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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생애 이정배] 역사적 예수와 역사적 붓다

역사적 예수와 역사적 붓다

 

 
이정배 감신대 교수(5월19일 한국 기독자 •불자 학술회 발제 전문) 

 

 
들어가는 글


흔히 기독교와 불교간 대화를 말할 때 유/무신론, 자/타력, 가/불가역성 등을 주제로 삼는다. 이런 차이는 자연, 신, 인간의 관계를 표상하는 세계관의 다름에서 비롯할 수 있다. 하여 서구 종교다원주의 신학자들은 이들 상호간의 존재론적 차이에 주목하며 대화를 통해 자기 종교의 창조적 변화를 기대한다. 유형(세계관)적 분리에 근거한 이런 대화이론은 유의미하며 그를 통해 얻어지는 열매 또한 유익할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창시자의 삶과 언어가 보편, 절대화되는 형이상학적 과정이 존재함을 주목하게 된다. 역사적 예수 및 그의 가르침이 헬라철학의 옷을 입고 우주 보편적인 배타적 그리스도가 되고 붓다의 초기 가르침이 불교 형이상학인 용수의 공(空)과 결합하고 노장사상과 만나면서 완결주의적 입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 불교가 이 과정에서 지역성을 넘어 세계적 종교로 발전한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동시에 배타주의 또는 포괄주의로 표현되는 자신들의 인습적 완결주의가 창시자의 언어를 몰역사화시켰다는 비판 역시도 적지 않다. 불교계 내에서 격의(格義)불교가 비판되고 역사적 예수연구 결과물들이 신학계에 쏟아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어느 종교든 포괄주의적 입장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그것조차도 본래의 뜻과 무관한 관념과 신조로 기능한다면, 다시 말해 이론적 완벽성으로 만족하는 경우 언어의 감옥으로부터 예수와 붓다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고는 최근 논의되는 역사적 예수, 즉 신조화된 인습적 예수가 아니라 성서 안에서 만나는 진정한 예수이해를 일차적으로 소개할 것이다. 이를 위해 현실 교회가 고백하는 기본적 신조, 소위 영원한 常數인 그리스도 케리그마의 형성과정이 비판적으로 조명될 필요가 있다. 화석화된 유대 문화를 활성화 시키려 했던 예수의 역동적 삶이 형이상학적 관념, 곧 대속적 죽음의 틀로 이해된 과정을 중점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역사적 예수는 지혜자, 새로운 종교문화를 창출하려했던 참된 스승으로서 역사적 붓다와 교감을 이룰 수 있다.
물론 현실 교회는 역사적 예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오히려 목회를 어렵게 한다는 이유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를 이단시 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예수가 신화화, 신앙화되는 과정에서 예수 자신과 무관한 수많은 이데올로기가 확대 재생산되었다. 반유대주의, 가부장주의, 반생태적 식민주의 그리고 이웃종교와 관계된 이원적 배타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이로 인해 현실 교회는 물론 기독교 자체에 반감을 표하는 비판자들과 냉담자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오랜 시간을 거쳐 모아진 한강물을 보며 사람들은 목말라 하지 않는다. 마실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의 근원지인 강원도 산골의 샘물에는 망설임 없이 입을 갖다 댄다.
역사적 예수 연구는 바로 이천년 역사를 거슬러 올라 기독교의 깨끗한 근본을 살피는 일이다. 다시 말해 초대 교회의 예수체험, 교리화(정경화)과정 그리고 소위 전통을 거쳐 교회현장에서 선포된 예수대신 역사적 예수 자체를 현실이해의 새로운 틀거지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종래와 같은 로고스 기독론이 아니라 하느님 영의 사람, 영에 취해 대안적 사회를 꿈꿨던 지혜자, 혁명가로서의 예수를 만날 수 있다. 이런 예수는 특정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라 자비의 연대성을 알리는 인류 모두의 스승으로 인식될 것이다. 종교적 성상 일체를 파괴한 예수 자신을 하느님과 동일 본질인 유일한 성상으로 만든 기독교, 오늘도 그 일에 목메고 있는 교회에게 역사적 예수는 분명 도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기독교의 앞날에 희망임을 믿는다.

 

