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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 [불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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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책소개,도서요약
출처 본인작성


 간화선 조계종 수행의 길

 


조계종단 소속 스님으로 있으면서 정말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책이 이책이 아닐까.

어느 곳에 가든 항상 한자리에 꽂혀있고,

어느 곳에서든 한번은 법공양으로 들어오는책,

이름까지 귀에 박히도록 들어본 '간화선'

읽지 않으려하여도 어찌 않읽을 수 있으랴.

도처에서 소리없이 글자 한자 한자 또렷히 '간' '화' '선'  손길을 부른다.

이삼년을 그렇게 무심한듯 바라보다

결국 읽게되었다.


한국은 간화선풍이라 한다.

간화선이 최상승 선이요, 불교수행의 정수라 한다.

선방수좌들의 주장인지 진리인지 판단하고 싶다면, 간화선의 바다에 뛰어들어야 겠지만,


그러한 여건이 복덕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간화선 책한권으로 잠시나마 안타까움을 달랠수 있지 않을까?

저자 들도 빵빵하다.

선원수좌회 방장 스님들, 큰스님들, 오래 묵은 입승스님들 소리없이 존경받는 스님들께서 검수하신 책이다.


사과맛을 아무리 설명한들 사과의 참맛을 어찌 알겠냐 마는,

그래도 인연을 지어보고 싶은 마음에 책을 넘기며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아마도 '간화선'에 관련한 기본적인 사항들은 아래 사항들만 숙지한다면 부족한것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간화선.jpg




 

 

1) 화두의 결택

(1) 화두란?

  •  話頭 (이야기 말  접미사 모든 사유와 분별통로를 막는 선사들의 독특한 언어일상적인 생각으로 파악 될수 없고사유분별을 끊어버리는 힘을 가짐일상적인 격을 벗어난 格外語.
  •   話頭 (말 머리 말머리로써 말이 나오기 이전의 세계.
  • 화두는 공안(公案 공과 사를 초월또는 고칙(古則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공정한 법칙고덕들이 인정한 법)이라고도 한다.

 

 

(2) 화두의 생명

  • 화두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철저히 의심해야 한다. 화두는 어떻게 해도 풀리지 않는 미궁과 같고, 마음길이 끊어지고 말길이 끊어져 더듬고 만질수가 없다. 모색할 흔적과 자취조차 없다. 생각으로 모색할 길은 완전히 끊어진 화두를 참구하여야한다. 사유의 길을 끊고 몸과 마음을 의심의 열기로 가득 채워 마침내 그 의심의 둑이 툭 터지게 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화두이다. 이쪽도 않되고 저쪽도 않되고, 부정해서 안되고 긍정해서도 않되는 화두수행의 일관된 흐름을 배촉관(背觸觀)이라 한다. 때문에 의식과 생각으로 헤아리는 알음알이를 내어서는 안된다. (入此門來 莫存知解)

(3) 발심과 참구

  • 철저하게 발심해야 참의심을 일으키기 쉽고, 화두가 잘들려 공부에 힘이 붙으며 마음이 밖으로 헐떡거리지 않고 장벽처럼 된다. 이는 참나를 깨닫고자 하는 간절한 목마름이며, 생로병사의 온갖 괴로움을 여의고 영원히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겠다는 간절한 마음이다.
  • 진정한 발심이 선행되어야 화두참구가 가능해진다. 화두를 들때 화두에 몰입하여 또렷또렷 깨어있지 않는 것은 절박하고 근원적인 필요성이 안팎으로 사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속적 가치의 허망하고 부질없음을 자각하고 그것에 대한 사무친 무상감이 일어나고, 불완전한 삶에대한 본격적인 성찰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본래면목을 찾고자하는 간절한 열망이 중요하다.
  • 밖으로 치닫고 업을 따라다니기만 하는 노예같은 삶을 살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진정한 주인공은 눈앞에서 분명하고 확연하게 왔다갔다한다. 과연 이 주인공이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진정한 발심이 일었을때, 선지식이 화두를 제시하게 된다.(임제록 : 붉은 몸뚱아리 위에 어떤 것에도 걸리지 않는 참사람이 있다. 이사람이 항상 그대들 얼굴로 드나들고 있으니 보지 못한 사람은 봐라 봐)

 

(4) 수행자에게 맞는 화두

  • 화두자체는 좋고 나쁜것은 없고, 사람에 따라 더 잘들리는 화두가 있고 잘 안들리는 화두가 있을 뿐이다. 수행자의 타고난 됨됨이나 살아온 과정에 따라 간절한 의심을 촉발시킬수 있는 화두가 분명히 있으며 이를 살펴 수행자의 기틀에 맞는 화두를 잘 선택해줄수 있는 선지식을 우리는 명안종사(明眼宗師)라 한다.
  • 수행자는 스승이 내려준 화두에 대해 맞다 맞지않다 판단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분별에 떨어진 것이며, 의심하지 않고 그 자체를 시비삼는 것은 발심이 잘못되거나 스승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탓이다. 어떤 화두든 하나의 화두만 꿰뚫으면 공안의 깊고 얕음이나 어렵고 쉬움, 같고 다름이 관계없이 모두 타파된다. 화두에 진정한 의심이 나지않아 당장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것 같더라도 지극하고 간절하게 들어가면 眞疑가 돈발할때가 있게된다.

 

(5) 화두타기

  • 확고한 발심이 되었을때 선지식으로 간택받아 가르침을 참구해야한다. 발심이 안된 상태에서 조급하게 화두를 들게 되면 병통이 생긴다. 화두는 선지식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가르침 속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화두를 주거나 자기 스스로 화두를 든다면 화두공부에 확신을 갖기 어렵다. 진정한 선지식이 나의 온 생명을 걸수 있는 화두를 제시했을때 그 화두는 힘을 가진 活句로 작용한다. 화두 공부 점검도 화두를 제시한 선지식에게 받아야 간절한 발심을 유지하면서 화두에 깊이 들어갈 수 있다.
  • 역대 천하 선지식들은 한결같이 말씀하시길 스승없이 홀로 깨닫기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스승없이 홀로 깨닫는 자는 천마외도다때문에 수행자의 깨달음이 조작없고 거짓없게 하기 위해, 먼저 깨달은 선사에게 점검과 인가를 받는 가풍이 지켜져 왔다. 생명을 걸 만한 선지식을 찾아가 화두를 결택받아 공부를 지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마땅한 선지식을 찾을수 없을때 차선책으로 스스로 화두를 들수 있지만, 이러한 경우 발심이 되고 정견이 확립된 상태라야 한다. 그리고 화두공부하는 도중에라도 선지식을 찾기위한 노력은 계속 기울여야 한다.

 

 

2) 지도자

 

(1) 스승의 역할과 중요성

  • 선수행에서 스승의 역학은 한 수행자의 생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스승은 제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며 제자를 바르게 이끌다가 근기가 익었을때 깨달은 바를 시험하고 안목을 키우는 법거량을 하여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다. 발심이 약해지려 하면 문답을 통해 다시 발심을 불러일으킨다. 제자가 공부를 제대로 하고, 발심을 지속시켜 정법을 갈 수 있도록 점검하고 마지막 인가까지 해주는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할은 한다. 역대 선사들은 스승께서 준 화두를 참구하다가 몸과 마음이 의심으로 한 덩어리가 될 때에 어떤 계기를 만나 깨닫게 하는데, 스승은 수행자로 하여금 간절한 의심을 일으킨다.
  • 선지식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계율에 의지하여 자기 마음을 충분히 조복시킨 자. 선정으로 산란한 마음을 다스리고 승화시킨 자, 지혜로써 아상을 없앤 수행자여야 하며, 신통한 세계를 이야기 하는 자와 몸에 의지하는 수행하는 자, 무에 빠져있거나 난행고행하는 스승은 주의해야 한다.

