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와 사미니

0

沙彌와 沙彌尼

평천 창, 『원시불교의 연구』pp.435-453.

일반적으로 사미의 원어는 사마네라(sāmaṇera), 사미니의 원어는 (sāma ṇerī)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미·사미니의 원어에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파리어에서는 이밖에 사마눗데사(samasuddesa)라고 하는 용어가 쓰여지고 있다. 율에서는「사마눗데사란 사마네라이다」고 설명하고 있고, 양자는 같은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바라제목차의 바일제법에「공주빈사미계」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 경우의 사미의 원어는 사마눗데사이다. 파리율 뿐만 아니라, 설일체유부나 근본유부율의 바라제목차의 범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근에 출판된 고칼(V.V.Gokhale)의 범문구사론의 게문에서도 śramaṇoddeśa가 쓰여지고 있다. 사미로서는 사마네라가 일반적인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러나 사마눗데사가 바라제목차에 쓰여지고 있는 것은 사마눗데사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사마네라·사마네리도 마찬가지로 바라제목차에 사용되고 있다.

산스크리트어에서는 파리의 사마네라에 상당하는 śrāmaṇera가 있고, 그밖에 śrāmaṇeraka(沙彌) śrāmaṇerikā(沙彌尼), 사마눗데사에 상당하는 슈라마놋데샤(śramanoddeśa) 등이 쓰여져 있다. 이와 같이 사미의 원어가 여러 가지로 다른 것은 이 말이 불교교단에서 최초부터 强固한 전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사마네라라고 하는 말은 사문(samaṇa, śramaṇa)과 마찬가지로 śram(힘쓰다, 노력하다)에서 온 말이라고 생각되고, 사문이라고 하는 말과 함께 비슷해서 헷갈리기 쉬운 용어이다. 사마나(沙門)라고 하는 말은 불타시대부터 강고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이것과 혼동하기 쉬운 슈라마네라라고 하는 말이 어떻게하여 사용되게 되었는지 그 경과는 분명하지 않다. 쟈이나교에서도 sāmaṇera를 사용하고 있는 것같은데, 또한 이 이외에 seha, antevāsī 등도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한역에서는 사마네라도 사마눗데사도 함께 사미로 음역되어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현장은 의역하여 「勤策」이라고 하는 데가 많다. 이것은 śrāmaṇera의 어근 śram(노력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번역한 것일 것이다. 義淨은 「求寂」이라고 번역한다. 그는 『남해귀기내법전』에서「수계궤칙」을 설명하는 곳에서 사미계를 설명하여 「이미 계를 받고난 이를 실라말니라라고 이름한다」고 말하여 실라마니라라고 음역하고 있다. 그리고 주를하여「번역하여 구적이라 한다. 그렇게 말하는 뜻은 열반원적의 경지를 구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옛날에 사미라고 한 것은 말은 줄여지고 음은 잘못되었다. 번역하여 식자라고 하는 것은 뜻에 준거해 보려고 해도 준거할 것이 없다意准ずるにしかも거扌處るところ無きなり」고 말하면서 구역의 「사미」를 배제하고, 「식자」라고 하는 의역도 오역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의정이 구적이라고 번역한 것은 슈라마네라의 어근을 śam(적정)이라고 하는 어근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식자」라고 하는 번역이 온전히 오역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식’에는 「그만두다, 그치다」의 의미가 있지만, śam(노력하다)이라고 하는 것은 악을 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며, 그것은 역으로 말하면 선(慈)을 실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므로 「식자」라고 번역하더라도 반드시 오역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과 같은 계통의 말인 사문(śramaṇa)을 「근식」등이라고도 번역하는 것도 같은 취지일 것이다. 사미라고 하는 역어는 의적이 지적한 것처럼 확실히 음은 줄여진 것이지만 그러나 이 말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직접 번역된 것이 아니고 불교가 중앙아시아에 전해져서 그 토지의 말로 옮겨서 간략화된 것이 중국음으로 옮겨진 것일 거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사미·사미니는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사용되어 친숙해져온 말이므로 본서에서도 이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덧붙혀서 사미니는 사마네리의 음역이지만 그러나 사미니의 니는 비구니의 니를 차용한 것같다. 비크슈(bhikṣu)를 비구로 음역한 것에 대하여, 비크슈니(bhikṣuṇī)를 비구니로 음역한다. 이 경우의 「니」는 ṇī의 음역이다. 그러나 비구가 남성을 가리키고 비구니가 여성을 나타내기 위해 자연히 「니」에 여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게 되어, 이것이 사마네리의 음역에 이상된 것일 것이다. 이 말을 충실히 번역하여 「사미리」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미리라고 하는 역어는 그다지 쓰여지지 않았다. 한결같이 사미니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엄밀한 용어는 아니지만 이것을 사용하려고 한다.

