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원법사 면학편 상&하 孤山圓法師勉學篇 並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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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山圓法師勉學篇並序

中人之性은 知務學而或墮於學일새 乃作勉學하노라

중간근기를 지닌 사람의 성품은 배움에 힘 쓸 줄은 알면서도 혹 배움에 게으르기 마련이니 이에 면학勉學을 짓는다.

勉學上

嗚呼라 學不可須臾怠며 道不可須臾離라 道由學而明이어니 學可怠乎며 聖賢之域에 由道而至어니 道可離乎아 肆 凡民之學이 不怠면 可以至於賢이요 賢人之學이 不怠면 可以至於聖이니라 冉求之學이 可以至於顔淵이로대 而不逮具體者는 中心怠耳니라 故로 曰非不悅子之道언마는 力不足也라하시니라 子가 曰患力不足者는 中道廢하나니 今汝는 畫이라하시니라 顔淵之學이 可以至於夫子로대 以不齊於聖師者는 短命死耳니 如不死런들 安知其不如 仲尼哉리요 以其學之不怠也일새니라 故로 曰有顔氏子가 好學하더니 不幸短命死矣라 今也則亡라하시니라 或이 問聖人도 學也닛가 曰是何言歟며 是何言歟아 凡民與賢도 猶知學이어든 豈聖人이 怠於學也리요 夫天之剛也而能學柔於地故로 不干四時焉하며 地之柔也而能學剛於天故로 能出金石焉하며 陽之發生也而亦學肅殺於陰故로 靡草死焉하며 陰之肅殺也而亦學發生於陽故로 薺麥이 生焉하니 夫爲天乎地乎陽乎陰乎여 交相學而不怠일새 所以成萬物하나니 天不學柔則無以覆하고 地不學剛則無以載하고 陽不學陰則無以啓하고 陰不學陽則無以閉니 聖人은 無他也라 則天地陰陽而行者시니 四者學不怠어늘 聖人이 惡乎怠리요 或者가 避席曰予之孤陋也여 幸子가 發其蒙하시니 願聞聖人之學하노이다 中庸子가 曰復坐하라 吾語汝호리다 書不云乎아 惟狂이라도 剋念作聖이요 惟聖이라도 罔念作狂이라하니 是故로 聖人은 造次顚沛라도 未嘗不念正道而學之也니라 夫子는 大聖人也라 拔乎其萃하며 出乎其類하사 自生民以來로 未有如夫子者로대 入太廟하사 每事를 問則是는 學於廟人也요 三人이 行에 擇其善者而從之則 是는 學於偕行也요 入周則問禮於老子則是는 學於柱史也니 豈仲尼之聖이 不若廟人行人柱史也아 盖聖人은 懼夫不念正道而學之則至於狂也矣니라 故로 曰必有如丘之忠信焉이로대 不如丘之好學也라하시니라 曰聖人은 生而知之어니 何必學爲리요 曰知而學은 聖人也오 學而知는 常人也라 雖聖人常人이라도 莫有不由於學焉이니라 孔子가 曰君子는 不可不學이라하야늘 子路曰南山에 有竹하니 不柔自直이라 斬而用之면 達乎犀革하나니 以此言之컨댄 何學之有리요 孔子가 曰括而羽之하고 鏃而礪之하면 其入之가 不亦深乎아 子路가 再拜曰 敬受敎矣라하니 噫라 聖人之學이 無乃括羽鏃礪하야 使深入乎아 豈生而知之者인달 兀然不學也리요