 

(2) 선지식과의 만남

  • 좋은 스승을 善知識이라 하며, 선지식은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과 같고 낯선 길을 끌어주는 길잡이와 같다. 수행하다 순경계와 역경계를 맞게 될때 눈 밝은 선지식이 필요하다. 정견을 갖춘 이라면 좋은 스승이 누구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으며, 좋은 스승을 만나면 믿고 의지해야 한다. 스승에 대한 믿음이 클수록 수행자가 얻는 수행상의 이익도 크기 때문이다.
  • 그러나 수행자가 자신이 따르는 스승이 좋은 선지식이 아니라는 확신이 서면 그 스승을 떠나 부처님 법에 따라 다시 스승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좋은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혼자서라도 구도심을 불태워가면서 좋은 스승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력을 세워야 한다. 옛 선사께서 한결같이 이르시길, 누가 선지식이고 누가 도인인지 알수 없어 선지식을 만나고 싶다는 원을 간절히 세웠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선지식을 만날 수 있었다는 고백을 한결같이 하고 있다. 또한 가슴에 부처님 말씀을 항상 새기면서 부처님처럼 걸어가고자 하면, 비록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해도 수행자로써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다. 좋은 스승을 발견하기 힘들때는 차선책으로 앞세대의 스승에 의지하여 어록과 육성 법문을 자주 들어 발심과 분심을 촉발시킬 수 있다.

 

(3) 마음자세

  • 선지식을 찾아가는 수행자가 갖추어야할 중요한 덕목은 신심과 발심 그리고 깨달음을 위해 몸과 마음을 놓아버리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이다. 수행자는 구도를 향한 간절한 염원으로 목숨을 내놓는 각오로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 이때 몇가지 원칙을 참조한다. 첫째, 법맥(法脈)이 분명히 전해져 선대 선지식이 인가한 분을 따른다. 둘째, 제방(諸方)의 구참(久參)수행자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셋째, 모시고자 하는 선지식의 삶과 수행의 일치여부를 살핀다. 다만 능엄경에서 첫째, 자신을 부처님과 동일시 하는자. 둘째, 외도 수행으로 신통력을 보이는 자를 절대 의지해서 안되는 스승으로 말하고 있다.
  • 수행자에게 스승은 제자의 온 생명을 이끌어가는 분으로 제자가 목숨바쳐 받들어야할 귀의 대상이며, 진정으로 우리의 아상을 비울수 있는 대상이다. 간혹 스승의 결점만 보고 여기에 실망하거나 비난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달이 밝으면 밤하늘 별이 보이지 않듯 믿음이 깊으면 스승의 결점은 절로 사라진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거듭 공평무사하게 비추며 끝없이 下心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스승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으로 공부의 반을 이룬것과 같다. 이 공부는 믿는 만큼 진전이 있기 때문이다. 묵묵히 솥을 아홉 번 고쳐 걸었던 구정선사와 같은 참 믿음이 필요하다.
  • 수행자가 스승에게 법을 구하는 질문할 때에는 격식에 맞추고, 때를 맞추며, 진정한 자기 견해를 일러야한다. 조실스님과 방장스님이 없을때는 초보자의 경우 구참스님의 지도를 받을 수도 있다.

 

3) 화두의 참구

(1) 참구방법

  •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친다. 이는 의심이 투철하여 은산철벽처럼 꽉 막혀, 와도 오는 것을 모르고 가도 가는 줄 모르며 오직 의심으로만 꽉 뭉쳐진 상태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의정을 일으켜 화두를 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전제(전체 내용)와 단제(무 또는 이뭣고)를 섞어 새기다가 조금 익숙해지면 단제속에 전제가 다 들어가게 되므로 저절로 단제가 되어버린다.

  • 이뭣고 화두를 예를 들면
    • “밥먹고 옷입고 말하고 보고 듣는 이놈, 언제 어디서나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 이놈이 무엇인고?
    •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한물건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가?
    • “부모 미생전 나의 본래면목이 무엇인고?
    • “이송장을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 여러 가지중 하나만 택해 의심을 지어간다. 전제를 통해 화두를 들때는 한전제만 택해 간절히 들어야 한다.
    • 단제만 들면서 이뭣고? 할때는 ‘이’를 약간 길게 하면서 마음속으로 ‘이-’하는 이놈이 뭣꼬 하면서 의심을 일으키든지,
    • 아니면 조금 막연하지만 ‘이--?’하면서 의심을 지어가는 것도 요령이다.
    • 의심을 강조하는 이유는 의심이 몰록 터져 나와야 망념이 달라붙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생각 한생각 단속하여 화두를 들며 역력하게 깨어있게 되면 망념이 정지되는 순간이 거듭거듭 자주 오게된다. 이런 상태가 장벽처럼 굳건해져 어떤 경우라도 이뭣고 화두가 끊기지 않아 오고간다는 분별이 단절되는 힘을 얻게 되면 이것을 일걸어 의심덩어리, 곧 의단(疑團)이된다. 이 의단이 홀로 밝게 드러나게 되면 그만둘래야 그만둘수 없는 한 덩어리 공부가 되어 이것을 타파하면 확철대오하게 되는 것이다.
    • 그러나 자연스럽게 화두가 현전하는 시기에도 조금만 방심하면 또다시 망념에 휩싸이니, 철두철미한 자기와 투쟁을 열과성을 다해 밀도있게 몰아붙여가야 한다. 참으로 목숨바쳐 한생각 한생각 단속하는 데에 공부의 어려움이 있으니, 자신이 본래 부처임을 철저히 믿고 앞뒤 돌아보지 않고, 과거 선지식도 다 나와 같은 상태에서 출발했으니 나도 열심히만 하면 틀림없이 확철대오할수 있다는 철저한 믿음으로 정진해야 한다.
    • 화두 참구법에 대해 태고보우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몸과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느끼지도 못하고 마음의 눈으로 화두를 한곳에 거두어들이고 단지 이와같이 또렷또렷하면서도 분명히 드러나 있고, 분명히 드러나 있으면서도 또렷또렷하게 세밀하고 빈틈없이 참구하라.
 

(2) 대신심 대분심 대의심

  • 만약 진실로 참선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세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 대신심이니, 이는 수미산을 의지한 것과 같이 흔들림이 없음이다. 둘째, 대분심이니, 마치 부모죽인 원수 만나 당장 한칼에 두동강을 내려는 것과 같다. 셋째 대의정이니, 어두운 곳에서 한가지 중요한 일을 하고 곧 드러내고자 하나 드러나지 않은때와 같이 하는 것이다.온종일 이 세가지 요소를 갖출수 있다면 반드시 하루가 다하기 전에 공을 이루는 것이 독속에 있는 자라가 달아날까 두려워하지 않겠지만, 만일 이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마치 다리부러진 솥이 마침내 못쓰는 그릇이 되는 것과 같다.

 

大信心

  • 나옹화상 :일대사를 반드시 깨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큰 믿음을 일으키고 견고한 뜻을 세워 이전에 배웟거나 이해한 부처와 법에 대한 견해를 한바탕 빗자루질로 바다속에 쓸어 없애고 더 이상 들먹거리지 말라.
  • 자기본성은 일찍이 때묻지 않고 맑고 밝은 모습으로 본래부터 원만구족한 진리의 주인공이라는 확신이 수행의 기본자세이다. 마음이 부처라는 확신으로 참선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정진하는 것이 대신심이다. 자신은 진리의 주체이므로 끝없는 지혜와 용기와 덕성이 충만해 있으며, 어떤 고난에서도 희망을 불태우는 불굴의 용기를 뿜어낼수 있다. 그리고 언제나 중생과 세계를 나와 더불어 하나라 생각하는 큰믿음을 내어 수미산처럼 움직일줄 모르고 오직 불조의 정진력을 본받아 나아가야한다. 하지만 진정한 대신심은 견성을 해야 대신심이라 할 수 있다.