사미의 원어가 복잡하게 많아서 비구나 비구니의 경우처럼 호칭이 일정하지 않았던 것은 사미의 성립이 불안정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즉, 사미는 불교 교단으로서는 부수적인 것이고 어떻게든 필요한 것이 아니었던 것일 것이다.

완성된 율의 규칙에 의하면 우바새에서 사미가 되고 다시 비구로 나아간다고 하는 단계를 취하고 있다. 곧바로 비구가 되는 의식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실제에는 그런 일도 있었던 것인가 『살바다비니비바사』에는 「만약 오계 십계를 받지 않고 곧바로 구족계를 받게되면 일시에 세 가지의 계를 모두 얻는다」고 말하고 있다. 오계 십계를 받지 않더라도 받은 것과 똑같은 결과가 된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깊이 불법을 배우는 데는 반드시 차례대로 해야 한다. 먼저 오계를 받아서 스스로를 조복하고 신락이 점점 늘어나게 되면 다음에 십계를 받아서 착한 마음이 더욱 깊어지게 한 다음 구족계를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발생적으로 본다면 우바새·사미·비구 가운데서는 사미의 성립이 가장 나중의 일이다. 율의 『불전』에 의하면, 불타가 보리수하에서 해탈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을 때, 두 상인이 지나가다가 법을 듣고 우바새가 되었다고 한다. 그 뒤에 불타는 녹야원으로 나아가서 다섯 비구를 제도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비구의 상가가 성립한 것은 우바새가 된 것보다도 나중이라는 것이 될 것이다. 아무튼 율장에 설해진 초기의 불전에는 사미의 성립에 대해서는 설해져 있지 않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사미는 바라제목차에 나타나면서부터 원시불교교단에 사미라고 하는 제도가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사미는 불타 재세 시대, 더구나 상당히 이른 시대에 되었던 것 같다. 불타가 깨달음을 열고서부터 고향인 카필라밧투(Kapilavatthu 가비라위)를 방문했을 때, 불타의 예전의 비였던 야쇼다라는 그의 아들 라훌라(라후라 Rāhula)를 향하여, 「라훌라여, 저분은 너의 아버지이다. 가서 유산을 달라고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라훌라는 세존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사문이여, 당신의 그림자는 즐겁습니다.」고 말하고, 세존의 뒤를 따라서 비구들의 주처에 까지 갔다고 한다. 거기에서 불타는 사미불에게 명하여 「그렇다면 라훌라 동자를 출가시켜라(pabbajjehi)」고하여 그를 사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파리율·사분율·오분율·십송율·근본유부율파승사·마하승기율 등에 보인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율장에서는 사미의 제도를 나타낼 목적으로 설해진 것은 아니다. 불타가 라훌라를 출가시켰기 때문에 후사를 잃은 정반왕은 몹시 슬퍼하면서, 아들을 출가하게 할 때는 부모의 허락을 얻도록 했으면 좋겠다, 「부모의 허락을 얻지 못한 이는 출가시키지 못하도록」해주기를 원했기 때문에 「구족계를 받을 때는 부모의 허락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규칙이 생겨난 것이라 한다. 율장이 라훌라의 이야기를 싣고 있는 것은 수계에는 부모의 허락을 필요로 한다고 하는 규칙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사미의 제도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마하승기율에도 「부모의 허락을 얻지 못한 이에게 구족계를 주면 안된다.」고 하는 규칙이 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석가족의 동자들이 부모의 허락을 얻지 않고 출가하였기 때문에 백반왕(정반왕)이 세존에게 이 일을 청하였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승기율은 대중부계의 율이기 때문에 이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라훌라가 사리불을 스승으로하여 사미가 되었다는 것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이것은 바라제목차의 「공미수구족인동숙계」의 인연담에도 나오고 있다. 비구는 사미나 속인과 三夜 이상 계속해서 같은 방에서 잠을 자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 이 규칙의 의미이다. 그러나 최초의 제정에서는 하룻밤이라도 함께 자면 안된다고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때 라훌라는 사미였지만 화상인 사리불의 방을 찾아갔지만 들어가지 못했고, 다음에 아사리인 목련의 방을 찾아갔지만 마찬가지로 입실을 거절당했다. 그 때문에 어쩔수 없이 변소에서 잤다고 한다. 그 때 독사가 나타나서 라훌라를 물려고 했기 때문에 불타는 신통력으로 그것을 아시고 라훌라를 구하여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가서 자도록 했다고 한다. 이 인연에 의해서 불타는 「부득이한 경우에는 이틀 밤까지는 함께 자도 좋다」고 하는 제외예를 설정하셨다고 한다. 이 인연담은 파리율·사분율·오분율·십송율·근본유부율 등의 상좌부계의 율 뿐만 아니라 마하승기율에도 나오고 있다. 승기율에는 같은 곳에 불타가 가유라위국에 가서 부자상견한 것, 羅云(羅睺羅)이 출가한 것, 아울러 그 화상이 사리불이었다는 것 등을 설하고 있다.

