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아라마 postedJun 21, 2014

기독교는 어떻게 전쟁과 친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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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어떻게 전쟁과 친해졌나 [2010.01.22 제795호]

[박노자의 국가의 살인]

 


“평화의 아들이 어찌 전투에 참여하겠느냐”던 초기 교부들의 비타협적 평화주의가 ‘의로운 전쟁’의 합리화에 밀려나

 

 

필자가 20년 전쯤 몇 개월간 고려대에 있을 때 종교적 모색의 일환으로 캠퍼스 안의 한 개신교 선교단체에 다닌 적이 있었다. 한국어를 익힐 겸해서 고려대 선배인 한 한국인 선교사와 함께 영역 성경과 국역 성경을 대조해서 읽어가는 활동이었다. 그때 신약을 보다가 이 유명한 구절을 읽게 됐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마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복음 5:39)

 

 

» 함석헌 선생은 20세기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다 싶은 기독교적 평화주의 사상가였다. 그와 같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한국 교회는 ‘폭력 거부’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한겨레 자료

‘신앙인’보다는 ‘국민’이 먼저

 

필자는 이와 흡사한 내용의 여러 구절을 이미 러시아어 성경에서 본 바 있었다. 복음서에 적힌 ‘예수님의 말씀’ 중에는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복음 26:52)와 같은 내용이 하도 많기에 평화주의를 ‘예수 사상’의 핵심으로 평소에 생각해왔고, 또 바로 이 평화주의 때문에 기독교에 나름의 관심과 호의를 느꼈던 것이다. “악인에게 선으로 대처하라”는 감동적 말씀을 읽게 되니 그 기회에 선교사에게 “그러면 기독교인이 군에서 복무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고 정중히 문의했다. 그때까지 많은 한국 교인 중에서 ‘군 복무’ 문제에 대해 어떤 이의라도 품은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해 의아하게 생각하던 차였다. 선교사는 몇 분간 생각에 잠겼다가 결국 꽤나 다의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군대란 자유 없는 시공간이고 기독교인으로서 좋아할 제도는 절대 못 된다. 기독교인으로서 무기·군대·전쟁을 좋아할 수 없지만 강국의 폭력으로 두 개로 찢긴 약소국으로서는 별도리가 있겠는가. 강국 소련이 심어준 북한의 반기독교적 정권의 폭력에 우리가 우리 신앙을 포기한다면 더 큰 죄악이 되지 않겠는가.” 

옛 소련 출신인 필자를 겨냥해서 말한 것이었겠지만, 그 논리는 분명했다. 국가의 폭력은 원론적으로 다 나쁘지만, 절대악과 같은 적대국(북한)에 맞서려면 차악인 ‘우리나라’ 군대에 가는 것은 ‘불가피한 타협’ 또는 ‘약소국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의 슬픔’이라는 논리였다. 적대국을 흑으로, 그리고 ‘우리’를 백으로 각각 보고 ‘십자군’과 ‘성전’(신성한 전쟁)을 들먹이는 극우반공 교회의 논리보다야 훨씬 더 나은, 20년 전의 ‘민족 고대’다운 논리였지만, 골자는 그래도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개인 신앙보다 우위라는 것이었다. 분단을 당한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무기를 불가피하게 들어야 하는 ‘국민으로서의 나’는, 예수의 말씀대로 칼을 칼집에 도로 꽂고 왼쪽 뺨을 돌리고 싶은 ‘신앙인으로서의 나’보다 더 우선이라는 것이다.

 

과연 필자가 만난 선교사 한 분만 그랬던가. 반공국가 대한민국을 만든 하나의 주체세력으로 일찍부터 나선 한국 교회는 ‘복음화’할 수 있다 싶은 ‘우리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오른쪽 뺨과 왼쪽 뺨’ 이야기를 애당초에 폐기처분하다시피 했다. 20세기 한반도의 유일하다 싶은 기독교적 평화주의 사상가로 불릴 수 있는 함석헌(1901~89) 선생이 일찌감치 한국전쟁에 대해 비판하고 전쟁하는 국가와 거리를 두어보려는 목사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것이 놀라운 일이라고 일갈하지 않았던가. ‘칼을 쓰는 국가’와 하나가 되다시피 한 교회에서는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이야기할 만한 예언자적 인물이 쉽게 나올 리 없었다.

 