 

大憤心

  •  오늘도 헛되이 깨침없이 보내는 것을 아타까워 하면서 생사를 뛰어넘으려는 강력한 마음이며, 바른 선지식 만나고도 허송세월한 것을 분하게 여겨 불퇴전의 마음으로 정진하는 것이 대분심이다. 과거 조사들에 비해 나는 무엇이 부족하길래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는가? 그러면서 스스로 자만하고 어리석기 끝이 없어 부끄러움도 모르니 참으로 딱하고 슬픈 노릇아닌가? 영원한 생명이 나자신에게 있어 생생하게 고동치는데도 나는 이를 보지 못하고 미혹하여 목전의 이익과 달콤한 경계에 탐착하여 헐떡거리며 살고 있는가? 나의 이익을 위해 나와 남을 가르고 시비분별을 일삼으며 상처를 주고받으며 본래면목을 잊고 착각속에서 어리석게 살아온것이다. 이제 다행이 선법을 만났으니, 어두웠던 과거생과 현재 무지를 끊는 취모검이며, 고통의 늪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라는 자책감으로 치밀어 오르는 대분심이 울컥울컥 솟아나야 한다. 몸이 하자는 대로 욕망의 굴레를 따라가지 않고, 확철대오 하겠다는 마음이 끊임없이 솟구쳐 올라야 한다. 수행자는 이같은 분심으로 억겁의 무명을 꿰뚫고 온간 분별의 함정을 단번에 벗어나 대자유의 평원으로 가게된다.

 

大疑心

  • 화두하나만 생각하고, 화두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망상이 일어나도 그대로 내버려 두고 화두만 바르게 참구해 나가는 것이 대의정이며, 이는 화두의 근본 생명이다. 크게 의심해야 크게 깨달으며, 의심하는 나가 사라진 자리에서 폭발하는 근원적인 의심이 大疑이다. 이 대의가 기연을 만나 마침내 타파될때, 수행자는 한바탕 크게 죽어 하늘과 땅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 화두는 생각의 길이 끊어진 본래면목이기에 분별심으로는 알수 없고, 어떠한 방법으로도 가히 잡아볼 수 없고 형용할수 없으니, 수행자가 전심전력으로 정면승부할 수밖에 없다. 불조께서 내게 있는 본래물건을 눈앞에서 밝게 보여주고 있는데 나는 어찌하여 보지 못한다는 말인가? 왜 어째서 모르는가? 이렇게 큰 의심이 솟아나면 온몸 온 생각이 화두덩어리로 바뀌고 화두로 눕고 화두로 잠들게 되면 필경 이것이 무슨 도리냐?는 일념이 끊이지 않게 되어 맑고 고요하고 또렷한 의정이 드러난다. , 화두에 간절히 의심을 지어가다 보면 어느순간 자연스레 의심이 끊어지지 않는 이것을 의정이라 하며, 의식적으로 애써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감정처럼 지속된다. 의정없는 공부란 있을수 없다.
  • 의정이 계속되면 한 덩어리가 되어 의단만 홀로 드러나게 된다.(疑團獨露) 이렇게 되면 화두와 내가 하나가 되어 서로 나누어지지 않고 한몸을 이룬다. 의심덩어리가 불덩어리가 되어 다른것이 끼어들 틈이 없는 상태가 된다.(打成一片) 이렇게 되면 무심코 헤아리는 습관이나 계산하고 비교하는 일을 떠나 천차만별의 사물과 융합하여 하나를 이루게 된다. 주객, 피차, 재고 따지는 모든 차별상을 떠나 단순하고 순수해진다. 나아가 화두와 하나가 되었기에 화두를 들고서도 밥먹고 일하고 이야기 나눌수 있게된다.
  • 또 화두가 잘들릴때, 환희심을 내면, 그 환희심이 마음속으로 파고들어와 화두를 놓치게 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또한 의정이 순일하지 않고 뚝 끊어지게 되면 아무런 의식도 없는 無記에 떨어지니 더욱 경계해야 한다.
  • 중요한 것은 화두가 타성일편된 상태에서 은산철벽을 투과하여 확철대오 해야한다. 의정이 순숙해지면 은산철벽처럼 사유의 모든 출로가 차단된다. 이와 같은 은산철벽을 뚫고 나가야만 비로소 밝은 소식이 온다.

 

(3) 參究 vs 觀法

  • 화두를 참구하면 의정을 일으키고, 화두를 관하면 정신을 집중한다는 의미이다. 화두를 관하게 되면 화두와 내가 나뉘어 화두를 대상화하게 되는데, 이는 화두를 따라가며 관찰하는 것이며, 상대적인 입장을 떠날 수 없다. 물론 관법을 통해 들뜬 마음을 제거하여 명료한 경지에 들수 있지만, 철저한 화두삼매에 들수는 없다. 화두 참구는 주관객관 나와 화두 이분법적 경계를 뛰어넘어 혼연일체가 되는 것으로 관법과는 확연히 다르다.
  • 육조 혜능대사는 좌선시 看心看淨은 잘못이라고 했다. 요컨대 돈오견성에 있어 마음을 본다든지 깨끗함을 보는 것조차 장애된다는 것이다. 깨끗한 마음이라는 망상을 다시 일으킴을 경계한다. 마치 눈동자가 눈동자를 볼수 없는 이치와 같아서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찾으면 마음을 찾을 수 없을뿐더러, 그 찾는 마음자체가 망상이다. 간화선 수행에서 화두를 대상화 하여 관하면 안되거, 대상과 하나가 될수 있도록 철저한 의심을 통해 화두삼매에 들고 은산철벽을 투과해서 확철대오 해야 한다.

 

(4) 화두참구가 안될때

  • 정봉무무스님은 1. 게으름 2. 대상을 잊어버림 3. 혼침과 도거 (계율을 지니고, 세속심, 탐욕을 경계하면 원인을 줄여갈수 있다.) 4. 혼침과 도거에 대한 대치법을 쓰지 않는것 (혼침이 일어날 때 불법에 환희심을 일으키는 생각을 일으키고 부처님 광명을 사유한다. 도거가 왔을때는 죽음과 무상에 대해 사유한다. 그래도 잘 않될때는 경행하거나 찬물로 세수한다.) 5. 혼침과 도거가 없을때 정지견을 내지 않는 것, 이 다섯가지를 일념삼매가 되지 않는 원인으로 꼽는다.
  • 화두의 핵심인 의심이 잘 나지 않을때는 거듭거듭 전제를 들추며 끊임없이 화두를 지어갈 수밖에 다른 묘책이 없다. 화두를 참구하는 간절하고 지극한 마음은 자신의 온 생명을 걸때 생긴다. 간절하게 화두를 들다보면 어느날 문득 진정한 의정이 일어나 화두가 역력히 현전하게 되고 마음은 이내 고요해지고 번뇌망상 또한 저절로 사라진다.
  • 화두의 생명은 의정이 일어나는데 있다. 안되는 화두라도 끈질김과 간절함으로 들어가면 어느날 문득 진의가 돈발한다. 또한 화두 의심이 지속되지 않아 화두가 쉽게 안들리는 경우는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이 너무 경직되지 않도록 여유를 갖고 참구해야 한다. 화두가 안들리는 것도 공부의 과정으로 여기고 다른 방편을 쓰지 말고 꾸준히 놓치지만 말고 실낱만큼의 의심이라도 이어지게끔 마음의 긴장을 조절해 가는 것이 요령이다. 그렇게 애쓰다 보면 줄기찬 의정이 일어날 때가 있을 것이다. 다른 묘책이 없다. 망상이 점차 없어지면 의정은 저절로 일어나게 된다.