 
1. 초자연적 유신론의 성상(Icon)으로서 인습화된 신앙의 그리스도


서구 신학계에서는 지난 세기 초엽부터 형이상학적이거나 신화화된 교리적 예수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트뢸치가 예수연구에 있어 도그마적 접근이 아니라 역사적 방법의 필연성을 말했고 비신화화 논쟁이후 불트만 좌파 계열에서 비케리그마화를 주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트뢸치의 경우 기독교 역시도 다른 종교처럼 역사 속에서 탄생된 종교임을 강조했고 기독교의 절대성을 ‘계시’, 곧 도그마에서가 아니라 역사로부터 성립된 인류 공동체를 위한 ‘규범’에서 찾아야 된다고 했다. 이는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의 영어표현이 모두 ‘-ism'으로 끝난 것에 대한 비판적 지적 이었다. 비록 트뢸치가 기독교의 ’하느님 나라‘ 개념 속에서 여타 종교의 규범보다 우월한 점을 보았으나 기독교 자체를 도그마로부터 벗겨내려 한 점은 신학방법론 상 의미 깊다. 비신화화 논쟁을 야기 시킨 불트만 역시도 원시기독교를 종교혼합주의 현상으로 볼 만큼 교리적 ’계시 개념‘과 거리를 두었다.
바울에 의해 시작된 초기 기독교를 구약성서, 유대교, 영지주의, 밀의종교 그리고 스토아 철학이 혼재된 역사적 양상으로 이해한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만큼은 교리도 신화도 아닌 역사적 사실로서 포기될 수 없는 신앙의 근거라 하였다. 이에 비신화화 논쟁에 참여한 불트만 좌파계열 신학자들은 그에게서 신앙을 역사에 근거시키는 논리적 불철처성을 보았고 오히려 역사적 사실이라 여긴 케리그마 조차도 비신화화 시킬 것을 주장했다. A. 슈바이쩌 예수전 연구의 결론에 힘입어 “신학 함에 있어서 비신화화인가, 비케리그마화 인갚를 물었던 프릿츠 부리는 이점에서 예수를 기독교 신앙의 자기이해, 곧 참 된 자아(wahren Selbst)의 상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맞섰다.
하지만 20세기 기독교는 두 개의 비극적 세계 전쟁과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경험 하에서 다시금 하느님의 절대 초월성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역사 속에서의 하느님의 자기실현(통치)을 강조한 칼 바르트 계시신학 체계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신학은 카톨릭의 ’존재유비'(analogia entis) 신학에 反한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유비’(analogia fidei)를 강화시킨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유일무이한 신적 계시를 근거로 역사와 자연을 대별했고 기독교와 이웃 종교를 구분했으며 현실비판적인 정치신학을 구현시킬 수 있었다. 자연신학 논쟁에서 들어났듯이 예수 그리스도 없는 현실은 그것이 자연이든 이웃 종교이건 간에 타락 그 자체였다. 철학자 야스퍼스가 이런 계시신학을 종교적 파시즘에 비유한 것은 정도의 심각성을 들어내는 부분이다.
오늘날 교회가 인습적으로 따르는 신앙체계는 물론 바르트 신학과는 무관하다. 성서비평에 둔감한 근본주의 내지는 문자주의적 확신이 형이상학적으로 신조화된 배타적 교리를 확대 재생산 시켜온 것이다. 하지만 이웃 종교에 대한 근본 에토스에 있어서 문자주의적 확신은 바르트적 신앙이해와 맥을 같이해 왔다. 바르트가 말한 절대 초월성으로서의 神이 초자연적 유신론이 결코 아니지만 그것이 인습적 신앙체계를 견고하게 만드는 데 일조해온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습화된 교회 내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핵심신조가 자리 잡고 있다.첫째, 성서는 신의 영감으로 계시된 하느님 말씀이며 둘째, 동정녀 탄생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들어내는 징표이고, 셋째,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은 죄된 인류를 위한 대속적 죽음이며, 넷째 예수의 육체적 부활은 죽음에 대한 승리의 징표이고 마지막으로 예수의 재림과 심판 그리고 죽음이후의 세계에 대한 보상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현실 교회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핵심 내용을 구성한다. 이것이 부정되면 기독교 자체가 부정되는 것으로 이해될 정도이다.
이러한 신조들은 초자연적인 유신론적 틀을 배경하여 생겨났다. 물론 여기에는 근본주의적인 문자적 성서해석이 근간을 이룬다. 예수가 초자연적 유신론인 하느님의 성육신이란 사실을 말하기 위해 동정녀 탄생, 대속적 죽음, 육체적 부활과 재림의 문자적 의미가 강화되었다는 말이다. 대다수 교회와 교인들은 하느님을 초자연적 능력을 갖고 세상밖에 거주하며 자신의 뜻 성취를 위해 직간접적으로 세상에 침투하시는 분으로 선포하고 이해한다. 이런 유신론적 표상을 거부하면 곧잘 무신론자로 격하되곤 하였다. 하지만 이런 유신론의 틀이 현대인들에게 더 이상 유용하지 않게 된 것도 현실이다. 실상 초자연적 유신론은 인간 자의식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진화 과정 속에서 자의식(정신현상)을 지닌 존재로 태어난 인간은 우주 내의 초자연적 힘들이 자신의 필요에 응할 수 있도록 의인화했고 종교적 제의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특별히 기독교는 예배언어를 발전시켜 하느님의 인격성과 능력을 강조했고 그 힘에 자신을 맞추려는 행동통제에 능숙했다. 신적 명령인 십계명은 본래 이스라엘 민족의 공동체 가치를 반영한 것이었다. 하느님의 인격성, 전능성이 신의 영영까지 상승된 공동체적 가치였다는 사실이다.
이후 기독교는 자신들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위해 이웃 종교를 수용하되 자신의 신을 강화시켜 그것 이외의 존재를 부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다신 중 하나였던 ‘엘’의 하느님이 타종족의 신을 부정하는 ‘야훼’ 하느님으로 발전되었고 이것이 우주 보편적인 하느님이 된 것이다. 종교적 실재에 대한 강조는 이제 성직자 및 자신의 교리와 교회의 신성화, 절대화로 이어졌다. 성직자와 함께하는 교회만이 진정한 교회이며 이런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논리가 가능해 진 것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습적 교회는 이런 선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한다. 성상파괴자인 예수를 유일무이한 성상으로 만들어 역사의 완성자이자, 판토크라토(Pantokrator), 곧 만유의 주로 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아 및 거대담론의 해체가 말해지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 다원주의 시대 속에서 초자연적 유신론의 무용성이 언급된다. 유일신 사상과 결부된 초자연적 유신론은 기독교를 근본주의로 만들어 문명충돌의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초월적 유신론의 죽음과 함께 교회내적으로 인습화된 다섯 신조 자체의 해체를 주장한다. 초자연적 유신론의 틀에 의존한 다섯 명제 없이도 기독교는 존재할 수 있으며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이다. 이점에서 스퐁 감독은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성서 및 기독교 전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자연적 신성화 과정을 파헤친다. 유신론적 왜곡 이전의 본래적 예수 상을 역사적 예수 결과에 의거 밝히려는 것이다.
다음 2,3장에서 필자는 스퐁 감독의 의견을 소개하되 크로산, 보그 그리고 펑크와 같은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의 견해를 첨언하며 유신론이전의 예수, 범재신론의 표상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 성서적 신관을 말 할 것이다.

 

 


