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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학 계율 성립의 배경과 전개 / 이자랑 [불교평론]

출처 수집자료

1. 서론

계율을 불도수행의 시작이자 근간이라 표현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사실 현대의 불교도들 인식 속에서 계율이 정말 이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가, 또한 이에 근거한 절실한 실천 의지가 있는가는 의문이다. 물론 개인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반화시켜서 단언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심심찮게 불거져 나오는 불교계의 사건을 비롯하여 주변의 상황을 돌아보았을 때 한국의 불교도들이 계율에 대한 의식이 높다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일 듯하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뭔가 속박당하는 것 같아 싫다는 사람도 있고, 번잡해서 싫다는 사람도 있다. 또 계율 같은 건 수행이 완성되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거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는 이 모든 의견이 대부분 붓다가 왜 계율을 제정했는가에 대한 충분한 이해의 부족에 기인하는 것 같다.

특히 승가를 구성하는 주체인 비구·비구니에 대해 제시되고 있는 수많은 규칙〔律〕은 일견 잡다하고도 강제적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히게 한다. 붓다가 왜 계율을 제정했는가, 그 이유를 생각하기도 전에 어마어마한 양과 딱딱한 훈계식 표현에 질려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규칙 하나하나가 비구(니)의 수행, 승가의 질서와 안락, 그리고 승가의 영원한 존속과 발전 등을 위해 얼마나 신중하게 고안되고 있는지 알게 된다. 또한 율 가운데는 현대 불교도의 입장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그야말로 2,600여 년 전의 인도사회에나 어울릴 듯한 규범들도 다수 있다. 이를 이유로 율장(律藏)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현실성 없는 것들은 지킬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결국 율장을 생명력 없는 고대 문헌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하지만 율장의 의미를 폄하할 때 가장 많이 거론하는 ‘현실성 결여’가 사실은 율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이루어진 성급한 결론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율은 딱딱한 법률집으로 고대인도 승가에서나 통용되었던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조문의 문자가 아닌 그 제정 배경을 폭넓게 이해한다면, 율이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승가의 주체인 비구·비구니가 반드시 수지해야 할 규범이라는 점을 납득할 것이다.

붓다에 의해 영원히 승가를 존속시키고, 또한 정법을 확립해 가는 길로 제시된 율을 우리는 무슨 근거로 냉대시하는지, 정말 진지한 성찰과 고민 끝에 이런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인지 반성해 봐야 한다. 본고에서는 붓다가 언제, 왜 율을 제정했으며, 또한 붓다의 열반 후에 제자들은 율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 계율 제정의 배경과 전개 과정을 살펴보며 율의 존재와 실천적 의의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율의 제정 시기 : 수범수제(隨犯隨制)

율장 〈경분별(經分別, Suttavibhaṅga)〉 첫머리에는 불교승가에 처음 율이 등장하게 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다. 붓다가 어떤 시점에, 어떤 방법으로, 왜 비구(니)를 위해 율을 제정했는가, 붓다와 사리뿟따 간의 대화 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하, 빨리율에 근거하여 중요 부분의 내용을 살펴보자.

어느 날 조용한 곳에서 명상하고 있던 사리뿟따는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어떤 과거불의 범행(梵行)은 오랫동안 머물고, 어떤 과거불의 범행은 오랫동안 머물지 못했을까?’ 사리뿟따는 곧장 붓다를 찾아가 자신의 생각을 질문한다. 그러자 붓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사리뿟따야, 위빠시(毘婆尸)불과 시키(式)불과 웻사부(隨葉)불의 범행은 오랫동안 머물지 못했지만, 까꾸산다(拘留孫)불과 꼬나가마나(拘那含牟尼)불, 그리고 깟사빠(迦葉)불의 범행은 오랫동안 머물렀느니라.”

사리뿟따는 다시 묻는다.

“어찌하여 위빠시불과 시키불, 웻사부불의 범행은 오랫동안 머물지 못했습니까?”

