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경서문 [제경서문 13] 묘법연화경 실상서 원문 현토 + 우리말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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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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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라마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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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 TXT |
妙法蓮華經 實相序
溫陵開元蓮寺比丘 戒環 解
實相妙法을 巧喻蓮華하니 內則 直指乎一心하고 外則 該通乎萬境이라.
方華卽果하되 處染常淨하니 此는 蓮之實相也요,
生佛 本有하되 淪變 靡殊하니 此는 心之實相也요,
其狀虛假하되 其精甚眞하니 此는 境之實相也니라.
心境萬類를 通謂之法하니 精粗一致하고 凡聖同源이라 卽諸世諦하야 觸事而眞하니
言詞 不可示하며 分別 不能解하니, 故로 以妙稱也니라.
六趣之所迷淪은 盖迷此也요, 諸佛之所修證은 盖證此也요, 洎夫 廣演言教와 無數方便은 盖爲此也니라.
但以 衆生垢重하고 根器未純일새 先說三乘하사 假名引導하니 故로 權而未實하고 麄而未妙러니, 及乎 諸糞旣除하고 心相體信코사 乃示實相하고 會歸一乘하시니라. 則妙而 無麄矣니 諸佛能事가 終畢於是也니라.
然이나 所謂 妙法은 非去麄而 取妙라 盖卽麄以顯妙也며,
所謂一乘은 非離三而說一이라 盖會三而歸一也니,
卽麄顯妙는 猶蓮之卽染而淨이요, 會二歸一은 猶蓮之自華而實이라
法喻雙彰하고 名實竝顯하니 故로 號 妙法蓮華라하니라.
夫 證是法者는 必以 大智爲體하고 妙行爲用이라,
智譬則蓮이요 行譬則華니 智行兩全하야사 乃盡其妙니라.
故로 經文이 始於 一光東照하사 智境全彰하시고 終於 四法成就하사 行門 悉備라.
正宗之初에 三周開示는 皆所以 明體也요,
囑累之後에 六品敷揚은 皆所以 明用也라.
中間轍迹이 無非[智行旁顯하고 體用을 兼明일새, 彰實相之大全하고 列開悟之眞範하야 發明種智하고 成就果德니라.]
故로 若有聞者면 無不成佛하고 凡能領悟면 卽得受記라 一事一相이 無非妙法也니라.
由是 而徃으로 山河大地와 明暗 色 空하고 擴而充之則 物物이 燈明智體요,
推而行之則 步步가 普賢行門이라.
直下 卽 法 以明心하고 不復離物 以觀妙則, 所謂 大事因緣이라 一題에 盡之矣로다.
온릉개원련사비구 계환 解
실상의 묘한 법을 연꽃에 교묘하게 비유하시니,
안으로는 한 마음을 곧바로 가리키고(乎 어조사)밖으로는 온갖 경계에 모두 통한다.
(연꽃은) 꽃이피면 바로 열매를 맺고
더러움 속에서도 항상 깨끗하니
이는 연꽃의 실상이요,
중생도 부처님도 본래 갖추고있으며
(생사고해 바다에 빠져) 윤회하며 변하더라도 달라짐이 없으니
이는 마음의 실상이요,
그 모습은 헛되이 잠시 머무르되(가)
그 정밀함까지 매우 진짜같으니,
이는 이는 경계의 실상이로다.
마음과 경계와 온갖 종류들을 통칭하여 법이라 하는데,
정교하거나 거친 것이 하나로 합치되고, 범부와 성인이 같은 근본이다.
세간의 도리를 마주하여도 부딪치는 일마다 진실하니,
말로도 보일 수 없으며, 분별로 알수 없기 때문에
‘묘’하다고 하는 것이다.
육도윤회하며 헤메고 허우적대는 까닭은
그저 이것을 잃어버린 것이요,
모든 부처님께서 닦아 증득하신 까닭은
그저 이것을 깨달으신 것이요,
나아가(계부) 널리 펼치신 가르침의 말씀과 무수한 방편들이 바로 이것을 위한 것이다.
다만 중생들의 업장이 무겁고 근기가 순하지 않아서
먼저 삼승을 설하여, 삼승의 이름을 빌려 이끌어 주신것이다.
그러므로 방편이라 진실되지 못하고 거칠어서 현묘하지 못하다.