오호라! 배움은 잠시라도 게을리 할 수 없으며 도道는 잠시라도 떼 놓을 수 없다. 도는 배움으로 말미암아 밝아지는 것이니 배움을 게을리 할 수 있겠는가? 성현의 경계는 도로 말미암아 이르는 것이니 도를 떼어놓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평범한 백성이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현인에 이를 수 있고 현인이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성인에 이를 수 있다. 염구의 학문이 가히 안연에 이르렀다 할 것이나 그 실체를 갖춤에는 미치지 못한 것은 속마음이 게을렀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스승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힘이 부족할 뿐입니다」라 하니 공자께서 이르기를 「힘이 부족한 것을 근심하는 자는 중도에 [힘이 다하면 자연스레] 그만 둘 것인데 지금의 너는 선을 긋고 말았구나」 하였다. 안연의 학문은 가히 공자에 이르렀다 할 것이나 성현 조사들과 나란히 자리하지 못하는 것은 단명으로 죽었기 때문일 뿐이다. 만일 죽지 않았다면 그가 중니와 같이 되었을지 어찌 알겠는가? 그가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안씨의 아들이 있어 배우기를 좋아하더니 불행히도 단명하여 죽었으니 이제는 그만이구나」 하였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성인도 배웁니까?」 하니 이르기를 「이 무슨 말인가! 이 무슨 말인가! 평범한 백성과 현인도 오히려 배움을 알거늘 어찌 성인이 배움에 게으르겠느냐. 무릇 하늘은 강하지만 땅에게서 능히 부드러움을 배우는 까닭에 사시四時의 차례를 범하지 않는 것이며, 땅은 부드러우나 하늘로부터 능히 강함을 배우는 까닭에 금석金石을 내는 것이며, 양陽은 생명을 피우는 것이지만 또한 음陰에게서 숙살肅殺을 배우는 까닭에 가는 잎의 풀들이 죽는 것이며, 음은 숙살하는 것이지만 또한 양으로부터 생명을 피우는 것을 배우는 까닭에 냉이와 보리가 나는 것이다」 하였다. 무릇 하늘과 땅과 양과 음은 사귀어 서로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므로 만물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하늘이 부드러움을 배우지 않으면 곧 덮어 줄 수가 없고, 땅이 굳셈을 배우지 않으면 곧 실어 줄 수가 없으며, 양이 음을 배우지 않으면 곧 열 수가 없고, 음이 양을 배우지 않으면 곧 닫을 수가 없다. 성인도 별다름이 없는지라 하늘과 땅과 양과 음을 본받아 행하는 분이시니, 이 네 가지가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데 성인이 어떻게 게을리 하리요. 어떤 사람이 자리를 피하며 이르기를 「나의 고루함이여! 다행히 그대께서 그 몽매함을 열어 주셨으니, 바라건대 성인의 학문을 듣기 원합니다」 하니 중용자가 말하였다. 「다시 앉으라, 내가 너에게 말하리다.《상서》에서 말하지 않았더냐? 󰡔오직 미치광이라도 생각을 이겨내면 성인이 되고, 오직 성인이라도 생각을 잊어버리면 미치광이가 된다󰡕 하였으니, 이러한 까닭에 성인은 창졸간에도 바른 도를 생각하여 배우지 않은 적이 없었다. 공자는 큰 성인으로 그 무리 가운데 빼어났으며 그 부류 가운데 출중하였으니 백성이 생긴 이래로 공자와 같은 자가 없었으나, 태묘에 들어가서는 모든 일을 물어 행하였다 하였으니 곧 이는 묘지기에게 배운 것이며, 세 사람이 길을 감에 착한 사람을 가려서 그를 좇았다 하였으니 곧 이는 동행자에게 배운 것이며, 주나라에 들어가서는 예禮를 노자에게 물었다 하였으니 곧 이는 도서관지기에게 배운 것이다. 어찌 중니와 같은 성인이 묘지기나 행인이나 도서관지기만 못하겠는가? 대개 성인은 바른 도를 생각하여 그것을 배우지 않으면 곧 미치광이에 이르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에 󰡔반드시 나(孔子)와 같이 충실하고 믿음 있는 자는 있을 수 있을지언정 나처럼 배우기를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다󰡕라 하였다.」 말하기를 「성인은 나면서부터 안다 하였는데 어찌 배울 필요가 있습니까?」 하니 말하기를 「알고도 배우는 것이 성인이며 배워서 아는 것이 보통 사람이다」 하였으니, 비록 성인이나 보통 사람이라 할지라도 배움으로 말미암지 않은 자는 없다. 공자가 이르기를 「군자는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하니 자로가 이르기를 「남산에 대나무가 있음에 바로잡지 않아도 스스로 곧으니 베어서 사용하면 무소의 가죽을 꿰뚫는다 하였습니다. 이를 두고 말하건대 무슨 배울 것이 있겠습니까?」 하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흠줄을 내어 깃털을 달고 촉을 박아서 숫돌에 갈면 그 들어가는 깊이가 또한 깊지 않겠느냐?」 하니 자로가 재차 절을 올리며 이르기를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하였다. 오호라, 성인의 배움이 흠줄을 내어 깃털을 달고 촉을 박아 숫돌에 갊으로써 더욱 깊게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찌 나면서부터 안다고 하여 말뚝처럼 배우지 않을 것인가!