이와 같이 라훌라가 사리불을 화상으로하여 사미가 된 것은 제율에 일치하는 설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실이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불타가 성도한 후 처음으로 카필라밧투를 방문한 것은 일설에 의하면 성도 오년 후였다고 한다. 또한 불타는 라훌라의 탄생을 듣고 출가의 결의를 했다고도 하고 있기 때문에 29세 출가, 35세 성도라고 하면 라훌라는 그 때 10세 정도이다. 물론 이 점은 정확한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던 사미가 된 최초의 사람은 라훌라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율장에는 그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라훌라를 출가시켜 사미로 한 것은 우발적인 사건이었고, 사미라고 하는 제도를 시설할 필연적인 이유였다고는 보기 어렵다.

이것에 대하여 다음의 이야기는 약간 필연적인 이유가 인정된다.

아난에게 귀의한 「봉사의 가정」(upaṭṭhākakula)이 있었는데, 사풍병(ahivātakaroga)에 의해 부모가 죽어버리고 두 사람의 아이만 남았다. 그들은 거기까지는 매일 집에 비구가 찾아왔기 때문에 그 습관으로 비구들이 지나가면 달려왔지만 비구들은 모두 그것을 피했다. 그래도 또 그들은 비구들을 불렀다. 거기에서 아난은 불타의 허락을 얻어서 그들으 정사로 데리고 와서 「구오」(kākuṭṭepaka)의 사미로서 출가시켰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파리율 이외에 사분·오분·십송·승기율 등에 모두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오랜 전승으로 보아도 좋다. 오분율에서는 이 두 아이는 8세와 7세였다고 한다.

옛날에는 전염병 등 때문에 사람이 쉽게 죽었으므로 고아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아난과 두 고아의 이야기도 역사적인 사실을 머금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이 불교의 독신자 가정에서 양친이 급히 죽어버려서 고아가 된 경우, 고아는 친족이 데리고 가서 길렀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정이 일어난 경우, 상가가 그 고아를 데리고 와서 양육한다고 하는 것은 실제에도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또한 이러한 행위는 사회사업적인 의미도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 아난과 두 고아의 이야기는 상가에게 사미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나타낸 실례의 하나로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것을 연으로하여 불타가 사미의 제도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말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이 경우에 「구오의 사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음식물 등에 달려드는 새나 파리를 쫓는 사미라고 하는 의미이다.

