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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 1권 2장 방편품

  • 유이 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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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집자료

제 2장 절묘한 방편(方便品)

 

[민족사]

 

  그때 세존께서는 전생의 서원을 스스로 아시고 삼매에서 깨어나 사리불(샤리푸트라)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정각을 이룬 존경받는 여래께서는 깊고 한량없으며 깨닫기 어려운 부처님의 지혜를 깨닫고 계신다. 그 지혜를 성문이나 독각들은 알기 어렵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정각을 이룬 존경받는 여래께서는 과거세부터 수백 수천 코티 니유티나 되는 많은 부처님들을 섬기고 수행하며, 오랫동안 최고의 바른 깨달음을 향하여 정진 노력하고, 이전에 없던  보기드문 법을 익히고, 알기 어려운 법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바른 깨달음을 얻는 존경받는 여래의 깊은 뜻이 담긴 말씀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여래들께서는 여러 가지 절묘한 방편과 지견(知見)을 통해, 즉 원인과 이유, 비유와 인연, 언어와 해석과 교리로써 법을 설하시기 때문이며, 또 때와 맞는 절묘한 방편으로 여러 갈래로 집착하고 있는 중생들을 해탈시키시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여래께서는 위대하고  절묘한 방편과 지견의 최고의 경지에 도달해 계신다. 그분들께서는 집착과 장해가 없는 지를 지니시며,  부처님으로서의 십력(十力),  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四無畏), 열여덟 가지 부처님께 특유한 성질(十八不共法), 다섯 가지 기능(五根), 다섯 가지 능력(五力),  일곱가지 깨달음을  돕는  부분(七覺支), 선정, 해탈, 삼매, 등지(等至)라는 누구도 가지고 있지 못하는 덕성을 갖추시고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하신다.

  사리불이여, 이런 까닭에 여래들께서는  가장 보기 드문 것을 얻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리불이여,  여래 만이 여래의 법을 여래에게 설할 수가 있다. 모든 법을 여래 만이 설하며 모든 법을 여래 만이 아신다. 그 법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어떤 성질이 있는지, 어떤 본성이 있는지, 즉 법 자체, 존재양식, 상태, 특질, 본성이라는 범주에 대해  여래 만이 바로 알며, 명석한 지혜를 지니신다."          
  세존께서는 다시 그 의미를 알게 하시려고 다음과 같이 게송을 설하셨다.

  천신과 인간을 포함한 이 세간에 계시는 부처님들의 수는 무량하다. 모든 중생이 그 부처님들을 모두 알 수는 없다. 부처님들의 힘과 해탈과 두려움 없는 자신이 어떤 것인지 또 부처님들의 특성이 어떤 것인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수코티의 많은 부처님들을 섬기며 내가 행한 수행은 심원하고 미묘하며 알기 어렵고 가늠하기가 아주 어렵다. 사유를 초월한 수코티의 겁 동안 닦은 수행의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지 나는 깨달음의 자리에서 보았다.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며 어떤 것이며 또 어떤 상태인지 나도 알고 있으며 다른 세간의 여래들께서도 알고 계신다.
  그것을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것을 나타내는 말도 없다. 이 법을 설했을 때 이해할 수 있는 중생은 이 세간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신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보살들을 제외하고는. 부처님의 성문으로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여 선서의 칭찬을 받고 더러움이 멸하여 지금의 몸이 윤회의 마지막 몸인 성문들도 여래의 지혜를 알 수는 없다. 설령 모든 세계가 사리불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차 그들이 하나가 되어 생각하더라도 선서의 지혜를 알 수는 없다. 비록 그대와 같은 현자들로 시방세계가 가득 차고 또 그 밖의 성문들로 전세계가 가득 찬다 하더라도 지금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선서의 지혜를 고찰한다 하더라도 내가 지닌 무량한 부처님의 지혜를 그대로 알 수는 없다.
  번뇌가 없고 근기가 예민하며 윤회의 마지막 몸인 독각들이 마치 갈대나 대나무로 차 있는 숲처럼 사방에 가득하다고 해서 그들이 하나가 되어 나의 최고의 가르침을 수코티 니유타 겁 동안 생각한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지혜의 진실한 의미를 알 수는 없다. 새로운 탈것을 타고 수코티의 많은 부처님들을 공양하고 가르침의 의의를 분명히 이해하고 많은 법을 설하는 보살들이 시방에 가득하다고 하자. 마치 갈대가 전세계에 빽빽하게 가득 차 있는 것과 같다고 하자. 그들이 하나가 되어 여래께서 보이신 법을 직접 고찰하고 강가 강의 모래알 수처럼 무량한 코티 니유타 겁 동안 한 마음이 되어 미묘한 지혜로써 고찰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지혜로는 여래가 직접 보이신 법을 알 수는 없다. 강가 강의 모래알 수처럼 많은 불퇴전의 보살이 있어 한 마음이 되어 고찰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지혜로는 이 법을 알 수 없다.
  온갖 심원한 법은 미묘해 세상의 상식을 초월하며 더러움을 벗어나 있는데 그것을 부처님께서는 깨달으셨다. 그 법이 어떤 것인지 나와 시방의 여래께서는 알고 계신다. 사리불이여, 여래께서 설하셨을 때 그것을 믿도록 하여라. 위대한 성선인 여래께서는 잘못된 것을 설하실 분이 아니며 오랫동안 최고의 진리를 설하고 계신다. 모든 성문과 독각의 깨달음을 향하고 있는 사람들과 내가 열반 속에 머물게 하여 괴로움의 연속으로부터 해탈시킨 사람들에게 나는 설한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최고의 절묘한 방편이다. 그 방편으로 세간에 많은 법을 설하고, 이것저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해탈시키기 위해 세 가지 탈것(三乘)을 설한다.'

