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4월 2일 승가고시 시행[3급/4급] - 중앙승가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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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법당에서 행해지는 의례 의식의 가장 표준화된 내용 [조계종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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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집자료
구분 의미해석

 

금강경 독송 불자께 드리는 당부

 

우룡스님 - 경주 함월사 조실

 

 

금강경은 우리나라 불교의 소의경전, 곧 이 땅에서 마음공부를 하는 불자들이 믿고 의지하는 기본경전입니다.  따라서 많은 불자들이 경전을 즐겨 독송하고 깊은 뜻을 알기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금강경의 주제가 보리심을 ‘어떻게 유지하고 어떻게 나의 그릇된 마음을 항복받을 것인가’에 있다는 것을 알고 공부하는 이는 드뭅니다.  그러므로 금강경을 독송하는 불자들이 꼭 마음에 새겨야할 세 가지 사항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보리심을 자꾸자꾸 발하여야 합니다.

보리는 범어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줄인 말로써, 무상정등정각이라고 번역합니다. 
가장 높고 가장 바르고 가장 완전한 깨달음으로, 부처님의 깨달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줄여서 '발보리심'이라고 하면, 
'가장 높고 바르고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어 나도 부처가 되겠다'는 서원을 담고 있으며, 
이 단어 하나로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요 깨달음을 주춧돌로 삼는 종교임을 나타내어 주고 있습니다.
보리는 깨달음이요,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가장 완전한 부처님의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리심을 너무나 높고 아득한 경지로 받아들여 감히 접근조차 하려 들지를 않으며,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착각까지 합니다.

그러나 보리와 발보리심,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은 멀고 아득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남편,아내,부모,자식,형제,친구 등과 대화를 나누거나 행동을 한 다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잘못했다'고 반성하는 그 마음이 발보리심이요, 
생활 속에서 일으키는 바른 마음, 밝은 마음, 감사할줄 아는 마음 등이 발보리심입니다. 
그야말로 일상생활을 하면서 하루에도 수없이 '아차,잘못했구나', '바로 이것이다', 
'아, 감사합니다'하는 이것이 깨달음의 마음이요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인 것입니다.

문제는 '운하주', '이러한 마음을 어떻게 잘 유지하는가?'하는 것입니다. 
보리심이 일어난 다음 순간, 과거의 습관이나 환경에 휘말려 다시 허물을 짓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중생이기에, 비록 깨닫는다고 하여도 일시에 모든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릇됨은 또다시 솟아납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운하항복기심', 그릇됨이 치솟을때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릴까'를 
늘 생각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코 보리심은 완전히 깨달은 이만이 발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누구나 발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크게 깨달을 때 한 번만 발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자비도량참법>에서는 이를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보리심은 한 번 발하여 마치는 것이 아니다. 자주자주 발하여야 한다."

금강경을 읽는 불자들은 이 깨달음의 마음을 자주자주 발하여 자신을 채찍질해야 합니다. 
나쁜 습관, 그릇된 환경때문에 처음에는 잘 안 될지라도, 
거듭거듭 반성하고 스스로를 일깨워 향상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보리심을 자꾸자꾸 발하고 덧붙여 게으름의 구렁텅이, 
습관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가는 마음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이겨나가야만 바르고 착하고 밝은 보리심을 한결같이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십 년 몇백 년까지도 그 마음을 유지하고, 거기에 또다시 바르고 착하고 
밝은 마음을 덧붙이고 덧붙이는 불자야말로 '금강경을 가까이 하는 사람', 
'올바로 수행하는 사람', '향상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것입니다.
부디 명심하십시오. 금강경의 가르침이 '나'스스로의 마음을 거듭거듭 점검하고 다스려, 
향상의 길로 부처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을!

