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35. 여사인 거인에 대한 답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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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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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라마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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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 TXT |
又
令第子育이 經由 出所賜敎하야 讀之호니 喜慰를 可知로라. 無常이 迅速하야 百歲光陰이 如電閃일새, 便是 收因結果底時節이 到來也라. 乾屎橛은 如何오?
覺得沒巴鼻 無滋味하야 肚裡悶時가 便是好底消息也니, 第一에 不得 向擧起處 承當하며 又不得颺 在 無事匣裡하며 不可擧時에 便有라가 不擧時에 便無也하고, 但將 思量世間塵勞 底心하야 回在 乾屎橛上하야 思量來思量去에 無處奈何하야 伎倆이 忽然盡하면 便自悟也리니 不得將心等悟어다. 若將心等悟하면 永劫에 不能得悟也리라.
前此答隆禮書에 說盡措大家病痛矣러니 承호니 只置在座右라하니, 若依此做工夫하면 雖未悟徹이라도 亦能分別邪正하야 不爲邪魔의 所障이며 亦種得般若種子深하리니, 縱今生不了라도 來生出頭에 現成受用호대 亦不費力하며 亦不被惡業의 奪將去하고 臨命終時에 亦能轉業이온 況一念相應耶아따녀?
逐日에 千萬不要思量別事하고 但只思量乾屎橛호대 莫問幾時悟를 至禱至禱하노라.
悟時亦無時節하며 亦不驚群動衆하고 卽時怗怗地하야 自然不疑佛不疑祖하며 不疑生不疑死하리니, 得到不疑之地가 便是佛地也니라.
佛地上에는 本無疑라 無悟無迷하며 無生無死하며 無有無無하며 無涅槃無般若하며 無佛無衆生하며 亦無恁麽說者하며, 此語도 亦不受하며 亦無不受者하며 亦無知不受者하며 亦無恁麽說不受者니,
居仁이 如是信得及인댄 佛亦只如是며 祖亦只如是며 悟亦只如是며 迷亦只如是며 疑亦只如是며 生亦只如是며 死亦只如是며, 日用塵勞中도 亦只如是며 死後에 斷滅不斷滅도 亦只如是며 在朝廷하야 作從官도 亦只如是며 宮觀在靜處도 亦只如是며 住徑山하야 一千七百衆이 圍繞도 亦只如是며 編管在衡州도 亦只如是니 居仁은 還信得及麽아. 信得及도 亦只如是며 信不及도 亦只如是니 畢竟如何오? 如是를 如是라한 如是도 亦只如是니라.
당신의- 아우인 자육이 지나는 길에(經由) 사교(편지의 높임)를 꺼내주어서 그것을 읽어보니 기쁘고 위로가 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상은 신속해서 일백세 평생의 세월은 번갯불 번쩍이듯 하니, 곧장 뿌린 원인을 거두어 들이고 결과로 맺어지는 시절이 도래합니다.
‘간시궐이라는 마른 똥막대기 화두’는 어떠합니까?
실마리도 잡을 수 없음을 알게 되니, 맛도 없고, 가슴만 갑갑한 때야말로 좋은 소식입니다. 우선은 드는 그 자리, 거기처에서 바로 받아들이면 안되며, 일 없는 상자 속에 [편안하게] 빠져들어가 있어서도 안되며, 화두를 들 적에는 바로 있다가도 화두를 들지 않을 적에는 바로 없어지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저 세간의 잡다하고 피곤한 일들을 사량하는 마음을 간시궐 화두 위로 돌려 놓으십시오. 오고 감에 사량하고 또 사량하다가 어찌할 수 없는 곳에서 기량이 홀연 다하면 문득 저절로 깨달아질 것이니, 마음을 가지고 깨달음을 기다리면 안됩니다. 만약 마음으로 깨달음을 기다린다면 영원히 깨달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전에 융례의 글에 답하면서 조대가 선비들의 병통을 모두 말했는데, [편지를] 받아보니 그것을(只) 좌우명으로 정했다고 했습니다. 만약 이에 의지해서 공부를 지어가면 비록 깨달아 투철하지는 못했더라도 삿됨과 바름에 대해서는 분별할 수 있고 삿된 마구니의 장애를 받지 않을 것이며, 또한 반야 종자를 깊이 심을 수 있으리니, 설령 금생에 마치지 못하더라도 내생에 태어나면 현전성취하여 받아씀에 힘을 들이지도 않으며, 악업을 당하여 빼앗기지도 않고, 목숨을 마치는 때가 되어서는 업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인데, 어찌 일념 상응함에 있어서이겠는가?
날마다 다른 일은 사량할 필요도 천번만번 없으니, 오직 다만 간시궐 화두만을 사량하시고 언제쯤 깨닫게되는지는 묻지 마시기를 지극히 빌고 빌겠습니다.
깨닫는 때란 시절도 따로 없고, 대중을 경천동지하게 하지도 않고, 즉시에 첩첩하며 수순하는 지경에서 자연히 부처님을 의심하지 않고 조사를 의심하지 않으며 생을 의심하지 않고 사를 의심하지 않게됩니다. 의심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되어서 그곳이 바로 부처님의 경지인 것입니다.
부처님 경지위에서는 본래 의심이 없으며, 깨달음도 미혹함도 없으며, 생도 사도 없고, 유무가 없으며, 열반도 없고 반야도 없으며 부처도 중생도 없으니, 이렇게 말하는 이도 없습니다.
이런 말을 받아들이는 이도 없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도 없으며, 또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아는 이도 없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도 또한 없습니다.
거인께서 이렇게 믿게 되면 부처도 그저 이러할 뿐이며, 조사도 그저 이 같을 뿐이며, 깨달음도 이와 같을 뿐이고, 미혹함도 이와 같을 뿐이며, 의심도 이와 같을 뿐이고, 생도 이와같을 뿐이고, 사도 이와같을 뿐입니다. 일상생활에서의 진로망상 속에서도 다만 이와같을 뿐이며, 죽은 뒤에 단멸이니 단멸하지 않는지 하는 것도 그저 이와 같을 뿐이교, 조정에 있으면서도 관직에 따라 하는 것도 이와 같을 뿐이고, 유배지의 도관에서(宮觀)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도 다만 이와 같을 뿐이며, 경산(원오스님 회상)에 머물면서도 1700여명의 대중들의 외호를 받음도 이와 같을 뿐이며, 귀양살이하며 형주에 있을때도 다만 이와같을 뿐입니다.
거인은 과연 믿음이 분명합니까? 믿음이 분명한 것까지도 다만 이와 같으며, 믿지 않는다는 것까지도 다만 이와 같으니, 필경에는 결국 어찌해야 합니까?
이와 같음이 이와같다고 한 이와 같음도 다만 이와 같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