그때 사부대중이 모인 가운데에  위대한 성문인 교진여 비구를 비롯해  번뇌를 끊고 자재를 얻은 1천 2백 명의 아라한들과 성문의 길을 지향하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들과 독각의 길을 지향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도대체 어떤 이유와 원인으로 세존께서는  여래들의 절묘한 방편을 크게 칭찬하시는 것일까? 세존께서 깨달으신 법은 심원한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또 모든 성문과 독각들은 알기 어려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떤 까닭에서일까?  아무튼 세존께서 해탈은 오직 하나라고 하신 것으로 보아 우리들도 부처님의 법을 얻고 열반을  얻었다. 세존께서 그렇게 설하신 의미가 우리는 이해되지 않는다.'

  사리불 존자는 마음으로  사부대중에게 의문이 있음을 알고, 또 자신도 부처님의 법에 의문이 있었으므로 세존께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어떤 이유와 인연에서 세존께서는 거듭 여래들의 절묘한 방편과 지견과 설법을 칭찬하시는 것이옵니까?  또 '나는 심원한 법을 깨달았다'  또는 '깊은 의미가 담긴 말은 알기 어렵다'라고 계속 설하시는 것이옵니까?  이런 가르침을 저는 이전에 직접 들은 적이 없사옵니다. 사부대중도 의문을 품고 있사옵니다. 세존께서 여래의 심원한 법에 대해 거듭 찬탄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시옵소서."
  그때 사리불 존자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오늘 인간의 태양인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사옵니다.
  '헤아릴 수 없는 힘과 해탈과 선정을 나는 얻었다. 깨달음의 자리에서 증득하신 법을 당신께서는 찬탄하셨는데, 아무도 당신께 질문하지 않았사옵니다. 당신께선 깊은 의미가 담긴 가르침을 찬탄하셨는데 아무도 당신께 질문하지 않았사옵니다. 누구의 질문도 받지 않으신 채 설하시고 자신의 수행을 찬탄하시옵니다. 지혜를 얻으신 것을 찬탄하시며 그것이 심원한 것을 설하시옵니다.
  지금 해탈을 얻어 번뇌가 없으며 열반을 의지처로 하는 사람들이 '여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하고 의문을 품고 있사옵니다. 독각의 깨달음을 구하고 있는 자도 비구와 비구니, 성문 들도 천신, 야차, 건달바, 마후라가 들도, 서로 물어보고 의문스러워 갖가지로 생각하면서, 인간의 최고자이신 당신을 우러러보고 있사옵니다. 위대한 현자시여, 부디 설명해 주시옵소서.
  가장 뛰어난 부처님께서 여기 있는 성문들 중 사리불이 최고의 완성에 도달하리라고 설하셨지만 인간의 최고자인 부처님이시여 저 자신도 스스로의 경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사옵니다. '그 때 내게 설해 주신 수행법이 열반에 이르는 궁극적인 것일까'라고. 훌륭한 북소리의 소유자이신 부처님이시여 말씀을 들려주시옵소서. 이 법을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시옵소서.
  여래의 친아들들은 서서 합장하면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사옵니다. 강가 강의 모래알 수처럼 많은 수코티의 천신들과 용과 야차, 그리고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보살들이 8만 명이나 있사옵니다. 또 수천 코티의 국토에서 모인 왕들과 전륜왕들도 있사옵니다. 이 모두가 합장, 공경하면서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어떻게 해야 수행을 완성할 수 있을까'하고.

  이렇게 말씀드렸을 때, 세존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그만두어라. 그 의미를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의미를 설명하면, 천신들도 세간의 중생들도 두려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리불 존자는 다시 간청했다.
  "세존이시여, 그 의미를 말씀해 주시옵소서. 이곳에 있는 수백 수천 코티 니유타의 중생들은 과거에 많은 부처님들을 뵈었기 때문에 지혜를  갖추고 있사옵니다. 그들은 세존의  말씀을 믿을 것이오며 신뢰할 것이옵니다."
  그 때 사리불 존자는 다음과 같이 한 구절의 게송을 올렸다.
 
  인간의 최고자시여, 분명히 설해 주시옵소서. 이곳에는 수천의 중생이 있사온데 그들은 신앙이 두터우며 선서에게 존경심을 갖고 있어 세존께서 말씀하신 법을 이해할 것이옵니다.

