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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中道)의 실천 팔정도(八正道)

출처 아라마제작,수집자료


중도(中道)의 실천 팔정도(八正道)

 


팔정도(八正道)란 중도(中道)의 이치를 여실히 파악한 후에 나오는 실천적 중도행(中道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당시의 인도(印度)의 사상계(思想界)로 봐서도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왜냐 하면 


1.

정통(正統) 바라문교(婆羅門敎)에서는, 개인에게는 아(我)라는 중심생명(中心生命)이 있어 이 아(我)가 생명의 근원(根源)이요 활동체라고 하고 또 우주(宇宙)에는 범(梵)이라는  중심생명(中心生明)이 있어 이 범(梵)이 일체의 현상계를 꿰둟는 근본 원리가 되며 동시에 같은 이름의 신(神) 즉 범(梵)이 있어서 온 우주를 창조하고 지배한다.

그리고 범(梵)과 아(我)는 그 본질 면에서는 같은것 범아일여(梵我一如) 이므로 아(我)를 알면 곧 범(梵)을 알아 아범(我梵)의 본연(本然)의 상태에 돌아갈 수 있다. 이 상태가 해탈(解脫)이며 이상적인 마음의 경지로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유가(瑜伽) 선정(禪定)을 닦아야 한다는 전변설(轉變說)에 입각한 수정주의(修定主義)를 내세움으로서 유아(有我) 유상(有常)에 치우친 유견(有見) 상견(常見)의 입장에 서서 실천 수행하고 있었으며,


2.

일반 사상계(思想界)에서는 육사외도(六師外道)를 비롯하여 62견, 363견이 있었다고 하였다. 알 수는 없지만 대부분 모든 것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등의 어떤 실체인 요소들이 합쳐져서 이루워진 것으로 그 요소가 흩어지면 아무 것도 안 남는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어느 일부는 순세파(順世派)에 빠지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은 인간의 모든 고통은 정신보다도 육체에 있는 것이므로 이 고통을 이겨내는데는 육체의 욕구에 순응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고통의 근원인 육체를 강압하므로써 정신의 자재를 얻울 수 있다는 적취설(積聚說)에 입각한 고행주의(苦行主義)를 내세움으로서 요소의 실체를 인정하기는 하나 결국은 무아(無我) 무상(無常)에 치우친 무견(無見) 단견(斷見)의 입장에 서서 그에 따라 실천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는 모두가 어느 한 극단에 치우친 것으로 결코 옳은 방법이 아니었다. 부처님께서는 정각(正覺)을 이루기 전 이미 이 두가지의 수행벙법을 모두 버리셨다. 그리고 정각(正覺)을 성취(成就)하신 부처님께서는 연기법(緣起法)에 의한 비유비무(非有非無), 비상비단(非常非斷)의 중도설(中道說)을 말씀하셨다.이것은 이들의 주장과는 상반(相反)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이들과 대립하기 위하여 이런 중도설(中道說)을 말씀하시었던가.  그것은 결코 그렇지가 않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의 이치를 정확하게 깨달으시고 보시니 그들의 주장이 이처럼 틀리게 판명된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중도행(中道行)으로서의 팔정도(八正道)는 정말로 새롭고 정말로 해탈(解脫)에 이르는 길이 안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중도행(中道行)으로서의 이 팔정도(八正道)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에 대한 답을 다음과 같은 경(經) 문구(文句)를 통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그 때 부처님께서는 다섯 비구(比丘)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가지 극단(極端)은 비구는 피할 바이니라. 무엇을 두가지 극단이라  하는가. 
첫째는 모든 욕망에 즐겨 집착하는 것이니 이것은 저속하고 야비하여 범부적인 것이요. 성스러운 것이 아니며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둘째는 스스로의 고행(苦行)에 열중하는 것이니 이것은 고통으로서 성스러운 것이 아니며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비구들이여 여래(如來)는 이러한 두가지의 극단에 위하지 아니하고 중도(中道)를 증지(證知)하였느니라. 이것은 눈을 뜨게 하고 지혜(智慧)가 생기게 하며 적정(寂靜) 요지(了知) 정각(正覺) 열반(涅槃)에 이르는 것을 돕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여래가 증지하고 눈을 뜨게 하고 지혜(智慧)를 생기게 하여 적정(寂靜), 요지(了知), 정각(正覺), 열반(涅槃)에 이르는 것을 돕는 중도(中道)라고 하는가 이것은 성스러운 여덟가지의 도(道)라 하는것이니 그것은 곧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염(正念), 정정(正定)으로 열반(涅槃)의 이름을 돕는 중도(中道)라 하느니라.>

(상응부경6 남전율 대품 수계편1)

 

위의 것은 한 예문(例文)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이것으로 팔정도(八正道)를 중도(中道)라 하는 이유와 팔정도(八正道)의 성질이 어떤 것인가 하는데 대해서는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팔정도(八正道)에 대해서는 순수히 독립된 것으로서의 팡정도(八正道)와 사성제중(四聖諦中) 도성제(道聖諦)의 내용으로서의 팔정도(八正道)와의 두가지 류형(類型)을 찾을 수 있는데 앞의 것은 최초의 설법(說法)중에 있고 뒤의 것은 제2차 설법중에 있어 독립된 팔정도(八正道)가 먼저이고 사성제(四聖諦)중에 들어간 것은 나중의 알로 여겨진다.

 

부처님의 전기(傳記)를 알려주는 여러 문헌들에 의하면 부처님의 성도(成道) 후(後) 최초의 설법(說法)은 팔정도(八正道)였고 사성제(四聖諦)는 이차적(二次的)인 설법(說法)이라 하여있다. 예를 들면 대품(大品) 수계편(受戒篇) 제일(第一)에는 부처님께서는 중도행(中道行)인 팔정도(八正道)의 설법(說法)을 마친신 후 곧 이어 사성제(四聖諦)의 설법을 하시어 5비구의 한 사람인 교진여(憍陳如 )로 하여금 멀리 마음의 티끌과 때를 여의게 하고 청정(淸淨)한 법안(法眼)을 얻게 하시었다.

 

이에 이르러 부처님께선 참으로 교진여는 깨달았다고 하여 깨달았다는 뜻을 가진 아약(阿若)을 덧붙여 아약교진여(阿若憍陳如)라 이름하고 두번째는 바사파와 발데리카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아설시와 마하나마로 하여금 멀리 마음의 티끌과 때를 여의게 하고 청정(淸淨)한 법안(法眼)을 얻게 하셨다고 되어 있다.

 

이로써 비춰봐도 팔정도(八正道)가 사성제(四聖諦)가 중의 도성제(道聖諦)에 예속된 것은 그 후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팔정도(八正道)가 처음부터 사성제(四聖諦)중 도성제(道聖諦)의 내용으로 된 것이라면 부처님께서는 5비구에 대해 사성제(四聖諦)부터 설하섰을 것이며 그렇다면 구태어 팔정도(八正道)를 먼저 말씀하시고 난 후 사성제(四聖諦)를 설하시므로서 팔정도(八正道)를 중복하여 말씀하셨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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