“위빠시불, 시키불, 웻사부불은 성문제자를 위해 상세히 법을 설하는 것을 피곤하게 여겼고, 제자를 위한 계경(契經, sutta)…… 방광경(方廣經, vedalla)은 조금 있었으며, 제자를 위해 학처(學處)를 제정하지 않았고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를 송출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 불세존들이나 대성문(大聲聞)이 죽은 후, 다양한 이름과 종성, 출신, 가계로부터 출가한 제자들은 곧 범행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사리뿟따야, 예를 들어 실로 엮이지 않은 채 나무판자 위에 있던 다양한 꽃들이 바람이 불면 흩어져 사라지는 것과 같다. 무슨 이유인가. 실로 엮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이 그 불세존이나 대성문이 죽은 후, 다양한 이름과 종성, 출신, 가계로부터 출가한 제자들은 곧 범행을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어 사리뿟따가 까꾸산다불과 꼬나가마나불, 그리고 깟사빠불의 범행은 오랫동안 머물렀던 이유를 묻자, 붓다는 위와 반대의 대답을 한다. 즉, 이들은 제자들을 위해 상세히 법을 설하는 것을 피로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제자를 위한 계경 등이 많았고, 학처를 제정하고 바라제목차를 송출했다는 것이었다.

범행이 구주하지 못한 이유가 다수 열거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이에 이은 붓다와 사리뿟따 간의 다음 대화에서 핵심이 드러난다. 즉, 붓다의 대답을 들은 사리뿟따는 ‘학처의 제정과 바라제목차의 송출’이야말로 범행을 오랫동안 머무르게 하는 원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따라서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제자들을 위해 학처를 제정하고, 바라제목차를 송출하여 범행을 오랫동안 머무르게 해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붓다는 사리뿟따의 청을 거절한다.

“사리뿟따야, 기다려라. 여래 스스로 그때를 알아서 할 것이다. 승가에 어떤 유루법(有漏法, āsavaṭṭhāniyā dhammā)도 발생하지 않는 한, 여래는 성문 제자들을 위해 학처를 제정하지 않으며 바라제목차를 송출하지 않을 것이다. 승가에 유루법이 발생한다면, 그때 비로소 여래는 성문 제자들을 위해 그들의 유루법을 끊기 위해 학처를 제정하고 바라제목차를 송출할 것이다.”

이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정법이 오랫동안 지속되기 위해서는 학처의 제정과 바라바라제목차의 낭송이 필수적이라는 것, 그리고 승가에 유루법이 발생하면 그 유루법을 제거하기 위해 학처 제정이 필요하다는 것, 이 두 가지이다. 정법의 구주(久住)를 위해 율이 필요하다는 점은 율을 제정한 열 가지 이유인 제계십리(制戒十利)의 가르침에도 담겨 있으며, 붓다의 열반 후에 마하깟사빠 장로의 주재하에 열린 제1차 결집의 전승에도 담겨 있다. 결집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500명의 아라한을 향해 마하깟사빠 장로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벗들이여, 우리는 무엇을 먼저 결집할까요? 법입니까 혹은 율입니까?”
그러자 비구들이 대답했다.

“존자 마하깟사빠여, 율은 붓다의 가르침의 생명이며, 율이 확립하고 있을 때 가르침도 확립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율을 결집합시다.”

이리하여 제1차 결집에서 경보다 율이 먼저 결집되었다고 한다. 이 전승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율은 붓다의 가르침을 지탱하는 가장 근원적인 요소로 생각되고 있다.

한편, 빨리율의 주석에 의하면 여기서 말하는 유루법이란 ‘현세와 내세에 관한 것으로, 타인에게 비난받거나 후회하거나 살해당하거나 포박당하거나 하는 현세의 고통과, 악처(惡處)나 심한 고통을 받게 되는 미래세의 고통이 존재하도록 하는 원인이 되는 악행’을 말한다고 한다. 유루법이 나타나는 시점을 학처 제정의 적시로 생각하는 것은 율이 필요한 순간, 다시 말해 율이 최대한 그 존재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시점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해당 부분에 대한 주석서의 설명은 이해를 돕는다.

요령 없는 한 의사가 아직 종양이 생기지도 않은 사람을 불러 세운 후 말했다.