 

(5) 死句活句

  • 이렇게해도 안되고 저렇게 해도 안되며, 그렇다고 침묵으로 통할수도 없는 마음의 길이 끊어진 이 활구는 철학적 모색이 불가능하다. 활구는 지금 이 자리에서 펄펄 살아 움직이는 본래면목의 언어적 존재방식이다. 반면 사구는 말의 그림자가 담겨있고 분별의 기미가 있다. 사유의 성찰이 조금이라도 스미면 사구로 전락한다. 활구를 참구하여 바로 깨치면 깨달음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인 경절문(徑截門)으로 통한다. 결국 의심없는 화두나 의심이 제대로 걸리지 않는 화두는 사구일 수 밖에 없다.

 

 

4) 병통의 극복

 

(1) 10 병통

    1. 있다 없다로 이해하지 말라.
    2. 이치로 이해하지 말라. 이치로 모색하는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어떤 도리나 개념의 맛도 사라진 상태가 화두의 본래자리이다.
    3. 분별의식으로 헤아리거나 알아맞히려 하지 말라.
    4. 눈썹을 움직이거나 눈을 깜박거리는 것(어떤 동작이나 미세한 마음 움직임)에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5. 말과 글의 틀로 살림살이를 짓지 말라
    6.  아무일 없는 속에 빠져있지 마라. 고요한 곳에서 화두를 들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있으면 이것도 병통이다.
    7. 화두를 들어 일으키는 곳을 향하여 알려고 말라.
    8. 문자를 끌어와 증거삼지 말라.
    9. 유무를 초월한 참된 무가 있다는 생각을 짓지말라.
    10. 마음을 가지고 깨달음을 기다리지 말라. 이를 待悟禪이라 한는데 이는 본디 부처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깨닫고자 하는 그 마음이 고통을 준다고 하셨다. 대혜선사도 단지 깨달아 들어가고자 하는 그것도 도를 장애하는 알음알이라고 하였다.


 

(2) 속효심과 분발심

  • 빨리 깨쳐야 겠다는 욕심이 앞선 마음을 速效心이라 하는데, 이는 상기병을 유발하기도 하고 성급한 마음만 키워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다. 이런 속효심이 생길수록 마음을 담담하게 가져 화두만 분명하고 간절하게 챙겨야 한다. 속효심을 내는 근본원인은 바른 발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깨침으로써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속효심으로는 결코 깨달을 수 없다. 대혜선사는 잠깐이라도 속효심을 내면 영원히 깨달을 수 없다고 경계하셨다.
  • 화두가 안되는 사람이나 화두에 진척이 없는 사람은 憤發心을 내야한다. 공부가 안될때 분심도 내고, 스스로 부끄러워도 하고, 억울한 마음도 내야한다. 스스로가 부처인데 나는 왜 그 자리를 찾지 못할까? 불조사들이 찾은 그 자리를 왜 나는 못찾는가 하고 분한 마음을 절실하게 품어야 하는 것이다.
  • 정견과 진정한 원력을 세워 공부하는 것이 분발심이고, 빨리 깨닫고자 하는 욕심이 앞서면 속효심이다. 혼미함속에 방황하는 스스로에 대해 분한 마음을 일으켜 간절하게 화두에 사무쳐 들어가는 것이 분발심이기에 마음이 확고부동하여 화두를 드는데 빈틈이 없다. 반면 발심이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급한마음으로 서둘러 공부를 지어가면 병을 일으켜 공부에 장애를 가져오니 결코 속효심을 내서는 안된다.

(3) 上氣 다스리는 법

  • 기운과 열기가 머리로 오르는 것을 상기라 하는데 이는 발심이 안된 상태에서 화두를 급히 든다든가, 과격하게 억지로 든다든가, 밀어붙이듣이 육단심(肉團心)으로 들면 상기가 일어나 머리가 빠개질 듯 아프게 된다. 이는 화두에 진정한 의심을 내지 않고 억지로 화두를 들거나 성급한 마음 때문이다. 상기병은 현대의학으로 고칠수 없는 치명적인 병이다. 만약 화두를 하다 상기가 되어 몸이 화끈화끈해지면 바깥으로 나가 바람을 쐬면서 마음을 쉬고 가다듬어 살며시 화두를 들어야 한다. 그래도 상기가 가시지 않으면, 새벽시간에 호흡법을 통하여 상기를 내리는 것도 수승화강에 도움이 된다. 이때 호흡법 같은 기술적인 방법으로 상기를 다스리면 곁가지로 빠질 우려가 있다.
  • 상기병에 걸리게 되면 다시 바른 발심을 통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의심이 일어나도록 발원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다시 화두가 현전하게 되는데, 화두를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오래 참구하다 보면 진정한 定力이 자연스레 현전하고 열기가 사라진다. 그러나 상기병이 악화되어 화두를 들수 없는 경우에는 절 수행으로 상기병을 고칠수 있다. 증상이 아주 심할때는 선지식이나 구참수행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상기병에 걸리지 않도록 진정한 발심으로 자연스럽게 화두 공부를 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4) 혼침과 도거

  • 혼침과 도거에 시달리는 것은 나태한 마음과 망상 때문이며, 정신이 오롯이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생사라한다. 이 생사에 부딪혀 힘을 다해 화두를 들라.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면 일어남 사라짐이 없어질 것이고, 일어남 사라짐이 없어진 것을 고요라 한다. 고요함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無記라 하고, 고요함 가운데서도 화두가 살아있는 것을 신령한 지혜라고 한다. 이 텅빈 고요와 신령한 지혜가 허물어지거나 뒤섞이게 하지 말 것이니 이렇게 공부하면 멀지 않아 깨달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화두와 한 덩어리가 되면 기대고 의지할 것이 없어지고 마음이 갈 곳도 없어질 것이다. -태고화상어록-
  • 마음이 성성하지 못하여 몽롱한 혼침이 심하면 수마(睡魔)에 빠지게 된다. 또한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고 산란하게 들떠 있는 상태를 도거라 한다. 마음이 오락가락하여 혼란스러운 상태로 번뇌망상 때문에 안정을 찾지 못하는 산란심이 그 구체적인 모습이다.
  • 고요하기만 하고 깨어있지 않으면 혼침에 잠겨있는 것이요 깨어있기만 하고 고요하지 않으면 생각에 얽혀있는 것이다. 깨어있음도 고요함도 아니라면 그것은 다만 생각에 얽혀 있을 뿐만 아니라 혼침에도 빠져있는 것이다.
  • 혼침과 도거에 빠지는 것은 화두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두를 빈틈없이 참구하면 혼침과 도거가 찾아올 틈이 없다. 혼침은 깨어있음으로 도거는 고요한 마음으로 다스려야 한다. 진정한 의정으로 화두를 들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초롱초롱해져 두가지 병통이 저절로 사라진다. 졸음이나 망상이 들어올때 그것이 들어오는 자리에다 정성을 다해 화두를 챙길 뿐 졸음이나 망상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지 말아야 한다. 그 마음이 오히려 졸음과 망상을 키워나가기 때문이다.
  • 혼침과 도거 모두 우리 마음자리에서 생겼으며, 이들 또한 불성의 그림자임을 알아 화두를 통해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 졸음이 많은 초심자는 음식 종류와 양을 조절하거나 자세를 바르게 하거나 잠자는 시간을 조절하여 이를 극복할 수도 있다. 수행하는 대중끼리 서로 경책해주어야 하며, 졸음이 올때 자리에 일어나 잠시 좌복위에 서서 졸음을 물리치거나, 그래도 안되면 밖으로 나가 몇걸음 천천히 왔다갔다 하면서 졸음을 깬 뒤 맑은 정신으로 자리로 돌아가 다시 정진해야 한다.

