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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본 [불연 이기영] 석가 7 제자들과의 대화

출처 수집자료

석가 7


李箕永 著

 

 


목  차


序文
제1장 석가의 탄생 
제2장 석가 탄생 이전의 인도 
제3장 석가의 젊은 시절 
제4장 修道苦行 
제5장 成道
제6장 最後의 說法
제7장 王舍城에서의 敎化
제8장 祇園精舍에서의 說法
제9장 弟子들과의 對話

       1. 알굴리말라(지만外道)
       2. 제분인부除糞人夫 니이티
       3. 열 네 가지 罪惡
       4. 연화색蓮花色 비구니 이야기
       5. 비구니승단의 성립
       6. 제일가는 제자들
       7. 마하카삽파 존자
       8. 사리풋타의 교훈
       9. 어리석기 때문에 깨달았네
      10. 탄금의 법
      11. 다만 때가 옴을 기다리네
      12. 발 씻은 물은 마실 수 없다
      13. 전도자의 결의
      14. 일곱 가지의 아내
      15. 병상의 설법
      16. 군적 오백인의 교화

제10장 석가의 晩年과 入滅
제11장 불멸 후의 불교
附記 佛傳 및 釋迦 稱號考
석가의 年譜
文獻

 

 

제9장 弟子들과의 對話

 

 
1. 앙굴리말라(指▩外道)


코살라국에 앙굴리말라(指▩, 손가락으로 만든 장식물이란 뜻)라고 하는 흉악한 도적이 있었다. 그는 성질이 매우 잔인하여, 항상 손에 피를 칠하고 사람 죽이는 것을 일삼고 있었다. 모든 생명 있는 것에 대한 연민(憐憫)의 정이란 하나도 없고 죽인 사람의 손가락 끝을 모아 목걸이를 만드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숲 속, 나무 밑, 산골짜기 혹은 굴 속 등으로 그 거처를 바꾸어 살며, 곳곳에 나타나 그와 같은 무서운 일을 저질렀으므로 어느새 마을 사람들은 멀리 사방으로 흩어지고 가까운 거리도 나날이 쇠잔(衰殘)해 갔다. 그리하여 그 지방 사람들은 왕궁 앞에 모여, 그런 사정을 진정하고 속히 이 도적을 잡아 줄 것을 청원하기에 이르렀었다.
그 때 부처님은 기원정사를 나와, 사밧티 성으로 걸행(乞行)을 하기 위하여 들어왔다. 이른 아침부터 길거리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의 근심을 알고 탁발을 끝낸 후, 부처님은 홀로 도적이 출몰하는 곳으로 향해 그곳의 큰길을 걸었다. 길 가던 소먹이는 사람, 농사꾼 등이 모두 지나가는 사문을 보고 놀라 이와 같이 말했다. “스님, 이 길을 가지 마십시오. 열 명, 스무 명, 서른 명이 같이 간다해도 모두 앙굴리말라의 밥이 되었는걸요.”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사코 부처를 제지했으나, 그는 잠자코 걸음을 옮겨갔다.
도적 앙굴리말라는 멀리서 한 사문이 오는 것을 보고, ‘저 중은 일행(一行)도 없이 다만 홀로 이 길을 오는군. 내 목걸이의 손가락 수를 더 늘려야겠다’하고 생각했다. 그는 칼과 방패를 쥐고 활에 화살을 달고 부처님의 뒤를 재빨리 미행(尾行)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도적의 발걸음으로는 쉽사리 부처님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었다. 도적은 화가 나 그 자리에 서서 큰 소리로 “야 저기 가는 중, 잠시 서라”하고 외쳤다. 부처님은 그 말소리를 듣고,
“나는 처음부터 서 있노라. 너야말로 속히 서라.”
이렇게 말하였다. “뭐라고? 너는 걸어가는 중인데 ‘나는 서 있노라’하고, 나는 서 있는데 ‘너야말로 속히 서라’하니 그게 무슨 말이냐?”하고 도적은 반문했다. 부처님은 엄숙하게 이렇게 말했다.
“앙굴리말라야, 실로 나는 서 있노라. 나는 항상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해 해를 끼치는 마음을 버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너는 살아있는 것들에 대해 아무런 자제의 마음도 없이 날마다 사람의 목숨을 해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서 있고, 너는 서 있지 못하는 것이다.”
도적은 이 말을 듣고, 칼을 땅 위에 던져버리고 부처님 발 밑에 몸을 엎드려 절하고 그의 제자 되기를 원했다. “스님, 저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이제 모든 지나간 잘못을 버리고자 하옵니다.” 이렇게 말하자, 부처님은 “오라, 비구여”라고 말하면서 그를 데리고 기원정사로 돌아왔다.


앙굴리말라에 대해서는 팔리장경 중 <맛지마니카야>(中部) <테라가타>(長老偈) 그밖에 <律大品> 등에 나오고, 산스크리트 문헌으로는 <라리타비스타라>(普曜經) 등에 언급이 있는데, 이 이야기는 점차로 증광(增廣)되었던 모양으로 한역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개의 단독경이 있을 정도로 윤색(潤色)이 많아졌던 것 같다. 

 

① 축법(竺法) 한역(漢譯) 불설앙굴마경(佛說鴦堀摩經)
② 법거(法炬) 한역(漢譯) 불설앙굴계경(佛說鴦堀▩經)
③ 求那跋陀羅 한역(漢譯) 앙굴마라경(央堀魔羅經)

 

위에 인용한 부처님의 말씀 중 ‘서 있다’ ‘속히 서라’는 말 같은 것은 후대에 중국 당송(唐宋)의 선가(禪家)에서 발달시킨 공안(公案)의 원형(原型)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것은 부처님이 흔히 쓴 독특한 교화법(敎化法)의 하나라고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말씀과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자비로운 교훈을 아울러 인용해 두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잡아함(雜阿含)>에 부처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도적이 있어 너를 붙잡고 톱으로 육신을 벤다고 할 때 너희들이 도적에 대하여 미워하는 마음, 매도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스스로 장애를 만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만일 톱을 가지고 네 몸을 자르려고 하면 오히려 그 사람에 대해 불쌍한 생각을 일으키되 원한(怨恨)을 품지 말라. 실로 사방의 경계에서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라. 이렇게 공부하여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도적 앙굴리말라를 그의 출가제자로 삼고 제타 숲으로 돌아간 뒤 얼마 있다가 국왕 파세나디(波匿)는 오백 명의 군인들을 이끌고 도적의 행방을 찾아 헤매다가 기원정사에 들르게 됐다. 차에서 내려 도보로 가까이 오고 있던 왕을 맞이하여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군인들을 이끌고 왔느냐, 릿차비(離車라고 音譯)족이라도 치려 가는 것이냐고 물었다. 왕은 대답하여, “아니오. 사람들의 청원에 따라 앙굴리마라라는 領內의 도적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외다”하였다. 그 때 부처님은 “만일 그 도적이 그 흉악한 지난 일들을 회개(悔改)하고 출가해서 살생을 떠나 널리 착한 일을 하려고 하고 있음을 보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오”하고 물었다. 왕은 대답하여 “나는 오히려 그에게 경례할 것입니다. 일어서서 그를 맞이하고 그를 보호하겠나이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파계자(破戒者)를 누가 잘 교도(敎導)할 수가 있겠습니까?”하였다. 그 때에 부처님은 바른 팔을 들어 그 옆에 앉아 있는 한 제자를 가리켜 “왕이여, 이 사람이 바로 당신이 찾는 앙굴리마라요”하였다.
왕이 크게 두려워하여 떠는 것을 보고, 부처님은
“왕이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사람이 만일 그가 행한 지나간 잘못을 회개하면 그는 세상을 비추기를 마치 구름을 떠난 달과 같이 하는 것이오. 내 법을 듣고 최승(最勝)의 안식(安息)에 머물러 있는 그는 이제 아무도 해치는 일 없이 오히려 강한 자도 약한 자도 다 한결같이 사랑하며 보호할 것이 틀림없소”하였다.
그 말씀을 듣고 왕의 마음은 가라앉았다. 왕은 앙굴리마라에게 가까이 가 “스님이 앙굴리말라이십니까?”하고 물었다. 그 스님은 “그렇습니다. 대왕님. 저는 앞서 도적으로서 앙굴리말라라고 불리웠었습니다.” “그러면 스님, 제가 이제 스님에게 의복과 음식 상좌(牀座)와 의약을 바치겠습니다.” 스님은 대답하여,
“왕이여, 나에게는 이미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나에게는 이미 삼의(三衣)의 행자(行者)로서 모든 것이 충족되어 있으니까 말입니다.”
왕은 부처님 밑으로 가 절하고 한쪽 구석에 앉아, 
“훌륭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교도(敎導)는 최상(最上)이옵니다. 우리들이 무기(武器)로서도 마침내 항복시키지 못한 자를 세존께서는 능히 무기 없이 따라오게 하셨나이다.”
 