그리하여 모든 더러움이 없애고나서 마음에 맺힌 심상의 본바탕을 믿어야 비로소 실상을 보이시고 일승으로 회통해 들이셨다.
이는 바로 현묘하여서 머트로움이 없으니,
모든 부처님들께서 해내시는 일들도 결국 이것이니라.
그러나 묘법이라 하는 것은 머트러움을 버리지도 묘함을 취하지도 않는지라 머트러움을 만나 현묘함이 드러난다.
(그러한 맥락에서) 말하자면 일불승이라는 것도
(성문 연각 보살의) 삼승을 떠나서 일불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문 연각 보살의 삼승이 회통하여 일불승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는 곧 머트러운데서 현묘함을 드러내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연꽃이 진흙에서 청정하게 피어나는 것과 같다.
(대승과 소승의) 이승으로 회통하고 일불승으로 돌아가는 것은
비유하자면 연은 꽃이피면 자연히 열매도 함께 맺히는 것과 같다.
이치와 비유가 모두 뚜렷하고 이름과 실상이 나란히 드러나니,
그러므로 “묘법연화”라 이름한다.
이 법을 증득한 사람은 큰 지혜를 ‘체’로 삼고 묘행을 ‘용’으로 삼아야 한다.
지혜는 비유하면 연과 같고, 묘행은 비유하면 연의 꽃과 같으니,
지혜와 수행이 모두 완벽해야 비로소 그 현묘함에 이른다.
그러므로 경전말씀에
“처음 한 줄기 광명이 동쪽을 비추니 지혜경계를 온전히 드러나고, 마지막으로 법을 전하는 절차가 네 단계로 이루어지니 수행문이 모두 갖추어졌다” 하였고,
정종분 초입에서 방편품과 비유품에서 “삼주설법”을 보이심은 모두 체를 분명히 하려는 까닭이고,
촉루품 이후에도 육품을 펼쳐 보이심은 모두가 용을 밝히기 위한 까닭이다.
중간중간 하신 말씀들은(궤적) 모두가(무비 ~아님이 없다. 강조)
지혜와 수행을 함께 드러내시고 체와 용을 아울러 밝히고있는데,
실상묘법으로 광대하고 완전함을 드러내고
개시오입開示悟入으로 참된 모범을 나열하여,
불성의 근본 지혜를 밝혀 불과의 공덕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듣게되면 성불하지 못할 이가 없고,
깨달을 수 있으면 수기를 받으리니,
하나하나 묘법 아님이 없는 것이다.
이를 따라 산하대지와 밝음과 어두움, 외부경계(색성향미촉법) 그리고 ‘공’한 일체제법까지
확충해 나간다면 가지가지가 등불을 밝히는 지혜의 본체요,
받들어 행한다면 걸음걸음이 보현보살의 수행문이다.
당장에 법에 나아가 마음을 밝혀 다시는 만물을 떠나지 않고서 묘법을 관한다면, 이른바 일대사인연인 것이니, 첫머리 제목에서 남김없이 하였다.
(묘법연화경이라는 제목에서 그 뜻을 남김없이 담고 있다.)
- 사법 四法
법화경에서는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신 후에는(正說) 제자들이 각자 이해한 바를 부처님께 고한다(領解). 제자들의 말에 부처님께서 첨언을 하시고(述成) 미래세에 성불할 것이라는 수기를 내리신다(授記).
불법을 전해지는 일련의 과정이 정형화되면서 정설(正說)· 영해(領解)· 술성(述成)· 수기(授記)의 네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이를 4법이라 한다.
- 삼주설법 三周說法
이와같은 부처님의 가르침, 제자들의 고백, 부처님의 인증, 그리고 수기라는 네 단계의 절차가 법화경 정종분에서 세 번의 주기로 반복된다. 후대 주석가들이 이를 삼주설법(三周說法)이라 이름했다. 네 단계 4법의 절차가 세 번 반복된다는 뜻이다.
- 촉루품 이후 육품
약왕보살본사품, 묘음보살품, 관세음보살보문품, 다라니품, 묘장엄왕본사품, 보현보살권발품
실상(實相)묘법(妙法)을 교묘(巧妙)하게 연꽃에 비유하니, 한마음[참된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고, 밖으로는 모든 것에 널리 통하는 것이다.