 

(5) 색욕과 수마

  • 색욕과 수마는 목숨이 붙어있는 한 없애기 어려운 본능이다. 성욕없는 중생없고 잠자지 않는 중생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는 이성과 잠에 대한 욕망이 해탈의 걸림돌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색욕과 수마는 이생에 반드시 성불하겠다는 굳건한 원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

·   수마 다스리기

    • 수마가 올때는 마땅이 이것이 무슨 경계인지 알아차려야 한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깨닫자마자 정신을 바짝 차려 화두를 한두번 소리내어 챙기도록 하라. 졸음이 물러나거든 하던대로 다시 자리에 앉고 그래도 물러나지 않거든 바로 땅에 내려와 수십걸음 걸으라. 그리하여 눈이 맑아지고 정신이 깨이거든 다시 자리에 앉아 천만번 화두를 돌이켜 보고 끊임없이 채찍질 하라 -몽산화상 법어-

·      수마는 망념에서 온다. 옛조사는 눈감고 참선하는 자를 黑山鬼窟이라 해서 캄캄한 산속의 귀신굴에 앉아 있는것과 같다고 했다. 눈 감으면 마음이 고요하고 정신이 집중되는 듯 하지만 저도 모르게 혼침에 떨어지기 쉽다. 특히 오후나 새벽좌선시 눈 감는 것은 잠을 청하는 것과 같다. 특히 수마가 걷잡을 수 없이 밀어닥쳐오거든 어금니를 굳게 악물고 두눈을 또렷이 뜨며 심호흡을 깊고 느리게 반복해보는 것도 좋다. 이렇게 하면 대개 졸음은 사라진다. 앉아서 졸음이 쫒아지지 않거든 일어서서 온몸에 힘을 주고 나서 앞서와 같이 호흡하는 것도 좋다. 이렇게 하면 사라지지 않는 잠은 없을 것이다.

·      음식을 알맞게 섭취해야 한다. 너무 많이 먹으면 음식을 소화시키느라 신체기관이 쉽게 피로를 느껴 금방 졸음이 밀려온다. 일즙(一汁) 一菜가 선가의 식단이라 했다. 될수있으면 적게 먹고 소욕지족(少欲知足)해야 한다. 식사를 고르게 하지 않으면 필경 마음이 고르지 아니하여 공부가 한결같지 못하게 된다. 그러기에 수행도지경에서는 수행하는 사람은 몸을 편안하게 하고 체중을 무겁게 해서는 안된다. 음식을 적당히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졸음이 적으며, 앉고 일어나고 걸을때 숨이 가쁘지 않고, 대변 소변을 적게 보고 자신이 닦는 수행에 있어서도 음욕, 성냄, 어리석음이 엷어진다 하셨다.

·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야한다. 저녁 참선을 오래하고 늦게 일어나는 것은 좋지않다. 저녁 공부시간을 줄이더라도 아침공부시간을 지켜야 하며, 혹 피곤하다고 해서 저녁공부를 건너뛰는 것도 안된다. 피곤한 밤의 삼십분 참선은 다음날 몸과 마음을 가볍게하고 한두시간의 수면을 절약시켜 준다.

·     허리를 곧게 펴고 바로 코앞에 천길 절벽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위에 앉은 듯 좌선한다. 실제로 수마극복을 위해 절벽위에서 좌선하는 수행자도 있다.

·     서로 호되게 경책하며 경책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서로 아끼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덧붙여 용맹정진과 장좌불와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용맹정진과 장좌불와 중에 조는 것은 앉아서 잠자는 것이지 좌선이 아니다.

 

·         색욕 다스리기

    • 음란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짓는 것이요, 살생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귀막고 소리지르는 것이요, 도둑질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이 물 채우는 것이다. - 선가귀감
    • 색욕을 멀리하지 않고서 참선수행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색욕에 기울면 마음이 혼란스러워 안정되지 못하고 메울수 없는 갈애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럼에도 색욕을 끊기가 쉽지 않아서, 많은 경전에서 재물과 색욕을 경계하고 있으며 재물보다도 색욕이 더 큰 병이 됨을 42장경에서는 이렇게 경계한다. 모든 애욕가운데 색욕만한 것이 없다. 색욕은 그 크기가 없다. 그것이 하나뿐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그와 같은 것이 둘만 있었더라도 이 천하 사람으로 능히 도를 이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 색욕을 멀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무상감(無常感)을 절실히 관하는 방법을 권한다. 색욕이 허망하여, 색욕의 대상은 四大로 흩어지고 먼지로 변하여 사라지는 모습을 떠올려 보면 색욕이 허망한 것임을 분명히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나 화두참선인은 화두로써 이를 극복해야한다. 색욕이 일어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화두를 간절히 들게 되면 색욕은 자취없이 사라진다.

 

 

5) 화두참구와 삼매

 

1) 화두단계

    1. 송화두 : 소리를 쫓아서 하는 것.
    2. 염화두 : 마음속에 자리가 잡혀 일상생활에서 문득 문득 화두가 올라오는 경지
    3. 做作話頭 : 화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일평생 화두밖에 없다는 목적의식이 확실히 서있지만 화두를 잘 놓치기도 한다.
    4. 眞疑頓發 : 참된의심이 몰록 일어나는 경계. 생활속에서 화두가 성성적적하고, 말하면서도 화두가 남아있으며, 잠에서 깨어나자 마자 첫생각으로 화두가 들어온다.
    5. 좌선일여 : 좌선하면 망상이 붙지 못하고, 일념으로 화두가 성성적적하고, 움직일때는 번뇌가 들어오지만 좌선할때만은 또렷하게 화념으로 들리는 경지
    6. 동정일여 : 앉으나 서나 잠드는 순간 빼고는 화두가 너무 잘 되어 뭔가 떼려고 하도 떨어지지 않는 경계
    7. 몽중일여 : 꿈속에서도 화두자리는 잠드는 바 없이 일여하게 들어가는 경지
    8. 寤寐一如, 숙면일여 : 깊이 잠든 상태에서도 화두가 끊이지 않는 경지
    9. 생사일여 : 죽고 사는 것에 자재한 경지.
    10. 입태일여 : 태중에 들어갈때도 화두가 들리는 경지
    11. 주태일여 :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동안에도 화두가 이어지는 경지
    12. 출태일여 : 울면서 세상에 나올때에도 화두가 이어지는 경지
    13. 영겁일여 : 화두타파, 확철대오, 견성성불의 단계.


(2) 정중동

  • 초심자는 고요하고 정갈한 곳에서 모든 잡념을 버리고 간절하게 의심해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해서 화두를 놓으려 해도 놓을 수 없고 버리려 해도 버릴수 없게 되었을 때 고요한 곳에서 마음이 한결같은 경지에 이를수 있게 되는데, 이를 靜中工夫라한다. 이렇게 되면 시끄러운 곳으로 나아가 공부 힘을 더욱 키워야 한다. 이것을 動中工夫라 한다. 화두가 고요한 곳에서는 빈틈없이 잘 들리다가 시끄러운 곳에서 끊어지거나 희미하게 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시끄러운 곳에 가서 바짝 애를 써서 지극하게 밀고 가면 고요한 곳이나 시끄러운 곳 관계없이 動靜에 끊어지지 않고 한결같은 공부경지를 이룬다. 이를 動靜一如라 한다. 정중공부를 하다가 힘이 생기면 바로 동중공부로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 움직일때나 고요할 때나 화두가 끊어지지 않을때를 비로소 동중일여라 한다. 또한 발심이 항상 유지되면 동과 정이 서로 나누어 지지 않는다.
  • 만약 시끄러운 곳에서 힘을 얻지 못했다면, 이는 고요한 곳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고 대혜선사는 전한다. 또한 화두가 좀 익숙해지면 시끄러울때가 오히려 공부에 힘을 얻을수 있는 계기가 된다. 진실로 일상생활 속에서 공부가 되고 이때 힘을 얻어야 참다운 수행자라 할수 있다. 나아가 고요할때나 시끄러울때나 어디에도 치우침 없이 공부가 순일하게 이어질때 진정한 공부인이다.