  세존께서는 사리불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그 의미를 분명히 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천신들도 세간의 중생도 그 의미를  설명하면 두려워할 것이며, 교만한 비구들은 대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는 다음의 게송을 설하셨다.

  그 법을 여기서 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지혜는 미묘해서 분별을 초월한 것이다. 법을 설하면, 교만하고 어리석으며 무지한 자들은 그것을 비방할 것이다.

  사리불을 세 번이나 거듭 세존께 간청했다.
  "세존이시여, 그 의미를 설해 주시옵소서. 이곳에는 저와 같은 수백의 중생이  있사오며, 또 그 밖에도 수백 수천 코티 니유타의 중생이 있어, 그들은 전생에 여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는 자들이옵니다. 그들은 세존의 말씀을 믿을 것이며,  신뢰할 것이며, 지킬 것이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오랫동안 행복과 이익과 안락이 될 것이옵니다."
  사리불 존자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올렸다.
 
    인간의 최고자시여, 법을 설해 주시옵소서.
    저는 가장 연장의 아들로서 당신께 간청하옵니다.
    이곳에 수천 코티의 중생이 있사온데
    그들은 당신께서 설하신 법을 믿을 것이옵니다.
    또 과거세에 당신께서 오랫동안 성숙시킨 중생들도
    모두 합장하며 이곳에 있사옵니다.
    그들도 당신의 법을 믿을 것이옵니다.
    저와 같은 비구가 1천 2백 명 있어
    그들도 최고의 깨달음을 지향하고 있사온데
    그들을 보시고 설해 주시옵소서.
    그들에게 최고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시옵소서.

  세존께서  사리불이 세 번이나 설법을 간청하시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그대는 세번이나 간청했다.  그런 그대에게 어찌 설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잘 듣거라. 마음곳으로 생각하거라. 그대에게 설하겠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곳에  우쭐대고 있던 5천 명의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의 두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는 그곳을 떠나가 버렸다. 왜냐하면 우쭐대는 자들은 과거의 선하지 못한 행위로 인해,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의 결점을 알지 못하고 그곳을 나가자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그것을 인정하셨다.

  세존께서 사리불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모임에 필요 없는 자와 기력이 없는 자가 없어지고 신앙의 핵심 위에 선 자만이 남게 되었다. 교만한 자들이 이곳을 떠났으니 잘된 일이다. 이제 그 의미를 설하겠다."