2. 성서 속에 나타난 역사적 예수의 초자연적 신성화 과정-비케리그마화와 역사적 예수


주지하듯 인습화된 기독교는 위 다섯 신조에 근거 독자적인 역사철학, 곧 구속사 중심의 교회론을 신봉해 왔다. 역사와 자연의 타락을 전제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구원의 역할과 내용을 집중시킨 것이다. 바로 예수의 죽음(십자가)과 부활은 초자연적 유신론의 본질인 바, 유일무이한 역사적 사건으로서 기독교 신앙의 토대를 이룬다. 따라서 케리그마, 곧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에 있어 절대 변할 수 없는 영원한 常數였다.
하지만 역사적 예수 연구는 그리스도 케리그마 역시 상수가 될 수 없음을 지적한다. 불트만 좌파의 경우처럼 비케리그마화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초자연적 유신론의 성육화(聖像)로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자연과 역사 그리고 이웃 종교 및 문화를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종교간 대화나 토착화 신학을 말함에 있어 그리스도 케리그마는 선험적 본질로서 훼손될 수 없는 사안이었다. 불트만 좌파의 비케리그마화나 역사적 예수 연구는 모두 케리그마 자체가 문화적 산물임을 보여주었다.
단지 역사적 예수연구는 그리스도 케리그마가 초자연적 유신론을 필요로 했던 교회적 산물임을 지적할 뿐이다. 여기서 바울 신학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이 흥미롭다. 불트만 학파의 경우 바울은 일정부분 유대교에 뿌리를 두었으나 유대교의 지평을 넘어 보편적(자율적)인 새 종교를 탄생시킨 존재였다. 희랍 세계 내에 만연된 밀의종교(영지주의)의 영향 하에 창조세계의 타락과 절망적 인간상황을 말했고 한 새로운 인간 예수를 통한 구원을 선포한 것이다.
하지만 타락개념이나 인간에 대한 비관적 이해가 본래 유대교 속에는 없었다. 더욱 바울의 새 종교는 유대교 공동체가 즐겨 쓰던 ‘메시아’, ‘인자’ 그리고 ‘하느님 아들’이란 칭호를 버리고 밀의 종교의 핵심 개념인 ‘주(kyrios)', ’그리스도‘(christos)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유대인 예수가 희랍세계에서 전형적인 밀의종교의 형태로 토착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죽음과 부활을 골격으로 한 제의 중심적 밀의종교 속에서 예수가 재해석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역사적 예수연구자들은 바울서신을 공관복음서의 원 자료로 적극 해석한다. 가장 먼저 쓰여 진 바울서신에는 초자연적 유신론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바울을 원 자료로 활용한 후대의 복음서기자들에 의해 예수가 신화화, 신격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바울서신을 탈유대적 기록이라 본 불트만 학파의 시각과 상반된다. 이에 대한 진위 논쟁은 필자의 영역 밖에 있다. 하지만 부활의 예수만 알았던 바울이 역설적으로 예수 어록의 핵심을 꿰뚫었다는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의 지적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점에서 펑크 같은 이는 예수를 격하시킬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기원 후 50년경에 쓰여 진 Q문서가 신약성서의 원 자료라는 사실은 상당수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이다. 예수어록을 담은 외경 도마복음서를 Q 문서와 같은 위치로 격상시키는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도 있을 정도이다. 이들 문서 속에는 당연히 앞서 언급된 다섯 신조들, 곧 초자연적 예수 탄생과 승천 이야기는 물론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언급이 없다. 마가복음서보다 적어도 10년 이상 앞서 기록되었고 이미 정경화 된 바울서신(기원후 50-64년)에서 조차 초자연적 유신론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기사 이적은 물론 동정녀 탄생, 육체적 부활 같은 인습화된 신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바울에게 부활은 확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활은 복음서가 말하듯 빈 무덤을 증거로 삼는 육체적 소생을 뜻하지 않는다. 바울은 자신의 회심을 통해 지속적으로 임재하는 신적 현존을 깨달았을 뿐이다. 부활은 자신 속에서 지속된 하느님 임재의 예상 못한 체험이었다.
예수는 죽었으나 회심을 통해 바울은 자신 속에서 지속적으로 현존하는 신을 깨달은 것이다. 여기서 바울에게 예수는 어떤 식으로든지 하느님과 하나 된 분이었다. 하느님을 떠나 예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점에서 크로산은 부활은 사실(fact)은 아니지만 진실(true)한 것이었다고 하였다.