“어이, 이리 좀 와 보시오. 당신 몸 여기 여기에 큰 종양이 생겨 곧 고통받게 될 것이요. 미리 치료하시오.”
그 사람이 승낙하자 의사는 그의 건강한 신체 일부분을 절개하고 피를 내며 잘라낸 후 붕대를 감아 주었다. 그리고는 그 사람에게 “자칫하면 큰 병이 될 것을 내가 치료해 준 것이오. 내게 치료비를 내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이 바보 같은 의사가 도대체 뭐라는 거야? 무슨 병이 나았다는 거야? 내가 얼마나 아팠는데, 또 피는 얼마나 흘렸는데……”라며 도리어 비난하고 질책할 뿐, 의사에게 조금도 고마워하지 않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직 범죄의 과실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스승이 제자들을 위해 학처를 제정한들 그들이 스승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못할 것은 분명하며, 따라서 이렇게 제정된 학처 역시 적절한 상태로 안주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좋은 의사나 스승이 앞을 내다보고 미리 적절한 조치를 제안한다 해도, 범부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병이나 과실을 확인했을 때만 치유의 결과를 인정한다. 빨리율에 의하면, 승가에 출가한 지 오래된 자들이 많아지거나, 인원이 많아지거나, 보시물이 많아지거나, 들은 것이 많아지거나 할 경우에 유루법이 발생하게 된다고 하며,《사분율》에서도 비구들에게 명예나 지식, 재물(보시물)이 늘어남으로써 유루법이 생긴다고 한다. 즉, 승가의 구성원이 늘어나고, 명예나 재물이 늘어나고, 지식이 늘어남으로써 현세나 미래세에 고통을 야기할 수 있는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유능한 의사가 적절한 때에 환자를 치유하듯이, 붓다도 이때가 되면 악행을 금지하는 율을 제정하여 유루법을 타파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음욕법을 시작으로 붓다의 율 제정은 모두 󰡐수범수제(隨犯隨制)󰡑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율은 악행이 나타났을 때 그 악행을 차단하기 위해 제정된다고 하는 기본적인 입장에 따른 것이다. 악행을 저지르는 비구가 나타나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먼저 조문화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율은 ‘출가자에게 필요한 이상적인 규범’을 한꺼번에 정리하여 제시하는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오로지 현실 속에서 수지가 필요해진 행동만을 그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잠재된 악행은 현실에 나타날 수도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악행이 실제로 밖으로 드러났을 때 그 악행으로 인한 과실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실제로 드러나지 않은 악행을 더군다나 출가자에게 적용한다는 것은 오히려 반발심을 유발할 수도 있다. 따라서 악행을 저질러 그 과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때가 바로 율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순간이자, 율이 최고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순간이다. 이때가 바로 율을 제정할 적시(適時)이다. 이는 뒤집어 생각하면, 악행을 저지르는 자가 나타났을 때는 방치하지 말고 즉각 조치를 취해야 함을 보여준다. 악행의 방치는 수행자 개인뿐만 아니라 승가의 발전, 나아가 정법의 확립을 방해하는 길이다. 따라서 율을 기능시켜 더 이상 그 자신도 또한 다른 수행자도 악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해 주어야 한다.

3. 율의 제정 이유 : 제계십리(制戒十利)

승가에 악행을 저지르는 자가 나타난 것을 계기로 붓다는 율을 제정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는 언제였을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나, 대중부의 바라제목차에 의하면 붓다의 성도 후 5년이 지난 시기였다고 한다.

점차 출가자가 늘어나 승가의 규모가 커지고 보시물 역시 늘어남에 따라 승가 내외에서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높아졌을 것이라는 점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나둘 악행을 저지르는 자가 승가에 등장해 청정성이 훼손되자, 붓다는 이를 금지하는 형태로 학처를 제정해간다. 그리고 보름마다 포살(布薩)을 통해 학처를 모아 놓은 바라제목차를 암송하게 하여, 비구(니)가 악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고, 만약 저질렀을 경우에는 상응하는 처벌 혹은 참회 등을 통해 청정비구로 돌아올 수 있게 했다.

