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자각색선사 귀경문 長蘆慈覺賾禪師龜鏡文

0

장로자각색선사 귀경문 長蘆慈覺賾禪師龜鏡文

夫兩桂垂蔭에 一華가 現瑞하니 自爾로 叢林之設의 要之는 本爲衆僧이니라.
是以로
開示衆僧故로 有長老하고, 表儀衆僧故로 有首座하며,
荷負衆僧故로 有監院하고, 調和衆僧故로 有維那하며,
供養衆僧故로 有典座하고, 爲衆僧作務故로 有直歲하며,
爲衆僧出納故로 有庫頭하고, 爲衆僧主典翰墨故로 有書狀하며,
爲衆僧守護正敎故로 有藏主하고, 爲衆僧迎待檀越故로 有知客하며,
爲衆僧請召故로 有侍者하고, 爲衆僧看守衣鉢故로 有寮主하고,
爲衆僧供侍湯藥故로 有堂主하고, 爲衆僧洗濯故로 有浴主水頭하며,
爲衆僧禦寒故로 有炭頭爐頭하고, 爲衆僧乞丐故로 有街坊化主하고,
爲衆僧執勞故로 有園頭磨頭莊主하고, 爲衆僧滌除故로 有淨頭하며,
爲衆僧給侍故로 有淨人이라.
 
所以로 行道之緣이 十分備足하고, 資身之具가 百色現成하야 萬事無憂라
一心爲道하나니, 世間尊貴요 物外優閑이라.
淸淨無爲는 衆僧 爲最니 廻念 多人之力컨댄 寧不知恩報恩이리요?

晨參暮請하야 不捨寸陰이라야 所以報長老也요,
尊卑有序하고 擧止安詳이라야 所以報首座也요,
外遵法令하고, 內守規繩이라야 所以報監院也요,
六和共聚호대 水乳相參이라야 所以報維那也요,
爲成道故로 方受此食이라야 所以報典座也요,
安處僧房하야 護惜什物이라야 所以報直歲也요,
常住之物을 一毫無犯이라야 所以報庫頭也요,
手不把筆하고 如救頭燃이라야 所以報書狀也요,
明窓淨案에 古敎照心이라야 所以報藏主也요,
韜光晦跡하고 不事追陪라야 所以報知客야요,
居必有常하고 請必先到라야 所以報侍者也요,
一甁一鉢로 處衆如山이라야 所以報寮主也요,
寧心病苦하고 粥藥隨宜라야 所以報堂主也요,
輕徐靜黙하고 不昧水因이라야 所以報浴主水頭也요,
緘言拱手하고 退己讓人이라야 所以報炭頭爐頭也요,
忖[己德行이 全缺應供]이라야 所以報街坊化主也요,
計功多少하고 量彼來處라야 所以報園頭磨頭莊主也요,
酌水運籌에 知慚識愧라야 所以報淨頭也요,
寬而易從하고 簡而易事라야 所以報淨人也니라.

所以로 叢林之下에 道業이 惟新하야, 上上之機는 一生取辦하고
中流之士는 長養聖胎하며 至如 未悟心源이라도 時中에 亦不虛棄니,
是眞僧寶며 爲世福田이라. 近爲 末法之津梁하고 畢證二嚴之極果하리라.

若或叢林이 不治하고 法輪 不轉이면, 非長老 所以爲衆也요,
三業 不調하고 四儀 不肅이면 非首座所以率衆也요,
容衆之量이 不寬하고 愛衆之心이 不厚하면 非監院所以護衆也요,
修行者를 不安하고 敗群者를 不去하면 非維那所以悅衆也요,
六味가 不精하고 三德이 不給이면 非典座所以奉衆也요,
寮舍를 不修하고 什物을 不備하면 非直歲所以安衆也요,
畜積常住하야 減剋衆僧이면 非庫頭所以贍衆也요,
書狀을 不工하고 文字滅裂이면 非書狀所以飾衆也요,
几案을 不嚴하고 喧煩을 不息이면 非藏主所以待衆也요,
憎貧愛富하야 重俗輕僧이면 非知客所以贊衆也요,
禮貌不恭하고 尊卑失序하면 非侍者所以命衆也요,
打疊不勤하고 守護不謹하면 非寮主所以居衆也요,
不閒供侍하야 惱亂病人이면 非堂主所以恤衆也요,
湯水不足하야 寒煖失儀하면 非浴主水頭所以浣衆也요,
預備不前하야 衆人動念하면 非爐頭炭頭所以向衆也요,
臨財不公하고 宣力不盡이면 非街坊化主所以供衆也요,
地有遺利한대 人無全功이면 非園頭磨頭莊主所以代衆也요,
懶惰로 倂除하야 諸緣不具면 非淨頭所以事衆也요,
禁之不止하고 命之不行이면 非淨人所以順衆也니라.
 