2. 제분인부(除糞人夫) 니이티


<현우경(賢愚經)> <대장엄경론(大莊嚴經論)> 그밖에 <장로게(長老偈)> 등을 보면 불법에 편당(偏黨)이 없다는데 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제타바나’에 가까운 사밧티성의 국운이 날로 성하여 상공업이 크게 발달하고 사방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수가 날로 늘어갔다. 그 때문에 시중(市中)에는 가옥이 난립(亂立)해서 매우 좁았으므로 변소를 집에 설치하는 사람이 적었다. 그래서 시내 사람들의 대부분은 성밖으로 나가 용변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다만 귀족이나 부자 집에만 변소가 있어서 그것이 차면 사람들을 시켜 이를 쳐가게 하였다. 이 때 ‘니이티’란 가난한 사람이 그런 집을 찾아다니며 변소를 치고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머리는 길게 자라고 옷은 헤지고 더러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루는 가득 찬 똥통을 등에 지고 이를 버리러 가는 도중에 ‘아난다’와 같이 행걸(行乞)을 하고 있던 부처님이 오는 것을 보았다. 자기 직업이 천한 것을 부끄럽게 여긴 니이티는 황급히 샛길로 들어가 그들을 피하였다. 이제 막 성외(城外)로 나아가려 할 즈음에 다시 부처님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당황하여 길을 피하려고 하다가 길가 남의 집 벽에 부딪쳐 똥통을 전부 엎지르고 말았다.
옷과 그 일대에 악취가 가득찼다. 니이티는 더욱 부처님 보기가 황송해 머리를 푹 숙이고 서 있었다.
부처님은 니이티에게 가까이 가 “너 어찌하여 내 가는 길을 피하는 것이냐? 설사 지금 옷이 더러워졌다고는 할망정 네 마음이 더할 바 없이 착하다. 그러므로 아름답기 한이 없는 향내가 네 몸에서 풍겨 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천히 여겨서는 안된다”고 가르쳤다.
부처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들은 니이티는 그때에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며 깨끗한 눈으로 부처님을 우러러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세존이 말씀하기를, 
“네가 내 밑에서 출가하기를 원하느냐?” 하고 묻자, 니이티는, 
“세존이시여, 만약 나와 같이 집안이 천한 자가 부처님의 은혜로 출가할 수가 있다면 마치 지옥의 사람을 데려다가 천상계에 두는 것이나 다름이 없겠습니다”하였다. 세존은 이렇게 설했다. 

“내 법은 깨끗한 물이 능히 모든 오물(汚物)을 다 깨끗이 씻어버리듯이, 빈부(貧富), 종성(種姓), 남녀의 차별 없이 다만 도(道)를 닦을 수 있는 자만을 구도(求導)하는 것이다. 나는 반드시 존귀하기 때문에 국왕이나 부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비천한 가문의 출신인 우팔리, 빈궁했던 슈라타도 제도하였다. 어리석은 사람, 욕심 많은 사람, 나는 이 모든 사람들을 기(機)에 따라서 구도(求導)했던 것이다. 내 법에는 편당(偏黨)이 없고, 평등하고 정도(正道)를 가르치어, 모든 중생들을 위해 안온한 정로(正路)를 만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말을 듣고 니이티는 출가할 마음을 굳게 하였다. 부처님은 아난다와 더불어 그를 이끌고 시외의 큰 강가로 가게 하여, 거기서 손수 그 더러운 몸을 씻어 깨끗하게 해주었다. 니이티는 이 때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고 사문이 될 것을 맹세하였다.
사밧티 성의 사람들은 니이티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원심(怨心)을 품고 저마다 이렇게 욕설을 퍼부었다.
“어째서 세존은 그런 천한 자에게 출가수도를 허락하셨을까? 만약 우리들이 공양을 드리는 일이 있어 부처님과 그 제자들께 와주십사 한다면 그 똥 푸는 아이, 니이티가 따라 올게 아니냐. 그 더러운 아이가 ……”

그 때 부처님은 비유를 들어 이렇게 사람들을 설복(說伏)시켰다고 한다. 

 

사람들이 천한 나무라고 여기는 아주까리(인도에서는 아주까리가 일년생 초목이 아니라 다년생 목본(木本)이 되어 있으며, 그 나무를 흔히 伊蘭이라고 한다)의 고목으로 마찰을 시키면 불이 붙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 더러운 진흙 속에서 나와도 아름답게 청련화(靑蓮花)의 꽃이 피는 것과 같이 종성(種姓), 직업(職業)으로 그 값어치를 정하기는 어렵다. 오직 그 덕행에만 의하는 것이다. 지위(地位)가 낮지만 훌륭한 행위가 있으면 너희는 마땅히 그 사람을 공양하라. 

팔리어 <장로게(長老偈)>에는 이 제분인부(除糞人夫)의 이름을 ‘스니타’라고 하고 있으므로 니이티가 정확한지 스니타가 정확한 것인지는 잘 알 수가 없다. 다만 <장로게>에 실린 이야기에는 후세의 윤색이라고 생각되는 이 스니타에게 최고신격(最高神格)인 제석(帝釋)이나 범천(梵天)마저가 합장하고 공양했다는 기술이 들어있다. 이 <장로게>에는 스니타가 출가함으로써 ‘이로써 브라흐만이 된 것이다’라는 일구(一句)가 있어 브라흐만의 신성성(神聖性)이 종성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 실로 그 마음가짐에 있음을 과감하게 설파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부처님의 혁명적 역할은 여기에도 뚜렷이 나타나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3. 열 네 가지 죄악(罪惡) - 육방예경


부처님이 어느 때 왕사성의 죽림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성(城) 안에 부유한 한 거사의 아들이 있었다. 이름을 싱갈로바다(尸迦羅越)라고 하였다. 그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시내를 나와 성(城) 밖으로 가서 의발(衣髮)을 깨끗이 하고 합장하여 동서남북상하의 육방(六方)을 예배하는 것을 그 일과(日課)로 삼고 있었다.
부처님이 탁발하는 도중 우연히 그 광경을 보았다. 그에게 가까이 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일찍이 육방을 예배하느냐고 물었다. 싱갈로바다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부처님, 저의 아버지가 임종에 즈음하여 저에게 이렇게 유언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꼭 육방을 예배하라.’ 그래서 부처님, 저는 아버님의 명(命)을 따라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옵니다.”
그 때 부처님은 “성자(聖者)의 율(律)에서는 그렇게 의미 없이 육방을 예배해서는 안되는 것이다”라고 하자 싱갈로다바는 “그러면 부처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그 가르침을 청한다. 부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성자의 길을 부지런히 가는 자는 네 가지 업구(業垢)를 떠나고, 네 가지 이유 때문에 악업을 하지 않고, 재물을 산실하는 여섯 가지 원인을 행하지 않으면, 열네 가지 악업에서 벗어나, 육방을 잘 지키고, 이 속세의 고통에서 떠나 좋은 곳에 이르는 것이다. 없애버려야 할 네 개의 업구(業垢)란 

① 생명 있는 것을 해치는 일
② 도적질하는 일
③ 천한 욕정(欲情)을 쫓아가는 일
④ 거짓된 말을 토해 사람을 속이는 일

이와 같은 것들로서 그러한 행위(業)는 모두 현자(賢者)가 하지 않는 바다. 