바울서신에게 있어 하느님이 예수를 아들로 지명한 시점과 근거는 분명 자신의 부활(회심)체험이었다. 이런 체험이 초자연적 유신론적 언어로 언표된 것은 공관 복음서 기자들에 의해서이다. 복음서의 모태가 된 마가복음(기원후 65-75)에서도 본격적인 초자연적 유신론적 언어는 나타나지 않는다. 동정녀 탄생 기사가 생략되었고 예수의 하느님 됨의 시점을 세례요한의 세례 시, 곧 공생애 출발지점으로 다소 앞당겼을 뿐이다. 마가의 부활기사 속에서도 초자연적 요소가 비교적 적게 나타났다고 본다. 본래 마가의 기록이 16장 8절, 너희들 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겠다는 소리에 기절초풍하며 도망간 여인들의 이야기로 끝났을 것이나 후일 정경화 과정에서 초자연적 이미지로 덧칠한 본문(16:9-20)이 삽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마가 본문에 처음 등장한 기적이야기들도 초자연적인 유신론적 예수를 보여주기 보다는 유대 묵시문학과의 연계 하에 하느님 나라 도래의 징조로서 예수를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기술된 것이다. 공생애 시작(세례)과 더불어 하느님 아들로서의 자의식을 갖게 된 마가복음의 예수는 초자연적 존재이기 보다는 하느님 영에 의해 사로잡힌 인간 즉 바울의 부활체험에서처럼 하느님 영의 지속적 현존을 의미한다.
 이와 달리 기원 후 80년대 이후의 저작물인 마태, 누가, 요한복음에서 초자연적 유신론적 해석이 본격화된다. 마태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이야기를 시작한 첫 번째 성서기자이다. 이로써 예수의 하느님 됨이 예수의 기적적 탄생 기사에게로 소급되었다. 예수의 신적 본성이 탄생시점에서 확정되었다는 것은 분명 유신론적 언어의 산물이다. 초자연적 신이 육화되었다는 것이다. 육체적 부활의 기사 역시 마태복음서에 첫 번째로 발견된다. 무덤을 찾은 여인들이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고 그의 발을 붙잡았다는 기록(마 28:9)은 부활의 육체적 특성을 지시하고 있다. 더욱 마태에게 육체적으로 부활한 예수는 하늘 구름타고 오는 인자, 하늘과 땅으로부터 영광을 받을 주님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이는 예수에게 초자연적 유신론의 옷을 입히고 있는 실상이다.
하지만 이런 유신론적 해석이 바울의 부활체험의 본질과 무관하다는 것이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의 생각이다. 90년경에 기록된 누가복음의 특징은 예수의 육체적 부활을 강조한데 있다. 마태와 달리 부활이후 승천이야기도 사도행전에 기록해 놓았다. 천상의 돌아 갈 집에 대한 개념도 마련한 것이다. 이처럼 누가는 초자연적 유신론의 틀을 갖고 예수를 해석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예수가 인간 모습을 지닌 신이라는 유신론적 확신이 누구보다 강했다. 마태처럼 누가 역시도 예수가 처녀의 몸에서 났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누가는 마태와 같이 이사야서(7:14)를 인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신적 존재로서의 예수 정체성이 누가에게 증거를 필요치 않을 만큼 자명해 졌음을 뜻한다. 세례요한의 탄생설화와 병행시킨 것은 예수가 요한 보다 위대하며 이스라엘의 미래가 예수의 구원 능력에 결정적으로 달려있음을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유신론적 해석의 절정은 100년경에 기록된 요한서신에 담겨있다. 요한은 처녀 탄생설화보다도 예수의 선재에 관심을 기울였다. 예수의 하느님 됨을 태초 이전부터 계획된 것으로 서술한 것이다. 예수를 하느님 말씀, 신적 로고스로 보고 창조 시부터 하느님과 함께한 존재로 보았다. 하느님과 예수 자신이 하나라는 진술이 요한서신 곳곳에서 보여 진다. 이런 예수는 소경된 자를 고치고 나사로를 다시 살리는 능력자이기도 하다. 결정적으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예수를 해석했다. 부활한 예수의 초자연적 능력(20:19-23)을 강조한 것도 특징 중 하나이다. 도마에게 보이신 옆구리 상처도 부활의 육체성을 강조할 목적에서였다. 승천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낸다는 증언에서 초자연적 구원의 과제가 적시되고 있다.
이상에서 본대로 복음서 기록 순서에 따라 예수의 인간성은 물러나고 신성이 강조되고 있다. 초자연적 유신론의 틀로 역사적 예수를 해석했기 때문이다. 예수는 인간 몸을 입은 하느님이요, 신적인 남자이고, 처녀탄생의 기적으로 지구에 내려온 신이며 승천으로 지구를 떠났으나 인류 심판을 위해 다시 오실 초자연적 신이 되었다. 희랍과 라틴 교부들의 신학  작업(니케아, 칼케돈 종교회의)을 통해 이제 예수는 삼위일체의 구조 하에서 확고하게 자신의 신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가장 구체적인 역사적 존재가 우주 보편적인 존재로 신분상승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성서적 예수 상으로부터 일탈을 뜻한다. 초자연적 유신론의 옷을 입은 예수가 교회 제도를 통해 도그마로 우리와 만나고 있다. 가현설을 비판한 교회가 인간 예수를 잃어버린 가현적 종교가 된 것이다. 바로 사도신경은 역사적 예수의 흔적을 말살한 가현적 기독교의 실상을 보여준다. 이런 기독교는 유배된 신앙인들을 양산 할 뿐이다.