如其衆僧이 輕師慢法하고 取性隨緣이면 非所以報長老也요,
坐臥參差하고 去就乖角이면 非所以報首座也요,
意輕王法하고 不顧叢林이면 非所以報監院也요,
上下不和하고 鬪諍堅固면 非所以報維那也요,
貪婪美膳하고 毁訾麤餐이면 非所以報典座也요,
居處受用에 不思後人이면 非所以報直歲也요,
多貪利養하고 不恤常住면 非所以報庫頭也요,
事持筆硯하야 馳騁文章이면 非所以報書狀也요,
慢易金文하고 看尋外典이면 非所以報藏主也요,
追陪俗士하고 交結貴人이면 非所以報知客也요,
遺忘召請하고 久坐衆僧이면 非所以報侍者也요,
以己妨人하고 慢藏誨盜면 非所以報寮主也요,
多嗔小喜하야 不順病緣이면 非所以報堂主也요,
桶杓作聲하야 用水無節이면 非所以報浴主水頭也요,
身利溫煖하야 有妨衆人이면 非所以報爐頭炭頭也요,
不念修行하고 安然受供이면 非所以報街坊化主也요,
飽食終日하고 無所用心이면 非所以報園頭磨頭莊主也요,
涕唾墻壁하야 狼藉東司면 非所以報淨頭也요,
專尙威嚴하고 宿無善敎면 非所以報淨人也니라.
 
盖以旋風千匝이나 尙有不周니, 但知 [捨短從長하야 共辦出家之事]어다.
所冀는 獅子窟中에 盡成獅子하고 栴檀 林下에 純是栴檀이니
令斯 [後五百年에 再覩 靈山之會니라.] 然則 法門興廢도 係在僧徒니,
僧是敬田이라 所應奉重이니, 僧重則法重하고 僧輕則法輕하나니라.

內護旣嚴이라야 外護必謹하리니 設使 粥飯主人이라도 一期 王化로 叢林執事를 偶爾 當權이어든 常宜 敬仰同袍하고 不得 妄自尊大하라.

若也 貢高我慢하야 私事公酬인댄, 萬事無常이라 豈能長保아?

一朝歸衆이면 何面相看이리요? 因果無差니 恐難回避라.
僧爲佛子라 應供과 無殊하니 天上人間에 咸所恭敬이라.
二時粥飯을 理合精豊하며 四事供須를 無令 闕少니라.
世尊二十年遺蔭이 盖覆兒孫이라 白毫光 一分功德도 受用不盡하리니
但知奉衆이요 不可憂貧이니라.
僧無凡聖히 通會十方하나니 旣曰招提인댄 悉皆有分이러니
豈可 [妄生分別하야 輕厭客僧]이리요?

旦過寮에 三朝權住니 盡禮供承하며 僧堂前에 暫爾求齊어든
等心供養하리니 俗客도 尙猶照管커든 僧家를 忍不逢迎가?

若無 有限之心이면 自有無窮之福이니라. 僧門은 和合이라
上下가 同心이니, 互有長短이라도 遞相盖覆하고 家中醜惡을 莫使外聞이어다.

雖然 於事無傷이나 畢竟 減人瞻仰이니, 如獅子身中蟲이 自食獅子肉이라.
非外道天魔의 所能壞也니라. 若欲 [道風 不墜하고 佛日 常明하야
壯 祖域之光輝하며 補皇朝之聖化]인댄 願以斯文으로 爲龜鏡焉이어다.