  사리불이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설해 주시옵소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언젠가 여래께서는 이런 식으로 설법하신다. 그것은 예를 들면 아주 드물게 피는 우담바라꽃이 언제가 피게되는 것처럼, 여래께서도 언젠가 이런 설법을 하신다. 나를 믿으라. 사리불이여, 나는 진실을 말하는 자이며 있는 그대로 말하는 자이며 사실과 어긋나지 않게  말하는 자이다. 깊은 의미가 담긴 여래의 말씀은 알기 어렵다.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설명하시며 말씀으로 나타내시는 비유를 사용하시고, 또 수백 수천이나 되는  여러 가지 절묘한 방편으로  법을 명백히 하시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바른 법은 사려분별을 초월하여 있으며, 여래 만이 이해하신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오직 한 가지 해야 할 큰일을 위하여 세간에 나타나시기 때문이다. 그 큰일이란 여래의 지견을 중생들이 얻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 여래의 지견을 중생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여래의 지견으로  중생들을 깨달음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여래의 지견을 중생들이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나타나신다. 여래의 지견의 길로 중생들이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여래께서는  세간에 나타나신다. 사리불이여, 이것이 여래께서  해야 할 가장 큰일이며,  세간에 나타나시는 유일한 목적이다.
  사리불이여,  이처럼 여래께서는 해야 할 오직 한 가지 큰일을 하시는 분이시다.  나는 여래의 지견을 얻은 자며 중생들에게 보이는 자며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자며, 또 그것을 깨닫게 하는 자며 그 길로 들어가게 하는 자다. 사리불이여, 나는 단 하나의 탈것(一佛乘)에 대해  중생들에게 설한다. 그것은  부처님의 탈것으로 그 밖에 제2, 제3의 탈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시방세계에서 이것이 법의 본래 모습이다.
  사리불이여, 과거세에도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은 존경받는 여래가 계셔서,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안락을 위해, 천신과 인간 등 대중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해 이 세상에 출현하셨다.  그 부처님들께서  중생들의 믿음과 소질과 소망이 다른 것을 아시고 그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설하시고 원인, 이유, 비유, 인연, 말의 해석 등 여러 가지 절묘한 방편으로 법을 설하셨는데,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단 하나의 탈것에 대해 중생들에게 설하셨다.
  즉 일체지자가 되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부처님의 탈것을 설하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중생들에게 여래의 지견을 얻게 하고 보이시고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깨닫게 하고 그 길로 들어가는  법을 설하신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여래들로부터 직접 바른 법을 들은 중생들은 모두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었다.
  또 사리불이여,  미래세에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은 존경받는 여래들이 계셔서,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안락을 위해, 그리고 천신들과 인간 등 대중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해 이 세상에  출현하실 것이다. 그 부처님들께서도 중생들의 믿음과 소질과 소망이 다른 것을 아시고,  그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설하시고  원인, 이유, 비유, 인연, 말의 해석 등 여러 가지 절묘한  방편으로  법을 설하실 것이며, 모든 미래의  부처님들께서도 단 하나의 탈것에 대해 중생들에게 설하실 것이다.
 즉 일체지자가 되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부처님의 탈것을 설하실 것이다. 달리 말하면,  중생들에게 여래의 지견을 얻게 하시고 보이시고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그 길로 들어가는 법을 설하실 것이다. 그래서 미래의 여래들로부터 직접 바른 법을 들은 중생들은 모두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또 사리불이여,  현재에도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은 존경받는 여래들이 계셔서,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안락을 위해 법을  설하고 계신다. 그 부처님들께서도 중생들의 믿음과 소질과 소망이 다른 것을 아시고,  그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설하고 원인, 이유, 비유, 인연, 말의 해석 등 여러 가지 절묘한 방편으로 법을 설하고 계시는데, 그 부처님들께서도 단 하나의 탈것에 대해 중생들에게 설하신다.
  즉 일체지자가 되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부처님의 탈것에 대해 설하고 계신다. 달리 말하면, 중생들에게 여래의 지견을 얻게 하고 보이고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깨닫게 하고 그 길로 들어가는 법을 설하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여래들로부터 직접 그 법을 들은 중생들은 모두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사리불이여,  나 또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은 존경받는 여래로써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안락을 위해, 그리고  천신과 인간 등 대중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해 법을 설한다. 중생들의 믿음과 소질과 소망이 다른 것을 알아서,  그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설하고 원인, 이유, 비유, 인연, 말의 해석 등 여러 가지 절묘한 방편으로 법을 설하는데, 나 역시 단 하나의 탈것에 대해 중생들에게 설한다.
  즉 일체지자가 되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부처님의 탈것에 대해 설한다. 달리 말하면, 중생들에게 여래의 지견을 얻게 하고 보이고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깨닫게 하고 그 길로 들어가는 법을 설한다.  그래서 지금 나의 설법을 듣는 중생들은 모두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그러니 사리불이여, '과거, 미래, 현재의  시방세계 어디서든 제2의 탈것은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제3의 탈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사리불이여,  여래들께서는 시대의 오탁(汚濁), 중생의 오탁,  번뇌의 오탁, 견해의 오탁,  수명의 오탁 속에서 이 세상에 출현하신다. 여래들께서는 중생들이 그런 오탁 속에 있으며, 탐욕스럽고 선근이 적은 것을 아시고, 단 하나인 부처님의 탈것을 절묘한 방편으로써 세 가지 탈것으로 나누어 설하신다. 성문이든 아라한이든  독각이든 이것을 여래의 방편이라고 듣고 이해하고 깨닫지 않는다면, 그들은 성문도 아라한도 독각도 아닐 것이다.
  또 사리불이여, 비구든 비구니든  스스로 아라한이라고 칭하면서 깨달음을 향한 서원은 세우지 않은 채 '나는 부처님의 탈것과는 인연이 없다'고 하거나,  '이 몸이 윤회하는 나의 마지막 몸이다'라고 우쭐댄다면, 그대는 그 자를 교만한 자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여래가 눈앞에 계실 때 아라한으로서 번뇌를 끊어버린 비구가 이 법을  듣고 믿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또 도리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래가  이미 열반에 들었을 경우에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여래께서 열반에 들었을 경우는 성문들이 여러 경전들을  간직하거나 설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또 사리불이여, 다른 여래들이 이 세상에 계실 때는, 그들은 부처님의 법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그대들은 나를 믿고 신뢰하고 따라야 한다.  여래의 말씀에는 거짓은 없다. 탈것은 오직  부처님의 탈것이 있을 뿐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의미를 다시 분명히 하시고자 다음의 게송을 설하셨다.