勉學下

夫聖且賢도 必務於學이어든 聖賢以下가 安有不學而成人리요 學은 猶飮食衣服也라 人有聖乎賢乎衆庶乎여 雖三者가 異而飢索食하고 渴索飮하고 寒索衣則不異矣리니 學也인들 豈得異乎리요 惟禽獸土木은 不必學也니라 嗚呼라 愚夫는 嗜飮食而不怠하며 冒貨利而不休호대 及就于學하야는 朝學而夕怠者- 有矣夫며 有春學而冬怠者 有矣夫인저 苟如嗜飮食冒貨利之不知怠者인댄 何患於不爲博聞乎며 不爲君子乎리요 曰世有至愚者하니 不辨菽麥之異하며 不知寒暑之變이어니 豈令學耶며 豈可敎耶리요 曰至愚도 由不敎也며 由不學也니 苟師敎之不倦하며 彼心之不怠者인댄 聖域에 可躋而陞乎리니 何憂菽麥之不辨乎리요 且愚者도 渴而知飮하며 飢而知食하며 寒而知衣하나니 旣知斯三者則與草木으로 殊矣라 惡乎不可學也며 不可敎也리요 人之至愚인달 豈不能日記一言也아 積日至月則記三十言矣요 積月至年則記三百六十言矣리니 積之數年不怠者면 亦幾於博聞乎인저 又日取一小善而學行之하야 積日至月則身有三十善矣요 積月至年則身有三百六十善矣리니 積之數年而不怠者면 不亦幾於君子乎아 爲愚爲小人而不變者는 由不學耳니라 中庸子가 喟然嘆曰吾가 嘗見恥智之不逮하며 才之不敏而輟於學者요 未見恥飮食이 不如他人之多而輟飮食者호라 輟飮食則殞其命이어니 何必恥於不多也며 輟學問則同夫禽獸土木이어니 何必恥才智之不如他人耶리요 苟恥才智가 不如而不學則亦應恥飮食이 不如他人이라하야 則廢飮食이니라 以是觀之컨댄 豈不大誤乎아 吾亦至愚也라 每揣才與智가 不逮他人者가 遠矣어만은 由知飮食之不可輟而不敢怠於學也하노라 行年이 四十有四矣라 雖病且困이나 而手未嘗釋卷은 所以懼同於土木禽獸耳라 非敢求臻聖域也며 亦非求乎聞達也니라 雖或彷徉 戶庭하며 夷猶原野하야 以暫頤養하며 目觀心思에도 亦未嘗敢廢於學也하노라 由是로 登山則思學其高하고 臨水則思學其淸하며 坐石則思學其堅하고 看松則思學其貞며 對月則思學其明하노니 萬境이 森列에 各有所長이어든 吾가 悉得師而學之하노라 萬境은 無言이로대 而尙可學이은 况人之能言이라 雖萬惡이라도 必有一善也니 師一善而學之면 其誰曰不然乎리요 中庸子가 曰世有求之而或不得者也하며 世有求之而必得者也하니 求之而或不得者는 利也요 求之而必得者는 道也라 小人之於利也에 雖或萬求而萬不得이라도 而求之彌勇하고 君子之於道也에 求之必得이로대 而望途懷㤼하야 自念力不足者는 此가 求利小人之罪耳니라 仲尼가 曰仁遠乎哉아 我欲仁이면 斯仁이 至矣라하니 言求之而必得也시니라