또 네 가지 이류로써 악업(惡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대개 사람들이 탐욕(貪欲)과 진에(瞋▩, 시기와 질투, 분노)와 우치(愚痴)와 공포(恐怖), 이 넷 때문에 도(道)아닌 일을 하고 악업(惡業)을 하는 까닭에 도(道)를 구하는 사람은 이러한 네 가지 악업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또 싱갈로바다야, 여섯 가지 원인이란 무엇이냐 하면 음주에 빠져 방일에 흐르는 것 등 이것이 실로 재(財)를 잃는 원인이다. 때 아닐 때 가로(街路)에서 장난치고 목적도 없이 돌아다니는 것도 그러하다.
그밖에 제예무용(祭禮舞踊)의 객석에 들어가 앉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도박에 정신을 잃고 저급한 일에 만족하고 혹은 나쁜 동무와 사귀어 나태(懶怠)를 부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여섯 개의 사실은 모두 재(財)를 잃는 원인이다.
술에 젖어 방일에 흐르는 자는 싱갈로바다야, 곧 저축을 잃고 싸움만 늘어나게 하고 병의 원인을 낳아 명예를 손상시키며, 숨겨야 할 곳을 나타내고 지력(智力)을 경감(輕減)시키는 그런 여서 가지 화(禍)가 있다. 또 싱갈로바다야, 때 아닌 때 가두에서 장난치고 목적도 없이 돌아다닌다는 것은 그 자신에게나 그 처자에게나 그 재산에 대해 보호가 없게 되고 나쁜 일이 있으면 의심을 받게 되고 실제 그렇지 않은 말썽이 그에게 생기고 많은 고법(苦法)이 그를 둘러싸기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여섯 가지 화(禍)다. 싱갈라바다야, 제예무용(祭禮舞踊)의 객석에 들어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낸다는 것은 어디에 춤이 있나, 어디에 노래가 있나, 어디에 강담(講談)이 있나, 그런 것을 구해 헤매며 재물과 시간을 잃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 화(禍)다. 싱갈로바다야, 도박에 정신을 잃는 자란 이기면 원한을 만들고 이겨서 얻은 재부(財富)를 잃을 것을 두려워해 마음에 근심이 생겨 실제로 저축을 잃는 것이다. 법정(法廷)에 들어가면 그 말을 믿는 사람이 없고, 벗은 그를 경모(輕侮)하고 혼인은 거절되고 도박군은 아내를 얻을 자격이 없다고 비난받는다. 이것이 여섯 가지 화(禍)다.
싱갈로바다야, 나쁜 친구와 사귀지 말라고 말했으나 그 까닭은 실로 그 화가 곧 뒤따르기 때문이다. 나쁜 친구란 교활한 자, 노름꾼, 대주가(大酒家), 사기꾼, 폭악한 자를 가리킨다. 야비한 것과 사귀고, 견고한 것을 사귀지 않으면 자신도 또 악에 물들어 이를 가까이하게 마련이다.
싱갈로바다야, 끝으로 나태(懶怠)에 젖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화는 사사건건에 구실을 만들어 너무 춥다, 너무 덥다고 하고는 일을 게을리 하고, 너무 이르다, 너무 늦다고 하여 일을 하지 않고, 혹은 배가 고프다, 목이 마르다고 하여 업무를 등한히 하면 이익은 마침내 젊은이에게서 떨어져 갈 것이다. 이는 여섯 개의 화다. 그러므로 주위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사람으로서 의(義)를 행하는 자는 반드시 행복을 놓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싱갈로바다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종류의 사람은 사실은 원수지만 벗과 비슷한 자임을 알라. 즉 무엇이든지 가지고 가는 자, 말이 교묘한 자, 감언(甘言)이 많은 자, 유탕(遊蕩)의 반려가 되는 자 등이 그렇다. 무엇이든지 가지고 가는 자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가져가고, 작은 것을 주고 큰 것을 얻으려고 원하고, 두려움에서 일을 하고, 사리, 공익만을 위해서 일한다. 말이 교묘한 자는 과거, 미래에 우정 있는 듯이 가장하고 무의미한 애교를 부리면서, 일단 해야 할 일이 목적에 닥쳐오면 곧 변모한다.
감언이 많은 자는 다만 상대방의 나쁜 일에만 보조를 맞추고, 좋은 일에는 동의하지 않고 그 사람 면전에서는 칭찬을 하고 그 배후에서는 조소한다. 유탕의 길동무가 되는 자는 술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돌아다닐 때의 좋은 벗이 되며, 때 아닌 때에 가로를 유행하고 제예무용(祭禮舞踊)의 객석에 들어가 시간가는 줄 모르며, 도박장에서의 가까운 친구가 된다. 이러한 네 가지 종류의 사람이야말로 모두 적이라고 현자는 미리 알고, 그들을 멀리 피하여야 하는 것이다.
싱갈로바다야, 다음의 네 가지 종류의 벗은 마음 착한 자들이라고 알라. 즉 힘센 후원자가 되는 벗, 즐거우나 괴로우나 항상 변하지 않는 벗, 착한 말만을 하는 벗, 동정 있는 벗 등이 그러하다. 힘센 후원자가 되는 벗이란 친구가 취했을 때에 그 재산을 지켜주고, 두려워할 때의 비호자(庇護者)가 되는 것이다. 해야 할 때면 그는 내가 필요로 하는 두 배의 재산이라도 줄 것이다. 즐거우나 괴로우나 언제나 변하지 않는 벗이란 자기의 비밀을 말해주고 그가 간직하는 비밀은 이를 숨기고, 궁핍에 제해서는 남을 버리지 않고, 친구의 이익을 위해서는 자기의 한 목숨이라도 버리는 것이다. 착한 말을 하는 벗이란, 죄가 생기는 것을 막고, 선한 일을 행하게 하고 아직 듣지 못한 것을 듣게 하고, 하늘나라로의 길을 가르치는 것이다. 동정 있는 벗이란 친구의 쇠징(衰徵)를 기뻐하지 않고 그 강성(强盛)을 기뻐하며 비방하는 사람을 막아내고, 찬양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네 사람이야말로 실로 내 벗이라고 현자는 예지(豫知)하고 이러한 벗들에게 봉사하라.
싱갈로바다야, 성자의 율로서 육방이라 함은 동방은 부모, 남방은 사장(師匠), 서방은 처자(妻子), 북방은 붕우(朋友), 하방은 노복(奴僕), 용인(庸人), 상방은 사문 바라문이라고 이해되는 것이다.
싱갈로바다야, 남방에 배(配)해진 스승은 제자에 의해 봉사되어야 하며, 입례(立禮, 일어서서 절함)와 근사(近事, 가까이서 섬김)와 종순(從順)과 급사(給仕)를 받는다. 또 스승은 좋은 훈련법으로 제자를 순치(馴致)하고, 잘 지켜지고 있는 것을 지키게 하고, 모두 학예(學藝)를 습득케 하고 붕우지인(朋友知人) 사이에 있어서 칭양(稱揚)하고 여러 방향에서 수호를 받게 한다. 이와 같이 하여 그 남방은 수호되며 안온하고 두려움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싱갈로바다야, 서방에 배(配)해진 처자는 남편에 의해 봉사되어야 한다. 즉 경의(敬意)와 예의(禮儀)와 불사행(不邪行)과 권위를 주고 또 장식품을 준다. 또 처는 다음과 같이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다. 가사를 잘 정돈하고, 일군들에게 친절히 하고, 정숙하며 재산을 잘 지키고, 모든 일에 대해 교묘하며 또 근면할 것, 그리하여 그 서방은 수호되고 안온하여 두려움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싱갈로바다야, 북방에 배(配)해진 붕우(朋友)는 좋은 가내(家內)의 자제들에 의해 봉사되어야 한다. 즉 보시에 의하여, 애어(愛語, 좋은 말)에 의하여, 이행(利行, 이로운 행동)에 의하여 동사(同事, 협동)에 의하여, 속임 없는 진실성에 의하여서 말이다.
또 좋은 가문의 가제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즉 그들이 취했을 때에 그 재산을 지켜주고 두려워할 때의 비호자(庇護者)가 되고, 곤궁할 때에 버리지 않고, 그 밖의 동족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하여 그 북방은 수호되고 안온하여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싱갈로바다야, 하방에 배해지는 노복용인(奴僕庸人)은 주인에 의해 봉사되어야 한다. 즉 노복용인은 그 힘에 따라 일이 과(課)해지거나 양식과 급료를 받으며, 병에 걸렸을 때는 위로와 진미(珍味)의 식사가 분여(分與)되고 때로는 쉼으로써 봉사를 받는다. 주인을 또 사랑해야한다. 그들은 주인보다도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고 나중에 잠자리에 들고, 주어진 물건만을 받으며, 그 일을 잘하고 그 주인의 명예와 칭찬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와 같이 하여 그 하방은 수호되며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다.
싱갈로바다야, 상방에 배해진 사문 브라만은 좋은 집 자식들에 의해 봉사되어야 한다. 즉 친절한 행동, 친절한 마음에 의해 문호(門戶)를 닫지 않고 음식물을 줌으로써 말이다. 사문 브라만은 또 좋은 집 자식들을 사랑해야 한다. 죄악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고 선(善)을 행하게 하고 착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가르쳐주고 이미 들은 것은 확실하게 하고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상방은 수호되며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다.
 