  그때 교만하며 믿음이 없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들의 수는 5천 명을 넘었다. 구멍투성이인 계율의 학문을 익힌 어리석은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번뇌의 상처를 숨기면서 떠났다. 설령 이 법을 들으려 한다 해도 그들은 그만한 미덕을 갖추지 못했으며 오히려 이곳의 오점에 지나지 않으므로 나는 그들이 떠나는 것을 묵인했다. 이리하여 법회의 준비는 끝났다. 법회가 청정하게 되어 불필요한 자와 기력이 없는 자가 사라지고 가장 뛰어난 정수만이 남았다.
  사리불이여, 최고자이신 부처님께서 어떻게 이 법을 깨달으셨는지 설하겠다. 또 세간의 지도자이신 부처님들께서 어떻게 수백이나 되는 절묘한 방편으로 법을 설하시는가를. 부처님들께서는 믿음이 각각 다른 수코티나 되는 중생들의 의욕과 행동과 행위 그리고 과거에 쌓은 선업을 아시고 설하신다. 나도 여러 가지 해석과 설명으로 중생들이 이 법을 얻도록 한다. 또 여러 가지 원인과 수백의 비유로 각각의 상황에 맞게 여러 중생들을 만족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러 가지 경전을 설하며 시송, 전설담, 전생담, 기서담, 인연담과 수백의 비유담, 가영, 논의의 아홉 가지 법도 설한다.
  무지하고 천한 가르침을 즐기며 또 부처님 밑에서 수행한 적도 없으며 생사윤회에 집착해서 고뇌하는 그들에게 나는 열반을 보인다. 여래께서는 부처님 지혜를 사람들이 깨닫게 하시려고 이와 같은 방편을 쓰신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그대들도 이 세상에서 부처님이 될 것이다' 이렇게 설하시는 일은 결코 없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적절한 시기를 보아 법을 설하시기 때문이다.
  오늘은 적절한 시기이므로 나는 이곳에서 참으로 결정적인 법을 설하겠다. 아홉 가지로 된 나의 가르침은 중생들의 능력에 따라 설해진다. 그것은 사람들은 부처님 지혜로 들어가도록 설하는 방편의 가르침이다. 이곳에 언제나 청정하고 명석하며 결백하고 온순한 부처님의 아들인 보살들이 있는데 이미 수코티나 되는 많은 부처님들 밑에서 공양을 했다. 그들에게 나는 여러 가지 광대한 경전을 설하겠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청정한 계를 완성했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그대들은 장래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는 자비로운 부처님이 될 것이다'라고 설한다. 이 말을 듣고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부처님이 된다고 기뻐한다. 나는 그들의 수행을 알고 다시 여러 가지 광대한 경전을 설한다. 이 최고의 가르침을 들은 자는 세간의 지도자이신 부처님의 제자이며 한 게송만이라도 듣거나 기억한다면 모두 틀림없이 깨달음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탈것은 하나이다. 제2의 탈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세간에 제3의 탈것은 결코 없다. 인간의 최고자이신 부처님께서 방편으로써 따로 설하시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처님 지혜를 분명히 하기 위해 세간의 보호자이신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출현하셨다. 하신 일은 단 하나로 제2의 탈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열등한 탈것인 소승으로써 사람들을 이끌지는 않으신다. 부처님께서 어떻게 하여 무엇을 깨달으셨든 그 속에 안주시키시는 사람들은 스스로 안주하는 곳에서 선정에 들어 해탈을 바라는 체력과 감각의 기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더러움이 없는 뛰어난 깨달음을 얻은 뒤 만일 한 사람의 중생이라도 소승 속에 있게 된다면 좋지 못한 일이며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나는 아까워하는 마음도 지니지 않으며 질투심도 없고 욕망이나 탐욕도 없다. 나는 모든 악을 끊었다. 세간을 널리 알고 있으므로 부처님인 것이다. 32상을 지닌 나의 신체는 빛을 뻗쳐 여러 세간을 비추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많은 중생들로부터 숭앙받으며 법의 본성의 표식이 되는 것을 설한다.

  사리불이여,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한다.
  '32상을 갖춘 세간을 잘 아시는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빛을 내신다. 어떻게 하면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이 될 수 있을까'라고. 그런 나의 서원은 내가 보고 생각한 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나는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아직 거기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사리불이여 '대승의 깨달음을 향해 마음을 일으켜라'하고 내가 중생들에게 설한다 해도 무지한 그들은 미혹하여 내가 바르게 설한 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과거세에도 수행하지 않고 애욕의 기쁨에 빠져 집착하고 애욕의 갈증에 겨워하는 어리석은 자인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은 애욕 때문에 불행한 생인 악취에 떨어져 여섯 가지의 생존상태인 6취를 편력하며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죽음을 되풀이해서 무덤을 늘리며 복덕이 적어 괴로워하고 있을 뿐이다. 언제나 잘못된 견해의 밀림 속에서 있다, 없다 혹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62가지 잘못된 견해를 바탕으로 그들은 진실하지 않은 것에 머물고 있다. 교만하고 사람을 속이며 마음이 비뚤어지고 기만하며 학문이 얕은 어리석은 자들을 바로잡기는 어렵다. 그들은 수천 코티의 생을 되풀이 하더라도 결코 부처님의 훌륭한 음성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사리불이여, 나는 그들에게 '괴로움의 생활을 소멸시켜라' 하고 방편인 가르침을 설하며 또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중생들에게 스스로 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 다음과 같이 설하기도 한다.
  '이 모든 존재는 처음부터 적정이며 언제나 적멸상태에 있다' 라고

