진에 의해서는 진동하지 않습니다.
대지는 공덕의 무게에 눌리거나, 청정한 활동에 의한 공덕의 짐을 지고 그것을 지탱할 수 없을 때, 비로소 흔들리고 진동하고 떱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수레에 과도하게 짐을 실을 때, 바퀴통과 바퀴가 쭈그러지고 굴대가 꼬여 부러지는 것과 같습니다. 또 하늘이 비바람에 휩싸이고, 무거운 비구름에 눌리며, 회오리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칠때, 천지가 찌지적거리고 진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대지는 벳산타라 왕의 막대한 보시력의 짐을 지고 그것을 지탱할 수 없을 때 진동하고 떨고 움직였습니다.
왜냐하면, 벳산타라 왕의 마음은 탐욕이나 노여움이나 미망이나 자만심이나 잘못된 생각이나 번뇌나 논쟁이나 불만족에 의하여 움직이는 일이 없고, 오직 보시를 위해서만 세차게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왕은 항상 `보시 받고 싶은 사람으로 아직 보시 못받은 사람들을 모조리 오게 하리라. 또 찾아온 사람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흡족히 보시하리라'고, 한 없이 보시에 대하여만 마음을 쓰고 있었습니다.
대왕이여, 벳산타라 왕은 항상 변함없이 열 가지 마음의 상태, 즉 자제(自制)와 평정(平靜)과 인내(忍耐)와 자율(自律)과 억제(抑制)와 제어(制御)와 분노하지
않음과 잔학(殘虐)하지 않음과 진실함과, 청정함에 마음을 집중시켰습니다. 대왕이여, 벳산타라 왕은 욕정에 대한 추구를 버리고, 생존에 대한 욕망을 극복하고, 청정한 수행 생활에 대해서만 알찬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대왕이여, 그는 자기를 돌보는 것을 버리고 남을 돌보는 일에만 헌신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늘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들을 화평하게 하며, 무병하고 부유하고 장수하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완전히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대왕이여, 벳산타라 왕은 보시를 행할 때, 행복한 상태로 태어나기 위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보수를 받기 위해서, 의례적인 사교를 위해서, 오래 살기 위해서, 좋은 가문에 태어나기 위해서,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 자기의 명성을 얻기 위해서, 자손의 번영을 위해서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깨달은 최고의 지혜와 그 지혜의 보배를 얻기 위하여 비길 데 없는 최상 보시를 행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깨달은 최고의 지혜에 도달했을 때 이렇게 읊었습니다.

 

내 아들 자알리도, 내 딸 캉하아지나아도,
정숙한 내 아내 맛디이까지도,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 생각도 없이 보시했다.
나는 다만 깨침을 얻기(成佛) 위하여
그런 일을 했다.

 

대왕이여, 벳산타라 대왕은 유화(柔和)로 성낸 자를 이기고, 선으로 악한 자를 이기고, 보시로 인색한 자를 이기고, 진실로 거짓말 하는 자를 정복하고, 정의로 모든 악을 굴복시켰습니다.
그가 이같이 보시를 행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 파악을 목적으로 삼고 있을 때, 그가 행하는 보시에서 생기는 광대한 작용력과 활동력은 땅속에서 바람을 일으켜, 몇 번이고 미칠듯이 상하좌우로 불어 제쳐 잎이 떨어진 큰 나무들이 넘어졌습니다. 구름은 차례 차례로 뭉게뭉게 둥치를 이루어 하늘을 달리고, 먼지를 가득 안은 바람은 맹렬하게 하늘을 감돌며 사납게 날개쳤습니다. 또 소름끼치는 큰 소리가 울렸습니다. 그리고 강풍이 휘몰아쳐 물이 서서히 움직이고, 물이 흔들려 악어와 거북은 놀라 뛰고, 물결이 솟구치고 물속 동물들은 당황하여 떨었습니다. 큰 파도가 일어 으르렁거리고, 무서운 물거품이 일어 물거품 고리가 생기고, 대양의 물이 넘쳐 사방을 할퀴고, 조류(潮流)가 미친듯이 날뛰어 4방으로 부딪쳤습니다. 이리하여 아수라와 금시조(金翅鳥)와 용과 야차는 `어쩐 일인가,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대양이 뒤집히려고 하는구나'고 공포에 떨며 도망갈 길을 찾았습니다. 조수가 격동하고 휘몰아칠 때, 대지는 산과 바다와 함께 진동하고, 수메루 산은 딩굴어 산꼭대기가 크게 변했습니다. 뱀과 망구우스(大黃鼠)와 고양이와 시랑이와 돼지와 사슴과 새 들은 당황했으며, 대지가 진동하고 있을 때, 힘 약한 야차는 눈물을 흘리고 힘센 야차는 즐거워 했습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큰 솥에 물을 가득 채워 쌀을 넣은 다음 솥 밑에서 불을 때면, 맨 먼저 솥이 뜨거워지고, 다음에 물이 끓고, 그 다음에 쌀이 뜨거워집니다. 쌀이 뜨거워질 때, 물거품 고리가 생기는 것처럼 벳산타라 왕은 세상에서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고, 그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는 보시를 행했기 때문에, 땅속 대풍이 견디지 못해 격동하고, 대풍이 격동하자 바닷물이 진동하고, 바닷물이 진동하자, 대지가 진동했습니다. 그리하여, 대풍과 물과 대지는 큰 보시로 인하여 생기는 광대한 작용력과 활동력에 의하여 하나가 되었습니다. 대왕이여, 벳산타라 왕의 큰 보시력에서와 같이 위력을 가진 보시는 세상에 다시 없었습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땅 속에 많은 귀중한 보석이 있다고 합시다. 즉 인다니이라, 마하아니이라, 조오티라사, 베루리야, 움마아프파, 시리이사프파, 마노하라(魅惑), 누리야칸타(太陽), 잔다칸타(月), 바지라, 캇조팟카맛카, 풋사라아가, 로히탄카, 마사아라가스라등. 그러나, 전륜왕의 마니보주는 모든 보석 중의 우두머리요, 그 광채에 있어 모든 보석을 능가하여 1 요자나 사방을 두루 비친다고 합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지상에서 행해진 최대 최상의 보시 중에서 벳산타라 왕의 보시는 모든 보시를 능가한다고 합니다. 대왕이여, 벳산타라 왕이 보시를 행할 때 대지가 일곱 번진동했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세존께서는 구도 수행을 하고 계시던 보살(菩薩) 때도 세상에서 비길 데 없는 참으로 끈기 있고, 아주 온화하고, 확고한 의지로 끊임없는 노력을 쌓았습니다. 그것은 정말 놀랍고 전에 없는 일이 었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는 보살의 권능(權能)을 명시하시고, 또 부처님의 최고 실천 덕목(實踐德目)을 아주 밝은 광채로 비쳐 주었습니다. 그대는 부처님이 청정 고결한 생활을 할 때, 그가 신과 인간의 세계에서 얼마나 높은 존재였는가를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승자(勝者)의 가르침은 칭송받고, 최고 실천 덕목은 해명되었으며, 다른 학파들이 논난하는 그물코는 풀리고, 논난을 일삼는 반대자의 항아리는 산산 조각이 났습니다. 심오한 난문은 환하게 풀리고, 밀림은 확 트인 땅으로 변하고, 승자의 도제(불제자)들은 미혹으로부터 탈출했습니다. 아아, 모든 학파의 지도자들 중 최상자여, 그대가 말씀하신 그대로 나는 믿습니다.  