 대저 두 그루 계수나무(달마가 있던 소림굴의 나무)가 그늘을 드리움(선풍이 날린 것)에 한송이 꽃이 상서(길조 서)를 드러내니, 
이로부터 총림의 설립의 근본(요)은 본디 대중스님들을 위함이니라. 

■ 소임설명

 그러므로 대중스님께 (법을) 열어 보이기 위한 까닭에 장로가 있고, 
대중스님에게 거동(본, 의)을 밝히기 위한 까닭에 수좌가 있으며,  
대중(살림)의 짐을 짊어져야 하는 까닭에 감원이 있고, 
대중을 조율하고 화합하는 까닭에 유나(입승)가 있으며, 
대중을 공양하는 까닭에 전좌(별좌)가 있고, 
대중을 위해직책을 행하는 까닭에 직세(1년 계획을 세우고 관리함)가 있고, 
대중의 출납을 담당하기에 고두가 있고, 
대중을 위해 문서(문서 붓 한, 먹 묵) 를 주로 맡는(전) 까닭에 서장(서기)가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위해 바른 가르침을 수호하는 까닭에 장주(지전)가 있고, 
대중을 위해 단월을 맞아(영) 대하는(대) 까닭에 지객이 있으며, 
대중스님을 위해 심부름(청소)하는 까닭에 시자가 있고, 
대중을 위해 가사와 바루를 간수하는 까닭에 요주(부전)이 있으며, 
대중스님께 탕약을 공양하여 모시는 까닭에 당주가 있고, 
대중스님들이 씻고 빨래(탁)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까닭에 욕주수두가 있으며,
대중스님들의 추위를 막기(어)위한 까닭에 탄(숯) 노(화로)두가 있고, 
대중스님들을 위해 탁발(빌 걸, 빌 개)하기위한 까닭에 가(거리, 길)방(동네) 화주가 있으며,
 대중을 위해 노동을 담당하는(집) 까닭에 원두(밭)마두(방아갓)가 있고 
대중스님을 위해 청소하고(척) 깨끗이(제)하는 까닭에 정두가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넉넉하게 모시기 위해 정인(속인)이 있느니라.

 그런 까닭에 불도를 수행하는 인연이 한껏(십분) 갖추어져 있고, 
몸을 돕는(자) 도구들은 온갖것(백색) 다 이제 갖추어졌으니(현전성취의 준말) 
만사에 근심이 없음이라 일심으로 도를 행하니,
세간에서는 존귀하고, 출세간(물외=방외)에서는 넉넉하고 한가함이라. 
청정무위는 대중스님이 으뜸이니,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돌이켜 생각건대 
어찌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지 않으리요?