기독교의 역사를 생각해본다면 이는 참 억울한 일이다. 사실, 초기 기독교에 대해 ‘혁명적’이라고 이야기할 때 이는 무엇보다 군대·전쟁에 대한 태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대체로 중산층의 도시 자유민을 중심으로 형성된 1~3세기 초기 기독교 신도 집단은 정치·사회적 차원에서는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혁명적’ 자세를 취한 적이 없었다. 사도 바울도 도망친 노예로 보이는 오네시모를 그 주인에게 돌리는 등 노예제 자체를 반대하지 않으면서 다만 주인에게 노예를 ‘사랑하는 형제’로 대해달라고 간청했을 뿐이다(빌레몬서 1:16). 이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온건함’을 잘 보여준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고 황제의 법률을 지키는 데 별 이의가 없었던 이들은, 다만 자기들 사이에서 민주적 ‘나눔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선에서 권력자와 타협할 의향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면서도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은 오로지 두 가지, 즉 유일신만을 숭배한다는 신조를 어기고 전통적 신(‘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과 전쟁의 문제였다. 고대 지중해 문명 세계에서는 도시국가나 제국 사이의 전쟁은 국제분쟁 해결의 합법적 방법으로 사유됐다. 나아가서 개인을 일차적으로 도시국가 공동체의 일원, 즉 ‘시민’으로 파악한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상식에서는 전장에서 용감하게 싸우는 것은 진정한 남성 자유인의 의무이자 덕목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현자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년)는 전장에서의 용기를 ‘가장 숭고한 용기’로 이해하면서 전사를 ‘숭고한 죽음’으로 봤다(<니코마코스 윤리학> 3:5~9). 로마 시민의 ‘상식’을 그대로 잘 표현한 키케로(기원전 106~43년)도 적에 대한 관용과 의로운 태도 등을 촉구하면서도 “생존과 평화를 위해서라도 야만족과의 전쟁을 해야 한다”고 못박았다(<의무론> 1:34~41). 전쟁이 당연시되고 자유민 장정 모두가 잠재적 군인으로 파악됐던 그 시대에, 최초로 반전의 목소리를 높인 게 바로 초기 기독교였다.

 

 

“예수 이외의 누구를 위해 보초를 서겠는가”

» 기독교적 병역거부로 순교자가 된 테베사의 막시밀리아누스(위). 군인 가정 출신인 그는 295년 입대를 강요받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 남을 해칠 수 없다”며 21살의 꽃다운 나이에 순교했다. 현대의 기독교적 병역거부자인 프랑츠 야게르스타데르(아래). 순박한 오스트리아의 농부인 그는 가톨릭 신앙을 이유로 파쇼 군대에의 징집을 거부한 끝에 순교하고 말았다. 한겨레 자료

 

초기 기독교의 비타협적 평화주의는 개인에 대한 질적으로 다른 이해에 기반을 두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의 개인은 일차적으로 ‘시민’이었지만, 초기 기독교의 개인은 이 세상에 처해 있으면서도 동시에 세상에 속하지 않는 초월적 ‘신앙인’이었다. 신앙의 증언을 할 수 있는 곳으로서 이 세상이 긍정되긴 했지만, 최고의 증언은 이 세상의 악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일차적으로 거부해야 할 것은 전쟁을 위시한 각종 폭력이었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 집단이 이해하는 개인은 더 이상 도시국가에 배타적으로 소속돼 있지 않았다. 몸은 국가에 소속돼 있어도 영혼은 국가는 물론 이 세상 자체를 이미 상대화한 상태였다. 로마제국이 지중해권의 대부분을 통일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일부 도시 중산층 이상주의자들의 평화주의적 ‘반란’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칼로 흥한 제국에 칼을 칼집에 도로 꽂으라는 소리를 하는 것은 엄청난- 아리스토텔레스가 찬양했던 무덕(武德)보다 훨씬 더 많은- 용기를 요구한 일이었다.

전쟁을 멈출 줄 모르는 강대국 로마에 반전을 선언했다가 순교한 이들도 많았지만, 이들의 아름다운 ‘반란’으로 ‘개인 자유’의 이해 수준이 한 차원 높아진 것이었다.

 

초기 교회 교부(敎父)들의 평화주의적 논리는 철두철미했다. 비타협적 엄숙주의와 성서의 절대화, 그리고 그리스 철학에 대한 비하적 태도로 유명한 테르툴리아누스(160∼220)는 단도직입적으로 “하나님에게 드렸던 맹세와 사람(즉, 장군)에게의 맹세는 서로 공존 불가능하며, 예수의 깃발과 사탄의 깃발, 빛의 진영과 어두움의 진영은 공생할 수 없다”고 못박고(<우상숭배론> 19), “법원에조차 가지 않으려는 평화의 아들이 어찌 전투에 참여하겠는가. 자기 자신에게 가해진 불공평한 가해조차 보복하려 하지 않는 이가 어찌 족쇄·감옥·고문·처벌과 관계를 맺겠는가. 예수 이외의 그 누구를 위해 보초를 서겠는가.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을 달고서 생명의 진영에서 어두움의 진영으로 간다는 것 자체는 이미 죄악이다“(<왕관론> 11)라는 결론을 내렸다. 전쟁뿐만 아니라 사법부부터 형정까지 그 모든 폭력적 국가권력은 기독교와 “공생이 불가하다”고 테르툴리아누스는 판정했다. 세계는 상대적인 것들로 이뤄지지만 테르툴리아누스가 생각한 기독교는 이 세계를 완전하게 초탈한 ‘절대’였다.