 

 

 

5. 눈을 보시한 시비(尸毘)왕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 비구들은 말하기를, `시비왕은 자기 눈을 달라는 사람에게 두 눈을 주고 장님이 되었을 때, 하늘로부터 새로운 눈(天眼)이 주어졌다'
고 합니다. 이 말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비난받을 점이 있고 잘못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경전에 `원인이 완전히 제거되어 그 이상 어떠한 원인이나 근거가 없을 때는 천안(天眼)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만일 시비왕이 눈을 달라는 사람에게 자기 두 눈을 주었다면, 새로 하늘눈이 주어졌다는 말은 잘못이오, 또 만일 천안이 새로 주어졌다면, 시비왕이 눈을 달라는 사람에게 자기의 두 눈을 주었다는 말은 잘못임에 틀림없습니다. 이것도 양도론법의 난문으로서, 어려운 문제보다 더 얽혀 있고, 화살보다 더 뾰족하고, 밀림보다 더 빽빽합니다.
그대에게 제출된 이 난문에 대하여 반대자를 논파할 발원을 세워 주십시오.
대왕이여, 시비왕은 눈을 달라는 사람에게 자기의 두 눈을 분명히 주었습니다. 그 점에 대하여 의혹을 두지 마십시오. 그리고, 시비왕에게는 그 대신 하늘눈이 생겼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도 의혹을 두지 마십시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러나, 원인이 완전히 제거되어 그 이상 어떠한 원인이나 근거도 남아 있지 않은데, 어떻게 하늘눈이 생길 수 있습니까.
대왕이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슨 이유로 원인이 완전히 제거되어 그 이상 어떠한 원인이나 근거도 없는데 하늘눈이 생깁니까. 우선 그에 대한 이유를 들어 확신시켜 주십시오.
대왕이여, 이 세상에 진실은 존재하고, 그 진실의 맹서(誓言)에 의하여 참으로 믿는 자들은 진실의 행위를 수행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그런 것이 있습니다. 진실에 의하여 진실을 실행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 맹서(誓言)에 의하여 비를 내리게 하고, 불을 꺼지게 하고, 독의 효력을 없애 주며, 그밖에 자기들이 하고자 하는 많은 일을 성취합니다.
대왕이여, `시비왕에게 하늘눈이 생긴 것은 진실(眞實)의 힘에 의했다'는 점에서, 상응(相應)되고 들어맞습니다. 아무런 원인도 현존하지 않지만, 진실의 힘에 의하여 하늘눈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이때 진실 그것이 하늘눈이 생기는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마술사(魔術師)가 `큰 비야, 내리라'고 주문(呪文)을 외우자, 큰 비가 내렸다고 합시다. 이때, 하늘에 비가 내릴 원인이 축적되어, 그 원인에 의하여 큰 비가 내렸겠습니까.
아닙니다. 존자여, 주문(呪文) 자체가 큰 비를 내리는 원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시비왕의 경우, 하늘눈이 생기는 통상적인 원인, 즉 자연인(自然因)은 없습니다. 진실 자체가 하늘눈이 생기는 충족 이유(根據)입니다.
대왕이여, 또 마술사가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덩이야 꺼져라'고 주문을 외운다고 합시다. 주문을 되풀이 하는 순간 불은 꺼졌습니다. 거기에 불을 끄는 결과를 가져올 축적된 원인이 미리 있었겠습니까.
아닙니다. 존자여, 거기서는 주문 자체가 순간적으로 불을 끄는 근거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시비왕의 경우 하늘눈이 생기는 통상적인 원인은 없습니다. 진실 자체가 천안이 생기는 충족 이유입니다.
대왕이여, 또 마술사가 `이 해로운 독(毒)을 치료약으로 변하게 하라'고 주문을 외웠다고 합시다. 주문을 되풀이 하는 순간 해로운 독은 치료약으로 변했습니다.
거기에 해로운 독을 치료제로 바꾸는 원인이 미리부터 있었겠습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주문 자체가 해로운 독을 물리쳐 약으로 바꾸는 원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하늘눈이 생기는 통상적인 원인은 없습니다. 그 경우 진실 자체가 천안이 생기는 충족 이유입니다.
대왕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를 깨달음에는 딴 원인은 없습니다. 이 진리는 진실(眞實)의 실행에 의해서만 깨달아집니다.
대왕이여, 중국에 한 임금이 있었습니다. 간혹 대양(大洋)에 진상을 드리고자 주문을 외우며 사자가 끄는 궁정수레를 타고 1 요자나 쯤 대양으로 들어갑니다. 그때 수레 머리 앞에 큰 파도가 밀어 닦쳤습니다. 그 파도가 물러가면, 그 자리에 또 다른 파도가 밀어 닦쳤습니다. 그러한 대양을 신이나 사람들의 보통 체력으로 밀어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존자여, 신이나 사람들의 보통 체력으로는 조그마한 연못의 물도 밀칠 수 없습니다. 어찌 대양의 물을 밀칠 수 있겠습니까.
대왕이여, 이것으로 진실의 힘을 알 것입니다. 진실에 의하여 이르지 못할 곳은 없습니다.
대왕이여, 아쇼카 법왕이 파아탈리풋타에서, 시민과 지방민과 근신(近臣)과 군대와 대신들 가운데 서 있을 때였습니다. 산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온 신선한 물이 뚝까지 가득 채우고 흘러가는, 너비 1 요자나, 길이 5백 요자나의 간지스강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봐라, 이 간지스 강 물줄기를 거슬러 흐르게 할 사람은 없는가'고.
신하들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했습니다. 마침 그때 강가 군중속에 빈두마티이라는 창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왕의 질문을 되풀이하는 소리를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파아탈리풋타에서 몸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는 가장 미천한 창녀입니다. 임금께 제가 맹서에 의하여 진실을 실행하는 힘을 보여 드리겠습니다'고.
그리고, 그녀는 진실을 실행할 것을 맹서했습니다.
그 순간 대 간지스 강은 모든 사람의 눈앞에서 굉장한 소리를 내며 거꾸로 흘러갔습니다.
그때 왕은 대 간지스 강 물이 소용돌이치며 거슬러 흐르는 소음을 듣고 깜작 놀라 경외(敬畏)하는 마음으로 근신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봐라, 어떻게 해서 대 간지스 강 물이 거꾸로 흐르느냐'고.
근신들은 이러이러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왕에 게 아뢰었습니다. 왕은 몸소 급히 창녀에게 가 그녀에 게 물었습니다.
`네가 진실로 실행하는 힘으로 이 간지스 강 물을 거꾸로 흐르게 한 것이 사실인가'
`대왕이시여, 그렇습니다.'
왕은 또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너에게 그런 힘이 있는가. 아니 너의 말을 들어주는 자는 대체 누군가. 하찮은 네가 무슨 힘으로 이 간지스강 물을 거꾸로 흐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저는 진실의 힘에 의하여 이 간지스강물을 거꾸로 흐르게 하였습니다.'
왕은 또 물었습니다.
`어떻게 너에게 진실의 힘이 있을 수 있는가. 너야말로 부도덕한 자요, 타락한 자요, 불성실한 자요, 방탕자요, 죄 많은 자요, 방종자요, 범법자요, 눈먼 바보들로부터 돈을 갈취해서 살아가는 자가 아닌가.'
`대왕이여,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저는 바로 그러한 족속입니다. 그러나, 제게는 진실을 실행하는 힘이 있어 제가 하려고 하면, 진실의 실행력에 의하여 신과 인간 세계를 변전(變轉)시킬 수 있습니다.'
왕은 또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너에게서 진실을 실행하는 힘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나에게 들려 달라.'
`대왕이여, 저는 귀족이든 바라문이든 평민이든, 노예든, 저에게 돈을 주는 사람에게는 그들을 평등하게 대합니다. 귀족이라 해서 존경한다거나, 노예라 해서 경멸한다거나 하는 일이 없습니다. 저는 친애와 혐오(嫌惡)를 떠나 저의 몸을 사는 사람에게는 평등하게 봉사합니다. 대왕이여, 이것이 제가 진실을 실행하는 근거이며, 그 힘에 의하여 저는 대 간지스 강 물을 거슬러 흐르게 하였습니다.'
대왕이여, 그러므로, 진실에 의거하여 사는 사람으로, 이익을 향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시비왕은 눈을 달라는 사람에게 자기의 두 눈을 주고 하늘 눈이 생겼습니다. 그것도 진실을 실행함으로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경전에 `육안(肉眼)이 없어지고 그것에 대한 원인과 근거가 없어질 때, 하늘눈은 생길 수 없다'고 한 것은, 단지 수행을 통하여 생긴 지혜의 눈에 관해서 말한 것입니다. 대왕이여, 그대는 경전의 뜻을 그렇게 이해하여야 합니다.
훌륭합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는 내가 제출한 난문을 훌륭하게 풀어 주시고, 난점을 똑바로 해명하였으며, 반대론자를 완전히 굴복시켰습니다. 그대가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나는 믿습니다.  