그렇다면, 붓다는 어떤 행동을 악행으로 판단해 금지했을까? 이 점을 고찰함으로써 승가에서 율이 필요했던 이유, 다시 말해 율의 역할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사실 율장에서 금지하는 행동들은 살인이라든지 거짓말, 혹은 도둑질처럼 누가 보아도 악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음욕이나 이성과의 신체 접촉, 승가 분열 등과 같은 수행자의 본질과 관련된 것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걸식하러 나가서 걸을 때 팔을 흔든다거나 뛴다거나 하는 일상적 위의와 관련된 것도 있다. 이것들은 물론 세분화되어 경중(輕重)이 구분되고는 있으나, 율장에서 금지하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모두 악행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상식에서 볼 때 비윤리적인 행동이 율장에서도 악행이겠지 생각한다면, 결코 율의 제정 이유는 파악할 수 없다. 조문 하나하나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이루어졌을 때 율 제정의 이유 역시 명확해질 수 있다. 하지만 조문 수도 많고 내용도 다양해서 이는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라고도 볼 수 있는 가르침을 율장 스스로 간략히 제시하고 있다. 바로 󰡐제계십리’라 불리는 가르침이다. 제계십리란 율을 제정하는 목적, 다시 말해 율을 지킴으로써 얻게 될 열 가지 목적을 설한 것으로 각 조문의 결계(結戒) 마무리 부분에서 제시되곤 한다.

빨리율에 의하면, 제계십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승가의 선성(善性)을 위하여
② 승가의 안락을 위하여
③ 악인을 절복하기 위하여
④ 올바른 비구들의 안락한 거주를 위하여
⑤ 현세의 모든 번뇌를 차단하기 위하여
⑥ 미래세의 모든 번뇌를 막기 위하여
⑦ 아직 신심을 일으키지 않은 자들의 신심을 일으키기 위하여
⑧ 이미 신심을 일으킨 자들의 신심을 증장시키기 위하여
⑨ 정법의 확립을 위하여
⑩ 조복(調伏)의 애중(愛重)을 위하여

승가의 훌륭함과 안락을 위해(① ②), 악인의 절복과 올바른 비구들의 안락한 거주를 통한 승가의 화합을 위해(③ ④), 현세와 내세에 고통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의 차단을 위해(⑤ ⑥), 세간 사람들로부터(불교도이든 아니든) 승가가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도록 하기 위해(⑦ ⑧), 올바른 불법의 확립을 위해(⑨ ⑩) 율은 제정된 것이다. 이 목적에 반하는 것이 곧 율장에서 규정하는 악행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상세히 내용을 살펴보자. ① ② ③ ④는 율을 제정하고 실천함으로써 승가가 ‘안락과 화합’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율은 기본적으로 승가의 질서 유지라는 기능을 가진다.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하는 승가에서 개개인의 판단을 앞세우고 또 이를 인정하다 보면 갈등과 충돌, 그리고 혼돈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출가자로서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 행동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를 마련해서 악행을 통제할 때 승가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으며, 또한 화합 역시 실현될 수 있다. 율장에서 화합이란 그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낸다고 하는 막연한 의미가 아닌, 포살을 비롯한 승가 행사를 함께 실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승가 행사에는 보통 범계비구는 출석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악인, 다시 말해 악행을 저지르고도 참회하지 않는 비구를 제어하는 것은 승가의 화합을 위한 기본 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는 악인을 방치함으로써 승가의 안락과 화합을 깨는 것도 율장의 입장에서 본다면 악행임을 보여준다.