율에는 이 아난과 두 고아의 이야기 앞에, 아이들을 출가시켜 구족계를 주었지만 수행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하는 사실이 일어났었기 때문에 20세 미만의 사람은 비구의 수행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20세가 차지 않은 사람에게 구족계를 주는 것을 금한다」고 하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파리율은 그 다음에 사풍병으로 가족이 죽어서 아버지와 아들만 남았다는 이야기를 싣고 이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출가하여 두 사람이 함께 걸식을 가서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싣고 있다. 그래서 불타는 이 인연으로하여 「15세가 차지 않은 사람을 출가시키지 말라」고 하는 규칙을 제정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출가」(pabbajjā)라고 하는 것이 사미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족계」(upasampadā)라고 하는 것이 비구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만20세이다. 따라서 파리율에서는 사미는 15세 이상이라고 하는 것이 된다.

이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아난이 데리고 온 두 고아는 15세 이하였으므로 특히 구오의 사미로하여 상가에 데리고 오는 것을 허락하게 되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파리율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15세 이상이 정규의 사미이고, 그 이하는 구오의 사미가 된다. 15세 이상을 정규 사미로 하는 것은 파리율과 십송율이다. 사분율은 12세 이상을 정규 사미로 하고 있다. 오분율에는 연령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마하승기율에는 사미에 삼품이 있다고 하여, 7세부터 13세까지를 「구오사미」, 14세부터 19세까지를「응법 사미 」, 20세이상 70세까지를 「명자사미」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으로 보면 승기율은 14세 이상을 정규 사미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미의 연령이 제율에 있어서 일정하지 않는 것도 사미의 제도가 오래전부터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구오 사미를 포함해서 사미의 최저년령은 7세였던 것 같다. 이것은 상기의 승기율 이외에 십송율에서도 말하고 있다. 다음에 비구는 구족계를 받고나서의 연수(법랍)에 의해 상하의 질서를 만들지만, 사미의 경우는 「바로 생년을 가지고 차제로 해야 한다」고 하고, 태어난 연령으로 상하의 질서를 세웠다고 하는 설이 있다.

다음에 사미에도 비구와 같은 음식물을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마하승기율에 의하면 사미가 식당에서 새나 파리를 쫓으면서 남은 밥이나 골채, 과일 등을 주워 먹고 있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불렀다고 한다. 그것에 의해 불타는 「출가인에게 음식을 시여할 때는 음식은 등여해야 한다」고 제정했다고 한다. 사미에게도 비구와 같은 식사를 주어라고 하는 것은, 오분율이나 사분율에도 설해져 있다. 그러나 의복에 대해서는 사미는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비구의 반분, 혹은 삼분의 일을 주어라」고도 하고, 또는 비구의 반분을 주어라고도 말하고 있다.