 

 

 

6. 수태(受胎)에 관하여

 

 

나아가세나 존자여,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아, 세 가지 것이 화합(三事和合)해서 수태가 된다. 즉 부모가 교합하는 것, 어머니는 월경(月經)을 거친 여자라는 것, 수태를 맡는 간달바 신이 있다는 것, 이 세 가지가 화합해서 수태가 된다.'
이 말씀은 보충할 여지가 없는 말씀이오, 완전무결한 말씀이오, 총괄적인 말씀이오, 숨김 없는 말씀으로, 신과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것이 화합해서 수태된 일도 있습니다. 즉, 수반나 사아마 동자(童子)는 도구우라 고행자(苦行者)가 파알리카 고행니(苦行尼)의 월경기에 바른손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배꼽을 만져 주어 탄생했습니다. 또 만다브야 소년도 마아땅가 선인이 바라문 처녀 월경기에 바른손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배꼽을 만져 주어 탄생했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만일 세존께서 `비구들아, 세 가지 것이 화합해서 수태가 된다'고 말씀하셨다면, 수반나 사아마 동자와 만다브야 소년이 배꼽을 만져 줌으로 수태되어 탄생했다고 한 말은 잘못입니다. 또 만일 수반나 사아마 동자와 만다브야 소년은 배꼽을 만져줌으로 수태되어 탄생했다'는 말이 참말이라면,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세 가지 것이 화합해서 수태가 된다고 한 말씀은 잘못입니다.
이것은 양도론법의 난문으로서, 심오하고 현묘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 풀어 주어야 할 문제입니다. 이 난문이 그대에게 제출되었습니다. 의혹의 길을 끊고 뛰어난 지혜의 등불을 밝혀 주십시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세 가지 것이 화합해서 수태가 된다고 말씀하셨으며, 또 수반나 사아마 동자와 만다브야 소년은 배꼽을 만져줌으로 수태되어 탄생했다는 것도 인정하셨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러면 이 난문을 훌륭하게 해결할 수 있는 실례를 들어 설득시켜 주십시오.
대왕이여, 그대는 상킷자 동자와 이시싱가 고행자와 쿠마알라 캇사파 장로가 어떻게 태어났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들었습니다. 즉, 두 마리 암사슴이 암내난 시기에, 우연히 두 고행자가 오줌을 싼 곳으로 가, 그들의 정자(精子)가 섞인 오줌을 마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상킷자 동자와 이시싱가 고행자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쿠마알라 캇사파 장로는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우다아인 장로가 비구니 사는 곳으로 가 욕정이 발동하여 비구니의 음부를 뚫어 지게 보고 있다가 속옷에 정액(精液)을 쌌습니다. 우다아인 장로는 그 비구니에게, `여보세요, 물을 좀 길어다 주오. 속옷을 빨아야 겠소.'라고 말했습니다.
`존자여, 제가 빨아드리겠습니다.'고 비구니는 말했습니다.
그때 비구니는 월경기였는데, 그 옷에 묻은 일부의 정액을 입에 넣고 일부를 음부 속에 밀어 넣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쿠마알라 캇사파 장로가 태어났습니다.
대왕이여, 그대는 그런 말을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나는 그들이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을 믿을 만한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란 무엇입니까.
존자여, 잘 성숙되어 있는 카랄라속에 정자(精子)가 떨어져 그것이 빨리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존자여, 마찬가지로 월경을 거친 비구니는 카랄라가 온전하고, 갑자기 출혈이 멎고, 월경기에 정자를 자기카랄라 속으로 집어 넣음으로 잉태했습니다. 그리하여 쿠마알라 캇사파 장로가 태어난 것으로 압니다.
대왕이여, 그대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나는 `태(胎)속에 들어감으로 수태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대는 쿠마알라 캇사파 장로가 수태된 것을 인정합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내편에 가까와졌습니다. 수태에 대하여 한 가지만 말해도 그대는 나의 이야기에 따를 것입니다. 두 마리 암사슴이 고행자의 오줌을 마시고 수태했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먹고 마시고 씹고 맛 본 것은 무엇이나 카랄라로 가, 거기서 터를 얻어 자라납니다.
마치 모든 강물이 대양으로 흘러 들어가, 거기서 불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입을 통해서도 수태가 된다'고 믿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대는 한층 더 내편에 가까와졌습니다. 입을 통해서도(부모의 교배가 없이) 두 가지 화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대는 상킷자 동자와 이시싱가 고행자와 쿠마알라 캇사파 장로가 수태된 사실을 인정합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그것은 화합(和合)에 의한 것입니다.
대왕이여, 배꼽을 만져 수태된 수반나 사아마 동자나 만다브야 소년도 다 같이 세 가지 화합에 의하여 수태되었습니다. 상킷자 동자가 입을 통해서 수태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그 사실을 밝혀 드리겠습니다.
대왕이여, 도오쿠우라 고행자와 파알리카아 고행니는 둘 다 숲 속에서 수행하는 자였습니다. 그들은 고독한 생활에 전념하고, 최상의 도리를 탐구하며, 고행(苦行)의 위력에 의하여 범천(梵天) 세계에 이를 때까지 열심히 고행을 했습니다. 그때 인드라(帝釋天)는 시중들러 조석으로 거기를 찾아 왔습니다. 그는 그들을 애경(愛敬)으로 살펴보고 그들이 다 장차 두 눈을 실명하게 될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자들이여, 내 말을 들어주십시오. 그대들이 아들 하나를 낳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그 아들이 장차 그대들을 받들어 부양할 것입니다.'
`천제여, 그만 두십시오. 그런 말씀 마십시오'라고 대답하고, 천제의 말을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동정심 많고 남을 복되게 하려고 한 천제는 두 번 세 번 되풀이해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제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세 번 다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천제여, 그만 두십시오. 그대는 우리에게 무익한 것을 권해서는 안 됩니다. 이 육신은 언젠가는 없어질 운명이 아닙니까. 괴멸(壞滅)을 본질로 하는 이 육신은 반드시 없어질 것입니다. 대지도 암석도 허공도 일월도 괴멸할 것인데, 세상일을 즐길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후로 다시 우리 앞에 와서는 안됩니다. 만일 오신다면, 남들은 그대를 분명히 무익한 일을 하는 분으로 알 것입니다.'
천제는 그들의 이해를 얻을 수가 없어 외경하는 마음으로 합장하고 다시 이렇게 간청했습니다.
`만일 내 말씀을 받아드릴 수 없다면, 고행니가 월경기에 존자의 바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배꼽을 만져 주십시오. 그러면 아이를 배게 될 것입니다. 배꼽을 만지는 교합(交合)으로도 수태가 됩니다.'
`천제여, 그 말씀은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우리의 고행이 금이 갈리는 없습니다. 아무튼 좋습니다.