 

(3) 생활선

  •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행주좌와 일상에서 화두를 한결같이 들어야 한다. 萬行 또한 와 떨어져 있는 생활이 아니기에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화두가 한결같이 들려야 한다. 화두야 말로 생사의심을 타파하는 칼이며, 이 칼자루는 당신의 손안에 있다. 다른사람으로 하여금 손쓰게 할래야 할수도 없으니, 스스로 손을 써야만 비로소 타파할 수 있다. 만약 목숨을 내걸고 참구한다면 비로소 스스로 타파할 것이요, 목숨을 내걸지 못한다면 다시 다만 의심을 깨뜨리지 못한 곳에서 오직 한결같이 참구해 나가도록 해야한다. 그러다 홀연히 스스로 기꺼이 목숨 버리기를 한번하게 되면 바로 깨닫게 된다고 대혜선사가 강조했다.
  • 화두는 일상삶속에서 지속적으로 들수 있으며, 간단없이 들어야 화두와 혼연일체가 된다. 때문에 화두와 생활이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조용할 때나 시끄러울 때나 언제나 화두를 들어야 하고, 이렇게 들다보면 설은것은 익어지고 익은것은 설어진다. 화두를 처음 들때는 설지만 그 화두 드는게 익어가면 업력이 설어진다는 것이다. 세속법은 생소하지만, 불법에는 익숙해지는 것이며 끝내 이 둘의 경계마저 없어지는 중도경지에 들게된다. 이같은 선정의 힘을 마음 중심으로 잡아 경계에 흔들리지 않으면 부딪치는 일마다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
  • 생활하다 번거로운 일로 사량분별할 때도 그것을 애써 물리치려 하지말고 사량분별이 일어나는 곳에서 가볍게 화두를 드십시오. 그러면 무한한 힘을 더는 동시에 무한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서장 대혜선사 -
  • 이렇게 화두 들다가 한고비 넘게되면 마음이 청량하기 그지 없게 된다. 몽산선사는 발 밑이 땅에 닿지 않은 듯, 공중에 뜬 듯, 홀연이 눈앞의 검은 구름이 활짝 열리는 듯, 금방 목욕탕에서 나온듯 몸과 마음이 맑고 쾌활해진다고 했다. 또한 의심 덩어리가 더욱 뚜렷하여 힘들이지 않아도 끊임없이 화두가 현전한다고 자신의 경험을 말했다. 이렇게 되면 어떤 바깥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고 청정하기가 은쟁반에 하얀 눈을 담은 듯하고 청명한 가을 공기와 같은 경지가 전개된다.고 했다.
  • 특히 납자에게 있어 만행은 자신을 점검하는 자기시험 기간이므로, 고인들은 해제가 곧 결제라 말했듯, 만행중이라도 절대 화두공부를 놓아서는 안된다. 오조법연선사는 무릇 행각은 도를 품고 해야지 주는 밥이나 축내면서 한가하게 세월 보내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생사라는 두글자를 이마에 못질해 놓고 온 종일 체면치레 제쳐놓고 이것을 찾아 분명히 해야한다. 만약 패거리를 따르고 때를 쫓아서 헛되이 세월을 보낸다면 죽을 때에 염라대왕이 밥값을 청구할 것이다. 그때 내가 그대를 위해서 말하여 주지 않았다고 하지 말라.고 했다.

 

(4) 역경계와 순경계

  • 공부과정에서 누구나 역경계와 순경계를 끊임없이 경험하게 되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냐가 중요하다. 역경계란 자신뜻을 거스르는 상황이 전개되어 참기 어려운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그래서 힘들고 고통스럽다. 순경계는 자신의 뜻에 맞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으로 자신의 뜻에 맞는지라 즐거움과 편안함을 주는 경계다.
  • 역순경계에 부딪치는 순간 수행자들은 보통 눈앞의 경계에 마음을 빼앗겨 하던 공부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역경계에 부딪치면 마음을 굳게 먹고 돌파하면 되지만 순경계에서는 대체로 거기에 마음이 매몰되고 만다. 바라던 일이 성취하면 그 기쁨에 도취되어 자신을 잃어버리고 상황에 휩쓸리기 때문이다.
  • 역경계든 순경계든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그때그때 인연에 따라 대응하면 자연히 이 도리에 들어 맞을 것이다. 역경계는 참을 하나로 자중하면 지나가 버리지만, 순경계는 도피할 곳이 없다. 마치 자석과 쇠붙이가 서로 만나면 저도 모르게 합쳐지듯, 지혜가 없이는 부지불식간에 끌려가기 쉽다. 이때에는 다만 망상으로 전도된 마음과 사량분별심과 살기좋아하고 죽기싫어하는 마음과 분별로 이해하는 마음과 고요함을 기뻐하고 시끄러움을 꺼려하는 마음을 한꺼번에 눌러버리고, 이렇게 눌러버린 경계에서 화두를 살펴라 -대혜선사-
  • 역경계든 순경계든 그러한 경계가 닥쳐올때는 모든 세간일이 연기된 현상으로 실체가 없는 줄을 알아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러한 경계들이 저절로 가벼워진다. 역순경계는 모두 이미 준비되어 있는 마음속의 경계로 역 순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밖의 경계에 투영된 자기 업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역순경계를 더없이 훌륭한 화두공부의 장으로 활용하여, 그순간 기분에 좌우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면밀하고 힘있게 파고들어야 한다.
  • 그러니 하루가 지독히 힘들고 어렵고 캄캄하더라도 거기에 휩쓸리지 말고 오직 화두 하나만 부여잡고 나가면되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거기에 너무 들떠있지 말아야한다. 거기에 집착하는 순간 좋지 않은 경계가 달려온다. 역경계와 순경계를 만나면 경계가 찾아왔구나하고 바로 알아차리고, 화두를 들고 마주친 경계를 의연하게 대처해나가면 역경계와 순경계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5) 성성적적

  • 화두참구의 가장 바람직한 상태는 惺惺寂寂이다.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양변을 여읜 상태로 전개되는 것이 적적(寂寂)이며, 이는 깨끗한 물결이 일어나지 않는 맑은 호수와 같다. 이런 상태에서 무기에 떨어지지 않고 초롱초롱한 정신으로 화두에 대한 의정이 지속되는 것을 성성(惺惺)이라 하며, 이는 깨끗한 거울에 밝은 빛이 역력히 비치는 것과 같다. 이중에서도 성성(惺惺)이 더욱 중요시된다. 만약 화두가 성성하게 깨어있지 않으면 혼침이나 무기, 마구니의 경계에 빠지기 때문이다.
  • 공부를 해나감에 처음부터 끝까지 고요할 정()과 맑을 정() 두글자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 고요함이 지속되면 곧 깨닫게 되고, 맑음이 지속되면 광명이 통달하게 된다. 기상이 엄숙하고 풍채가 맑아 움직임과 고요함의 두경계가 마치 가을 하늘과 같을 것이다. 이것이 첫 고비이니 이때를 잡아타고 더욱 나아가야 한다. 마치 가을들판의 맑은 물같이, 옛사당 안의 향로같이 고요하고 초롱초롱하여 마음길이 끊어졌을때, 몸이 인간세상에 있는 것도 모르게 되고 다만 화두만 면면히 끊어지지 않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곳에 이르면 번뇌는 바로 쉬고 광명이 터질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고비이다. 여기서 만약 깨달았다는 마음을 내면 순일한 공부의 묘가 끊어져서 크게 해가된다. - 몽산화상법어 -
  • 그러므로 영가선사는 惺惺寂寂은 옳지만 惺惺妄想은 그르고, 寂寂惺惺은 옳지만 寂寂無記는 그르다고 하였다. 이미 고요한 가운데에 멍하니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또렷한 가운데에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데 어찌 망심이 생기겠는가. -영가 현각-