⑤ ⑥은 수행자가 악행을 저지름으로 인해 본인 스스로 현세와 미래세에 받을 고통을 미연에 막아주기 위해 율이 제정되었음을 보여준다.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악행은 반드시 그 과보를 받게 되어 있다. 따라서 율은 개인적 차원의 평안과 해탈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한편, ⑦과 ⑧은 승가가 완전히 독립된 종교 단체가 아닌, 일반사회와 밀접한 연관 속에서 있음을 보여준다. 이 두 가지는 율이 승가 내부의 질서나 수행자 본인의 해탈을 위한, 말하자면 출세간적인 차원의 규칙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매우 폭넓은 관점에서 승가의 발전을 고려한 법체계라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현대의 승가가 좀 더 관심을 갖고 살펴보아야 할 율의 중요한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승가를 일반사회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공동체로 인식하기 쉽지만, 승가가 일반사회로부터 물질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 그리고 승가의 구성원인 출가자가 일반사회로부터 배출된다는 점, 이 두 가지를 고려한다면 승가와 일반사회의 밀접한 관련성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는 붓다 당시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승가가 일반사회로부터의 존경을 잃거나 마찰을 일으킨다면, 승가의 존속과 발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은 자명하다. 이는 최근에 발생한 승풍 실추 사건의 여파를 통해서도 여지없이 확인한 바이다. ⑤ ⑥ ⑦ ⑧은 수행자 자신의 타락, 그리고 승가의 위신을 떨어뜨려 발전을 저해하는 행위, 이 모두가 악행임을 보여준다. ⑨ ⑩은 이런 점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실천될 때 비로소 정법은 확립되고 승가는 영원히 존속·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 제계십리를 중심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율은 승가의 질서와 화합, 수행자 개개인의 평안과 해탈, 승가와 일반사회의 조화, 그리고 정법의 확립이라고 하는 다양한 면을 고려하여 제정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붓다가 율을 제정하며 염두에 두었던 요소들이자 율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것들이다. 이들 가운데 그 어떤 것이 고대인도와 현대한국이라는 잣대로 이분되어 그 가치가 폄하될 수 있을까. 율 제정의 이 이념에는 대부분 공감하면서도 여전히 율장에 담긴 ‘현실성 없는’ 일부 조문에 얽매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율장에서는 비구가 금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그게 가능한가, 율장에서 차를 타지 말라고 하지만 지금 차를 타지 않고 어떻게 다닐 수가 있는가 등등이다. 분명 이러한 조문들을 문자 그대로 현실에서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율이 고대인도라고 하는 그 시대의 승가에서만 통용되었던 일회성 규칙이 아닌, 정법의 확립을 위해 다양한 각도에서 고안된 규범이라는 점을 조금이라도 납득한다면, 현실성이 없다고 던져버리기 전에 이런 조문들이 왜 제정되었는지, 그 제정 의도를 살피며 최대한 실천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하, 정법(淨法)의 발달을 중심으로 불멸 후의 불교도들이 율의 수지를 위해 기울였던 노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4. 율의 전개 : 정법(淨法)의 발달

붓다 재세(在世) 당시에는 계율의 제정과 실천에서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악행을 저지르는 자는 계속 나타났지만, 붓다라는 절대적 권위가 있는 한 옳고 그름을 판단해 줄 수 있었고, 비구들은 그 판단에 따랐다. 또한 천재지변 등의 환경 변화로 인해 기존의 율을 지킬 수 없거나 새로운 율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이 역시 붓다의 판단하에 수정되었다. 붓다가 살아 있는 한 계율의 내용을 둘러싸고 심한 갈등이나 대립이 발생할 여지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붓다가 열반에 들고 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율은 기본적으로 비구(니)의 의식주 등 일상생활을 규정하는 것으로, 승가의 내외 환경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가르침이다. 이는 붓다 당시 이미 정법(淨法)이 활용되고 있었다는 사실로부터도 부정할 수 없다. 정법이란 ‘죄가 되는 행동을 어떤 특수한 조작을 행하여 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율장의 조문은 그대로 둔 채 약간의 편법을 사용하여 합법적으로 만드는 것을 통해 그 적용 범위를 다소 넓히려 하는 일종의 편법이다. 율이 승가의 내외 환경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가르침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정법의 발달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정법의 발달은 수행자의 율 수지에 큰 역할을 함과 동시에 많은 논쟁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불멸 후 100여 년경에 발생한 웨살리 승가의 10사(事) 비법 논쟁이다. 이 논쟁을 계기로 승가가 최초로 상좌부와 대중부로 근본분열하게 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으로서 우리는 불멸 후 첫 번째 해 안거 기간 동안 이루어진 제1차 결집에서의 ‘소소계(少少戒) 논쟁’에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처님께서 소소계는 버려다 좋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해 500명의 아라한이 모인 성전회의에서 아난다가 던진 한 마디였다. 스승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신 아난다의 발언이기에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 비구들이 되물었다.