그때 천계(天界)에 한 천자(天子)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선근(善根)을 거듭 거듭 닦고 심어, 세수(世壽)가 다할 때, 자기가 태어나고 싶은 곳이면 전륜성왕의 집에라도 태어날 만한 분이었습니다. 인드라는 그 천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그대에게 햇빛이 비치고 목적을 달성할 날이 다가 왔습니다. 전에 내가 그대를 위하여 시봉(侍奉)으로 갔던 즐거운 곳에 그대는 살 것입니다. 알맞은 집에 태어날 것이며, 훌륭한 부모 밑에서 길러질 것입니다. 자아, 내말을 들으십시오.'
인드라는 머리 위에 합장하고 두번 세번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천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제여, 그대가 두번 세번 되풀이해서 칭찬한 그집은 대체 어떤 집입니까.'
`도오쿠우라 고행자와 파알리카 고행니가 사는 곳입니다.'
천자는 이 말에 만족하여 승낙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제여, 잘 알겠습니다. 그대가 바란다면 좋습니다. 나는 난생(卵生)이든 태생(胎生)이든 습생(濕生)이든 화생(化生)이든 어떤 집에 태어날까를 생각했습니다. 천제여, 나는 태생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그때 인드라는 그가 출생할 날을 계산한 다음, 도오쿠우라 고행자에게 이렇게 일러 주었습니다.
`고행니께서는 아무 날 월경기가 될 것입니다. 그때 존자께서, 바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배꼽을 만져 주십시오.'
그날이 와 고행니는 월경기가 되었고, 천자는 그곳에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행자는 바른손 엄지손가락으로 고행니의 배꼽을 만져 주었습니다. 이리하여 세 가지 것이 화합이 이루어졌습니다. 여기 배꼽을 만져 주므로 고행니에게 성욕이 생겼는데, 그 성욕은 배꼽을 만져 줌으로 생긴 것입니다. 그대는 세 가지 것의 화합을 성교(性交)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놀이로 하는 것도 삼사 화합(三事和合)의 근거가 되고, 말로 하는 것도 삼사화합의 근거가 되며 곰곰이 생각하는 것도 삼사화합의 근거가 됩니다. 성욕이 일어나 만짐(摩觸)에 의하여 삼사화합이 이루어지고, 그 화합에 의하여 수태가 됨으로, 성교하지 않더라도 만짐으로 수태가 됩니다. 대왕이여, 그것은 마치 타고 있는 불에 갖다 대지 않아도 가까이 있는 것의 차가움을 없애 주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여, 생물(有情)의 수태는 네 가지 힘에 의해서 이루어 집니다. 즉 업(業)에 의하여, 태(胎)에 의하여, 가계(家系)에 의하여, 청원(請願)에 의하여 이루어집니
다. 그러나, 모든 생물은 업으로부터 생겨나고 업으로 부터 나타납니다.