4. 연화색(蓮花色) 비구니 이야기


부처님이 왕사성 죽림정사에서 설한 <법구경> 가운데에 다음과 같은 인과응보(因果應報)에 관한 설법을 한 일이 있다. 선인(善因)에는 선과(善果), 악인(惡因)에는 반드시 악과(惡果)가 있는 것, 설사 그 인과의 성숙에 시간상의 지속(遲速)은 있을는지 모르지만 결국 사람은 자업자득(自業自得), 거기서 도망할 수가 없는 도리(道理)를 말한 것이다. 
그 죄업이 익는 날까지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을 꿀과 같다고 생각하고, 그 죄업이 이제 막 무르익는 날 그는 비로소 고통을 맛본다.
저지른 악업은 새로 짜낸 우유처럼 곧 굳어짐이 없다. 그러나 그 업은 재가 뒤덮인 불과 같이 연기를 내며 그 사람을 쫓아가는 것이다.
악의 열매가 아직 익지 않은 동안은 악을 행한 사람도 행복을 보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악의 열매가 무르익게 되면 그 사람은 마침내 불행을 만날 것이다.
‘그 과보가 천만에 내게는 안 오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악을 경시(輕視)하지 말아야 한다. 물방울이 떨어져 물독을 채우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이윽고 악을 채우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훈을 설명하는 흥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이 이야기는 <사분율(四分律)> 6,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 49 두 개의 율에서 초출(抄出)한 것이다.
인도의 서쪽 아반티국에 웃제니라는 한 도시가 있다. 그곳 출신이라고 전해지는 웁팔라반나(蓮花色)란 이름의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혼인할 나이가 되어서 그 부모는 이 웁팔라반나를 결혼시키고 그 사위를 맞아들였다. 얼마 후 그 젊은 부부 사이에는 딸이 생겼는데 그때 바로 웁팔라반나의 아버지가 별안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웁팔라반나가 갓난애를 안고 자기 방안에 있을 때, 남편을 잃고 고독을 못이기던 그 어머니는 사위와 몰래 정을 통하고 말았다. 하녀가 이것을 보고 곧 그 사실을 웁팔라반나에게 말하였다. 그 어머니와 남편의 이와 같은 불의(不義)를 알고 분노(憤怒)와 슬픔을 금치 못한 그녀는 갓난아기를 방에 그대로 둔 채 집을 나와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먼 길을 걸었다. 웃제니를 출발하여 베나레스성에 도달하였다. 성문 밖에 서서 정신을 잃고 허탈한 심정에 잠겨 있었다. 아름다웠던 육체는 지금 먼지와 흙에 뒤덮이고, 발에는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때 이 성에는 상처(喪妻)를 한 한 장자(長者)가 있었다. 때마침 무료(無聊)를 풀기 위해 성(城) 밖으로 나와 교외(郊外)를 거닐려고 하던 참에 성문 밖에 홀로 서 있는 웁팔라반나를 보았다. 장자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 마음이 쏠려 차를 세우고 그 여자의 앞으로 갔다. “당신은 어느 누구의 아내이시오?” 여자는 대답하여 “나는 누구의 아내가 아니올시다.” “당신이 독신(獨身)이시라면, 내 아내가 되어줄 수는 없오?” 이런 대화가 오고 간 후에 그녀는 그 뜻을 수락하였다. 장자는 여인을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로 삼았다.
얼마 동안의 세월이 지나갔다. 장자는 큰돈을 모았다. 그는 장사를 위해 웃제니로 가야할 일이 생겼다.
웃제니는 두 말할 것도 없이 그 아내 웁팔라반나의 고향이다. 장자(長者)가 거기에 갔을 때 그는 우연히 그 지방의 처녀들이 화려하게 차려입고, 명절을 맞아 기쁘게 뛰놀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그 중에는 웁팔라반나가 낳은 딸이 섞여 있었다. 어머니를 닮은 그 미모에 장자는 크게 마음이 동하여 그 옆의 사람들에게서 이름과 주소를 알고 그 집으로 찾아가 그 처녀의 아버지를 만나 수만 금을 주고 그 딸을 데리고 올 수가 있었다.
장자는 고향에 돌아와서 자기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녀를 숨겨두고 그 가졌던 돈의 절반을 거기에 남겨두고 돌아왔다. 아내는 그 돈이 적은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묻는다. 장자는 대답하여 “도적을 만나 절반을 빼앗겼다. 이제 가서 곧 도적을 잡아야겠다”고 말했다. 남편이 떠난 뒤 친구가 와서 “장자는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다. “돈을 뺏어간 도적을 찾아갔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니까 그 친구는 “도적을 쫓아간 것이 아니라 여자를 찾아간 것일 게다”라고 여행 중에 생긴 모든 일을 그녀에게 이야기하였다. 얼마 안 있다 장자가 돌아오니까 아내는 말하기를 “당신은 유달리 나를 속이려고 하오. 이미 딴 여자가 있으면 어째서 내 집에 데려오지 않소”하였다. “두 아내가 한 집에 있으면 싸움이 생길 염려가 있어서 그랬소.” “하지만 제가 잘 참을 것입니다. 절대로 싸우지 않겠습니다. 만일 나와 나이가 비슷하면 자매와 같이 지낼 것이고, 나이가 어리다면 딸과 같이 대하겠습니다.” 장자는 아내의 말대로 그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웁팔라반나는 그 여자가 동향인(同鄕人)이라고 하는 것을 듣고 더 친근한 뜻을 표했다.
어느 날 웁팔라반나는 그 여인의 머리를 빗어주고 있었다. “당신이 웃제니 사람이라는데 집은 어디에 있었오? 그 거리 이름은 무엇이고 아버지 이름은 누구요?” 하고 자세히 물었다. “당신 어머니의 이름은?” “저는 어머니를 모릅니다. 다만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머니 이름은 ‘웁팔라반나’라 한다고 하며, 어렸을 때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가셨답니다.” 웁팔라반나는 그 여자가 바로 자기 딸임을 알고 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내가 한 때는 어머니와 남편을 같이 했는데 지금은 또 딸과 남편을 같이하게 되다니 이 무슨 죄악일까?” 그녀는 다시 집을 버리고 나가 것잡을 수 없는 마음으로 이 거리 저 거리를 방황하였다.
베나레스 성문(城門)을 나서서 울며울며 가다가 도달한 곳이 라자가하(王舍城)였다. 거기에 온지 며칠 안되는 동안에 그의 미모에 대한 소문이 성중(城中)의 노름패들 사이에 자자하였다. 오백 명의 노름꾼들이 오백 금을 웁팔라반나에게 주고 같이 꽃밭으로 가서 거기서 노는 것이다. 그때에 존자 목갈라나(目連)가 그 동산 안에서 나무 밑을 산보하고 있었다. 이 노름꾼 중의 한 사람이 “너 저 존자에게 놀고 싶은 마음을 일으킬 수 있느냐 없느냐”하고 말했다. 그녀는 “내 옛날에 수많은 남자의 마음을 녹였다. 어째서 저런 사람쯤 녹이지 못하겠느냐”하고 대답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의 도심(道心)은 견고하기 때문에 그건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존자 있는 곳으로 가, 가진 교태를 다 부리며 육박(肉迫)해 갔으나 존자의 마음은 숲과 같이 조금도 동요함이 없었다.
그 때 존자 목갈라나는 이 여인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여인이여, 깊이 스스로 반성하라. 네 몸은 미워해야 할 것, 더러운 그 몸집은 뼈가 되고, 뼈의 둘레를 도는 근육과 혈액은 엉키고 설키고, 나쁜 피가 그 사이를 흐른다. 위(胃)의 주머니는 언제나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고, 아홉 개의 구멍에서 나오는 구지렁물은 그칠 사이가 없고 더러운 기운이 늘 몸에 넘치고 있다. 내가 만일 네 몸의 부정(不淨)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면 마치 여름철의 변소와 같이 사람들은 너를 버리고 멀리 가버릴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진실을 찾는 눈이 없기 때문에 항상 우치(愚痴)의 안개에 뒤덮여 마음이 미혹되어 너를 가지고 쾌락을 누리려는 모습이 마치 늙은 코끼리가 깊은 진흙구덩이에 빠져가는 것과 같다.”
웁팔라반나는 자세히 그 자신의 부정을 깨닫고 멀리 물러나 존자께 절하고 이렇게 대답하였다.
“높으신 분이여, 제가 지금 알았습니다. 미워해야 할 이 육신이 항상 부정에 가득차 있는 것을. 존자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만일 사람들이 내 진실을 안다면 그 여름날의 변소에 가까이할 바가 못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멀리 나를 버리고 떠나가 버릴 것이옵니다. 원하옵건대 높으신 분이여, 저를 위해 그 가르침을 다시 깊이 설해 주옵소서. 저는 가르침에 따라 출가하고 마음을 바로잡아 도(道)를 닦겠나이다.”
존자 목갈라나가 이를 불쌍히 여겨 스승의 법을 가르쳐주었더니 그녀의 마음은 갑자기 열려 거듭 출가를 애구(哀求)하고 같이 왔던 노름꾼들 있는 곳으로 가 받았던 돈을 돌려주었다. 존자 목갈라나가 그녀를 데리고 부처님에게로 가서 사정 말씀을 드렸더니 부처님은 다 듣고 나서 웁팔라반나의 출가를 허락하였다.
 


5. 비구니 교단의 성립


최초의 비구니는 부처님의 양모(養母) 고오타미(瞿曇彌)였다. 이야기가 다시 소급(遡及)되어 가지만 부처님이 성도한 후 4년째 되는 해에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있을 때다. 그 해는 한발(旱魃)이 심해 강에 물이 줄고 논밭의 관개(灌漑)에 많은 곤란이 있었다. 카필라성과 구리성과의 사이의 로히니강도 물이 줄어 두 도시의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생겨 마침내 막대기니 칼을 들고 피를 볼 직전에 이르렀다. 부처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 카필라성에 들어가 서로 맞서도 있는 두 도시의 사람들 중간에 들어섰다. 사람들은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 부처님”하며 서로 활을 쏘지를 못했다. 그리하여 이 군중들은 한 사람 두 사람 대열을 떠나 부처님 주위로 모여들었다. 부처님이 무엇 때문에 모여 있는 것이냐고 묻자, 사람들은 물 때문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물은 사람의 목숨을 위해 있는 것인데, 물 때문에 목숨을 버린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느냐 하고 그 싸움을 화해시켰다.
그리고 나서 부처님은 바이샬리로 가서 그곳 대림(大林)에 안거하고 있었는데 그때 아버지 정반왕이 와병(臥病)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급히 카필라성으로 돌아가 노왕(老王)의 병상(病床)을 비추어 그 병고는 경감되고 법을 설하여 노왕을 깨닫게 하였다. 그렇게 한지 7일만에 97세의 고령으로 왕은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부처님은 부왕의 최후를 법으로 빛내고 마하파자고타미를 비롯한 일족(一族)의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장송(葬送) 날에는 자기 자신 관의 한끝을 잡고 나무 위에 올려놓고 손수 불을 붙여 화장을 하였다. 그 후 잠시 카필라성 안의 니구롯다 동산(尼拘律陀園)에 滯在하고 있었다. 이미 남편인 왕과 사별(死別)하고, 부처님의 빈번한 설법을 듣고 그 교법의 세계를 즐겨하던 그 이모 마하파자고타미는 자신도 출가수도를 하기를 여러 차례 간청하기에 이르렀다. 부처님은 세 차례의 탄원을 모두 다 물리치고 카필라성을 떠나 바이샬리로 돌아가 그 대림(大林)의 중각강당(重閣講堂)에 들어가 있었다. 
마하파자고타미는 도저히 출가할 의사를 버릴 수가 없어 여자의 몸이지만 먼지를 뒤집어 쓰고 그 뒤를 따라와 대림의 강당 앞에 이르러 거기에 섰다. 야쇼다라비(妃)와 그 밖의 샤캬족의 다른 귀부인들도 그 뒤를 따랐다. 아난다는 이 광경을 보고 불쌍히 생각하여 그녀들을 대신하여 부처님에게 허락해 줄 것을 청원했다. 아난다는 두 차례나 그렇게 했지만 부처님은 그때마다 거절하였다. 마지막으로 아난다가 “이 가르침을 쫓아 출가하면 부인들이라 할지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마하파자파티는 부처님을 양육하신 큰 공로가 있으신 분이니 그것을 생각하셔서 출가를 허락하소서”하고 말씀드렸다. 그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설법을 지킨다는 조건 하에 이를 허락하겠노라고 하여, 이에 부인들의 출가가 시작되었다. 출가한 여자수도자를 비구니(比丘尼)라고 한다. 그리하여 불교의 니승교단(尼僧敎團)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그 팔경법(八敬法)이란 다음과 같다. 