  그러나 부처님의 아들들은 수행을 마쳐 미래에는 깨달은 자가 될 것이다. 내가 세 가지 탈것을 설하는 것은 절묘한 방편이다. 그러나 진실한 의미에서 도리는 하나이며 탈것도 하나이다. 따라서 지도자들의 설법도 모두 같다. 이 점에 의문을 갖는 사람이 있다면 그대는 그 의문을 풀어주어야 한다. 세간의 지도자들께서 잘못된 것을 설하시는 일은 없으며 탈것은 이것 하나로 제2의 탈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여래께서 이전에 출현하셨고 수천이나 되는 많은 부처님들께서 이미 열반하셨다. 과거의 셀 수 없는 겁 동안에 출현하신 부처님들의 수는 결코 셀 수가 없다. 모든 부처님들께서 비유를 사용하시고 이유와 인연으로 말씀하시며 수백이나 되는 절묘한 방편으로 많은 청정한 법을 설하셨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한 가지 탈것을 설하셨으며 수천 코티 중생들을 한 가지 탈것으로 나아가게 하여 그 속에서 성숙시키실 것이다.
  여래들께서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방편이 있다. 중생들의 믿음과 마음을 알아 이 방편으로 천신들을 포함한 이 세간의 중생들에게 최고의 법을 설하신다. 그곳에는 여래들 앞에서 법을 듣고 있거나 이미 다 들은 중생들이 있다. 그들은 보시도 하고 계율도 지키며 인내로써 여러 가지 수행을 완성하였다. 또 정진노력과 선정으로 부처님께 봉사하고, 지혜로 가르침을 사유하며, 여러 가지 덕행을 이루었다.
  그런 중생들은 모두 깨달음을 얻었다. 어떤 이는 이미 열반에 드신 여래께서 가르침을 펴신 곳에서 마음이 안정되었고, 그들도 모두 깨달음을 얻었다. 또 어떤 이는 열반에 드신 여래의 사리에 공양하며, 보석으로 된 수천이나 되는 많은 탑을 만들어 금, 은이나 수정으로 된 탑을, 또 어떤 이는 마노로 된 탑을, 혹은 묘목석(猫目石)오로 된 탑을, 진주로 된 탑을, 혹은 훌륭한 유리로 된 탑을, 또는 푸른 옥으로 된 탑을 세운다. 그들은 모두 깨달음을 얻었다.
  또 어떤 이는 돌로 된 탑을 만들고, 어떤 이는 전단이나 침향으로 된 탑을, 또 어떤 이는 소나무로 된 탑을, 혹은 그 밖의 다른 나무들을 조합한 탑을 만든다. 또 기쁨에 넘쳐 기와를 사용하거나 진흙을 쌓아올려 여래의 탑을 만드는 자가 있으며, 또 탑을 만들려고 황야나 험준한 곳에 모래를 쌓아올리는 자도 있다. 또 아이들 중에는 장난으로 여기저기 모래산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여래의 탑이라고 하는 아이도 있다. 이 모두가 이미 깨달음을 얻었다.
  또 어떤 이는 의식적으로 32상을 한 보석으로 불상을 만들게 한 이도 있는데, 그들도 모두 깨달음을 얻었다. 또 어떤 이는 칠보로 된 여래의 상을, 또 어떤 이는 동으로 된 여래의 상을, 또 어떤 이는 놋쇠로 된 여래의 상을 만들게 한다. 그들 모두 깨달음을 얻었다. 아연으로, 철으로, 진흙, 혹은 회반죽으로 여래의 아름다운 상을 만들게 한 이도 있는데 그들도 모두 깨달음을 얻었다. 또 벽화에다가 수백의 복덕의 상을 갖춘 완전 원만한 상을 스스로 그리거나 혹은 그리게 한 자도 있다. 그들도 모두 깨달음을 얻었다. 또 어른은 수행하면서 어린아이는 즐겁게 놀면서 벽 위에 손톱이나 나뭇조각으로 불상을 그린 자도 있는데, 그들 모두 자비심을 지닌 자가 되었고, 수코티의 중생들을 구제하고, 많은 보살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했다. 그들도 모두 깨달음을 얻었다.
  또 어떤 이들은 여래들의 사리나 탑에 진흙으로 된 상과 불상이 그려진 벽이나 모래탑에 꽃이나 향을 공양하였다. 어떤 이는 거기서 묘한 음색의 북과 법나패(法螺貝) 그리고 큰북 같은 악기를 연주하고, 또 어떤 이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을 공양하기 위해 큰 북을 울렸다. 또 어떤 이는 듣기 좋은 음색의 비파나 심벌즈나 작은 북, 장고나 피리, 일현금을 연주하고 또 아주 부드러운 음색의 에코차바 악기를 불었다. 이들 모두 깨달음을 얻었다.
  또 어떤 이는 쇠방울을 울리고 큰북 대신에 물을 두드리거나 손뼉을 치면서 여래들을 공양하기 위해 감미롭고 기분 좋은 노래를 절묘하게 불렀다. 그렇게 여러 가지로 사리에 공양하여 그들 모두 이 세상에서 부처님이 되었다. 여래의 사리에 조금이라도 공양하거나 단 한 악기로 연주하거나 또 벽에 그려진 여래의 상을 단 한 가지 꽃으로 공양하더라도 비록 산만한 마음으로 한 공양이었다 하더라도 이런 이들을 수코티의 부처님을 차례로 뵙게 될 것이다. 또 어떤 이가 탑에 두 손으로 합장하든, 창처럼 한 손으로 합장하든, 또 조금 머리를 숙일 뿐이든, 단 한 번 몸을 숙일 뿐이든, 사리를 모신 탑을 향해 단 한 번이라도 '여러 부처님들께 귀의하옵나이다'라고 한다면, 산란한 마음이든 단 한 번이든 모두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할 것이다.
  이미 열반에 들었든, 혹은 아직 이세상에 있든, 여러 여래들로부터 가르침의 이름만 들어도 그 중생들은 모두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또 미래에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수없은 부처님들이 계시는데 그 수는 헤아릴 수가 없다. 이들 여래께서도 이 방편을 설하실 것이다. 그들 여래는 절묘한 방편이 무한이 있어 그 방편으로 이 세상의 중생들을 더러움이 없는 부처님의 지혜 속으로 이끄실 것이다. 이 여래들의 가르침을 듣고 부처님이 되지 않는 중생은 한 사람도 없다. '나는 스스로 깨달음을 향해 수행하며, 다른 사람들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하겠다'는 것이 여러 여래의 서원이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미래에 수천 코티나 되는 많은 가르침을 설하실 것이다. 그때도 여래의 입장에서 단 한 가지 탈것을 설하실 것이다. 이 법의 도리는 언제나 계속되며 여러 가지 법의 본성은 언제나 빛난다. 인간의 최고자이신 부처님들께서는 이것을 아시고 '여기 일승(一乘)이 있다.'고 설하실 것이다. 법의 상주성과 법의 결정성은 이 세간에서 흔들림 없는 것으로 언제나 존재한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으신 뒤 절묘한 방편으로 설하실 것이다.
  시방세계에는 인간이나 천신으로부터 공양받는 수많은 부처님들이 계신다. 이 부처님들도 모든 중생들이 행복을 얻도록 최고의 깨달음을 이 세상에 설하신다. 최고로 적정한 경지를 깨달은 부처님께서는 절묘한 방편을 설하시고 여러 가지 다른 길을 보이지만 일승을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설하신다. 이 부처님들께서는 중생들의 행동 즉 어떤 마음으로 이전에 어떤 수행을 했는가 그리고 그들의 정진노력과 기분을 아시고 그들의 마음을 고찰해서 설하신다. 세간의 보호자인 여래께서는 지혜의 힘으로 많은 비유와 인연을 말씀하시며, 중생들 각자의 마음을 아시고 그들 각자에게 다른 수행의 길을 설하신다.
 