대왕이여, 생물의 업에 의한 수태는 이러합니다. 대왕이여, 선근(善根)을 닦아 쌓은 생물은 귀족의 가문이든, 바라문의 가문이든, 백만장자의 가문이든, 어떤 신이든, 또는 난생의 태든, 태생의 태든, 습생의 태든, 화생의 태든 각기 원하는 곳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큰 재산가요, 큰 부호인 부자로서, 막대한 금,은,보화와 많은 곡식을 가지고 있고, 많은 친척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부자가 남종이건 여종이건 토지건 농지건 마을이건 읍이건 도시건 무엇이든지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이면 두 곱 세곱의 돈을 치르고라도 살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여, 닭은 바람에 의하여 수태하고, 학(鶴)은 우뢰 소리에 의하여 수태하며, 모든 신은 수태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태에 의하는 생물은 여러가지 방법에 의하여 수태됩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사람들은 갖가지 모습으로 지상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앞만 가리고, 어떤 사람은 뒤만 가리고, 어떤 사람은 발가벗고, 어떤 사람은 머리를 빡빡 깍으며, 어떤 사람은 흰 옷을 입고, 어떤 사람은 머리를 동여 묶고, 어떤 사람은 까까머리에 노랑옷(袈裟)을 입고, 어떤 사람은 머리를 동여 묶고 노랑 옷을 입으며, 어떤 사람은 나무 껍질로 몸을 두르고, 어떤 사람은 가죽 옷을 입는 등, 사람들은 갖가지 모습으로 지상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저들 생물은 모두 갖가지 방법으로 수태됩니다. 이와같이 모든 생물은 여러 가지 태(胎)에 의하여 수태됩니다.
생물의 가계에 의한 수태는 이러합니다. 대왕이여, 가계란 난생,태생,습생,화생 등, 네 가지 가계를 말합니다. 만일, 간달바(香音) 신이 어디로부터든 난생의 집에 태어났다면, 그때 그것은 난생이 됩니다. 이와같이 간달바 신이 난생,태생,습생,화생 등 어떤 집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각각 그 가계에 상응(相應)한 생물이 태어났습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어떤 짐승이든 새든 간에 히말라야의 수메루 산에 가까이 가면, 그것들은 모두 그들 자신의 빛깔을 잃고 황금빛으로 되는 것처럼, 간달바 신이 어디로부터든지 와서 난생의 태에 들면 그 고유한 자성(自性)을 잃고 난생이 됩니다. 태생,습생,화생의 경우도 각각 그러합니다. 이와같이 생물은 가계에 의하여 수태됩니다.
생물의 청원에 의한 수태는 이러합니다. 대왕이여, 여기 재산이 많고 신앙이 두텁고 계행(戒行)을 잘하는 유덕자로서, 부지런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사람 집에 어린애가 없으며, 또 한 쪽에는 선근(善根)을 닦아 쌓고 임종에 가까운 한 천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때 인드라가 어린애 없는 집을 불쌍히 여겨 임종에 닥친 천자에게 이렇게 청원했습니다.
`천자여, 그대는 저 집 첫 째 부인의 뱃속에 태어나고 싶다고 발원하시오,' 그래서 그 천자는 천제의 청원에 따라 그 집에 태어나기를 발원했습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복덕(福德)을 사람이 바라는 훌륭한 수행자가 자기 집에 오면 온 가정이 행복하게 된다고 하여, 그 수행자를 자기 집에 오게 하는 것처럼 인드라는 그 천자에게 청원하여 그 집으로 가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생물은 청원에 의하여 수태됩니다.'
대왕이여, 수반나 사아마 동자는 복덕을 짓는 행위를 했고, 그 부모는 계행을 잘 지킨 유덕자요, 청원한 이는 유능한 분이었습니다. 이들 3자(동자,부모,청원자)의, 마음의 서원(誓願)에 의하여 수반나 사아마 동자는 태어났습니다.
대왕이여, 여기 씨를 뿌리는 데 솜씨 있는 사람이 있어, 잘 갈아 놓은 논에다 씨를 뿌린다고 합시다. 그가 종자의 발육에 장해(障害)되는 것을 피해서 씨를 뿌릴때, 종자의 발육에 무슨 장해될 것이 있겠습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장해를 받지 않은 씨알은 빨리 발육할 것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수반나 사아마 동자는 출생의 장해를 벗어나 3자의 마음의 서원에 의하여 태어났습니다. 대왕이여, 그대는 일찍이 선인(仙人)들의 노기로 인하여 부유하고 번창하여 주민이 많은 큰 지방이 파멸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들었습니다. 단다카 숲과 멧자 숲과 카알랑가 숲과 마아탕가 숲은 모두 도시가 숲으로 변화해 버린 것입니다. 또 이 지방은 모두 선인들의 마음의 노기로 인하여 파멸되었습니다.
대왕이여, 만일 선인들의 노기(瞋意)로 인하여 번창했던 지방이 파멸되었다면, 선인들의 마음의 청정(淸淨)에 의해서 도대체 무엇이 창조되었습니까.
존자여, 창조된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그러므로 수반나 사아마 동자는 3자의 강력한 마음의 청원에 의하여 태어났습니다. 즉 선인에 의하여 창조되고 신에 의하여 창조되고, 복덕(福德)의 행위에 의하여 창조되었습니다. 대왕이여, 이것을 기억해 주시오.

대왕이여, 여기 세 사람의 천자는 인드라의 청원을 받고 좋은 가문에 태어났습니다. 세 사람은 즉, 수반나 사아마 동자, 마하파나아다 왕, 쿠사 왕입니다. 이들은 모두 보살이 되었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난문은 훌륭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수태에 관하여 잘 해명되고, 그 이유는 잘 논의되었으며, 어둠은 광명으로 변하고, 얽힌 실마리는 죄다 풀리고, 반대론자의 논난은 불식되었습니다. 그대가 말씀한 것은 그대로 나는 믿습니다. 

 

 

 

7. 부처님 가르침(正法)의 존멸(存滅)

 