 

① 가령 법랍(法臘, 불법에 들어와 안거를 치루고 얻는 출가수도생활의 年歲) 백세의 비구니도 당일 수계하는 비구에 대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합장하고 존경하지 않으면 안된다.
② 비구니는 비구 없는 곳에서 안거해서는 안된다.
③ 반달마다 비구니는 비구의 상가(敎團)로부터 포살날을 듣고 설법을 청하지 않으면 안된다. 
④ 안거를 끝내고 비구니는 비구와 비구니의 상가에서 자기네들의 죄를 끄집어내어 책망하도록 청하지 않으면 안된다. 
⑤ 죄를 범한 비구니는 비구, 비구니의 두 상가로부터 반달 동안 별거할 것을 청하지 않으면 안된다. 
⑥ 식카마나(式叉摩那)로서 2년 동안 육법(六法)을 배우고 난 뒤 두 상가에서 수계를 해주도록 청하지 않으면 안된다.
⑦ 비구니는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비구를 매도(罵倒)하고 비난해서는 안된다.
⑧ 비구니는 비구의 죄를 들추어내서는 안된다. 비구가 비구니의 죄를 들추는 것은 허락된다. 

 

이 팔경법(八敬法)은 비구니 상가가 비구 상가에 종속하고 그 감독 밑에 있음을 정한 것이다. 부처님의 생각으로는 그 수도공동체 즉 상가의 근본이 비구에게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다른 남녀들은 재가의 제자로서 처우하려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부인들의 이와 같은 요구가 강하고 이것을 제지하기도 어려운 점이 있음을 느끼고 그 출가를 허락한 것인데, 그렇지만 바른 교리(正法)가 오래 머무르도록 하기 위해 비구 상가와 비구니 상가의 관계를 밝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위에 인용한 바와 같은 형식의 팔경법은 상당히 후세에 정리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부처님 생존 당시에는 아직 제정되어 있지 않던 형식적인 행사며 규칙이 상세하게 발전된 것을 예상하고 있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안거나 포살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부처님 당시에는 그런 규칙들이 훨씬 자발적이며 덜 율법주의적(律法主義的)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여기 이 팔경법에는 지나친 형식주의, 율법주의의 냄새가 풍기기 때문이다.
안거라는 것은 3개월 동안의 우기(雨期)에 제각기 인연 있는 땅에서 비구나 비구니가 따로따로 모여 교단의 계율조항을 같이 읽어가며 서로 그 조항을 범하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을 반성하는 것이다. 식카마나(式叉摩那)란 비구의 경우 사미(沙彌)가 된 후 만 20세 이상이 됨으로써 비구계를 받는 것이 허락됨에 반하여 비구니의 경우는 사미에 해당하는 사미니와 비구니와의 사이에 2년 동안 식카마나의 기간을 두고 임신 등의 유무를 조사한 것이다. 아마 이 팔경법은 비구니교단이 성립될 그 시초에 명령됐던 것이 아니라, 율의 모든 복잡한 규정이 생기고 난 후에 성립되었던가 정리되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니승교단(尼僧敎團)의 성립은 부처님이 즐겨 한 것은 아니었지만 부녀자들의 구제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로 막대한 도움이 되었던 것이 틀림없다. 오늘날까지 이름이 알려진 비구니가 103명인데 그 중에는 지혜제일(智慧第一)의 케마(差摩尼), 신통제일(神通第一)의 웁팔라반나(蓮革色尼), 지율제일(持律第一)의 파타찰라(波▩遮羅尼), 법화제일(法話第一)의 담마딘나(法與尼), 조의제일(粗衣第一)의 키사고타미(機舍喬答彌), 그리고 샤카족의 왕궁의 궁녀였던 비사카(毘舍▩)가 교단의 칠상속니(七相續尼)라고 불려지고 있다.
 


6. 제일가는 제자들


어느 때 부처님은 그 제자들 중에서 여러 가지 점에서 각각 제일 가는 모범적인 제자들의 이름을 들어 그 본을 받도록 촉구한 일이 있다. 수십 명의 제자들이 십인십색(十人十色) 각각 자기의 천분(天分)과 특질(特質)을 가지고 그 스승의 교화사업을 도왔던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들은 모두 삼보에 대한 귀의란 그 신앙에 있어서는 일치했지만 각자는 자기의 특색을 살려가며 수행과 교화에 종사했던 것이다. 이것은 수행생활의 천편일률적인 획일적 성격을 띄우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주는 귀중한 교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자들아, 이제 말하는 사람들은 내 제자들 중에서 제일가는 사람들이다. 출가한지 오래되기로 제일인 자(者)는 지자(智者) 곤단냐(▩陳如)다. 지혜로 제일가는 사람은 사리풋타(舍利子)이며, 부사의(不思議)의 힘을 가지기로는 마하목갈라나(大目連)가 제일이고, 청빈을 설하기로 제일인 자(者)는 마하캇삽파(大迦葉)이고, 세속을 초월한 눈을 가지기로 제일인 자(者)는 아누룻다(阿那律)이고, 가문이 높기로 제일인 자(者)는 '밧디야 카알리고다야풋다'이고, 아름다운 음성으로 제일인 자(者)는 '라쿤타가 밧디야'이다. 사자후(獅子吼)를 하기로 제일인 자(者)는 '핀도라 바라드바쟈'이며, 설교자(說敎者)로서 제일가기는 ‘푼나 만타니풋타’이고, 짧게 설해진 것을 상세하게 해설하기를 제일 잘하는 사람은 마하캇티야나(大迦▩延)이다.
제자들아, 내 제자로서 생각으로 형상(形相)을 나타내기를 제일 잘하고, 마음을 해탈하는데 있어 교모하기로 제일인 자는 츄울라판타카(周利槃特)이다. 지(智)에 있어 해탈하는데 교묘하기로 제일인 자는 ‘마하판타카’이다. 평화로운 마음에 주(住)하기로 제일이고 보시를 받을만하기로 제일인 자는 수부티(須菩提)다. 숲 속에 살기로 제일인 자는 ‘레바타 카디라바니야’이다. 마음의 평안이 제일인 자는 ‘칸카 레바타’이다.
싫어함이 없이 부지런히 노력하기로 제일인 자는 ‘소나 코올리비사’이다. 아름다운 말을 하기로 제일인 자는 ‘소나 쿠디 칸나’이다. 탁발을 잘받기로 제일인 자는 ‘시바리’이며, 믿는 마음이 굳기로 제일인 자는 ‘밧카리’이다.
제자들아, 내 제자로서 배우는 것을 좋아하기로 제일인 자는 라훌라(羅▩羅)이다. 신심으로써 출가한 제일인 자는 ‘랏타팔리’이다. 멘 처음으로 음식표를 탄 자는 ‘쿤다타나’이다. 제일가는 시인은 ‘방기사’이며, 모든 사람을 분기(奮起)시키기로 제일인 자는 ‘우파세나방칸타풋타’이다. 제천인(諸天人)이 좋아하기로 제일인 자는 ‘피린다 밧티야’이며, 기민(機敏)한 천분(天分)을ㄹ 가지기로 제일인 자는 ‘바히야 다루티리야’이다. 설법이 정성스럽기로 제일인 자는 ‘쿠마라캇사파’이며, 지장(支障)없는 배당(配當)을 찬양하기로 제일인 자는 ‘마하코니타’이다.
제자들아, 내 제자로서 가장 많이 설법을 듣고 깊이 깨닫고, 기억력도 좋고, 태만하지 않고 그리고 또 내 옆에서 시봉하기로 제일인 자는 ‘아난다(阿難陀)’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기로 제일인 자는 ‘우루벨라 캇삽파’이며, 집집마다 기쁨을 주기로 제일인 자는 ‘카알루다이(迦樓陀夷)’이며, 앓지 않는 것으로 제일인 자는 ‘밧쿠라’다. 전생에 관한 투시력이 제일인 자는 ‘소비타’이며, 승단의 규율을 지키기로 제일인 자는 ‘우팔리(優波離)’이다. 여자수행자들을 가르쳐 인도하기로 제일인 자는 ‘나타카’이며,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등 제근(諸根)의 문(門)을 잘 지키기로 제일인 자는 난다(難陀)이다. 제자들을 교도하기로 제일인 자는 ‘마하카피나’이며, 불에 관해 교묘하기로 제일인 자는 ‘사가타’이며, 문제를 내세우기로 제일인 자는 ‘라다’이며, 녹의(鹿衣)를 입기로 제일인 자는 ‘모가라쟈’이다.”
 