이상, 교단 내에 사미가 발생하는 이유의 두 세 가지를 살펴보았는데, 이 이외에도 자기의 아이를 상가에 넣어서 수행시키고 싶다고 희망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희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도 20세 이하의 아이가 출가하여 상가에서 수행한다고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미의 성립으로서는 이것이 본래의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러나 율장에는 이러한 실례는 하나도 나타나 있지 않다. 아무튼 율장에는 사미라고 하는「제도」를 허락한다고 하는 것은 설해져 있지 않다. 다만 라훌라를 출가시켰다든가, 15세 이하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다던가, 구오의 사미를 허락했다던가 하는 것들만 설해져 있는 것이 지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무엇 때문에」사미를 허락했는가 하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사미의 출가를「출가」(pabbajjā, pravrajyā)라고하여 비구가 될 때의 의식「구족계」(upasampadā)와 구별한다. 이 구별이 언제부터인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러나 쟈이나교에서도「출가」(pavvajjā)와「구족계」(uvasa ṁpayā)라고 하는 것은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 아함경에서도 주의해서 보면 이 두 말은 구별하여 사용되고 있다. 불타의 가르침을 듣고 출가를 결의한 사람을 나타낼 때에는,「나는 존사 고오타마 곁에서 출가를 얻기를 원하고, 구족계를 얻기를 원합니다.」고 고백하고 있고, 그리고 다시「그는 세존 곁에서 출가를 얻고, 구족계를 얻었다」고 맺고 있다. 처음으로 불타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이 출가와 구족계의 구별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우므로 이것은 경작자의 이해를 나타낸 것일 것이다. 『숫타니파타』의 다른 곳을 보아도 산문의 부분에서는 비구가 되기를 바라는 이는 반드시 이 두 가지를 함께 들어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가타(게송)의 부분에서는「여래를 예배하고 그 장소에서 출가를 구하였다pabbajjam arocayi ttha」고 말하면서, 구족계를 말하고 있지 않다. 특히『숫타니파타』, 대품의『세라경』(Selasutta)에서는 가타부분에는「나는 훌륭한 지혜가 있는 분 곁에서 출가하고자 한다」「불방일하여 배우는 이가 여기에 출가하는 것은 헛되지 않다」는 등으로 「출가」라는 말만으로 불제자가 되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데, 거기에 이어지는 산문에서는「세라 바라문은 대중들과 함께 세존 곁에서 출가를 얻고 구족계를 얻었다」고 말하여 두 가지를 같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숫타니파타』의 한 두 예를 보아도 옛날에는「빠밧쟈」만으로 불제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우빠삼빠다가 빠밧쟈보다 새로운 용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따라서 이 두 가지 말의 구별이나 최고의 시대에 있어서 두 말의 개념내용의 상위 등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쟈이나교에서도 두 가지 말을 모아서 사용하고 있는 점에서 보면 불교에서도 상당히 오래전부터 두 가지 말이 사용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할 것이다. 다만 이 두 가지 말의 구별이 사미의 출현에 의해 일어난 것인가 아니면 이미 두 가지 말의 구별이 있었던 것에 사미가 되었기 때문에 사미를 비구와 구별하기 위해 사미의 출가에 빠밧쟈를 사용하고 비구의 출가에 우빠삼빠다를 배당하게 된 것인지 이 점도 결정할 수 없다. 아무튼 현재의 율장에서는 사미가 상가에 들어올 때의 의식을 빠밧쟈라고 부르고, 비구의 의식을 우빠삼빠다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율장에서 확정하고 있다.

이 사미의 출가작법을 율장에 의거해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파리율에서는, 라훌라가 출가할 때「삼귀의에 의해서 사미의 출가sāmaṇerapabbjjā를 허락한다」고 하고 있고, 삼귀의를 세 번 외우는 것으로 사미가 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파리율에는 그 앞에 15세가 되지 않은 동자를 출가시켜서는 안된다든가, 아난이 두 고아를 구오 사미로하여 출가시켰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거기의 경우에는 사미가 되는 작법을 나타내지 않고 라훌라의 부분에서 이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라훌라의 출가를 설한 뒤에 한 비구가 두 사람의 사미를 길러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그 뒤에 사미가 지켜야 할 「십계」(십학처dasa sikkhā= padāni)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들의 설명 이외에 파리율에는 사미의 출가에 대해서 조직적인 설명은 없다.

이것에 대하여 사분율·오분율·마하승기율에서는 라훌라의 출가 부분에서 사미의 출가작법을 상세히 설하고 있다. 십송율에서는 별도의 장소에서 사미의 작법을 상설하기 때문에 라훌라의 부분에서는 상세한 설명이 없다.

파리율의 설처럼 라훌라의 경우에는 다만 삼귀의를 세 번 외우게 하는 것만으로 사미가 되는 의식으로 하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직 그 시대에는 삼귀의도 성립되어 있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삼귀의는 우빠사카가 될 때에도 행하던 의식이고, 그 의미에서는 양자에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그러나 사미의 경우에는 머리를 깎고 가사의를 입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이것이 상대에게 경의를 나타내는 작법이다.), 아사리의 발에 절하고, 웅크리고 앉아[蹲居] 합장하고, 그리고나서 삼귀의를 세 번 외우는 것으로 되어 있다.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는다고 하는 점에서 우빠사카의 경우와는 다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사미의 작법을 발생적으로 탐구하는데는 자료가 부족하여 불가능하므로, 제율을 비교하여 완성된 형식을 간단히 나타내 보기로 한다.