  나도 지금은 승리자 중의 왕인 지도자로서 중생들이 행복을 얻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갖가지 수행의 길로써 보이겠다. 나는 중생들의 마음과 의욕을 알아 많은 종류의 법을 설하며 여러 가지 방편을 사용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이것이 나에게 독특한 지혜의 힘이다.
  또 나는 가난한 중생들을 본다. 그들은 지혜와 복덕이 없으며 윤회 속을 달음질치며 악한 상황에 얽매이고 괴로움의 연속에 묻혀 있다. 욕망에 매여 있는 것은 마치 소가 자기 꼬리털에 애착하는 것과 같으며, 그들은 언제나 애욕에 눈먼 자가 되어 위대한 위력을 지니신 부처님과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가르침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생의 여섯가지의 생존상태에 얽매여 사악한 견해나 사상 속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며, 한 가지 괴로움에 이어 새로운 괴로움을 받고 있다.
  그들에 대한 나의 자비는 변함이 없다. 나는 그것을 보리수 아래 깨달음의 자리에서 알았다. 꼭 21일 동안 그 자리에 앉아 나무를 쳐다보며, 어떻게 그들을 해탈로 이끌까 생각했다. 나는 그 보리수를 눈도 움직이지 않은 채 쳐다보며 명상에 열중한 채 그 아래를 거닌다. '이 지혜는 아주 뛰어나고 세상에 드물며 중생들은 미망에 눈멀고 무지인 채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때 범천, 제석천, 사천왕, 대자재천, 자재천 그리고 수천 코티의 마루투신의 무리가 모두 합장해서 경의를 나타내며 나에게 설법을 간청한다. 그래서 나는 그 일을 생각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깨달음을 찬탄해서 설한다 해도 중생들은 괴로움에 시달린다. 어리석은 이들은 내가 설한 법을 나쁘게 말하고 악의로 비방했기 때문에 최악의 세계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니 아무것도 설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지금이야말로 적정의 열반에 들어갈 때이다'라고.
  그러나 동시에 과거의 여러 부처님들과 그분들의 절묘한 방편이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나서 '그렇다면 나도 방편으로 이 깨달음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하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가 이 법에 대해 생각했을 때 시방에 계시는 다른 부처님들께서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내시어 '좋은 일이오'라고 칭찬의 말씀을 하셨다. '세간을 이끄는 분으로 최고인 현자여 위없는 지혜를 이 세상에서 깨닫고 과거 세간의 여러 여래들의 절묘한 방편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배우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요. 우리도 부처님의 최고의 경지를 깨달았을 때 세 가지 탈것으로 나누어 설했소. 마음이 천한 무지한 인간들은 '그대들은 마침내 부처님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믿을 수 없을 것이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인연을 잘 파악해서 절묘한 방편으로 그들이 부처가 되는 결과를 얻도록 널리 찬탄해서 많은 보살들을 깨달음의 길로 이끄는 것이오'라고.
 