■ 대중의 의무

  새벽(신)에는 [상당법회에] 참례하고 저녁(모)에는 (질문을) 청하여 촌음도 버리지 않으면 장로에게 보답하는 것이오,(所以, 원인과 결과, 그래서 그러니까 그러한 까닭은) 높고 낮음에 차례가 있고 들고 멈춤에 차분하고 조심스러워야 수좌에게 보답함이요, 
밖으로 법령을 따르고(지킬 준) 안으로 청규(규구준승規矩準繩,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법도)를 지키면 감원에게 보답하는 것이요, 
육화(함께수행 戒和, 함께거주 身和, 다툼없엄 口和, 함께기쁨 意和, 함께이해 見和, 함께이익 利和)로 함께 모이되 물과 기름으로 서로 섞이면 유나에게 보답함이요, 
도를 이루기 위한 까닭으로 비로소 이 음식을 받으면 전좌에게 보답함이요, 
승방에 편안하게 머물러 집물을 지키고 아껴야 직세에게 보답함이요, 
상주물(대중이 함께 쓰는 물품)을 한 터럭도 범하지 않아야 고두에게 보답함이요, 
손에 붓도 잡지 말고 머리에 불끄듯 하여야 서장에게 보답함이요, 
밝은 창(창 창) 깨끗한 책상(안)에 옛 가르침으로 마음을 비추어야 장주에게 보답함이요, 
빛(재능)을 숨기고(감출 도) 자취(흔적 적, 덕성을 비유)를 감추고(회)  [이런저런데] 따라서(더할 배, 합세해서 끼는거) 좆아 다님을 일삼지 않아야 지객에게 보답함이요,  
머무름에 반드시 일정함(상)이 있고 부름에(처) 반드시 먼저 도착해야 시자에게 보답함이요, 
정병(손씻는 물 담는 병)과 발우 한 벌로 산처럼 대중에 머물러야 요주에게 보답함이요, 
병고에도 마음을 편안히 하여 죽과 약에 맡김이 알맞아야 당주에게 보답함이요, 
가볍고 천천하게 고요하여(정묵) 물쓰는 인연에 어둡지않아야 욕주수두에게 보답함이요, 
말을 봉하고(함) 손을 맞잡아(공수, 합장하고 차수하고) 자신은 물리고(겸양하다 퇴) 다른 이에게 사양하여야 탄두노두에게 보답함이요,  
자신의 덕행이 온전히 모자란지 공양 받아 마땅한지 헤아려야 가방화주에게 보답함이요,  
수고로움이 많고 적음을 헤아리고(촌) 그것이 온곳을 헤아려야(량) 원두마두장주에게 보답함이요,
물을 따르고(작) 밑씻개(투호살, 산가지 주)를 씀에(쓰다 운용하다 운) 부끄러움을 알고 부끄러움을 인식해야 정두에게 보답함이요, 
관대하여 쉽게 따르고 간결하여 쉽게 일할수 있어야 정인에게 보답함이니라.


  그러므로 총림이에서는(下 ~에) 도업이 여전히 새로워져서 상상근기는 한생에 취하여 갖추고,  
중간 무리의 사람(계층 사)들은 성인의 태를 길이 길러서  마음의 근원을 아직 깨닫지는 못한다 하더라도(가설 如) 때를 맞춤에(시중, 적절히) 또한 헛되이 버리지는 않을 것이니, 
이는 진실된 승보이며 세간의 복밭이 됨이라.
 가까이는 말법의 [피안으로 가는]나루터와 징검다리(들보 량)가 되고, 마침내 두 가지 장엄(지혜와 복덕)의 지극한 과위를 증득하리라.

■ 소임자의 도리

 만약(若或, 첫머리에서 만일 ~하면) 총림이 다스려짐이 없고 법륜이 구르지 않으면, 장로가 대중을 위하는 도리가 아니요,
 (장로된 바 대중을 기쁘게 할수 없고, 장로로써 대중을 기쁘게 할 수 없고, 장로로써 대중을 기쁘게 할 수 없고)신구의 삼업이 고르지 않고, 
행주좌와 사위의의행동거지가 엄숙하지 않으면  수좌가 대중을 통솔하는 도리가 아니요, 
대중을 받아들이는(담을 용) 아량이 관대하지 않고 대중을 사랑하는 마음이 두텁지 않으면 감원이 대중을 수호하는 도리가 아니요, 
수행자를 편안하게 하지않고 무리(군)를 깨뜨리는 자를 없애지 않으면 유나가 대중을 기쁘게 하는 도리가 아니요,
여섯 가지 맛이 정미롭지 않고 삼덕(음식의 청정, 유연, 여법)이 넉넉하지 않으면 전좌가 대중을 받드는 도리가 아니요, 
요사를 닦지 않고 집물을 갖추지 않으면 직세가 대중을 편안하게 하는 도리가 아니요, 
상주물을 축적하면서 대중스님을 줄이고(감)덜면(이길  깎을 삭제할 극) 고두가 대중을 넉넉히함(섬)이 아니요, 
글씨 모양(장)이 숙련되지 않고 문자가 엉망이면(멸렬, 찢기고 흩어져 형체를 알수 없음) 서장이 대중을 마무르는(꾸밀 장) 도리가 아니요, 
책상머리(궤안, 책상 궤, 사방의자, 책상 등)가 엄숙하지 않고 시끄러운 번뇌를 쉬지 않으면 장주가 대중을 모시는 도리가 아니요, 
곤궁함을 미워하고 풍성함을 사랑하여 세속을 중히 하고 대중을 가벼이 하면 지객이 대중을 돕는(찬) 도리가 아니요, 
예를 갖춘 모습이 공손치 않고 높고낮 음의 차례를 잃으면 시자가 대중의 명을 받는 도리가 아니요,
가지런히 정돈함에(打동작을 나타내는 접두사, 포갤 첩) 부지런하지 않고, 지키고 보호함에 조심하지 않으면(삼갈 근) 요주가 대중을 머무르게 하는 도리가 아니요, 
받아들임에(한) 공손히 모시지 않고 아픈 사람을 괴롭고 어지럽게 하면 당주가 대중을 어루만지(구휼 휼)는 도리가 아니요, 
끓인 물이 충분하지 않아 차갑고 따뜻함이 마땅함(거동, 마땅할 의)을 잃으면, 욕주수두가 대중을 씻게하는 도리가 아니요, 
미리 준비를 앞서 하지않아 대중의 생각을 움직이게 하면 노두탄두가 대중을 향하는(마음을 기울이는) 도리가 아니요, 
재물 대함이 공변되지 않고 선력을 다하지 않으면 가방화주가 대중에게 공양하는 도리가 아니요, 
땅으로 남을 이익이 있는데 사람손으로 온전히 공들이지 않으면 원두마두장주가 대중을 대하는 도리가 아니요, 
게으르고(게으를 나) 소홀히 하여(게으를 타) 한꺼번에(아우를 병) 없애서 제반인연(정랑에서 필요한 물품들)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정두가 대중을 섬기는 도리가 아니요, 
금하는 것을 그치지 않고 명하는 것을 행하지 않으면 정인이 대중을 따르는 도리가 아니니라.