 

 


3. 대안 문화 활성자로서 유신론이전의 예수- 비종말론적 현자로서 사회적 혁명가 예수


펑크와 같은 학자는 오늘의 교회를 향해 종교적 문맹자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본래 비유로 언표된 예수의 말씀을 교회가 문자적 의미로 가르치며 초자연적 믿음을 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예수에 대한 처음 자료들, Q 문서나 도마복음서는 물론 마가복음을 비롯한 복음서에는 예수의 비유나 警句가 주종을 이룬다. 새롭게 발견된 사해문서와 니그함마디 문서를 포함한 522개 예수 전승 대다수가 이점을 밝혀준다. 비록 후대에 쓰여 진 복음서 속에서 제도화되는 신앙공동체를 위해 첨언되거나 변형된 비유 및 관점을 달리 조작한 경구들이 발견되지만 예수의 수사학이 근본적으로 비유, 잠언, 경구인 것은 부인 할 수 없다.
보았듯이 이들 문서에 수난이나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기사가 없는 것도 특징이다. 바울에게서 부활의 메시지가 강조되나 그것 역시도 예수의 비유나 경구들의 핵심과 무관하지 않다. 기독교 기원에 관한 정보를 정경화된 바울서신을 넘어 Q 문서나 도마 복음서에서 찾으려 하는 것도 바로 경구나 비유의 중요성 때문이다. 예수세미나가 도마복음을 정경으로 승격시킨 것도 이런 맥락 하에 있다. 하지만 바울 자신이 예수를 인습적 믿음의 대상으로 설정하지 않고 예수 자신의 믿음을 본받자고 한 것도 비유나 경구들의 핵심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은 비유나 경구 등을 분석하면서 지금껏 알려졌듯이 예수가 종말론적 예언자가 아니라 지혜교사 내지 현자 또한 사회적 혁명가였음을 밝혀주었다. 구약성서 지혜전승에서 예수의 계보를 찾아 낸 것이다. 세상의 종말 및 그 충격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는 것은 사실 성서를 조금이라도 읽어 본 사람들에게는 놀랄만한 일이다. 복음서에는 분명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예수 최초 선포가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 연구가들은 이런 본문조차 후대의 해석 및 첨언이라고 지적한다. 종말론은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배타적 교리 및 신조를 형성시킨 근거였다. 예수를 구약의 성취라고 본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다. 성육신은 대속적 죽음(십자가)의 전주이고 십자가는 부활 없으면 무의미하며 부활이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역사완성, 곧 종말의 확신 때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실현된 종말인가, 미래적(묵시적) 종말인가의 종말론적 성격 자체에 대한 논의는 있어왔으나 종말론 자체를 부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예수전승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는 물론 통시적 사회(문화) 인류학, 즉 예수가 살았던 사회 정치적 세계에 대한 교차 문화적 인식이 증가됨에 따라 예수는 여러 면에서 인습화된 당대 문화 및 사회 전체를 비판하고 대안을 만들기 위한 카리스마적 지혜자 내지 사회적 혁명가로 조명되고 있다. 소작농이자 문맹자였던 예수가 하느님 영에 사로잡혀 사람들을 억압한 전통적(종교적, 사회정치적) 권위와 관습적(율법적) 지혜에 도전하고 대안 체제적 가치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하늘나라를 묵시적으로 대망했던 세례요한과 구별되는 부분이다.
종말을 임박하게 기다리지 않고 민중들의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믿음을 실현시키려 했던 비종말론적 현자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는 종교적으로 배타적이거나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존재 실체론적으로 묘사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비젼, 곧 자신의 믿음을 가르쳐 나누고자 했던 스승의 상을 하고 있다. 하느님 영에 취해 자신 밖의 현실을 개혁하려했던 예수가 죽음 이후 신앙공동체 내부자들에 의해 자신들을 위한 주님으로 고백되면서 비로소 실체화, 절대화 그리고 존재론적 표현을 얻게 된 것 뿐이다.
바로 이 과정에서 역사적 예수가 실종되었고 기독교를 도케티시즘으로 전락시켰으며 유일무이한 배타적 종교로 자리매김 되었음은 앞서 지적한 바 있다. 본 장에서 우리는 비유나 경구의 형식을 빌어 선포된 예수 자신의 복음, 곧 그가 전한 지혜와 삶을 비종말론적 현자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그를 사로잡았던 하느님에 대해 설명해 보겠다.
주지하듯 유대전통에 있어 영의 세계와 일상적인 경험세계는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상호 교차한다. 종교학에서는 이런 교차점을 지구의 배꼽(Navel of the Earth) 또는 우주수라고 일반화시키고 있다. 예수는 바로 영의 실체를 경험한 유대 카리스마적 지혜 전통에 속한 존재로서 당시 문화에 격렬히 도전했던 인물이었다. 거룩의 영역을 세속의 영역에 매개하려했던 예수의 실천전략을 정치학이라 부를 수 있다면 이점에서 예수는 대안 문화 창출을 위한 사회 혁명가로 명명되어도 좋을 것이다. 당시 팔레스타인이라는 공간적 차원의 물적 토대와 유대사회 내 공유된 인습적 지혜(가치)를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의 빛에서 되묻고 있는 것이다.
이때의 하느님 나라는 당연히 현세를 떠난 공간이 아니라 하느님 지배(통치)가 일어나는 일상의 영역을 뜻한다. 예수의 비유들과 경구가 일상적 사건, 장소, 인물들을 배경으로 한 구체적 언어 표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예수의 하느님 나라는 당시 지배이데올로기였던 유대교의 ‘정결(거룩)’ 개념과 맞서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유대교는 거룩한 공간, 곧 성전을 하느님 현존의 유일한 장소로 설정하였다. 더욱 대제사장만이 드나들 수 있는 지성소와 사생아, 장애인 그리고 불법적 자녀들이 자리할 수 있는 공간을 9등급으로 영역화시켰다.
이는 당시의 인습적 지혜인 조상의 혈통적 순수성과 정결의 정도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는 성속을 구별하는 유대의 사회 구조와 그 상징인 선전 자체의 파괴를 예언하였다. 예수의 비젼 속에는 공간을 나누는 벽(테노메스)이 없었으며 중개자(Broker)없이 누구라도 하느님 현존에 이를 수 있었다. 자신이 중개자가 되는 것마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은 유대의 정결체계(율법)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이런 일탈과 무차별을 하느님 나라의 비젼으로 가르쳤다. 정결규정 강화를 본업으로 알던 제사장들과의 갈등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예수가 그들에게 먹고 마시기를 탐하는 자란 평가를 받은 것은 당연하다. 이방인과 공동식사를 했고 병든 여인과 대화했으며 어떤 음식이라도 그것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심지어 유대인의 징표이자 관습법인 할례조차 부정하는 입장을 보였던 것이다. 이점에서 바울과 예수의 사상적 일치를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은 인정한다.
하느님 이름 ‘야훼’는 불려 질수 없을 만큼 위대한 존재이다. 유대인들은 ‘야훼’대신 ‘아도나이(주님)’ 이라 불러야했다. 이 원칙을 깨트리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유대공동체는 수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는 이 금기마저 넘어선다. 하느님을 ‘아바’ 또는 ‘아버지’라 부른 것이다. 이는 자신 속에서 지속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신적 존재에 대한 예수의 확신을 보여준다. 예수가 금식과 금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도 중요하다. 금식보다는 잔치가 먼저였다. 굶주린 자를 축복하며 그들에게 배부를 것을 약속했다. 예수는 하느님 통치가 일어난 순간을 축제로 이해했던 것이다.
거룩한 공간만이 아니라 거룩한 시간에 대한 예수의 독특한 이해가 돋보인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필요가 안식일의 필요보다 우선한다는 생각은 혁명적이지 않을 수 없다. 예수는 또한 사람들에게 음식이나 의복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아들이 빵을 달라면 빵을 줄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얻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머리 둘 곳도 없이 방랑하는 현자 예수가 일용할 양식을 하느님께 맡긴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인간 상호간의 협력과 공동체성에 대한 관심을 피력한 것이기도 하다. 예수는 하느님께서 악한 자나 선한 자 모두에게 햇빛과 비를 준다고 말했다. 의로운 자의 특권을 인정치 않겠다는 것이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도 그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상벌에 대한 이해도 전혀 달랐다. 예수는 누구라도 죄인 됨을 알고 있는 사람을 정죄하지 않았다. 용서하면 용서받는다는 상호 관계성을 강조한 것이다.