 
나아가세나 존자여,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아난다(阿難)야, 이제 올바른 가르침(正法)은 5백년간 존속할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 세존께서는 완전한 열반(般涅槃)에 드실 때(즉 임종시에), 수밧다(須跌陀)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밧다야, 만일 비구들이 이러한 조직을 가지고 완전한 생활을 한다면 이 세상은 아라한(聖者)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절대적이고 포괄적이고 결정적인 말씀인데, 잘 분별할 수 없습니다. 존자여, 만일 첫 번째 말씀이 옳다면 두 번째 말씀이 잘못이오, 만일 두 번째 말씀이 옳다면 첫 번째 말씀은 잘못입니다. 이것도 양도논법의 난문으로서, 밀림보다도 빽빽하고 강자보다도 강력하고 얽힌 매듭보다도 더 얽혀 있습니다. 이 난문이 이제 그대에게 제출되었습니다. 태양에 있는 마카라바다에 사는 거대한 짐승처럼 그대의 지력(智力)이 광대함을 보여 주십시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그대가 이용한 두 가지 말씀을 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양자는 뜻으로나 문장상으로 나 각기 다릅니다, 하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존속할 기간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오, 또 하나는 종교적 생활의 실천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양자는 크게 다릅니다. 이를테면 하늘과 땅이 현격하고, 지옥과 천상(天界)이 현격하고, 선과 악이 현격하고, 환락과 고통이 현격하게 다른 것처럼. 그러나, 그대의 질문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나는 본질 문제에 관련시켜 그것을 설명하겠습니다.
세존께서`아아난다야, 이제 올바른 가르침은 5백년간 존속할 것이다'고 말씀하신 것은 올바른 가르침이 다하는 시기를 언명함으로써 앞으로 그 가르침이 존속할 나머지 기간을 한정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는, `아아난다야, 만일 여자가 출가하지 않았더라면 올바른 가르침은 천년간 존속할 것이다. 그러나, 아아 난다야, 여자가 부처님의 가르침(法)과 규율(律)에 의하여 출가했으므로, 이제 올바른 가르침은 5백년간만 존속할 것이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올바른 가르침이 없어진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올바른 가르침을 깨치는 것을 책망한 것이겠습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그것은 이미 없어진 것을 언명하심으로써 올바른 가르침이 존속할 나머지 기간을 한정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재산이 줄어진 사람이 남은 재산을 확인하고, `내 재산은 이만큼 없어지고 아직도 이만큼 남아 있다'고 사람들에게 공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 가지로 세존께서는 이미 없어진 것을 언명하심으로써 올바른 가르침이 5백년 밖에 존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모든 신(神)과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 `아아난다야, 이제 올바른 가르침은 단지 5백년 간만 존속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존속할 기간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대왕이여, 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실 때, 수밧다의 질문을 받고 `수밧다야, 만일 비구들이 바른 조직을 가지고 완전한 생활을 한다면, 이 세상은 아라한을 잃지 않을 것이다'고 출가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종교적인 생활실천, 즉 종교의 존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종교적 생할의 실천을 말씀하신 것과 올바른 가르침이 존속할 기간과 혼동했습니다.
그대가 원한다면 두 가지를 같은 성질의 것으로 다루어 설명하겠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명심해서 내 말을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이를테면 신선한 물이 가장자리까지 가득 차 있는 저수지가 있다고 합시다. 그 저수지는 튼튼한 뚝으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그 물이 마르기 전에 큰 비가 계속 내려 고인다면 저수지 물은 닳아 없어지겠습니까.
존자여, 그럴 리가 없습니다.
대왕이여, 어째서 그 저수지물은 닳아 없어지지 않습니까.
비가 계속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최상승자(勝者, 즉 부처님)에 의한 올바른 가르침의 저수지는, 의무와 덕과 도덕과 청정한 생활의 실천이라는 깨끗하고 신선한 물로 가득차 있고, 계속 넘쳐 흘러 최상의 천계(天界)에 까지 넘칩니다. 만일 거기에다 부처님의 제자들이 의무와 덕과 도덕과 청정한 생활의 실천이라는 비를 더 계속해서 내리게 한다면, 최상승자의 올바른 가르침은 오래 오래 존속할 것이며, 또 이 세상은 아라한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이런 뜻으로 `수밧다야, 만일 비구들이 바른 조직을 가지고 완전한 생활을 한다면이 세상은 아라한을 잃지 않을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커다란 불덩어리가 타고 있을 때, 사람들이 마른 잎과 마른 나무와 마른 쇠똥을 갖다 댄다면 그 불덩어리는 꺼지겠습니까.
아니올시다. 존자여, 불덩어리는 더욱 더 타오르고 빛날 것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최상승자의 올바른 가르침은 의무와 덕과 도덕과 청정한 생활의 실천에 의하여 일만 세계에 타오르고 빛날 것입니다.
대왕이여, 그 위에 또 만일 부처님의 아들이 열심히 힘써야 할 다섯 가지 덕목(五支精勤 또는 四正斷)을 갖추고 언제나 부지런히 힘쓰면, 계행(戒)과 마음의 통일(定)과 지혜(慧) 등 세 가지 길(三學)을 열심히 익히며, 선을 짓는 계행(作持戒)과 악을 짓지 않는 계행(止持戒)을 환전하게 지킨다면, 최상승자의 올바른 가르침은 더욱 더 오래 존속할 것이며, 이 세상은 아라한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대왕이여, 부처님께서는 이 뜻으로 `수밧다야 비구들이 이러한 조직을 가지고 완전한 생활을 한다면 이 세상은 아라한을 잃지 않을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반들 반들하고 반듯하고 잘 갈아져 있어 반짝거리고 때가 묻지 않은 거울을, 부드럽고 결이 가는 분가루로 닦는다면 그 거울은 표면에 더럼이나 때나 먼지 같은 것이 생기겠습니까,.
아니올시다. 존자여, 정말 전보다 더 깨끗해질 것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최상승자의 가르침은 본래 때가 없으며, 번뇌의 때나 먼지가 묻어 있지 않습니다.
만일 부처님의 아들들이 의무와 덕과 도덕과 청정한 생활과 번뇌를 끊는 실천을 함으로써 최상승자의 가르침을 익힌다면, 최상승자의 가르침은 오래오래 존속할 것이며, 또 이 세상은 아라한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이런 뜻으로 `수밧다야, 비구들이 바른 조직을 가지고 완전한 생활을 한다면, 이 세상은 아라한을 잃지 않을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왕이여, 부처님의 가르침은 실천을 근본으로 하고, 실천을 본질로 합니다. 실천이 없어지지(隱沒) 않는 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존속할 것입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올바른 가르침이 없어진다고 할때, 그 없어짐이란 무엇을 뜻합니까.
대왕이여, 거기에는 세 가지 양상이 있습니다. 세 가지란 올바른 가르침(正法)에 대한 깨침(證得)이 없어지는 것, 올바른 가르침에 대한 실천(行道)이 없어지는 것, 올바른 가르침에 대한 외적 특징(外相)이 없어지는 것 들입니다.
올바른 가르침에 대한 깨침이 없어질 때는 가르침을 잘 실천하는 사람도 그 가르침을 깨치지 못합니다. 또 올바른 가르침에 대한 실천이 없어질 때는 승단 생활의 규율(學處의 制定)은 없어지고 그 가르침의 모양만이 남습니다. 또 올바른 가르침에 대한 외적 특징이 없어질 때는 전통의 상속이 끊어집니다. 이것들이 세가지 양상입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는 심오한 난문을 잘 설명해 주고 맺혀진 매듭을 풀어 주었습니다. 또 모든 학파의 지도자들 중에 최상자인 그대는 모든 반대자들의 논의를 타파하여 산산 조각이 나게 하고, 그들의 의론이 잘못임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8. 세존께서는 모든 죄악을 소멸하고 부처님이 되셨는가

 