  그때 나도 부처님의 훌륭한 말씀을 듣고 기뻐했다. 기뻐서 나는 그분들께 말씀드렸다.
  '아주 뛰어난 설법자이신 성선들이시여, 경배하옵나이다. 세간의 현명한 지도자이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행하겠사옵니다. 저도 이 두렵고 흔들리는 세계에 사람들이 타락한 한가운데 출현한 것이옵니다'라고.
 
  사리불이여, 이와 같이 알고 나는 그때 바라나시를 향해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적정의 경지에 속하는 법을 다섯명의 비구에게 방편으로 설하였다. 이렇게 해서 나의 법륜이 움직였다. 즉 열반이라는 말도 이 세간에 있게 되었고, 아라한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로 법이라는 말도, 승단이라는 말도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나는 법을 설하였고, 열반의 경지도 분명히 해서, 이것이야말로 생사윤회와 괴로움의 끝이라고 언제나 설하였다.
  그리고 그때 사리불이여, 나는 인간의 최고자의 아들인 보살들을 보았다. 그들은 이미 가장 뛰어난 최고의 깨달음을 향하여 뜻을 굳혔으며 그 수는 수천 코티나 되었다. 그들은 내 곁으로 와서 모두가 존경심을 가지고 합장했다. 그들은 이전에 여래들로 부터 여러 가지 절묘한 방편인 법을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최고의 법을 설할 때가 되었다. 그것을 위하여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지금 여기서 최고의 깨달음을 설해야겠다. 사물의 모양만 생각하고 생각이 어리석으며 무지하고 교만한 자는 이 가르침을 믿기 어렵지만, 그러나 보살들은 나의 설법에 귀기울일 것이다'라고.

  그때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환희에 넘쳐 모든 소심한 마음을 버리고 보살들의 한가운데에서 법을 설하여 그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였다. 이런 부처님의 아들들이 있는 것을 보고 사리불이여, 그대의 의심도 사라졌을 것이다. 1천 2백 명의 아라한들은 모두 이 세상에서 장래 부처님이 될 것이다. 과거의 여래들과 미래의 여래들과 나에게 있어 이 법의 본래의 모습이 얼마나 생각을 초월한 것인지 지금 그대들에게 설하겠다.
  이 세상에 언젠가 어느 곳에서 어떤 방법으로 여래께서는 나타나실 것이다. 무한을 꿰뚫어보는 눈을 가진 분들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여도 이 법을 아주 드물게 설하여질 뿐이다. 이와 같은 최고의 법을 얻는 것은 수코티 니유타 겁이 지나도 아주 어려울 것이다. 또 최고의 법을 들어도 그것을 믿으려는 중생들은 아주 드물 것이다. 마치 얻기 어려운 우담바라꽃과 같아서, 그것이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든 나타난다면,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며, 천신을 포함한 전세계의 상서로운 일이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자가 이 법이 바르게 설해지는 것을 듣고 기뻐하여 찬탄의 말을 한마디라도 한다면 그는 모든 부처님을 섬긴 것이 될 것이다. 이는 우담바라꽃 이상으로 상서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이 점을 의심하지 마라.

  나는 보살을 최고의 깨달음으로 향하도록 격려하며 '나에게는 이 지상에서 한 사람도 성문의 길을 걷는 자는 없다'고 법의 왕인 나는 선언한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그대의 비밀의 가르침으로 하라. 내 모든 제자들과 훌륭한 보살들도 이 비밀의 가르침에 따르도록 하라. 다섯 가지 오탁이 있는 시대(五濁惡世)의 중생들은 열등하고 악의에 찬 자이며 애욕에 눈멀고 어리석은 생각밖에 하지 않으며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단지 하나인 나의 탈것을 과거의 여래께서도 설했다는 말을 듣고 미래의 중생들은 혼란스러워 이 경을 비방한 뒤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청아하며 이미 가장 훌륭한 최고의 깨달음을 지향하는 중생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두려움 없이 설법하는 자로서 그들에게 일승을 설하고 무한히 칭찬할 것이다. 여래의 이와 같은 설법은 가장 뛰어난 절묘한 방편이며 깊은 의미가 담긴 많은 말씀으로써 설해진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세간의 스승이시며 성자이신 부처님들의 깊은 의미가 담긴 말씀을 알아 의심을 버린다면 부처님이 될 것이다. 그것을 기뻐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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