7. 마하카삽파 존자 


부처님이 사밧티성의 기원정사에거 법회를 열고 새로 들어온 제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일이 있었다. 그때 마하카삽파 존자는 병으로 왕사성 근처의 ‘핍팔리구하’라는 산굴에서 정양(靜養)을 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존자는 오래간만에 누더기 옷을 몸에 걸치고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기른채 부처님 곁으로 갔다. 멀리 존자가 오는 것을 보고 부처님은 잘 왔다고 미리 자기 자리의 절반을 나누어 그 자리에 앉도록 하라고 하였다. 존자는 부처님 앞에 가서 경례하고 물러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 저는 여래말좌(如來末座)의 제자이옵니다. 저를 위해 자리를 나누어주시니 황송하옵니다.”
그때,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이 노도사(老道士)에게 무슨 특별한 덕(德)이 있어서 부처님이 저렇게 그 자리를 나누어주기까지 하시는 것일가” 하였다. 부처님은 대덕(大德)의 의혹을 알고, 널리 이 마하카삽파의 훌륭한 행동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존자 마하카삽파가 도를 닦는 모습이 마치 나와 같고 그의 대자비로써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인정으로써 사람들을 구제하려 함이 모두 내 대자대비와 다름이 없다.”
마하카삽파는 소욕지족(少欲知足)하고 언제난 청빈을 그 덕으로 삼고 있었다. 그는 천인들의 시식(施食)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공양을 감수(甘受)했다고 한다.
위의 이야기는 <중본기경(中本起經)>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얼마나 자애로운 태도를 취하였던가 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장로게(長老偈)>에는 또 마하카삽파 존자의 게(偈)라고 하여 그가 왕사성의 거리에서 문둥병 환자의 공양을 받은 이야기를 전하는 감격적인 대목이 있다. 그는 서민을 사랑하였다. 가난뱅이, 거지의 군중 속에 섞이기를 잘하였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서 시(詩)와 각오(覺悟)를 발견하였다. 이것은 후년(後年) 중국의 당송(唐宋) 시대 이래의 선풍(禪風)에도 통하는 바가 있다. 

산골짜기의 잠자리에서 나와 나는 걸식을 위해 거리로 나왔다. 문둥병 환자가 밥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공손히 그에게 가까이 갔다. 그는 썩은 손을 가지고 나에게 그 밥을 들기를 권하였다. 내 바리 속에 밥을 던져 넣자 그 손가락도 같이 썩어 떨어졌다.
우물가에서 나는 그 밥을 먹었다. 먹고 있는 중에도 먹고 난 뒤에도 내게는 싫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시식이 오는 대로 이에 따라 먹고 소의 오줌을 약으로 쓰고 나무밑을 잠자리, 앉는 자리로 하고 기워 만든 누더기를 옷으로 삼는다. 이런 것을 받아쓰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이다. 

소의 오줌을 약으로 쓰는 것은 의학상(醫學上) 근거가 있는 것이고 누더기를 걸치고 다니는 것은 승단의 관습이었다. 

 

 

8. 사리풋타의 교훈(敎訓)


사리풋타가 어떠한 인물이었던가 하는데 대해서는 이미 간간이 언급한 바 있다. <잡아함경(雜阿含經)> 35를 보면 사리풋타가 언제까지나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며 조금도 싫은 기색이 없이 항상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종교의 한 수행자가 이상하게 생각한 일이 있어 그 까닭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기원정사에서의 일이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사리풋타를 보고 그 수행자는 이렇게 묻는다. “어디서 돌아오는 거요?” 사리풋타는 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오는 길임을 말했다. 그때 수행자는 “당신은 지금도 아직 젖을 떠나지 않았소? 스승에게서 법을 들어야 하오?” 하고 묻는다. 사리풋타는 그가 스승의 교훈을 계속해서 듣고 있다고 대답했다. 수행자는 “나같은 사람은 벌써 젖을 떠나 있소. 스승의 설법 듣기를 그만두었소” 하고 말한다. 그 때 존자 사리풋타는 그 잘못을 타일러 이와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당신이 배우는 법은 의지할만한 법이 아니요. 찬양할만한 법도 아니요. 출리(出離)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올바른 깨달음의 길도 아닙니다. 또 당신의 스승도 올바로 깨친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당신네들은 일찍이 젖을 버리고 스승의 교법을 떠나는데 이는 마치 젖소(乳牛)의 성질이 사납고 소란하며, 또 젖이 적은 까닭에 그 송아지를 일찍이 버려버리고 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법은 모두 다 올바른 법률(法律)로서 출리(出離), 정각(正覺)의 길이며 찬양할만하고 의지할만한 것입니다. 또 우리 큰 스승은 남김없이 온전히 깨닫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 젖을 마시며 대사(大師)의 가르침심을 듣는 것입니다. 마치 젖소의 성품이 유화하고 젖이 많은 까닭에 그 송아지가 그 젖을 마시며 조금도 싫어함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따르는 법도 그와 같습니다. 이는 올바른 법률(法律)입니다. 그러므로 오래오래 대사의 설법을 들어도 싫음이 없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존자 사리풋타의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돌아갔다는 것이다.
사리풋타는 항상 비구가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관해 스스로 다짐해 보는 것이었다. <장로게(長老偈)>와 <법구경(法句經)>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은 부처님의 정신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진 것, 도는 마른 것을 먹되 지나침이 없고, 배 가득 참이 없이 음식에 정도를 지키며 정념(正念)을 가지고 비구는 유행(遊行)하라. ……
숲속은 즐거워라. 범부는 이곳을 즐겨할 줄 모르나 욕심을 떠난 사람들은 이를 즐기도다. 그들은 온갖 욕(欲)을 구함이 없는 까닭이니라. 나의 잘못을 가르쳐 주고 과실(過失)을 책하는 지자(智者), 그런 현자(賢者)를 보면 어디에 보구(寶具)가 있는가를 가르쳐주는 사람처럼 대접하라. 그러한 사람을 섬기는 자에게 좋은 일이 있으되 나쁜 일이 없느니라. …… 밑이 깊은 못이 맑고 고요함과 같이 마음 있는 자는 도를 듣고 마음이 안태(安泰)하니라. 마음 있는 자는 어디에서든지 명랑하게 걸어간다. 그런 사람은 이 욕심 저 욕심 때문에 근심하고 걱정함이 없도다. 행복을 만나건 고통을 만나건 마음 있는 사람은 그 생각에 들뜸이 없도다.
대해(大海)나 대지(大地), 산도 불도 세존의 훌륭한 해탈에는 비할 바 없도다. 부처님을 본받아 법륜(法輪)을 굴리며 대지(大智)가 있고, 장로(長老)는 지(地)와 물과 불과 같이 물들지 않고 더럽힘이 없다. 지혜의 완성애 도달한 대지자(大智者)는 어리석음과 같으나 어리석지 아니하며 항상 청정하게 유행한다. 나는 스승을 모시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성취하고 무거운 짐을 내리고 미혹(迷惑)의 원인을 없앴노라.

 


9. 어리석기 때문에 깨달았네


‘출라판타카’라는 한 제자가 있었다. 원래 그는 어리석어 부처님의 제자 오백 명 중의 한 사람으로 매일같이 그 가르침을 받았으나 3년 동안에 오직 시(詩) 한 수도 외우지를 못했다. 그러므로 다른 제자들이 모두 그 어리석음을 알고 있었다. 같이 배우던 형 마하판타카가 그 어리석음을 꾸짖고 동생에게 “불도(佛道)를 닦아 그렇게 진전(進展)이 없으니 속히 절을 떠나 집으로 가라”고 하였다. 그 때 세존은 그 거실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와서 그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옆으로 불러, “너 어째서 여기에 와 슬피 우느냐?”고 물었다. 그 까닭을 말하는 출라판타카에게 부처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너 네 어리석음을 두려워하고 슬퍼하지 말라. 내가 도달한 깨달음의 길은 네 형의 인도(引導)에 의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고 부처님은 그 손을 붙잡고 다시 정실(靜室)에 들어가 앉히고 그를 가르쳤다. 그 때 부처님은 그에게 빗자루를 주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 빗자루를 가지고 ‘먼지를 털리라. 때를 없애리라.’ 너 이 말을 되풀이 되풀이 외우라.”
그리하여 출판타카는 빗자루를 쥐고는 입버릇처럼 이 말을 외웠다. 날이 감에 따라 점점 익숙해져서 그냥 이 말이 술술 나오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혼자 생각하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먼지란 무엇이길래, 그것을 털고, 또 때란 무엇이길래 없애라고 하는 것일까? 먼지란 마음의 먼지, 때란 마음의 때가 아니냐? 사람마다 각자의 마음에 더러움이 있다. 내 먼지를 털고 내 때를 없애는 일, 이것이 불도의 수행이 아니냐? 인간 세상의 미혹은 때다. 지혜는 바로 마음의 빗자루다. 내가 지금 지혜의 빗자루로 어리석은 내 미혹을 쓸어버리리라.”
그리하여 그는 깨달은 상태에 들어갔다. 그리고 곧 부처님에게로 가 “부처님, 제가 지금 지혜의 빗자루를 가지고 이 마음의 먼지를 쓸겠나이다”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이 말을 듣고, “착하도다, 내 제자야, 네 말과 같다. 지혜는 능히 사람의 세상의 미혹을 없앤다. 내 제자가 닦는 것은 오로지 이 길이니라” 하였다. 그리하여 출라판타카는 어리석은 덕분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10. 탄금(彈琴)의 법(法)