“너는 소소계의 내용을 부처님께 여쭈어 보았느냐?” “아닙니다.” 참으로 난감했다. 비구들 사이에서는 붓다가 말했다는 소소계의 구체적인 내용을 추측하는 갖가지 의견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이에 결집의 사회를 맡았던 마하깟사빠는 ‘불제불개변(佛制不改變)의 원칙’을 선언했다. 붓다가 한 번 제정한 율은 이후 바꾸지도 않으며 폐기하지도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이 불제불개변의 원칙 선언으로 인해 이후 승가에서는 적어도 표면상으로 율에 직접적으로 손을 대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변할 수밖에 없는 율의 특성은 출가자들에게 어려운 숙제를 남긴다. 출가자들의 이러한 고민이 표면화되어 불거진 것이 바로 불멸 후 100여 년경에 웨살리의 한 승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간단하게 사건의 전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야사(Yasa)라는 이름의 한 비구가 왓지국을 유행하다가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이 모여 사는 웨살리의 한 승가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런데 포살을 하는 날, 기괴한 장면을 목격한다. 이곳의 비구들이 동(銅)으로 된 커다란 그릇에 찰랑찰랑 물을 채워놓은 후, 재가신도들에게 금전 보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본 야사는 기절할 듯 놀란다. 율에 의하면 비구가 금전을 받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야사는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으려 노력해 보지만, 재가신도들의 청정한 신심을 욕되게 했다는 이유로 도리어 승가로부터 거죄갈마(擧罪羯磨)를 받는다.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야사는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 줄 장로들을 찾아 나섰고, 그 결과 웨살리에서는 양쪽, 즉 야사의 의견을 지지하는 쪽과 웨살리의 왓지족 출신 비구들의 의견을 지지하는 쪽에서 각각 4명의 비구가 선발되어 단사인(斷事人)회를 구성하게 된다. 즉, 모든 결정을 이 8명의 비구들에게 일임하는 것이다. 안건은 금은 수납을 비롯하여, 왓지족 비구들이 실천하고 있던 총 10가지 행동이었다. 결과는 야사의 승리였다. 하지만 이 결정에 불복한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은 결국 대중부로 분열하게 된다.

이것이 6부 율장의 〈칠백건도〉 및 빨리연대기에 전해지는 제2차 결집의 대략적인 내용이다. 이 사건의 배경은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지키기 어려워진 일부 율 조문의 해석 범위를 넓히고자 하는 비구들과 이를 거부하는 비구들의 대립인데, 핵심은 ‘정법(淨法)’의 허용 범위이다. 왓지족의 비구들이 손으로 직접 금전을 받고 있었다면, 이는 어떤 변명도 논쟁도 필요 없는 범계 행위가 된다. 하지만 왓지족의 비구들은 직접 자신들의 손으로 금전을 받은 것이 아니다. 발우에 찰랑찰랑 물을 채워놓고 그 안에 보시하게 한 것이다. 아마도 대도시 웨살리에서 화폐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승가 역시 금은을 직접 보시 받는 경우가 많아졌고, 비구들은 금은 수납을 금지하는 율장의 규정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현실에 부합하는 방법으로 이런 편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불제불개변의 선언에 따라 율 조문 자체에 변화를 주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율 자체는 그대로 두면서 정법이라는 편법을 사용하여 율의 해석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난 것이다.

현존하는 율장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정법을 발견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정인(淨人)에게 정어(淨語)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정인의 구체적 실체에 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고 있지 않다. 단순히 승가의 일을 돕는다는 차원이 아닌, 사미나 우바새 등 율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신분이지만 율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 비구들이 율을 어기지 않도록 곁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바일제 제11조 󰡐벌초목계(伐草木戒)’에 의하면 비구는 초목을 채벌해서는 안 되며, 또 스스로 조리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걸식이 어려운 환경일 경우 근처에 있는 과일이나 감자 등의 식물류로 식사를 대신 해야 할 경우도 있을 수 있으며, 또 날 곡류를 얻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스스로 과실을 따 먹거나 혹은 감자 등을 익혀 먹는다면, 혹은 날 곡류를 스스로 조리한다면 율을 어기게 된다. 하지만 굶을 수는 없다. 이때 자신이 원하는 과일이나 감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다른 사람에게 ‘이것을 아시오. 이것을 주시오. 이것을 옮기시오. 이것을 원하오. 이것을 정(淨)한 것으로 하시오.’ 등의 표현 가운데 하나를 적절히 사용하여 정인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게 된다. 이 󰡐이것을 아시오……’ 등의 말이 바로 정어로, 율의 조목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의도하는 바를 상대방에게 전달하여 실행시킬 때 사용하는 말이다. 정어를 들은 정인은 비구의 뜻을 알아차리고, 비구에게 과실을 따주거나 조리를 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법의 발달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법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극명하게 나뉠 수 있다. 하나는 ‘범계의 합리화’라는 시각일 것이며, 또 하나는 ‘율을 지키고자 하는 최선의 노력’이라는 시각일 것이다. 필자는 후자로 이해하고 있다. 분명 정법은 편법이다. 스스로 하지 않을 뿐 다른 사람을 시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정법은 아무 때나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정으로 인해 율을 지킬 수 없는 불가피한 사정에서만 사용된다. 인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걸식이 불가피할 때, 천재지변으로 음식을 얻기 어려운 때 등, 도저히 율을 수지할 수 없는 상황일 때 정법을 통해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정법은 붓다 당시부터 이미 사용되던 방법이다.