 

 

둘째 나을 비우고 축원하십시오

부처님이 나를 넘어선 존재라면 중생은 나에 얽매여 사는 존재입니다.
중생인 우리가 나의 굴레를 벗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너무나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라는 멍에를 지고 살아갑니다.
그 멍에가 너무나 무겁고 힘든것인데도 나를 비울줄 모릅니다. 오히려 나 잘난맛에 살아갑니다.
아집과 아만이 나의 보리심과 나의 향상을 방해할뿐만 아니라 
나와 내주위의 행복을 가로막기 때문에 나를 비우라고 하는것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절에와서 기도를 할때 자신보다는 집안편안하고
남편 건강하고 아들딸 잘되게 해달라고 축원을합니다
참으로 어머니다운 거룩한 축원이라 하지않을수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와서 발생합니다. 
절에서의 거룩한 축원과는 달리 남편이 실수을 하면 곧바로 태도가 돌변합니다
당신 도데체 왜 그러냐고 못살겠다고 자식한테도 마찬가지로 잔소리를 합니다.
나! 절에서의 축원과 집에서의 행동이 다른 것은 나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보다 나를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절에서 하였듯이 집에서 나에게 맞지않는일이 일어났을때에도
짜증을 부리거나 화를 내지않고 한결같이 가족을 위해 축원을 할수있어야 합니다. 
간곡히 청하오니 금강경을 독송할때만이라도 나를 벗어버리고 축원을 하십시오
나을 비워버리고진정한 축원 한결같은 축원을 하십시오
그렇게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업장이 녹아내리면서 
나와 가정과 주위에 평화와 환희가 깃들게됩니다.
만약 나을 비운 축원을 할수없다면 축원보다는 참회을 하십시오
제가 지은 모든 죄업을 참회합니다.
이렇게 참회을 하여 가슴속에 얽히고 설킨 것들을 먼저 풀어버리십시오.
참회을 통하여 맺힌 것을 풀고 나면 가족을 위해 일부러 축원을 하지않아도 
집안이 편안해지고 잘 살수 있게됩니다.
욕심이 가득찬 모습으로 금강경을 외우며 기도를 하거나 축원을 하기보다는 
나자신을 백지로 돌리고 나를 비우는 실천이 앞서야합니다.
나을 비우는 아공  이것이 금강경에서 일관되게 가르치는 핵심법문임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셋째 금강경을 독송하며 배워야 할 용심법입니다.

우리 부처님의 뜻은 일체중생 모두가 부처되는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아집을 내려놓아 아공을 이루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라고 하는 불자들이 많습니다. 
나아가 나를 비우고 욕심을 비우고 어떻게살까?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계의 원리에서 보면  조금도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대우주에 무한한 행복과 영광이 가득한데 왜 우리는 잘 살지을 못하는 것인가?

 바로 욕심때문입니다.
탐욕이 가득하고 번뇌망상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또 질문을 할것입니다  왜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한는가 보이면

 확신을 하여 번뇌망상도 부리지않고 욕심도 없이살 것인데 대답은 같습니다. 

탐욕과 탐욕에서 파생된 번뇌망상때문에 보지을 못합니다.
나의 욕심이 대우주에 가득한 영광과 행복을 차단 시켜버리는것입니다. 
욕심의 눈을 씻고 눈을 똑바로 뜨십시오. 
내 가슴에 얽힌 나와 남의 벽을 무너뜨리고 주위의 분들을 돌아보십시오
그분들이 나에게 얼마나 고맙게 해주는가를, 그분들을 향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보답하는 자세로 살아가십시오 이렇게 하면 우리의 마음은 편안해집니다. 
나의 마음이 편안해지면 집안도 편안해지고 무한의 행복과 영광이 저절로
쏟아져 들어오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금강경에서 가르치는 마음 쓰는법 입니다.
온 세상 중생을 모두 포섭하고도 남을 만큼 넓게 마음을 쓰면 지나간 시간의 빚덩어리가 풀어지고
지나간 시간의 고약한 인연줄이 모두 끊어지면서 지금부터의 앞날이 참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펼쳐집니다.

 


금강경을 독송하는 불자들이 이제까지 이야기한 세가지 사항을 잘 명심하여 다함께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법왕자가 되기를 깊이 축원드립니다.
나무금강반야바라밀.

 

- 불교신행연구원 [한글 금강경]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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