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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법당에서 행해지는 의례 의식의 가장 표준화된 내용 [조계종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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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보우 [부록] 양근 사나사 원증국사 사리석종비 <終>

출처 수집자료,조계종제공
구분 독송용-한글

양근 사나사 원증국사 사리석종비

  (楊根舍那寺圓證國師舍利石鐘碑)

 

 

소재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사나사

         (京畿道楊平郡龍門面延壽里舍那寺) 

연대 : 고려 우왕(禑王) 12년(1386)

중현대부 성균관제주 지제 교정도전찬

(中顯大夫成均館祭酒知製 敎鄭都傳譔)

 

 고려 국사 이웅존자(利雄尊者)가 소설산(小雪山)에서 입적하셨다. 문도들이 (다비하니) 사리가 많이 나오자 양근군(楊根郡)의 어른들이 지군사 강만령(姜萬岭)에게 석종을 만들어달라고 청하여 사리 10과를 넣어 사나사(司那寺)에 안치하였다. 여기에 쌀 30석과 베 3백 필이 들었으며 계해년 9월 무신일에 시작하여 12월 경신일에 끝났는데, 문도 달심(達心)이 사실상 행사를 주관하였다.

 양근군은 본래 익화현(益和縣)으로 스님 어머니의 고향이다. 군의 서쪽에는커다란 한강이 태백산에서부터 북쪽으로 6백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가며, 군의동쪽에 우뚝 속은 미지산(彌智山)은 양주(楊州)와 광주(廣州)가 만나는 경계가된다. 이곳 산수는 빼어난 인물을 낼 만한 맑은 영기(靈氣)를 품고 있으니 특별한 인물들이 나는 까닭은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스님은 양근군 대원리(大元里)에서 태어나 중국에 가서 공부하여 임제(臨濟)의 18대 손인 석옥 청공(石屋淸珙)선사의 법을 이었으니, 스님은 임제의 19대손이 된다. 석옥 스님은 법의와 주장자를 신표로 주었다. 동쪽으로 돌아오니 현릉이 왕사의 예로 모시고 국사로 봉했으며, 어머니 정씨는 삼한국부인(三韓國夫人)으로 봉했다. 익화현을 양근군으로 승격시키고, 이웃들을 조정의 신하로 발탁했으며 그 고을 사람들을 위무해 주었으니, 스님을 중히 여겼기 때문에 그가 태어난 본향까지도 소중히 한 것이다. 이희계(李希桂)와 강만령은 모두 옛날 훌륭한 관리의 풍모를 지닌 이들로서 페단을 개혁하고 인민을 새롭게 하여 휴식을 얻게 하였다. 이는 모두 스님의 덕택이다.

 스님은 두 차례 이 고을에 오시는 덕을 베풀었으므로 고을사람들이 잊지못했다. 그들이 스님을 스승으로 섬기고 사리를 모시는 까닭은 역시 본심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니, 내가 명(銘)을 짓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우뚝 솟은 용문산

유유히 흐르는 한강에

인물 하나 나시니

국왕의 스승이요

임제의 법손이라

격을 맞추느라

현을 군으로 승격하니

백성이 기뻐하네

스님의 덕을

고을 사람들 사모하여

사리 받들어 모시니

스님이 여기 계신 듯하네

석종에 안치하고

내게 명(銘)을 부탁하니

산문에 길이 남겨

후학에게 보여주리리라.

龍門崒嵂  漢水漣漪

克生異人  王國是師

臨濟之傳  式克肖之

縣陞爲郡  民安以嬉

惟師之德  郡人之思

承事舍利  如師在玆

有礱石鍾  勤我銘詩

留鎭山門  傳示後來

 

홍무(洪武) 19년(1386) 병인 10월 일, 

문인 달심(達心) 입석(立石)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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