 

(6) 득력처(得力處)

  • 화두에 대한 의심이 간절하지 못한 까닭에 화두를 든지 얼마지나지 않아 망상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좌선하는데에 마음에 모든 생각과 인연을 다 놓아버리고 만가지 일을 쉬어야 한다고 했다. 세간 잡사나 욕망이나 원한 구하는 생각이나 잡념으로는 마음을 밝힐수 없다. 그래도 억지로 화두를 들어보려 하지만 또다시 망상더미에 갇혀있는 자신을 볼수 있다. 이에 대해선사는 오래지속 하다보면 힘이 덜드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곳에서 바로 힘을 얻는다. 따로 고요함속에서 공부를 짓지 않아도 이것이 공부이다고 했다. 망상만 일어날지라도 계속 화두를 놓지 않고 꾸준히 들다보면 의심이 순숙해져 자연스럽게 화두가 들리는 경지가 온다. 거기서 화두를 밀고 나가는 힘이 생기는데, 화두를 드는 힘이 들지않을 때 그 자리가 힘을 얻게되는 자리라 해서 득력처(得力處)라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화두가 익어 힘이 전혀 안드는 상태로 이런 상태에 이르면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꿈쩍하지 않는다.
  • 망상이 떠오르는 것은 마음을 고요하게 가질때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평상시에는 마음의 그런 작용을 못느낄 따름이며, 고요해지는 순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문틈사이로 밝은 햇빛이 비치면 수없이 많은 먼지들이 선명하게 보이는 이치와 같다. 이때에 망상과 씨름하지 말고 화두참구에만 온힘을 쓰다보면 마침내 화두가 순일해지고 의정이 생겨나 저절로 화두가 들리게 된다.
  • 그러나 게으르게 되면 화두에 대한 의정이 사라지게 되므로 꾸준히 방심하지 않고 정진해 나가면 머지않아 화두하나만이 오롯이 남아있는 타성일편(打成一片)을 이룰것이다.

 

(7) 몰자미(沒滋味)

  • 화두참구 하다보면 마음이 답답한 순간이 오기도 하는데, 이것은 공부가 농익지 않은 상태로 화두가 잘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때 발심을 다시 일으켜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어야 한다. 또 화두에 의정이 형성되어 순일하게 이어지다가도 아무맛도 재미도 못 느끼는 경지가 오기도 한다. 이를 몰자미(沒滋味) 또는 무자미(無滋味)라고 한다. 부여잡을 데도없고 기댈데도 없어서 도무지 재미없게 되는 이럴때를 좋은 때라고 했다.
  • 화두가 본래 언어와 관념의 맛이 끊어져 아무 맛도 없는 쇠로 만든 떡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치의 길이 끊어져 온갖 갈등과 헤아리는 생각과 분별의식이 떨어져나가 종적과 자취가 끊어진 것이다. 이것이 어느정도 진전되면 말길도 끊기고 생각의 길도 막혀 아무런 재미도 없다. 그러나 이것은 화두가 익어 자신과 화두가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며,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자신마저도 사라진다.

 

·         만약 곧바로 쉬고자한다면, 예전에 재미붙였던것을 되돌아보지 말고 잡을 수도 없고 재미도 없는 곳에다 뜻을 두고 힘써 그것을 살펴보라. 만약 그것이 진실로 뜻을 둘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알 수 있는 더듬이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치나 뜻의 길을 오가던 의식의 흐름이 사라져 나무나 흙, 돌처럼 되는데 수행자는 이때 공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곳이 바로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곳이니 결코 소홀히 하지 말라.-대혜선사-

 

·         혹 화두를 들어도 공부가 차고 담담해서 도무지 재미가 없어 부리로 쫄만한 곳이 없고 힘을 붙일곳이 없으며, 조금도 분명한 곳이 없고 그렇다고 어찌할 수가 없더라도 절대로 여기서 물러서지 마라. 이때야말로 공부를 하는 이가 공부의 힘을 붙일 곳이며, 공부의 힘을 덜곳이며, 송부의 힘을 얻을 곳이며, 몸뚱이와 목숨을 버릴곳이다. -나옹화상-

 

·         공부가 깊었다 얕았다 하면서 아무런 맛이 없는때가 바로 정진하기 좋을 때이니 한발한발 거쳐야 할 곳들로 나아가라. 결코 놓아버리면 안될 것이니 성성하면 곧 고요함에 들어가고 고요한 뒤에야 정()에 들어간다. 아무재미가 없는 때가 이 공부의 재미인 것이니 문득 번뇌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 몽산화상법어-

 

·         이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소 등에 앉은 것과 같으니 이러니 저러니 묻지말고 어떻게 해도 주둥이를 꽂을 길이 없는 곳에서 목숨을 한번 버린다는 생각으로 온몸으로 뚫고 들어가야 한다. <평창>위에서 말한 뜻을 거듭 결론지은 것이다. 활구를 궁구하는 자로하여금 물러서지 말도록 한 것이다. 옛 사람은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 관문을 뚫어야 하고 묘한 깨달음은 마음으로 분별할 길이 끊어진 곳을 궁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선가귀감-

 

(8) 화두삼매

  • 간화선에서 강조하는 화두삼매는 화두와 내가 한 덩어리가 되어 놓을래야 놓을수 없는 은산철벽의 경지에 들어서는 것을 말하며 이상태에서 화두를 타파하면 지혜가 바로 나온다. 이렇게 화두를 타파해서 돈오하게 되면 혜능선사가 말하는 일상삼매인 것이다.
  • 일반적으로 선()에서 말하는 삼매는 소리의 경계에도 물들지 않고 물질의 경계에도 물들지 않는 것이다.
  • 일행삼매란 행주좌와에 항상 곧은 마음을 행하며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것이다. 그러나 미혹한 사람은 법의 모양에 집착하고 일행삼매에 국집하여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일행삼매라 하는데, 만약 이와같다면 이법은 무정과 같은 것이므로 도리어 도를 장애하는 인연이다.
  • 육조단경에서는 일체처에 처하더라도 상에 머물지 말로 설사 상()을 취했더라도 미워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 또한 취하고 버리지 말 것이며 이익이 있다든가 없다든가 또는 성취가 된다든가 허물어진다든가 하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저 편안하고 고요하고 안온하며 텅 비어 있는 듯이 담박(澹泊)하게 되면 이를 일상삼매라 한다하였다. 이는 임제스님이 말한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선자리마다 모두 진리인 경지 隨處作主立處皆眞이 이러한 궁극적인 삼매의 상태이다.
  • 첫째, 어느때는 사람(주관)은 빼앗고 경계(객관)는 빼앗지 않는다. 둘째, 어느때는 경계는 빼앗고 사람은 빼앗지 않는다. 셋째, 어느때는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다. 넷째, 어느때는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지 않는다. -궁극적 삼매경지 임제선사의 사료간四料簡-
  • , 주관은 없고 객관만 있는 경우, 객관은 없고 주관만 있는 경우, 주객이 모두 사라진 경우, 주객의 양변이 모두 사라진 청정한 상태에서 다시 주객의 작용을 일으켜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자유자재한 경우를 말한다. 이 양변을 여읜 청정한 상태를 大機圓應이라하고, 그 청정한 상태가 작용하는 것을 대용직절(大用直截)이라한다. 때문에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활발발하고 무애자재한 대자유의 세계가 펼쳐진다.