 

물론 테르툴리아누스보다 약간 더 ‘온건한’ 의견을 내는 교부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일부 신플라톤 학파 철학자처럼 영혼의 환생을 믿은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오리게네스(185~254)는 “황제가 의로운 전쟁을 할 경우, 우리 기독교인은 기도를 통해서 황제를 보필하면 되지 군에 입대할 필요는 없다”고 전제하고 “기도를 통해 이 전쟁들을 발발하게끔 만드는 온갖 마귀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켈수스 반박론> 8:73). ‘기도를 통한 군주 보필’ 이야기는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을 보필하면서 밀교적 기도로 당나라 함대를 침몰케 했다는 신승 명랑법사(<삼국유사> 제5권)를 떠올리게 하지만, 오리게네스의 논리는 단순한 ‘국가에 대한 주술적 봉사’보다 ‘기도를 통한 궁극적 평화 달성’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콘스탄티누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좌우간 테르툴리아누스와 오리게네스 등 초기 교회 이론가들의 주장에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기독교’와 ‘전쟁’을 분리시키는 정신은 공통적이었다. 물론 군인으로서 기독교에 귀의하거나 기독교인이 된 뒤 입대한 로마 시민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교부들의 가르침대로 입영을 거부해 순교하는 이들도 있었다. 꼭 순교까지 안 가더라도, 나중에 투르(Tour)의 주교가 되고 사후에 성인(聖人)으로 시성된 마틴(317~397)처럼 군인의 몸으로 기독교적 신념을 들어 참전을 거부하고 제대를 요구한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교회가 전쟁하는 국가 앞에서 두 손을 든 것은 기독교를 공인해 로마제국의 국교로 만든 콘스탄티누스 1세(재위 306~337) 때였다.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통해 집권에 성공하고, 집권한 뒤 양민의 농노화 과정을 가속화하는 등 선정과 거리가 멀었던 그는 예수의 평화나 자비와 별 관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기독교에 대한 그의 ‘은혜’에 보은하려던 교회는 손에 피가 많이 묻은 그를 끝내 성인으로까지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호교(護敎)의 황제’가 하는 전쟁이라면 어찌 반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4세기 초·중반 이후의 교부들은 점차 ‘비전론’(非戰論)에서 ‘의전론’(義戰論)으로 태도를 교묘하게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 선 이론가는 바로 그 유명한 아우구스티누스(354~430)였다. <고백론> <신국론> 등으로 교회에서 명성을 얻은 이 기독교적 저술가는, 대사회적 발언을 했을 때에는 “야만족과의 의로운 전쟁”을 “슬퍼해야 할 필요악”으로 간주했지만(<신국론> 4:15, 19:7) 로마 총독에게 보낸 사신에서는 “군인이라고 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라고 하여 수많은 생명을 빼앗은 이에게 ‘위안’을 제공하기도 했다(보니파스 총독에게의 189번째 사신). 물론 그에 따르면 ‘정통성이 있는 국가’가 ‘의로운 전쟁’을 수행할 때 교회에 대한 공격을 삼가고 비전투원의 생명을 존중하는 등 많은 ‘규칙’을 지켜야 했지만, 초기 교부들의 절대적 전쟁 반대와 비교한다면 이와 같은 주문은 대단히 약해 보인다.

 

그렇게 해서 초기 기독교적 평화주의의 시대가 가고, 기독교 국가가 벌이는 전쟁에 “의롭다”며 박수를 쳐주는 중세 교회가 태어났다. 중세 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아 무력의 ‘불가피성’에 별다른 단서를 달지 못하는 오늘날 한국의 교회는, 과연 예수의 가르침을 한참 벗어난 아우구스티누스의 ‘의전론’의 족쇄를 언젠가 벗어던질 수 있을까?

 

 

교회 내 소수자들이 지키는 반전주의

 

초기 교회가 왜 끝내 예수의 이상주의적 평화주의를 지키지 못하게 됐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계급적 성격이나 대사회적 온건성이 하나의 약점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데 반대하지 않고 종들에게 “주인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치는 종교인 집단은, 비록 초기에 황제가 벌이는 싸움과 거리를 둘 수 있었다 해도, 황제와의 관계가 좋아짐에 따라 그 싸움마저도 ‘원죄를 저지른 인간으로서 불가피한 필요악’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유혹을 언제까지 멀리할 수 있을까. 반국가적인 평등주의적 관점을 결여한 종교적 평화주의는 오랫동안 버티기가 쉽지 않다.

또 한편으로는 교회의 해석을 벗어나 예수의 가르침 자체로 돌아온 수많은 평화의 의인이나 ‘주류’ 교회에서 ‘이단’으로 낙인찍은 일부 평화주의적 소수 교파가 국가와 군대, 전쟁에 대해 훨씬 더 철저한 태도를 고수하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일종의 유토피아적 공산주의 사상을 출발점으로 한 평화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류 교회가 화석화·박제화해도, ‘진짜 예수’를 찾으려는 뜻있는 소수자들의 노력은 영원히 쉬지 않을 것이다.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참고 문헌

1. 〈The Ethics of War〉 Gregory Reichberg et al. (eds.), Oxford: Blackwell, 2006

2. 〈The Quest for Peace〉 James Johns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7

3. <한국의 개신교와 반공주의>강인철, 중심, 2006

4. <한국 기독교인의 정치·사회 의식 조사> 한신대학교 학술원 신학연구소 엮음, 한울아카데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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