나아가세나 존자여, 세존께서는 모든 죄악을 다 태워 없애고 부처님이 되셨습니까. 아니면 죄악(不善)이 아직 남아 있는데도 부처님(全知者)이 되셨습니까.
세존께서는 모든 죄악을 다 태워 없애고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세존에게 죄악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존자여, 부처님(如來)도 육신의 고통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라아자그리하(王舍城)에서 바위 조각에 발을 상한 적이 있으며, 또 이질과 설사병에 걸렸을 때 지이바카(耆婆)가 하제(下劑)를 복용하게 한 일이 있으며, 또 오한 때문에 떨 때 시중드는 장로가 부처님께 백비탕을 올린 일이 있습니다.
존자여, 정말 부처님(如來)께서 모든 죄악을 다 태워 없애고 부처님이 되셨다면, 부처님께서 바위 조각에 발을 상하시고, 또 이질병에 걸리셨다는 말은 잘못입니다.
또 만일 부처님께서 참으로 바위 조각에 발을 상하시고, 또 이질병에 걸리셨다면, 부처님게서 모든 죄악을 태워 없애고 부처님이 되셨다는 말은 틀림 없이 잘못입니다. 부처님께서 상처도 입고 이질병에도 걸리셨다는 말이 참말이라면, 부처님은 모든 죄악에서 벗어 났을 리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업이 없으면 고통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고통은 업(業)에 근거하며 업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것도 양도론법의 난문으로써 그대에게 제출되었습니다. 그대는 이것을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대왕이여, 고통이 모두 업에 근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통은 8가지 원인에 의하여 생기며, 많은 사람들(衆生)은 그 원인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8가지 원인이란, 위장 내 가스의 과잉, 담즙의 과잉, 가래(痰)의 과잉, 이들 세 가지의 화합, 계절의 변화, 불규칙한 섭생, 심한 상해(외부로부터의 작용에 의한), 업(보)등 입니다. 고통은 이러한 원인들로부터 생기며, 이들 8가지 원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고통을 받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업(業)에 의하여 고통을 받으며, 업 이외에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도 없다'는 말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존자여, 업(보) 이외의 일곱 가지 원인에 의하여 생기는 고통도 근본적으로는 업에 의하여 생긴 것입니다.
대왕이여, 모든 질병이 정말 업에서 유래한다면 그것들을 서로 구별짓는 특징은 없을 것입니다. 위장내가스가 난동하는 것은 열 가지 원인 즉 차가움, 뜨거움, 굶주림, 목마름, 과식, 너무 오래 서 있음, 과로,너무 빨리 달림, 상해(傷害), 업의 결과(業報) 등에 의합니다. 열 가지 중 앞의 아홉 가지는 과거나 미래에는 작용하지 않고, 현재의 생존에서만 작용합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모든 고통이 업에 기인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답즙이 교란되는 것은 세 가지 원인, 즉 차가움, 뜨거움, 알맞지 않은 음식등에 의합니다. 또 가래가 난동하는 것도 세 가지 원인, 즉 차가움, 뜨거움, 음식물 등에 의합니다. 가스와 담즙과 가래가 난동하고 뒤범벅될 때, 각기 다른 고통이 생기며, 또 계절의 변화와 불규칙한 섭생에 의하여도 각기 다른 고통이 생깁니다. 그런데, 심한 상해로부터 생기는 고통은 우연히 생기기도 하고, 업보(業報)에 의하여 생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업보로 생기는 고통은 전생에 지은 업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업의 결과로 생기는 것은 적고, 우연히 생기는 것이 더많습니다. `잘 알지 못하면서 모든 것은 업의 결과(業報)로 생긴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말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지혜가 없이는 어떤 사람도 업의 작용 범위를 확정 지을 수 없습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 바위 조각에 발을 상하신 때 받은 고통은, 위장 내, 가스나 담즙이나, 가래나, 또는 이 세 가지의 화합이나, 계절의 변화나, 불규칙한 섭생이나, 업의 결과로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심한 상해로 인하여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데바닷타는 수십 만년 동안 부처님께 증오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증오감 때문에 커다란 바위를 밀어다 부처님의 머리에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다른 두 개의 바위가 튀어나와, 데바닷타가 떨어뜨린 바위가 부처님의 발에 떨어져 피나는 상처를 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세존께서 받은 고통은 업의 결과로 생긴 것이던가 아니면, 우연한 작용으로 생긴 것이던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밖에 딴 원인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밭이 나쁘던가 씨앗이 좋지 않든가 해서 씨앗이 싹트지 않는 것과 같으며, 또 위에 결함이 있는가 음식이 나쁘던가 해서 음식물이 소화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세존에게는 업의 결과로 생기는 고통이나 불규칙한 섭생에 의하여 생기는 고통은 없으며, 그밖의 여섯 가지 원인으로부터 생기는 고통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고통에 의하여 세존의 생명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대왕이여, 46요소로 이루어진 이 육신에는 쾌와 불쾌, 청정과 부정(不淨)이라는 감각이 생깁니다. 대왕이여, 가령 공중에 내던져진 흙덩이가 다시 땅 위로 떨어진다고 합시다. 흙덩이는 전생에 지은 어떤 행위(業)의 결과로 땅 위에 떨어지겠습니까.
아니올시다. 존자여, 대지에는 선 악 간에 업보를 받는 원인은 없습니다. 흙덩이가 대지로 떨어지는 것은 전생의 업이 아니라 현재의 원인에 의합니다.
대왕이여, 부처님은 마치 넓은 대지처럼 볼 것입니다. 흙덩이가 대지로 떨어지는 것이 전생의 업에 의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세존의 발에 바위 조각이 떨어진 것도 전생의 업에 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왕이여, 또 사람들이 땅을 갈고 하는 것이 전생에 지은 업의 결과로 그러합니까.
존자여, 정말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바위 조각이 세존의 발에 떨어진 것도 전생에 지은 업의 결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며, 또 가스나 담즙이나 가래나 이들 세 가지의 화합으로 일어난 것도 아닙니다. 세존에게 생기는 육신상의 질병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업으로부터 생긴 것이 아니고, 나머지 여섯 가지 원인 중 하나에 관계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인 중의 성인인 세존께서는 상윳타 니카아야(相應部)의 최고 묘전(妙典)에서 모올리야시이바카의 물음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했기 때문입니다.
`시이바카야,이 세상에는 담즙을 원인으로 하여 생기는 고통이 있다. 시이바카야, 담즙을 원인으로 하여 생기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너는 응당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담즙을 원인으로 하여 생기는 고통이 있다는 것은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이바카야, 수행승과 바라문들 가운데는 개체가 받는 즐거움이나 괴로움이나 또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것 들이 모두 전생에 지은 업에 기인한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 그런 생각은 확실성을 넘어 있고, 또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을 넘어 있으므로, 나는 그러한 수행승과 바라문들은 잘못된 견해를 가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시이바카야, 가래를 원인으로 하여 생기는 고통등과 세 가지 기액(氣液)의 화합으로 생기는 고통도 있고, 불규칙한 섭생으로 생기는 고통도 있고, 심한 상처로부터 생기는 고통도 있고, 업보에 의하여 생기는 고통도 있다. 시이바카야, 업보에 의해서도 고통이 생긴다는 것을 너는 응당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업보에 의하여 고통이 생겼다는 것은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시이바카야, 그러나 수행승과 바라문들 중에는 개체가 받는 즐거움이나 괴로움이나 또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것들이 전생에 지은 업에 기인한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 그러한 생각은 확실성을 넘어 있고, 또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을 넘어 있으므로, 나는 그들의 견해는 잘못이라 말하는 것이다.'
대왕이여, 그러므로 모든 고통이 업의 결과인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세존께서 모든 죄악을 다 태워 없애고 부처님이 되셨다는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정말 그렇습니다.
그대가 말씀하신 그대로라고 믿습니다.     

 

 

9. 부처님(如來)에게 다시 더 수행해야 할 것이 있는가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 비구들은 말하기를
`부처님(如來)은 성취할 모든 것을 보리수 아래서 이미 다 이루시어, 그 이상 수행해야 할 아무것도 없다. 이미 성취한 것에 더 부가해야 할 아무 것도 없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성도한 뒤 곧 석 달동안 홀로 무아의 명상에 잠기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만일 첫 번째 말이 옳다면 두 번째 이야기는 잘못이오, 또 만일 두 번째 이야기가 옳다면 첫 번째 말이 잘못입니다. 성취할 것을 이미 다 이룬 사람은 홀로 명상에 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수행해야 할 것이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에게만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앓는 사람에게 의약이 필요하지, 건강한 사람에게 의약이 필요치 않는 것과 같으며, 또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이 필요하지, 배가 찬 사람에게 먹을 것이 필요치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도 양도논법의 난문으로써, 이제 그대에게 제출되었으니, 그대는 이 난문을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대왕이여, 두 가지가 다 진실입니다. 무아의 명상에는 많은 공덕이 있습니다. 모든 부처님(如來)은 홀로 무아의 명상에 들어 부처님(全知者)이 되었고, 그 선공덕(善功德特益)을 회상하면서 명상의 수행을 실천했습니다.