만약(여) 승려대중이 스승을 가벼이 여기거나 법을 업신여기고 성품대로 인연을 취하면, 장로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앉고 누움에  가지런함이(참여하다 가지런하다 참) 차별되며(차별 치, 어긋날 차, 참치) 물러가고 나아감에 괴각스러우면(거역함 괴, 다툼 각) 수좌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의중에 법왕의 가르침을 가벼이 하고 총림을 돌아보지 않으면 감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요,
위아래가 화합하지 않고 다툼이 견고해지면 유나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좋은 반찬(선)을 탐하고(탐람, 탐하다 람) 거친 음식물(찬) 투덜거리면(헐뜯을 훼, 헐뜯을 자) 전좌에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요,
거처와 받아씀에 뒷사람을 생각하지 않으면 직세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이양을 너무(다) 탐하고 상주물에 아껴쓰지(돌보다 휼) 않으면 고두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붓(필)과 벼루(연) 가지고 일삼아 문장에만 내달리면(달릴 치, 달릴 빙) 서장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금문을 만만히 보아 쉽게 여기고 외전만 찾아보면 장주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세속무리들을 따라서 귀인과 서로(교) 사귀면, 지객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부르고 청하는 것을 잊어버리고(잊을 유, 잊을 망) 대중들과 오래 앉으면 시자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자기 때문에 남에게 방해가 되고 보관을 게을리(만)하고 훔쳐가게 가르치면 요주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화를 많이 내고 기쁨은 적어서 질병의 바른 인연들을 따르지 않으면, 당주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물통(통)과 바가지(자루 표) 소리를 내고 물을 씀에 검소(알맞을 절, 검소하다)함이 없으면 욕주수두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자신에게 따뜻함(온난)을 이롭게 하여 다른 대중에게 방해됨이 있으면 노두탄두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념하는 수행을 안하고 편안하게 공양을 받으면 가방화주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종일토록 배불리 먹고 마음 쓰는 곳이 없으면 원두마두장주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담장이나 벽에 코를풀고(체) 침을뱉고(타) 정랑(동쪽에 있는 변소, 동사) 어리저이(랑) 흐트러놓으면(자) 정두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오로지 위엄만 내세우고, 앞서는 좋은 가르침이 없으면 정인에게 보답함이 아니니라.