문제는 붓다의 열반 후에는 ‘율을 수지할 수 없는 상황’을 판단해 줄, 혹은 ‘정법의 범위’를 명확하게 제시해 줄 인물이 없다는 것이었다. 웨살리 결집의 십사 사건에서 문제가 된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금전을 받지 않고 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받았기 때문에(이 역시 일종의 정법이다)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비구들은 이를 정법으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불멸 후 율을 새롭게 제정하거나 수정할 절대적 권위도 없고, 불제불개변의 원칙으로 더 이상 율 조문에 변화를 줄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법에 관한 논의가 계속되었다는 것은 설사 정법이 일종의 편법이라 하더라도, 율의 조문을 바꾸기 어려운 현실에서 율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상황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절실한 노력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는 실천을 고민할 때만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5. 결론

이상, 수범수제와 제계십리라는 율 제정의 두 가지 원칙을 통해 승가에서 율이 성립하게 된 배경을, 나아가 소소계 논쟁과 정법의 발달을 통해 율의 전개 문제를 살펴보았다. 율은 결코 고대인도 승가라고 하는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집단만을 위해 제정된 규칙이 아니다. 승가의 영원한 존속과 발전, 그리고 정법의 확립이라는 이념하에 제정된 것이다. 다만 율은 수행자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실천적 규범이기 때문에 현실성이 무시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율에는 당연히 고대인도 사회의 상식과 가치관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 점을 들어 현존하는 율장이 현실성이 결여되었다는 주장을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붓다의 제정 의도를 살리면서도 이 시대에 맞는 율로 생명력을 불어넣어 실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율은 지금 상황과 맞지 않으니 더 지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거기서 율의 생명은 끝난다. ‘승가의 번영과 정법의 확립’을 위해 붓다 스스로 애써 제시한 실천적 규범을 우리 스스로 버리는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왜 출가자가 직접 금전을 받으면 안 되는지, 왜 마차를 이용하면 안 되는지, 금지의 근본적 이유를 이해하고 가능한 한 실천 가능한 방향으로 현실성 있게 조율해 가야 한다.

물론 율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는 현존하는 율장에 등장하는 많은 형태의 정법과 이를 둘러싼 논쟁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붓다의 제자들은 자신의 스승이 남긴 가르침을 최대한 실천하고자 했고, 이 노력의 흔적이 정법의 발달이다. 때로는 승가를 분열에 빠뜨릴 만큼 정법을 둘러싼 논쟁은 심했지만, 이런 논쟁이 있었기에 수행자들은 수행자로서의 올바른 행위를 끊임없이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율이 현실성 없는 고대법으로 전락하는가, 아니면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승가를 만들 훌륭한 규범으로 다시 태어나는가는 이를 실천하는 수행자들의 열정에 달린 것 같다. 물론 율장에 나타나는 정인의 존재가 보여주듯이, 우바새·우바이 혹은 사미·사미니 등의 보조적 역할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승가에 유루법이 발생하여 승가 내외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지금, 바로 이 순간이 율을 둘러싼 논의가 가장 치열하게 이루어져야 할 때는 아닐까 생각한다. ■

 

이자랑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동 대학원 졸업. 일본 도쿄대학 인문사회계연구과 인도철학/불교학 석사 및 박사 과정 졸업. 2001년 〈초기불교교단의 연구−승단의 분열과 부파의 성립〉으로 박사 학위 취득. 동국대, 중앙승가대 강사 역임. 주요 논문으로 〈율장을 통해 본 승단과 현대사회의 조화〉 등과 저서로 《나를 일깨우는 계율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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