첫째 사미의 출가에는「아사리」(ācariya)가 필요하다. (이것이 출가 아사리이다.) 사미는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출가하여 상가에 들어오고서부터 생활을 지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것이 아사리이다. 십송율에서는「비구가 위로 다섯 가지 법이 있고 10년(출가하고서부터의 10년)이 차게 되면 사미를 기러야 한다」고 설하고, 법랍 10가 되어서 비로소 사미를 득도시킬 수 있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우둔하여서는 제자를 지도할 수 없기 때문에 다섯 가지 법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이 요구되고 있다. 즉 제자에게 청정계를 잘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아비담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율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제자가 여행 중에 難儀하여 있으면 잘 도와줄 수 있어야 하고, 제자가 병이 들었을 경우에는 약이나 음식물 등 필요한 것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하는 다섯 가지 법이다.

다음에 사미를 득도시킬 경우에는 머리를 깎고 출가시킨다는 것을 상가에게 고지(apaloana許可)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분율이나 십송율에서는 체발과 출가로 두 번 상가에게 고지해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파리율에서는 체발의 고지만을 말하고 있다. 아빠로까나는 허가의 의미이지만, 그러나 사미를 출가시킬 때에는 상가의 허가는 필요하지 않으므로 다만 고지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아사리가 상가에게 고지한 경우 상가는 그 신고를 受理할 뿐이다. 그 신고를 허락할 것인가 않을 것인가를 심의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아사리가 사적으로 사미를 득도하게 되면, 상가(현전승가)의 전원은 그것을 모르는 경우가 있고, 공동생활에 불편을 가져오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문에 사미를 득도할 경우에는 상가의 전원에 고지해야 한다는 규정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허가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그러나 고지는 의무이기 때문에 고지하지 않으면 위반한 것으로 지적받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무적인 고지를「구청갈마」(apalokana-kamma)라고 한다. 이것은 갈마로 말하면「백갈마」의 일종이다. 사뢰는 것(白)만 있고 가부를 심의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갈마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다시 논하기로 한다.

아사리는 구청을 마치고나서 사미가 될 사람을 머리를 깎고 가사의를 주고 그리고 나서 사미계를 준다. 이 경우의 계사는 아사리 자신이어도 좋고, 아니면 다른 고덕의 비구를 계사로하여 의촉해도 좋다. 율장에는 이 점에 관한 명료한 설명이 없다. 다만 『근본설일체유부백일갈마』에서 사미계를 설명하는 곳에「二師」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계사는 아사리와는 다른 사람을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사미의 출가 작법은 사분·오분·십송·승기 등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것들은 기본적으로는 같고, 체발·염의하여 계사 앞에 무릎을 꿇고앉아 삼귀의를 외우고 출가의 의지를 말하고 이어서 사미의 십계를 받는다고 하는 순서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십송율이나 오분율, 승기율 등에서는 우바새의 삼귀오계부터 설해져 있고 이어서 사미계의 작법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사미가 되는 사람은 그 앞에 당연히 우바새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바새계는 몇 번 받아도 좋은 것이므로 사미계를 받기 전에 새롭게 우바새계를 받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분율에 의해 사미계의 작법을 나타내면 수계자는 머리를 깎고 가사의를 입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스승 앞에 위치하여 먼저 삼귀의를 외운다.

저 아무개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에게 귀의합니다. 여래를 따라 출가하여, 아무개를 화상으로 합니다. 여래지진등정각은 저의 세존이십니다.

이와 같이 세 번 반복해서 말한다. 이것에 의해 「출가」가 끝나는 것이다. 이어서 사미계를 준다. 계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로 계를 받아야 하나니,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살생하지 말라. 이것을 사미계라고 한다. 능히 지킬 수 있으면 대답하기를「능히 지키겠습니다」고 말하라.