  대개 회오리바람(돌 선, 바람풍)이 천년을 휘몰아쳐도 여전히(오히려 상) 미치지 못함이 있으리니[아무리 잘해도 부족함이 있을수 있다], 다만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좆아 출가자의 일에 함께(공) 힘써야(판) 함을 알지어다.  바라는 바는 사자굴에서는 모두 사자가 되고, 전단숲 아래서는(단향목 전) 오로지(온전할 순, 순수할) 전단나무이니, 모두(사)로 하여금 후오백년에 영취산의 법회를 다시(재) 보게 하리라.  그러면 법문의 흥폐가 승려무리에 달려있으니, 스님들이 바로 공경의 밭이니 응당 받들어 중히여길지니, 스님이 귀하면 법이 중하고 스님이 가벼우면 법이 가벼워지느니라. 
  안으로 보호하여서 엄숙해져야 밖에서 옹호함에 반드시 삼가야 하리니, 설사 죽밥의 주인이라도 한때 왕의 덕화로 총림이 담당하는 일들을 뜻하지 않게(우연히, 偶爾=偶然) 권한을 맡았거든(당할 당) 항상 [같은 두루마기 입는] 동포들을 공경하고 믿어야(앙)하고(마땅 의), 망령되이 스스로를 존대하지 말라. 만야 높이받들고 스스로 잘난체하여 사사로운 일을 공적으로 갚으면(갚을 수) 만사가 무상하니 어찌 길이 보전할 수 있겠는가? 하루아침에 대중으로 돌아오면(소임이 끝나면) 무슨 낯으로 서로 보겠는가?  인과는 어긋남이 없으니 회피할 수 없음을 두려워하라.

  스님은 부처님의 아들이라 응공과 다름없으니, 천상인간에게 모두 공경 받느니라.  
두 때의 죽과 밥을 도리에 맞고(이) 합당하고(합) 정갈하고(정) 풍족하게 하며, 
네 가지 공양 받아야 할 것을(의복 음식, 와구, 탕약/방사, 4의법) 모자라거나 적게 하지 말지니라.  
부처님께서 20년을 남기신 음덕[100세에 입적하지 않으시고 20년 미리 입적하셔서 복덕을 후손에게 남겨주심]이 무릇 자손들을(승가무리들을) 덮어주는지라 백호광명으로 일분공덕도 받아쓴다고 없어질 수 없으리니, 대중을 받들 줄 알면 될 것이지 곤궁을 근심하는 것은 옳지(가) 않느니라.

  스님은 범부와 성인이 없기에 시방을 모아도 통하나니, 이미 초제(catur-disa의 음역, 사방승방, 스님들의 객실)라 부른다면 모두 다 몫이 있으니, 어찌 망령되이 분별을 일으켜 객승을 가벼이 여기고 싫어할 수 있겠는가?  단과료[선림에서 저녁에 와서 묵고 아침에 떠나는 행각승들의 처소 통칭] 객실에 세 번 아침은 머물 권리가 있으니, 예를 다하여 받들어 모셔야 하며, 승당 앞에서 잠깐이라도 불공을 구하거든 평등한 마음으로 공양해야 하리니, 세속 손님까지도(상유, ~까지도) 돌보아 관리하는데, 승가를 만나영접하지 않고 모질게 할 수 있겠는가?(忍 모질게 하다)

 만약 선을 긋는(유한, 한계를 정하다 경계를 정하다) 마음이 없다면, 자연히 무궁한 복이 있으리라.  승가문중은 화합문중이라, 상하가 같은 마음이니 서로 장단점이 있더라도 서로서로 덮어주고 절집의 추하고 나쁜 것을 밖에서 들을 수 없도록 할 지어다. 

  비록 일에는 해가 없더라도 필경에 다른 사람들의 우러러봄이 줄어들 것이니, 
마치 “사자몸속의 벌레들이 사자의 고깃살을 스스로 먹는것”과 같은지라. 
외도천마가 무너뜨릴 수 있는 바는 아니니라. 만약 수행의 가풍을 떨어 뜨리(추)지 않고, 
부처님태양이 항상 밝혀 조사경계(역)의 영예(광휘)를 훌륭하게 하며(장, 씩씩하다 성하다 기상이 훌륭하다) 황조의 성스러운 덕화를 돕고자 한다면, 원컨대 이 글로 귀감을 삼을지어다.
 
Leave A Reply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