연꽃은 머지않아 열매가 되며 더러운 진흙 물 속에서 오히려 깨끗이 피어나니 이것이 연꽃의 실상(實相)이다. 중생(衆生)과 부처가 한마음을 본래부터 갖고 있으나, 중생은 미혹(迷惑)에 잠기어 변하여 달라져 버렸으니 이것이 마음의 실상이다,
그 모양이 없는 것을 빌리나 근본(根本)이 무엇보다 진실(眞實)하니, 이것이 모든 것의 실상이다.
마음과 경계(境界)의 모든 것에 통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같고, 범부와 성인의 근원이 같다. 즉 삼세(三世)를 살펴서 접촉하는 일이 진실하니 말로서 나타낼 수 없으며, 분별로서 이해할 수 없으므로 묘(妙)라고 한다.
육취(六趣=六道)의 미망(迷罔)한 곳에 빠진 것은 모두 이 마음이 미혹함이다. 모든 부처님께서 수행(修行)하여 깨달은 것은 모두 이 마음을 깨달은 것이며, 부처님이 수 없는 방편(方便)의 말로써 교법을 널리 펼치심은 모두 이 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다. 단지 중생들이 번뇌(煩惱)가 많고 근기(根機)가 순수하지 못하므로, 먼저 삼승(三乘)의 이름을 빌려 이끌므로 권(權)이고, 실(實)이 아닌 것이다. 또 거친 것[번뇌]이며 묘(妙)한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모든 거칠고 더러운[번뇌] 것을 제거한 이후에 마음을 보고, 본성을 믿게 하고 실상을 보이어 일승(一乘)으로 되돌리니, 바로 묘한 것이 거친 것을 없애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께서 능히 하신 일이 마침내 이것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묘법(妙法)이란 거친 것을 버리고 묘(妙)한 것만을 가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거친 것으로써 묘(妙)한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른바 일승은 삼승을 떠나 일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삼승을 모아서 일승에 되돌리는 것이니, 곧 거친 것으로 묘(妙)함을 나타내는 것이 마치 연꽃이 저절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 법(法)과 비유(譬喩)를 한 짝으로 밝히고, 이름[名]과 실(實)을 나란히 나타내므로 묘법연화(妙法蓮華)라 한다.
이 법(法)을 깨달은 자는 반드시 본래(本來)의 지혜(智慧)를 근본으로 하여 묘행(妙行)으로 쓴다. 지혜는 연(蓮)에 비유하고, 행(行)은 화(華)에 비유하니, 지혜와 행(行) 양쪽을 온전하게 하여야 그 묘(妙)함을 다 할 수 있다.
경전의 글에서 “한 빛이 동쪽에서 비추는 것이 시작되어 지혜와 경계를 전부 밝혀서 사법(四法:身口意行)을 성취하게 하고 지님으로써 모두를 갖추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정종분(正宗分)은 처음에 삼주[三周;법설주(法說周)․인연설주(因緣說周)․비유설주(譬喩說周)]를 열어 보이는 것은 모두 근본을 나타내는 것이고, 촉루품 다음에 육품(六品)을 펼쳐서 나타내는 것은 모두 작용을 나타내는 것이다.
중간에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 지혜(智慧)와 행(行)아닌 것이 없음을 두루 나타내어, 근본과 작용을 함께 드러내어 실상(實相)이 크게 온전함을 밝히고, 깨달음을 여는 참된 본보기를 하나씩 들어 말씀하시며,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깨달아 밝히시고, 마침내 본래의 성품을 성취하였으므로 만약 듣는 자가 있다면, 부처를 이루지 않음이 없으니 무릇 능히 깨달으면 바로 수기(授記)를 얻는다.
한 가지 일[一事]․한 가지 모양[一相]이 묘법 아닌 것이 없으니, 이렇게 하여 나아감으로서 산하대지(山河大地)와 명암색공(明暗色空)에 넓히고 보태면, 곧 모든 것이 지혜의 근본을 밝히는 등불이요, 따르고 행하면 곧 걸음걸음이 보현행(普賢行)을 행하여 지키는 것이 된다. 곧 바로 법(法)으로써 마음을 밝히고, 다시 만물(萬物)을 구별하지 않는 지혜로써 묘(妙)를 관(觀)하면, 바로 이른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이루는 것을 한 제목(題目:묘법연화경)에 다 나타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