수계자는 「능히 지키겠습니다」고 말한다. 이어서 같은 형식으로 ⑵ 부도, ⑶ 불음, ⑷ 불망어, ⑸ 불음주, ⑹ 화만을 걸치지 말고, 향을 몸에 바르지 말라, ⑺ 노래부르거나 춤추지 말고, 또한 가서 보거나 듣지도 말라. ⑻ 높고 넓고 큰 평상에 앉지 말라. ⑼ 아닌 때에 먹지 말라. ⑽생상금은보물을 잡지 말라고 하는 십계를 받는 것이다. 살·도·음·망·음주의 다섯 가지 계는 재가의 오계와 같은 순서이고, 다만 불사음이 불음으로 바뀌어 있는 것 뿐이다. 이 순서는 제율이 마찬가지이지만 제6계 이하는 제율에 따라 순서에 차이가 있다

사미의 십계는 팔재계에서 함께 되어 있던「가무관청햐유도신」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2계로 하고 거기에「수축금은계」를 더한 것이다.

이 경우 사미 십계와 신자의 팔재계 중에 어느 것이 더 오래된 것인가는 단정할 수 없지만, 아마 팔재계 쪽이 오래되었고, 이것에 손을 대어 사미의 십계가 된 것일 것이다. 만약 사미 십계가 먼저 성립했다고 한다면 가무관청 등의 두 계를 무리하게 하나로하여 팔재계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사미 십계는 비구 250계나 신자의 5계가 성립한 뒤 사미에게도 고유한 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비시식계」가 있는 것은 바라제목차의「미성년자수구족계」의 인연담과 모순되는 점이 있다. 이 계의 인연담에 의하면, 우파리 등의 17명의 동자는 부모의 희망에 의해 구족계를 받았지만, 정오 이후는 식사를 할 수 없었으므로 밤중에 배가 고파서 「죽을 주세요」「밥을 주세요」라고 울면서 떠들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이것을 인연으로하여 불타는 20세 미만인 사람은 비구의 수행인 한서기갈, 그 밖의 곤고를 감당할 수 없다고하여 구족계를 주는 것을 금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율장의「수계건도」에도 있고, 20세미만에게는 구족계를 줄 수 없다고 하는 조건의 하나가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소년은 일일일식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미성년자에게 구족계를 줄 수 없는 이유의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에, 사미계 가운데 비시식계가 들어 있는 것은 기이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미가 비구와 정사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한 사미만 정오 이후에도 식사를 한다는 것은 실제 문제로서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사미도 소년이기는 하지만 비시식계를 지키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일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출가하여 상가의 일원으로 된 사미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하는 것은 율장에는 특별히 설해져 있지 않다. 정사 내의 잡용 등에는 사용되었을 것이다. 비구에게는 계율 때문에 금지되어 있는 것을 사미가 대신 행하도록 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사분율에는 사미에게「그대 바로 여법하게 화상·아사리 및 중승에게 공급해야 하고, 만약 승이 무슨 일을 시키면 바로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승이 시키는 일(僧의 作使)」이라고 하였는데, 상가 가운데서 사미에게 일을 하게 하는 지사비구를「사사미인」(sāmaṇera-pesaka)라고 한다. 또한 파리율에는 상가에게 불리한 것을 계획하거나, 시키는 말을 듣지 않는 사미에게는 벌(āvaraṇa금지)을 주어도 좋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주처의 금지나 음식물의 금지를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또한 불교를 비방하는 사미는 상가의 갈마에 의해 빈척된다는 것은 바일제법의「수빈사미계」에 나타나고 있다.

다음에 파리·사분·오분·십송 등의 상좌부계의 율은 한 사람의 비구가 동시에 두 사람의 사미를 가져서는 안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승기율에서도「사미는 한 사람을 기르는 것을 허락한다」 고 말하고 있지만,「부득이한 경우에는 최대 3명까지」라고하여 한 비구가 세 사람까지는 사미를 길러도 좋다고 하고 있다.

다음에 사미의 학습에 대해서 말하면, 사미는 비구의 계율을 배울 필요는 없다. 다만 교리나 아비달마에 대해서 비구로부터 교시를 받았을 것이다. 사미의 십계를 학습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사미가 교리를 배울 경우의 입문서로 되는 것에「사미문」(사미법)이 있다. 율장에서는 이것은 승기율에서만 보인다.