‘소나 코티 칸나’란 제자가 있었다. 언제나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밤낮의 구분 없이 노력 정진하였으나 쉽게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다. 그는 고행을 한 나머지 다리에 상처가 생겨 피가 흘러 마치 도살장(屠殺場)에서 굶주린 새들이 와서 흐르는 피를 마시는 것과 같았다. 그는 스스로 마음이 초조하여 환속(還俗)할 생각까지 하였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는 나로 하여금 고행정진제일(苦行精進第一)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아직 마음의 미혹에서 떠나지를 못하고 헛되이 행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원래 장자의 아들로서 그 재산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 차라리 범속(凡俗)한 생활에 만족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널리 보시를 하고 공덕을 쌓는 것보다 못하지 않을까?”
부처님은 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직접 그에게로 가서 비유로서 이렇게 물었다. 
“코티 칸나야, 내 이제 너에게 묻노니, 너 집에 머물러 있을 때 탄금(彈琴)을 잘하였느냐?”
소나 코티 칸나는 그러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너 탄금을 하는 데, 현(絃)을 타기를 지나치게 급하게 하면 그 소리가 좋으냐?”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현(絃)을 타는 데 지나치게 느리면 그 소리가 좋더냐?”
“아닙니다. 부처님. 탄금에 있어서는 완급(緩急)이 적당하지 않으면 좋은 소리가 나지 않사옵니다.”
이 때에 부처님은 그에게 말하기를,
“도를 닦는 것도 꼭 그와 같다. 다만 한결같이 급하면 곧 초조한 마음이 생기고, 정진하는 마음이 없으면 태만에 흐르는 것이다. 그런 고(故)로 너 치우쳐 생각하지 말고 중도(中道)에 처해서 도를 행하면 머지 않아 이 속세의 미혹을 떠날 것이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고요히 반성하고 그 가르침대로 수도하여 마침내 중도를 얻었다 한다.
 


11. 다만 때가 옴을 기다리네


‘레바타’란 장자가 있었다. 그는 모든 생류(生類)를 사랑하며 생사의 어느 편에도 집(執)함이 없이 다만 때가 옴을 기다리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를 잘 표명한 다음과 같은 시구(詩句)를 남기었다. 우리는 이 제자의 말을 통하여 부처님의 경지를 엿볼 수 있을 듯이 생각되는 것이다. 

나 재가로부터 출가의 신분이 된 이래, 야비하고 또한 그릇된 생각이 나에게 일어난 일이 있음을 알지 못하노라. 이들 생명 있는 것들을 치고 죽이고 괴롭히려는, 이 오랜 기간에 그런 생각이 나에게 생긴 일이 없었노라. 무량한 자비가 잘 수련되어 부처님 가르치심에 따라 점차로 쌓여 모여진 것을 내 아노라.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어버이로 하고 벗으로 하고,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애민(哀愍)하는 나, 언제나 진에(瞋▩)의 마음 없기를 좋아하고, 자비를 닦아 나 스스로 동요하지 않는 마음을 기뻐하노라. 나 착한 사람들이 행한 맑고 깨끗한 행위를 본받아 닦으니 마치 바위산이 우뚝 솟아 동하지 않음과 같이 그와 같이 비구는 우치(愚痴)를 다 없앴으므로 더럽히지 않음이 산과 같노라. 
나는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며, 나는 삶을 기뻐하지 않으며, 념(念)을 바로 하여 다만 때가 옴을 기다리노라. 나 스승을 받들어 섬기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룩하고 무거운 짐을 풀어 다시 태어나는 모든 원인을 없애었노라. 집착 없이 항상 청정을 바라는 자에게는 티끌만한 사악(邪惡)도 허공처럼 크게 보이는 것이니, 나 죽음을 좋아하지 않고 또 삶을 좋아하지 않으면 마치 일을 끝낸 종처럼 다만 때가 옴을 기다리노라.
 


12. 발 씻은 물은 마실 수 없다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3, <중아함경(中阿含經)> 3,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 35 등을 보면 부처님의 아들 라훌라는 출가 후에도 거동이 거칠고 거짓말을 잘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다. 부처님이 왕사성 죽림정사에 있었을 때, 라훌라도 그 근처의 온천 가까이 숲속에 살고 있었는데, 누가 와서 부처님이 있는 곳을 물으면 늘 거짓말을 하여 공연히 사람들을 이리 저리로 피곤하게 다니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다. 그와 같은 일이 매우 빈번하였기 때문에 그 말이 석존의 귀에도 들어갔다. 어느 날 부처님은 온천림(溫泉林)으로 그를 찾아갔다.
멀리 부처님이 오는 것을 보고 라훌라는 가서 마중하여 그 의발(衣鉢)을 받고 물을 떠서 부처님의 발을 씻어 드렸다. 발을 씻은 뒤 마련된 자리에 앉은 부처님은 라훌라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너 발 씻은 물을 마실 수 있느냐 없느냐?”
“마실 수 없습니다. 이 물은 원래 맑고 깨끗하던 것인데 이제 발을 씻어서 더러워졌으므로 마실 수가 없습니다.”
그 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훈계하였다고 한다. 
“너도 그와 꼭 마찬가지다. 내 아들로서 왕손(王孫)으로 태어나 속세의 영화(榮華)를 버리고 사문(沙門)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정진해서 몸을 닦고 입을 지킬 생각을 안한다. 그와 같이 삼독(三毒)의 더러움이 네 가슴속에 충만한 것이 마치 이 물과 같아서 다시 쓸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은 라훌라에게 그 물을 버리게 하고 말씀하기를, 
“너 이 그릇에 음식을 담을 수 있느냐?”
“아닙니다. 그릇이 벌써 부정한 물 때문에 더럽혀졌으므로 음식을 담기에 알맞지 않습니다.”
“너도 또 그와 같으니라. 사문이 되었다고 하지만 입에 성실함이 없고 마음에 정진함이 없으면 마치 그릇이 부정한 불로 더럽혀진 것과 같다.”
부처님은 발가락으로 그 대야를 밀어보냈다. 그랫더니 그 대야는 땅으로 떨어져 굴러가다가 혹은 뛰다가 마침내는 그냥 멎고 말았다. 부처님은 그 장면을 가리켜, 다시 라훌라에게 이렇게 말씀하였다.
“너 이제 그 그릇이 굴러가는 것을 보고 그 그릇이 깨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발을 씻는 그릇은 그 값이 매우 쌉니다. 마음속에 아까운 마음은 있을지 몰라도 깨지는 것을 그렇게 안타까이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부처님은, “너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설사 사문이 된다 할지라도, 몸가짐을 닦지 않고 쓸데없이 거짓말을 농(弄)하고 세상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 많으면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혜 있는 사람도 이것을 아끼지 않는다. 마치 그릇이 땅에 떨어져 굴러가다가 깨지고 마는 것과 같다. 미혹의 세계들을 전전(轉轉)하는 그 고뇌야말로 한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부처님의 훈계가 얼마나 준엄(峻嚴)한 것인가 하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부처님은 자비의 권화(權化)다. 그러나 그 육친(肉親)의 아들에 대한 교화는 유례 없을 정도로 격(激)된 자애(慈愛)의 교훈인 것을 알 수 있다. 
라훌라는 이 말씀을 듣고 깊이 느끼는 바 있어 스스로 권려(勸勵)하여 도를 잊지 않고 몸가짐을 엄격하게 하며 인욕을 하는 마음 품기를 마치 대지(大地)와 같이 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13. 전도자(傳道者)의 결의(決意)