이를테면 왕으로부터 높은 지위를 얻고 많은 재산을 받은 사람이, 그로 인한 복을 누리면서 끊임없이 왕에게 봉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부처님은 홀로 무아의 명상에 들어 부처님이 되었지만, 그 선공덕을 회상하면서 더욱 명상의 수행을 실천했습니다.
또 중병에 걸려 고통을 받는 사람이 약을 써 건강을 회복하고서도, 그 약의 효능을 회상하면서 계속 약을 복용하는 것처럼, 모든 부처님들은 부처님이 된 다음에도 그 선공덕을 회상하면서 더욱 명상의 수행을 실천했습니다.
대왕이여, 명상의 선공덕(特益)은 28가지이며, 모든 부처님은 그러한 선공덕을 감지하면서 명상의 수행에 전념했습니다. 28가지 선공덕이란, 명상하는 자를 수호하며, 장수하게 하며, 체력을 주며, 잘못이 생기지 않게 하며, 불명예를 제거하고, 명성을 주며, 불만족을 없애고, 즐거움(滿足)을 주며, 공포를 없애고, 자신을 주며, 게으름을 없애고, 분발시키며, 탐욕을 없애고, 노여움을 진정시키고, 미망(迷妄=癡)을 없애며, 자만심을 죽이고, 모든 의심을 타파하고, 마음을 평화(專一)롭게 하고, 마음(意)을 부드럽게 하고, 기쁜 마음을 일으키고, 존엄(存嚴)하게 하고, 이익되게 하고, 존경을 받게하며,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며, 모든 형성 작용(諸行)의 무상한 본성을 보여주며, 다시 태어나지 않게 하고, 출가자의 모든 지위(沙門位)를 얻게 합니다. 대왕이여, 이것들이 명상의 28가지 선공덕으로, 모든 부처님은 그러한 선공덕을 감지하며, 명상의 수행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나 대왕이여, 모든 부처님은 열반적정한 상태의 기쁨인 선정(禪定)의 즐거움을 갈망하기 때문에, 목적을 확립하고 홀로 명상의 수행에 전념했습니다.
대왕이여, 모든 부처님이 명상의 수행에 전념한데는 네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네 가지 이유 즉 안락하게 살기 위하여, 공덕을 결함없이 풍요하게 하기위하여, 명상은 예외 없이 신성한 것에로 통하는 길이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이 명상을 칭찬하고 찬미하고 칭송하고 찬탄했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은 명상의 실수(實修)에 전념했습니다. 이것들은 모든 부처님이 명상의 실수에 전념하는 이유입니다. 대왕이여, 이같이 모든 부처님은 수행해야 할 어떤 것이 아직 남아 있거나, 이미 성취한 것에 더 부가해야 할 어떤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명상의 뛰어난 선공덕을 감지하기 때문에 홀로 명상의 실수행에 전념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정말 그렇습니다.
그대가 말씀하신 그대로라고 믿습니다.     

 

 

10. 신통력(神通力)을 칭찬하는 이유

 

 

나아가세나 존자여,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아난다(阿難)야, 부처님(如來)은 네 가지 신통력의 근거(四如意足, 또는 四神足)를 생각하여 철저하게 훈련하고 닦아서 그 근거에 도달했으며, 그것을 정신의 발전 수단과 계발 근거로서 사용할 수 있도록 통달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원하기만 한다면 1겁이나 1겁의 남은 기간 동안 이 세상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또 `이 시간으로부터 석달이 지나면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에 들(死滅)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일이 있습니다. 두 가지 말씀 중 첫 번째 말씀이 옳다면, 두 번째 말씀은 잘못이오, 또 두 번째 말씀이 옳다면, 첫 번째 말씀은 틀림 없이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은 아무 때나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또 사람을 현혹시키는 말을 하지 않으며, 진실이나 사실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매우 미묘하고 해명하기 어려운 양도논법의 난문입니다. 이 난문이 이제 그대에게 제출되었습니다. 이단(異端)의 그물코를 풀어 헤쳐 한 쪽으로 치우고 반대자의 논리를 타파해 주십시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두 가지를 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겁(劫)은 인간의 수명의 기간을 뜻합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자신의 능력을 치켜 올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신통력을 크게 칭찬하여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어떤 왕이 아주 빠른 발을 가지고 바람처럼 달릴 수 있는 준마(駿馬)를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왕은 그 말의 빠른 속력을 칭찬하기 위하여, 시민과 지방민과 병사와 시신과 바라문과 장자(長者)와 신하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준마는 원한다면 바다로 둘러 싸인 대지를 잠깐 사이에 건너 뛰었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왕은 지금 그 준마가 아주 빨리 달리는 것을 저 많은 사람들에게 실지로 보여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준마에게 그처럼 빠른 주력이 있고, 또 그 준마는 잠깐 사이에 그러한 대지를 건너 뛸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존께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신통력을 크게 칭찬하여, 모든 사람과 신들에게 세 가지 명지(三明,또는 三達)와 여섯가지 신통력(六神通)을 지닌 사람들, 즉 청정하고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벗어난 아라한들 가운데 앉아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아난다야, 부처님은 네 가지 신통력의 근거를 생각해 내어 철저하게 훈련하고 닦아서 그 근거에 도달했으며, 그것을 정신의 발전 수단과 계발의 근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통달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자기가 바란다면, 1겁이나 1겁의 남은 기간 동안 이 세상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고.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그러한 신통력을 가지고 계셨으며, 또 그 신통력에 의하여 그 기간 동안 이 세상에 머물러 살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저 대중 속에서 그런 신통력을 실지로 보이시지는 않았습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미래 생존의 모든 조건(有)에 관한 욕구를 벗어나, 모든 생존(有)을 버리셨습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비구들이여, 인분(糞)은 아무리 소량이라도 악취가 있는 것처럼, 나는 미래의 생존(有)에 털끝만큼도 매력이 없다. 손가락을 탁 튕기는 일 찰나의 생존이라도 나는 그것을 칭송하지 않는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모든 종류와 조건의 미래 생존(有)을 인분처럼 보셨는데, 다만 신통력을 지녔다고 해서 미래 생존(有)에 대한 탐착을 마음에 품으셨겠습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세존께서 그러한 사자후(獅子喉)를 외치신 것은 신통력을 크게 칭찬하기 위한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가 말씀하신 그대로라고 나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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