수가 너의 화상인가? 누가 너의 스승인가? 사미에게 몇 가지의 계가 있는가? 사미에게 바로 몇 가지가 있는지를 헤아려야 한다. 처음의 이름은 무엇이라 하는가? 일에는 일체 중생이 모두 음식을 의존한다. 이에는 이명색이다. 삼에는 삼통상이다. 사에는 사성제이다. 오에는 오음이다. 육에는 육입이다. 칠에는 칠각의이다. 팔에는 팔성도이다. 구에는 구중생거이다. 십에는 십일체입이다. 사미법은 바로 이와 같이 헤아려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이런 것이 사미 교육의 주된 내용으로 되어 있었던 것일 것이다.

4. 사미니에 대하여

사미니에 관해서는 비구의 바라제목차에도 나타난다. 바일제법에「비구가 다른 비구·비구니·정학녀·사미·사미니sāmaṇerī, śrāmaṇerikā에게 淨施한 옷을 그 사람의 허락을 얻지 않고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조문이 있다. 이 가운데 사미니가 매거되어 있다. 물론 이 조문은 사미니를 제외하더라도 성립할 수 있는 조문이다. 본래는 비구 혹은 비구·비구니만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율에서는 마하승기율도 포함하여 모든 계본에 이들 5중이 매거되고 있기 때문에 부파분열 이전부터 이와 같이 되어 있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사미니도 원시불교교단시대에 존재했다고 보아도 좋다.

율장에는 사미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한 것을 지적해 두었지만, 사미니에 대해서는 더욱더 자료가 적다. 율장은 비구의 율에 대한 설명이 주이고, 비구니율의 설명은 부수적이다. 비구니에 대한 자료도 많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미니에 대한 자료가 적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미니에서 비구니가 되는데는 중간에 정학녀의 단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구니의 바라제목차 가운데는 정학녀에 관계되는 조문은 많지만, 직접 사미니에 관계되는 조문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비구니 바라제목차 중에는 사미니의 명칭도 나타나지만 그러나 많지 않다.

이상과 같은 사정이기 때문에 율장에는 사미니의 명칭은 여러 곳에 들려지고 있어도 그것들은 모두 비구·비구니·정학녀·사미 등에 부수하여 들려지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구체적인 설명은 극히 적다. 그러나 사미니와 비구니의 관계는 사미와 비구의 관계와 거의 마찬가지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사분비구니갈마법』이나『근본설일체유부백일갈마』권2 등에는 사미니의 수계작법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있지만, 그것은 사미의 수계작법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먼저 사미니를 출가시키려고 하면 상가의 허가를 필요로 하고, 다음에 체발·염의하여 삼귀의를 세 번 외우게하여 출가를 하고, 다음에 사미니의 십계를 받는 것이다. 사미니는 비구니정사에 거주하고 비구니의 지도아래 수행을 하는 것이지만, 연령 등은 사미의 경우와 대체로 동일하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다만 사미니의 경우에는 18세가 되면 정학녀가 되어 바로 2년을 지나서 비구니에 나아가는 길이 있다. 사미니에서 바로 비구니가 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반드시 정학녀의 단계를 지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더욱이 비구니의 경우에는「12세에 이미 결혼한 여인」이라고하여 일찍이 결혼한 여성은 20세가 아직 되지 않았더라도 12세에서도 비구니가 되어도 좋다고 하는 규칙이 있다. 이런 경우에도 물론 정학녀의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안되지만, 그러나 12세에서 비구니가 된다고 한다면 사미니의 단계는 거의 경과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정이 있기 때문에 비구니 승가에 있어서 사미니의 위치는 비구승가에 있어서 사미의 위치보다도 더욱더 가벼웠다고 보아도 좋다.

또한 현재 남방불교에는 비구니승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미니는 존재하는 것 같다. 그녀들은 출가하여 사미니의 십계를 받고 있는 것 같으나, 그러나 수계사로서의 비구니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비구로부터 계를 받아서 사미니로 되는 것일 것이다.

 
Leave A Reply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