무릇 성인과 현인도 반드시 배움에 힘쓰거늘 성현도 못되는 자가 어찌 배우지 않고도 사람다운 사람을 이룰 수가 있겠는가. 배움이란 음식이나 의복과 같다. 사람에게는 성인이 있고 현인이 있고 서민이 있어서 비록 이 셋이 다르지만 주리면 음식을 찾고 목마르면 마실 것을 찾으며 추우면 옷을 찾는 것은 다르지 않으니, 배움 또한 어찌 다를 바가 있겠는가. 오직 날짐승과 들짐승이나 흙과 나무만이 배울 필요가 없을 뿐이다. 오호라! 어리석은 사람은 먹고 마시기를 즐겨함에 게으르지 않으며 재물과 이익을 탐냄에 쉬지 않으나 배움에 나아가기에 이르러서는 아침에 배우다가 저녁에 게을리 하는 자가 있으며 봄에 배우다가 겨울에 게을리 하는 자가 있다. 진실로 먹고 마시기를 좋아하고 재물과 이익을 탐하는 것과 같이 게으름을 모르는 자라면 어찌 널리 얻어듣지 못함을 근심할 것이며 군자가 되지 못함을 근심하겠는가.
이르기를 「세상에 지극히 어리석은 자가 있어 콩과 보리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추위와 더위의 변화를 알지 못하면 어찌 그로 하여금 배우게 할 수 있으며 어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이르기를 「지극히 어리석은 것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며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실로 스승이 그를 가르침에 쉬지 않고 그의 마음이 게으르지 않다면 성인의 경지라도 가히 밟아 올라 설 것인데 어찌 콩과 보리를 분별하지 못함을 근심하겠는가? 또한 어리석은 자라도 목마르면 마실 줄 알고 주리면 먹을 줄 알며 추우면 입을 줄 안다. 이미 이 세 가지를 안다면 곧 초목과 다르니 어찌 배우지 않을 것이며 어찌 가르치지 않겠는가. 사람이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어찌 하루에 한 마디의 말을 기억하지 못하겠는가. 날이 쌓여 달이 되면 곧 서른 마디의 말을 기억할 것이며 달이 쌓여 해가 되면 곧 3백6십 가지의 말을 기억할 것이니, 그렇게 쌓기를 몇 년 동안하며 게으르지 않는다면 그 또한 박문博聞함에 가까운 것이 아니겠는가? 또 하루에 한 가지의 작은 선행을 취하여 그것을 배우고 행한다면 날이 쌓여 달이 되면 곧 몸에는 서른 가지의 선행이 있게 될 것이며 달이 쌓여 해가 되면 곧 몸에는 3백6십 가지의 선행이 있게 될 것이니, 그렇게 쌓기를 몇 년 동안하며 게으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에 가까운 것이 아니겠는가? 어리석은 이가 되고 소인이 되어 변화하지 않는 자는 배우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하였다.
중용자가 탄식하며 이르기를 「내 일찍이 지혜가 미치지 못하고 재주가 민첩하지 못함을 수치스러워 하여 배움을 걷어치우는 자는 보았지만, 음식이 다른 사람처럼 많지 않음을 수치스러워 하여 음식을 걷어치우는 자는 보지 못했다. 음식을 걷어치우면 곧 생명을 잃을 것인데 어찌 반드시 많지 않다고 부끄러워 할 것이며, 학문을 걷어치우면 곧 금수나 토목과 같아질 것인데 어찌 반드시 재주나 지혜가 다른 사람만 못하다고 부끄러워하겠는가. 진실로 재주와 지혜가 남만 못함을 부끄러워하여 배우지 않는다면 또한 마땅히 음식이 다른 사람만 못함을 부끄러워하여 음식을 폐해야 할 것이다. 이로써 살펴 보건대 어찌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나 역시 지극히 어리석음에 매번 재주와 지혜를 헤아려 보건대 다른 사람에게 미치려면 아직 멀었으나 음식은 가히 걷어치우지 못함을 앎으로 말미암아 감히 배움에 게으르지 않는 것이다. 내 나이 마흔 넷, 비록 병들고 고달프더라도 일찍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음은 토목이나 금수와 같이 될까 두려웠을 뿐이니, 감히 성인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고 또한 입신출세를 추구한 것도 아니었다. 비록 간혹 뜰 앞을 배회하고 들녘을 거닐더라도 잠시나마 품성을 기르고자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생각하며 또한 감히 배움을 폐한 적이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산을 오르면 곧 그 높음을 생각하여 배웠으며, 물에 다다르면 곧 그 맑음을 생각하여 배웠으며, 돌에 앉으면 곧 그 견고함을 생각하여 배웠으며, 소나무를 보면 곧 그 절개를 생각하여 배웠으며, 달을 대하면 곧 그 밝음을 생각하여 배웠다. 만 가지 경계가 빽빽이 늘어서 있음에 각기 뛰어난 바가 있으니 내가 그 모든 것을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만 가지 경계는 말이 없으나 그래도 배울 만 한데 하물며 사람은 능히 말을 할 수 있음에야! 비록 1만 가지 악을 지녔다 하더라도 반드시 한 가지 선은 있을 것이니 한 가지 선을 스승으로 삼아 그것을 배운다면 그 누가 옳지 않다 하겠는가」 하였다.
중용자가 이르기를 「세상에서 구하여도 간혹 얻지 못하는 것이 있으며, 세상에서 구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구하고자 하나 간혹 얻지 못하는 것은 이익이며, 구하면 반드시 얻는 것은 도道다. 소인은 이익에 대해서 비록 1만 번을 구하여 1만 번을 얻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구함에 더욱 용맹스레 할뿐인데, 군자로서 도道에 대해 구하면 반드시 얻을 것임에도 앞길을 바라보고 겁을 먹어 스스로 힘이 부족하다 생각하는 것은 이익을 구하는 소인에게 죄스러울 뿐이다」 하였다. 중니가 이르기를 「어짊이 멀리 있느냐? 내가 어질고자 하면 이곳으로 어짊이 이를 것이다」 하였으니, 그것을 구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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