친밀감을 갖고 상호 식탁 공동체를 만드는 것만이 하느님이 원하는 것이라 하였다. 예수는 죽음 이후에 대해 많은 말씀 없었다. 지금 여기서의 삶이 예수에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혈연관계를 떠나 지금 여기서 수백 명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으라는 것이 목숨을 잃는 사람만이 목숨을 보존 할 것이란 말씀(누가 17:33)의 본뜻인 것이다. 늦게 포도원 농장에 불려 진 일꾼에게 동일한 품삯을 준 것도 갖은 이유에서이다.
결국 하느님 나라는 가난하고 빼앗기고 굶주린 사람이 환영받는 장소라 한다. 이미 자신이 그 나라에 속했다고 믿는 종교적 기득권자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첫째가 꼴찌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말도 이런 하늘나라의 본질을 일컫는다. 더욱 핵심적인 것은 이런 하늘나라를 위해 현재적 삶으로부터 출애굽을 우리에게 요청한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예수는 하느님 나라 비젼에 근거하여 인습적 지혜, 정결(거룩)의 정치학에 도전했다. 하지만 그의 비젼은 종말론적이지 않았고 내세지향적일 수 없었다. 지금 여기서 가난한 이가 배부르며 꼴찌가 대우받는 식탁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자신의 관심사였다. 이를 위해 정결 정치학의 계층구조를 부수는 것이 그의 할 일이었고 이를 위한 예수의 수사학이 경구와 비유 그리고 잠언이었다.
하느님 나라로서의 식탁 공동체를 위한 예수의 수사학적 전략 속에서 비종말론적 현자 예수상이 더 잘 들어 난다. 우선 예수의 어록에는 신학적, 철학적 일반론이 없다. 주변 감각(자연) 세계를 소재로 하느님 나라를 간접적으로 언표 했을 뿐이다. 예수의 언어가 일차적으로 비유였다는 것은 그가 지혜전승의 현자였음을 보여준다. 비유란 항시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it is, but it is not)'의 특성을 지닌 것으로 문자주의와 비문자주의 간의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 다음으로 예수는 대구(對句)를 사용하여 긴장을 유발시킨다. 인습적 지혜를 역전시키려는 전략인 것이다. “건강한 이에게 의원이 필요 없고 병 든 사람에게만 필요하다”(마가 2:17).
또한 예수는 일상의 상식을 깨고 상황을 반전시켜낸다. 역할을 뒤엎거나 일상적 기대를 무너트리는 것이다. 잘 알려진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상처받은 유대인을 구원한 자가 성직자나 레위인이 아니라 그들과 적대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인임을 말하고 있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 또한 후일 기독교 구원사적 관점에서 해석되었으나 본래 탕자는 예수 자신의 자서전적 여정의 표현이었다. 가족과 친지를 뒤로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며 하느님 나라 운동을 주도한 예수 자신의 이야기란 것이다.  이런 예수에게 있어 하느님은 유대인을 치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존재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이미 유대전통을 떠나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 두 이야기는 모두 하느님 나라는 사회적으로 가치 없는 자들에게 개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역설 역시도 실천 전략 중의 하나이다. 원수가 원수 일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생각 할 수 없는 일었다.  ’누가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뼘마저 돌려대라’ 는 경구는 대단한 풍자였다. 신체구조 상 오른 뺨은 상대방의 왼손으로만 칠 수 있다. 왼손이란 사회적 통념상 더럽고 부정한 일을 위해 은밀히 사용해야만 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오른 쪽 뺨을 왼손으로 치는 것은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행하는 일종의 모욕이었다. 이런 모욕을 받고도 왼쪽 뺨을 돌려 대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비폭력적 반항으로서 상황을 역전시키는 효과를 창출한다.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주라’는 것도 알 몸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 하던 당시 사회법규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풍자 역시도 예수 수사학의 백미 중 하나이다. 한 예로 예수는 겨자 씨 비유로 하늘나라를 비유한 적이 있다. 여기서 겨자씨는 1년 생 잡풀로서 백향목과 대비된다. 본래 다윗 왕국의 상징인 백향목 대신에 사람에게 골치 덩이인 보잘 것 없는 겨자씨를 하느님 영토로 이해한 것이다. 아무 곳에서나 쉽게 자라 새들을 유인하며 빨리 자라 통제하기도 어렵고 그 영역을 마구 넓혀가는 겨자씨는 지주들에게는 위협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겨자씨로 풍자된 하느님 나라는 기존 계층 질서에 대한 독설인 셈이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예수는 자기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한 바 없었고 자신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들어 내지 않았다. 실제적 충고 대신 언제든 들을 귀 있는 자의 이해를 구했다. 그럼에도 매순간 예수의 말씀은 그대로 행위가 되었다. 자신의 비젼과 일치된 행동을 한 것이다. 선포를 통해 듣는 이들의 사회적 지위를 바꿔주었고 치유했고 용서했으며 새로운 현실을 돌려주었다. 결국 예수는 하느님과 세계 사이에 실제로 있어야만 하는 관계를 창출했던 것이다. 이제 예수의 비젼 속에서 옛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 나라를 ‘여기, 저기’에서가 아니라 지금 우리들 한 가운데서 새로운(대안적) 삶의 양식을 찾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현실 부정적인 요한의 묵시론이나 배타성을 함축한 미래적 종말론과 구별되는 예수의 하느님 나라 본질이 있다.
마가의 선포, “때가 찼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라”(마가 1:15)는 말씀은 마가의 덧붙임이다. 예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기사(마가 10:33-34) 역시도 초대 공동체의 자기 확신에 기인한다. 초대 교회에 의해 확대 해석된 수난 설화는 예수 자신의 수난과 구별되어야 한다. 하느님 나라에 어린이와 여자 그리고 세리와 창녀를 포함시킨 것은 인습적 질서를 깨트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공공질서 파괴자로서 죽었던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영토를 이 땅에서 확장시킨 것이 죄목이었다. 육체적 부활 역시도 영지주의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주장되었다.
보았듯이 바울에게 현현한 부활의 그리스도는 분명 육체적 부활과는 무관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육체적 부활을 확증함으로 구약의 신명기 패러다임-상벌 보응체계-을 무덤 너머로 연장시켰다. 부활의 증인들이 경험한 순서에 따라 초대 교회의 권력자들이 된 것도 사실이다. 부활은 이제 기적 중의 기적이 되어 예수의 비젼을 대신했고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 고양된 그리스도로 만들어 버렸다.
예수의 복음(비젼)이 복음서들의 예수로 바뀌는 과정에서 예수가 관심했던 외부자들의 시각이 사라지고 신앙 공동체 내부자들만의 예수가 강조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다. 이제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은 “누가 예수를 죽였느냐는 물음 대신 무엇이 예수를 죽게 했는가?” 라고 묻는다. 예수 자신의 비젼이 사라지고 교회가 자족적 신앙공동체가 될 때 예수는 또다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리고는 “오늘 왜 우리는 예수가 받았던 하느님의 영을 받지 못하는가?” 라고 반문한다.
유대 팔레스틴 사회체계의 인습적 지혜를 타파하고 대안적 삶의 세계를 제시했던 지혜교사, 사회적 혁명가 그리고 하느님 영의 재활성가인 예수의 비젼에 반응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을 촉구한다. 여기에 좁은 길인 제자직의 삶이 있다. 제자직은 성령과 문화의 경계에 사는 삶이자 두 세계에 참여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4.역사적 예수의 빛에서 본 역사적 붓다 -대안적 가치 담지자로서의 예수와 붓다