재간이 뛰어나고 특히 변설(辯舌)이 좋아, 설법제일의 명성이 높았던 ‘푼나’가 어느 날 부처님에게 와서 서방 수나파란타국으로 스승의 진리를 전하러 가는 것을 허용(許容)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부처님은 그에게 전도자의 결의가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를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내가 전해 듣건대 그 나라 사람들은 심성(心性)이 사납고 흉악(凶惡)한 성질이 있어, 사람을 매도(罵倒)하고 수치(羞恥)를 주는 일이 많다고 한다. 만약 그 나라 사람들이 너에게 욕설(辱說)을 퍼붓고 너를 망신시킨다면, 너 이를 어찌할 것이냐?”
“설사 그 나라 사람들이 나를 매도하는 일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의 그 성질이 그래도 착하고 지혜가 있다면 주먹을 쥐고 나를 때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푼다냐, 만약 그들이 주먹으로 너를 때린다면 너는 이를 어찌하겠느냐?”
“부처님, 설사 그 나라 사람들이 주먹으로 우리를 때린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그래도 칼이나 막대기를 가지고 덤벼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 사람들이 칼이나 막대기를 가지고 너를 해친다면 너 어찌할 것이냐?”
“설사 칼과 막대기를 가지고 저를 해친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래도 성질이 착하고 지혜가 있으므로 저를 죽이기까지는 안할 것이옵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들이 네 생명을 빼앗는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부처님, 만약 그 나라 사람들이 제 생명을 빼앗는다면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도를 닦는 세존의 제자로서 화(禍) 많은 육신을 싫어하여 스스로 생명을 끊는 자도 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은 그 본바닥이 착하고 지혜가 있어서 제 보잘 것 없이 늙은 이 육신을 죽여 능히 이 세상의 고뇌에서 이탈케 해주었다고 생각하겠나이다.”
이 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착하도다, 내 제자 푼나야. 너 도를 잘 닦아 참고 견디는 마음을 배웠도다. 너야말로 서방 수나파란타국의 사람들 사이에서 능히 견디어낼 수가 있을 것이다. 너 이제부터 가서 아직 안온(安穩)을 얻지 못한 자들을 깨달음에 들도록 하라.”
그리하여 따뜻한 스승의 격려를 받은 푼나는 서방으로 길을 떠났다. 그는 수나파란타에 가서 한 여름을 보내고 진리의 씨를 뿌려 오백의 신도를 얻고 많은 절을 지었으나 그 해에 드디어 그곳에서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잡아함경(雜阿含經)> 11, 팔리어 <중부경전(中部經典)> 제115경에 나와 있는 말이다. 우리는 이 말들 가운데서 다시 한번 절실히 무엇이 영광이며, 무엇이 승리인가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14. 일곱 가지의 아내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있을 때 장자 수닷타의 아들에게 시집온 수자타(善生女)라는 여인이 있었다. 원래 재산 많은 집에 태어나 그 집안을 자랑하고 시부모(媤父母)나 남편을 극진한 순종으로써 섬기는 일이 없고 항상 하인들에게 욕설만을 퍼부으며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부처님이 장자를 위해 설법을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며느리의 거칠은 말소리를 들은 부처님은 그녀를 부르게 하여 아내에 일곱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하고 네가 그 어느 것에 속하는가를 생각해 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마음이 바르지 않고, 사람들의 이(利)를 생각함이 없이 딴 사람에게 마음을 두고 자기 남편을 소원(疏遠)히 다루고, 금은을 주고 사들인 것들도 살려가지 않는 그런 아내는 살해(殺害)의 처(妻)라고 불려질 것이다.
그 남편이 무슨 기술이나 매매(賣買), 경작 등에 종사하여 아내를 위해 재산을 얻었는데 그 약간을 얻어 가지기를 바라는 그런 아내는 투도(偸盜)의 처라고 불려질 것이다. 
근로(勤勞)를 좋아하지 않고 태만하며, 먹는 욕심만 많고 거동을 노골적으로 하며, 완고(頑固)하고 말은 정중하지 않고 노비(奴婢)를 학대(虐待)하는 그런 아내는 태만의 처라고 불려질 것이다.
어머니가 아들을 대하듯, 언제나 사람들의 이(利)를 생각하고 그 남편을 보살피며, 남편이 모아 온 재보(財寶)를 잘 지키는 그런 아내는 엄마와 같은 처라고 불려질 것이다. 
동생이 언니에 대하듯 스스로 남편을 공경하고 겸양(謙讓)하여 그 지시에 따르는 그런 아내는 언니와 같은 처라고 불려질 것이다.
오래 헤어져 있던 벗이 온 듯이 남편을 맞아서는 마음으로부터 희열에 가득차 품위 있게 남편을 섬기는 그런 아내는 친구와 같은 처라고 불려질 것이다.
매도를 당하건 매를 맞건 조용히 참고 마음을 바로 잡고 무엇이든지 남편 시키는대로 하는 그런 아내는 비녀(婢女)와 같은 처라고 불려질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나서 교만한 부잣집 딸인 수자타(善生女)는 “저는 비녀와 같은 처가 되겠나이다”하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15. 병상(病床)의 설법


역시 장자 수닷타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언젠가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장자의 병이 매우 위독(危篤)하였다. 그리하여 장자는 사람을 부처님과 존자 사리풋타의 두 분 밑으로 보내어 두루 문안을 드리고 난 뒤 “장자 수닷타의 병이 매우 중(重)하여 위독상태에 있습니다. 장자가 무척 존자를 뵈옵기 원하나 쇠약한 그로서 이곳에 올 수가 없으니 존자께서 그를 불상히 여겨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는 뜻을 전하도록 하였다.
심부름 온 사람에게 부처님은 그 뜻을 전해 듣고 “외로운 사람들의 보호자인 장자 수닷타가 안온(安穩)하고 쾌락(快樂)하기를 바란다”고 말하였다. 심부름 온 사람은 다시 존자에게로 갔다. 그 뜻을 들은 존자 사리풋타는 아무 말 없이 그 청을 받아 들여 이튿날 아침 바리를 들고 장자의 집으로 갔다.
사리풋타는 그 곳에 이르러 병 문안을 하니 장자가 대답하기를 “병환이 매우 심하여 괴롭고 식욕이 없으며, 아픔이 더욱 더할 뿐이옵니다”라고 하였다. 그 때 사리풋타는 누워있는 장자를 향하여 이와 같이 타이르는 것이었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만약 사람이 믿지 아니하면 나쁜 곳에 태어날 테지만, 장자는 오늘 최상의 믿음을 가졌으니 고통은 사라지고 경쾌함이 생길 것이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사람에게 만약 계율상(戒律上) 좋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나쁜 곳에 태어날 것이지만 장자에게는 다만 선계(善戒)만이 있으니 고통은 사라지고 약(藥)이 생길 것이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만약 사람이 다문(多聞)이 아니면 나쁜 곳에 태어날 테지만 장자는 다문(多聞)인 까닭에 고통은 줄고 약이 늘어날 것이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사람은 욕심 많고 인색(吝嗇)함으로써 나쁜 곳에 내어나겠지만, 장자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고 다만 은혜로운 보시만을 했으니 아픔은 덜하고 경쾌함이 올 것이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장자에게는 선혜(善慧)가 있고, 정견(正見)이 있고, 정지(正志)가 있고, 정해(正解)가 있고, 정탈(正脫)이 있으며, 정지(正智)가 있으니 이로써 고통은 가시고 쾌락이 올 것이오.”
이 설법을 듣자 장자의 병은 곧 나았다. 건강을 회복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존자 사리풋타를 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다.
“착하도다, 착하도다. 병을 위해 진리를 설함이 몹시 기특하옵니다. 존자여, 제가 교화의 요법(療法)을 듣자, 아픔은 사라지고 더할 나위 없는 쾌락이 생겼습니다. 이제 제 병은 고쳐졌습니다. 평상시와 같습니다.”

 

 

16. 군적(群賊) 오백인의 교화(敎化)


<마하상기카율(摩訶僧祇律)>에 의하면 부처님이 군적(群賊) 오백 명을 제도(濟度)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밧티성에서 베살리(毘舍離)로 향하려고 하던 불교의 한 수행승이 적(賊)을 만났다. 거기에 왕의 관리(官吏)가 달여와 도적을 붙잡고, 그 일당 오백 명을 역시 사로잡았다. 왕의 관리는 이 도적들의 머리에 적갈색의 혁만(革▩)을 달아 표지로 삼고 북을 치며 방울을 흔들면서 네거리로 끌고 나와 이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도적들은 크게 통곡하기 시작하여 그 소리가 무척 요란하였다고 한다.
“어디서 이와 같이 많은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냐?” 하고 부처님은 주위의 비구들에게 물었다. 비구들은, “부처님, 오백 명의 도적들이 왕의 명령으로 사형을 받을 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말하기를, “네가 가서 왕에게 이렇게 말해라. ‘당신은 국왕입니다. 백성을 사랑하기를 아들 대하는 것과 같이 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어째서 일시에 오백 명을 죽이는 것이오’라고.”
아난다는 그 말대로 왕에게 가서 부처님의 말을 상세하게 전달하였다. 왕은, 
“존자 아난다여, 그런 것은 나도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사람 한 명을 죽인다 해도 내 죄보(罪報)는 매우 크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오백 명을 죽이면 죄보가 더 클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도적들은 자주 와서 우리 마을을 파괴하고 백성의 재산을 약탈해 갔습니다. 만약 부처님이 이들에게 다시는 도적질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씀한다면 풀어놔 주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난다는 부처님에게 가서 왕이 이렇게 말하더라고 했더니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면 가서 왕에게 이렇게 말하라. ‘임금님, 그냥 놔만 주십시오. 그들이 오늘부터 도적이 되지 않도록 할 것이니’.”
그러나 아난다는 곧 왕에게 가지 않고 먼저 형장(刑場)에 가서 형리(刑吏)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죄인은 부처님이 이미 구제한 것이니 바로 죽여서는 안됩니다.” 또 도적들을 향해서는 “너희가 출가하겠느냐, 안하겠느냐” 하고 물었다. 도적들은 “존자여, 우리들이 처음부터 출가해 있었다면 이런 고통은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듣고서 아난다는 왕에게 가서 부처님의 말을 전하였다.
“부처님게서 임금님게 이렇게 말씀드리라고 하십니다. ‘오늘부터 다시는 그들이 도적이 안되도록 내가 지도하겠습니다.’”
왕은 그 관리에게 “생명은 허락해 주자. 그러나 아직 포승(捕繩)을 풀어주지는 말라. 부처님께 보내면 부처님 자신이 그들을 좋아할 것이다.”

도적들의 집단이 결박된 채 부처님 있는 곳으로 인도되었다. 부처님은 그들을 구제해 주려고 밖에 나와 앉아 있었다. 도적들이 멀리서 부처님의 모습을 고마운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우러러 보았을 때, 포승은 저절로 풀렸다고 한다. 도적들은 이마를 부처님 발에 비비며 예배하고 물러나 한편 모퉁이에 앉았다. 부처님은 그들의 숙연(宿緣)을 보고 보시(布施), 지계(持戒), 업보(業報), 사성제(四聖諦) 등의 진리를 가르쳤다. 그들은 그리하여 수도(修道)의 첫 단계에 들어간 것이다. “너희들이 출가하기를 원하느냐?” 이렇게 묻는 부처님 물음에 대하여 그들은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었다. “너희들 참으로 잘왔다. 비구들아.”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자 오백 명의 도적이 입고 있던 가지각색의 더러운 옷들은 변하여 수행승의 삼의(三衣)가 되고 그들은 어엿한 출가 수행자의 면모를 다 갖추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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