역사적 예수가 인습화된 신앙의 그리스도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가 자신의 중개자(Broker)됨을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주지하듯 예수는 일반 백성들과 하느님 사이에 어떤 매개자가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느님을 대상화하던 간접종교(유대교)로부터 그 분을 아버지로 체험하는 직접 종교를 선포했기 때문이다. 예수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의 나라와 통치를 신뢰할 것을 가르쳤을 뿐이다. 바울 역시도 구원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믿음을 자신의 믿음으로 체화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보았다.
예수의 삶이 바울에게 있어서도 따르고 모방해야 할 전형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중개자에 대한 거부는 이제 예수의 대속적 죽음에 대한 초대 교회의 해석을 무화시킨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그를 믿는 자(내부자) 누구든지 하느님의 진노로부터 피할 수 있다는 죽음에 대한 대속적 이해는 십자가 사건에 대한 오해라는 것이다. 오히려 십자가는 예수의 죽음을 자신의 몸에 짊어지고 살아야 할 과제, 곧 하느님 義의 실천을 예시하는 사건이 된다.
본래 하느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 예수를 이 땅에 보낸 초자연적 존재로서의 유신론과는 무관한 존재였다. 오히려 성서의 하느님은 우리를 둘러싸는 영(encompassing spirit)과 같은 존재라 보는 것이 옳다.
하느님은 지금 여기 계시며 사람들 속에 계실 뿐 아니라 하늘과 자연 그리고 삼라만상이 그 분의 현존을 증거 하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모든 것을 감싸며 포월하는 영으로서의 하느님은 오로지 경험(깨달음)의 대상이 된다. 이런 하느님 영의 현존에 자신을 개방했고 그것을 품어 안은 예수를 우리는 신의 현현내지 육화로서 이해할 수 있다. 예수의 인격과 삶 속에서 하느님 영의 성격이 들어났기 때문이다. 하느님 영에 사로잡혀 예수는 수많은 이들을 치유했고 대안적 사회 비젼을 갖고 당시 지배체제에 도전했다. 이런 예수의 영 체험은 독특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절대 유일 한 것은 아니다.
예수를 사로잡은 영은 오늘 우리에게도 임재 할 수 있으며 이웃 종교인들에게 그들의 방식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붓다의 존재는 긍정된다. 이점에서 중개자를 거부한 역사적 예수가 현재의 그리스도로 고백되어야만 한다.
기독교 이후 시대에 기독교의 살길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런 새 기독론은 붓다와 같은 이웃 종교 창시자들을 지혜의 동반자로 부른다. 대안 문화를 지향했던 예수의 비젼은 역사적 붓다의 삶과 무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차축시대에 접어든 지금 종래와 같은 분화보다 수렴의 힘에 의해 지구적 차원의 대안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면 바로 그곳에 종교의 존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만큼 역사적 붓다에 대한 논의가 활발치 못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붓다의 연기설이 空(sunjata)으로 해석되고 중국에서 格義되는 과정에서 역사적 붓다 역시 많은 부분 실종되었다. 불교라는 거대한 바다가 형성되었으나 최초 발현된 원류의 신선감을 잃고 자정능력을 잃어버렸다는 평가도 있을 정도이다. 이점에서 몰역사화된 불교 형이상학을 비판하며 역사적 붓다의 어록 및 연구논문들이 불교계 안에서 출판되는 현실은 “역사적 예수 르네상스” 에 접어든 기독교 시각에서 의미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불교계 내에도 역사적 붓다 연구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축적된 전통인 불교 경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예수, 붓다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인간적 면모는 사라지고 비역사화된 가르침이 강조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점에서 역사적 붓다 연구가들은 역사적 예수의 경우처럼 당시 사회적 조건을 설명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종교운동의 창시자로서 붓다를 적시하고 있다. 여기서는 역사적 예수의 관점에서 역사적 붓다를 조망할 목적으로 비교 가능한 주제들을 간략하게 서술코자 한다.
비록 세계관의 차이, 역사적 경험의 차이로 인해 두 지혜간의 독특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나 고통에 대한 민감성, 인간 초월과 해방의 가능성 그리고 인간 존재의 고귀성을 인지함에 있어 인류를 위해 함께 “자비의 길”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역사적 붓다에게는 예수의 유대교에 상응하는 바라문교가 있었다. 바라문교 사제는 신들에 대한 제사를 주 업무로 하면서 고소득자로 생활하였다. 궁중이나 가족의 부귀와 자손의 영달을 빌어주고 때론 주술적으로 그들을 위협하며 소위 의례의 전문가로 기득권자가 되어 있었다. 사회 경제적으로는 길드 조직이 형성되어 상거래가 활발했다. 부를 획득한 일부 상인계급이 가난한 이들을 상대로 높은 이율의 고리대금을 빌려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당시 불가촉천민이란 개념은 생기지 않았으나 상인계층, 제사장들 그리고 행정 관료들과 삶의 영역을 나눠야 했던 노예계급이 존재했었다. 철기 문명의 도래와 함께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는 시점에서 백성들의 희생을 촉발하는 수차례의 전쟁도 당시의 현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사계급과 그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장들이 결탁한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강력한 패권국가가 형성된 시점에서 당시 종교는 제의를 통해 사회적 부와 권력 그리고 현세적 쾌락을 정당화했었다.
하지만 이런 경향에 반하는 고행주의가 기원전 7-8세기에 등장하게 된다. 예수운동과 비교한다면 세례자 요한의 묵시적 종말론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이것은 제사를 부정하며 고행을 통해 신과 합일되어 신통력을 얻고자 하는 일종의 영적 운동이었다. 가족을 떠나 자유롭게 유행하는 삶의 방식을 취했으나 당시 제사장 중심의 기성종교는 이들을 위협적 존재로 간주했다. 붓다 역시도 고행적 수행자의 길을 작심한다. 재가의 삶을 부정하고 수행자의 삶을 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6년간의 고행은 그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지 못했다. ‘제의’주의자들이나 ‘고행’ 주의자 들 모두 욕망을 떨쳐버리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현세의 안락이나 종교적 신비는 방향만 다를 뿐 인간을 욕망의 전차에서 하차시킬 수 없었다. 붓다는 욕망의 성찰을 결여한 앞선 두 운동과 결별하며 연기법들 깨닫게 된다. 집착을 유발하는 실체론적 사유 대신 만물의 상호 의존적 관계성, 곧 연기적 세계상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서 붓다의 최고의 관심은 인간의 평화였다. 인간의 욕망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인간에게 평화를 선사하려 했던 것이다. 고통의 원인인 욕망을 제거하면 평화가 생긴다는 지극히 사회적인 메시지가 붓다의 깨달음의 내용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세례요한의 금욕적 묵시론과 결별하며 하느님 영에 사로잡혀 중개자 없는 식탁 공동체를 선사했던 예수를 떠올리게 된다. 이제 초기 경전 속에 기록된 역사적 붓다의 몇몇 행적을 살펴보며 역사적 예수와의 접촉점을 생각해 볼 시점이다.
역사적 예수가 초자연적 유신론과 중개자개념과 무관하듯이 역사적 붓다에게도 초자연적 특성이 탈각되어 있다. 붓다 자신 뿐 아니라 그가 발견한 緣起法도 초자연성과는 상관없다. 우리는 無我의 윤회 여부를 주제로 한 불교철학의 논쟁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붓다는 자신의 늙음을 무상하게 여긴 인간이었다. 자신의 늙음을 인정함으로 무상의 진리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부끄러워할 지어다, 가련한 늙음이여,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늙음이여, 잠시 즐겁게 해주는 사람의 영상, 늙어감에 따라 산산이 부서지네. 백세를 살더라도 결국 죽음을 궁극적으로 할 뿐, 아무도 죽음을 피하지 못하니, 그것은 우리를 산산이 부수어 버리네.”
붓다가 전지자란 것도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연기법은 결코 미래를 예언하지 않기 때문이다. 붓다의 가르침은 경험적인 것 이상일 수 없다.
다음으로 역사적 예수가 본래 기적과 무관한 존재였듯이 붓다 역시도 육체적 질병을 고치려는 욕망을 지닌 적이 없었다. 예수의 관심은 오로지 병든 이가 사회 공동체에 통합될 수 있는가 하는데 있었다. 역사적 붓다 또한 육체적 질병 자체보다도 몸이나 마음이 본래 자기 것이 아님을 자각시키는 데 마음을 두었다.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기보다는 본래적 상태에 돌아갈 것을 말하는 점에 있어서 역사적 두 존재는 닮아 있는 것이다.
제사 및 예배에 있어서도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역사적 붓다는 권력자인 한 왕의 조모를 위한 제사를 요청받는다. 하지만 붓다는 생전 많은 공덕을 쌓았던 왕의 조모에게 내세를 약속하지 않았다. 절대권력 앞에서, 또한 제의 중심적인 종교문화 속에서 붓다의 이런 태도는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붓다는 공덕이 내세의 조건일 수 없음을 강변하고 있다. 공덕 역시도 내세를 위한 욕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가를 바라고 선을 베푸는 잘못된 공덕에 대한 붓다의 지적은 유대인의 업적-보상원리를 부서트린 예수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부활을 죽음 이후의 보상으로 본 것은 예수 사후 내부자들의 해석일 뿐이다. 주지하듯 예수의 가르침은 자연을 통해 얻은 비유를 매개로 하여 행해졌다. 마찬가지로 역사적 붓다 역시도 사려 깊은 비유를 통해 수행자들의 생각을 변화시켰다.
두 역사적 현자들에게 교조적 믿음체계란 처음부터 없었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면서도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제자에 대해 붓다는 물그릇에 담겨있는 물을 쏟아버리고 빈 그릇을 그 앞에 제시하며 말씀한다. “거짓말하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사람의 덕성은 빈 그릇처럼 공허하다.”고. 이것은 겨자씨를 보고 하느님 나라를 말하였던 예수, 즉 일상에 대한 숙고와 성찰을 통해 종교적 삶을 예시했던 지혜자 예수의 가르침과 비교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역사적 붓다는 현실 초월자가 아니라 현실 참여자였다.
붓다는 욕망의 노예가 된 폭력적 삶에서 인간을 구원하려고 힘쓴 존재이다. 살인과 폭행을 일삼던 악한 자 한 사람(앙굴리말라)을 제자로 만든 것은 개인구원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로인해 생겨날 악행의 사슬(인연)을 끊어 인간 세계 전체를 해방시키기 위함이었다. 개인적 욕망(행위)은 사회적 사건의 근본 요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으로 두 종교의 특성을 대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예수나 붓다 모두 하느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고 선포한 분들인 것이다. 단지 붓다가 팔정도를 통해 바른 정신활동을 강조했다면 예수는 하느님 나라의 비젼에 근거, 사회적 관계를 좀 더 중시했을 뿐이다.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붓다의 팔정도와 혈연관계조차 넘어서길 바라며 친밀 공동체를 세우려했던 예수의 하느님 나라 비젼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간의 고통을 치유할 목적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이점에서 역사적 예수와 역사적 붓다에게 있어 인간의 실존적, 사회적 고통에 대한 민감성이 뿌리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종교적 현자들의 삶과 사상은 이제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연대성의 원리’를 바탕으로 대안문화 창출의 전거가 된다. 붓다의 제자들과 예수의 제자직을 수행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생명계 전체의 고통에 대한 민감성-지구적 영성(global Conscience)을 갖고 상호 연대하여 대안적 세계화의 길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간이 종교의 수단으로 엮어지는 인습화된 제도 종교의 한계를 벗고 인간과 뭇 생명을 위한 살림의 종교로의 거듭나야만 한다.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며 자연생명을 수탈하는 세계화의 현실 앞에서 치유행위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예수와 역사적 붓다는 하느님과 동일본질이길 포기하고 초인간적 존재로 신화화 되는 것을 거부하며 더욱 철저하게 인간과 같아져야만 한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앞선 종교를 비판하고 넘어섰듯이 그들을 신격화하는 오늘의 인습적 종교에 대해 스스로 성상파괴자의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들 두 역사적 지혜자들은 일상적 사고틀을 뒤집는 방식으로 인간 및 생명의 위대성과 신성을 각성시키고 대안 문명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상기자’(Reminder)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점에서 우리는 역사적 예수와 역사적 붓다가 “인식의 권위”에 붙들려 있지 않고 “의지의 권위”로서 인류모두에게 '보편적'(universal)이며 ‘결정적’(decisive)이고 ‘필수불가결한’(indispensable) 존재가 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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