  • 動靜一如 : 行住坐臥 語黙動靜에 화두가 한결같이 여여하게 들려 하상 밝게 깨어있는 것이다.
  • 夢中一如 : 화두가 꿈속에서도 변함없이 들려있어 꿈속에서도 일여해 흔들리지 않고 밀밀하게 화두를 지어갈 수있다. 몽중일여의 경지에 들어섰다하더라도 꾸준히 화두를 들지 않으면 다시 후퇴하게 된다.
  • 寤寐一如 : 오매일여란 깨어있을 때나 깊은 잠에서나 화두가 한결같이 들리는 경지를 말한다. 잠이 들자마자 없어져 버린다면 어떻게 생사와 대적할 수 있겠는가. 꿈이 없는 깊은 잠에서도 화두가 끊어지지 않고 오롯해야 물러섬이 없으며 머지않아 좋은 시절이 온다.

  •  

    (9) 고요한 경계와 신비한 경계

    • 수행하다 보면 몸이 사라진듯 마냥 편안할 때가 있는데 이것이 병통이다. 때문에 편안하고 고요한 경계를 조심하면서 화두를 놓치지 말아야 하며, 고요한 상태에서 앞뒤 경계가 끊어졌을 지라도 그 고요한 상태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화두를 끝까지 이어가야 한다. 이와 달리 화두삼매에서는 화두에 의심이 끊임없이 이어져 몸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고, 걸어가는 것도 앉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밥먹을때도 그 맛을 느끼지 못하며 숟가락 움직임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즉 화두에 몰입되어 있는 경지가 아니라면 무기에 떨어진 것이다. 이때는 다시 있는힘을 다해 간절히 화두를 들어야 한다.
    • 또한 공부가 익어갈 때 신비한 현상이 드물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러한 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옳게 정진할 수 없다. 화두 삼매가 지속되면 신기한 현상이 일어날 수 없다. 그런 현상이 보이는것 자체가 화두를 놓치고 경계에 끄달리고 있다는 증상이다. 즉 화두가 순일하게 진행되다가 잠깐 한눈판 사이 비몽사몽간에 일어난 현상이다. 수행자는 어떤 경계가 일어나든 신통하고 묘한 현상에 조금도 신경쓰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지극하게 화두만 밀고가야 한다. 경계나 현상에 집착을 하고 번뇌망상을 붙이면 성성하던 화두가 사라지고 갖가지 가 나타난다.
    • 대체로 공부를 방해하는 경계는 세가지 통로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눈에 보이는 것이오 둘째는 귀에 들리는 것이요 셋째는 마음에 알려오는 것이다. 수행자는 이런 경계가 모두 진실이 아님을 알아차려야 한다. 아무리 수승하고 미묘한 법문을 설해오더라도 모두 마의 경계이며 이는 화두하는 마음에 틈이 생겨 일어난 것이다. 곧 망념의 뿌리가 남아있어 그런줄 알고 마음을 크게 돌이켜 오직 공부에만 면밀하고 힘있게 파고들어야 한다. 이럴때야말로 지혜와 용맹심을 시험해볼 호시절인 것이다. 태고선사는 화두참구중 나타나는 신비한 경계를 벗어나려면 그러한 상념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말고 상념이 일어날때마다 화두를 더욱 또렷하게 살피라고 한다. 상념이 일어나면 일어났다고 알아차리면 곧바로 없어진다.
    • 화두공부시 나타나는 모든 병통은 화두를 놓쳤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오로지 화두를 다시 들어야 한다. 더불어 신비한 현상에 대해 대처하기위해서는 첫째 성성적적한 삼매로 초점을 잃지 말고 오로지 화두공부만 면밀히 지어가야 한다. 둘째, 수행자 마음에 일체 구하는 생각이 없어야한다. 도를 깨치기를 구하거나 불조만나기를 바라는 것이 마음이 마를 부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셋째, 마음이 본래 형상이 없다는 도리를 잘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공부도중 그런 경계가 나타났다는 것은 수행자의 마음자세에 허점이 있거나 공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오직 화두참구로 마음을 돌이켜 면밀하게 지어가면 온갖 경계를 없애려하지 않아도 저절로 없어지고, 공부는 더욱 깊게 나아갈 것이다. 오직 지어갈줄만 아는 이것이 이공부의 가장 중요한 점이다.

     

     

    6) 깨달음의 세계

     

    (1) 점검과 인가

    • 수행자가 선지식에게 자신의 공부상태를 물어보는 정확하고 섬세한 점검을 통해서 바른길로 나아갈 수 있다. 특히 화두참구 과정이 매우 면밀하며 예기치 못한 상황이 전개되기도 하며, 수행자 내면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움직임을 선지식이 지도해 주지 않으면 잘못된 방향으로 갈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수행자는 자신의 수행정도를 정직하게 낱낱이 점검받으며, 스승은 일상생활에서 닥쳐오는 경계의 문제나 병통대처법, 화두를 면밀하게 드는 방법을 지도해주는 등 마지막 관문을 넘을때까지 하나하나 자상하게 일러주어야 한다. 스승과 제자사이에 점검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수행자는 참선에 재미를 못붙이거나 엉뚱한 길로 빠질수가 있다.
    • 수행자가 화두를 타파하여 선지식이 그 경계를 점검하고 깨달았으면 인가하여 점두(點頭)해 주는 일이다. 에서 인가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순간과 같이 매우 중요한데, 나름대로 소견으로 깨달았다는 착각도인이 생기기도 하므로 옳고 그름을 확인하는 절차인 인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내용이 부처님과 다름이 없는 본분종사(本分宗師) 혹은 본색종사(本色宗師)에게 인가받는 것이 전통이다. 만약 본색종사를 찾아가 그 깨달은 경지를 확인받는 결택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열이면 열 다 마구니가 된다고 했다. 본색종사를 찾아 인가받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

     

    (2) 자가점검

    • 사정이 여의치 못할 때 조사어록 기준에 따라 스스로 점검해 볼수 있는데, 결코 자신을 속이지 말고 자기 공부에 대해 냉정히 판단할수 있어야한다. 이런 마음자세만 확고하다면 조사스님들의 어록에 따라 자기공부의 是非深淺을 점검할수 있을것이다.

     

    ·         『서장』의 공부점검법

    ·         유유히 한가롭게 소요자재할 때 온갖 마의 경계에 휘둘리지 않는가.

    ·         행주좌와 일상생활 속에서도 화두가 잘 들리는가

    ·         움직일때나 고요할때나 헤아려 분별하지 않을 수 있는가

    ·         꿈꿀때와 깨어있을 때가 일치하는가

    ·         가 회통되는가.

    ·         마음경계가 모두 한결같은가

     

    ·         『선가귀감』의 공부점검법

    ·         네가지 은혜가 깊고 두터운것을 알고 있는가 (부모, 나라, 스승, 시주의 은혜)

    ·         지수화풍 사대로 된 더러운 몸이 순간순간 썩어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         사람들 목숨이 호흡사이 달려있는 줄을 아는가

    ·         일찍이 부처님이나 조사같은 이를 만나고서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았는가

    ·         높고 거룩한 법을 듣고서도 기쁘고 다행한 생각을 잠시라도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         공부하는 곳을 떠나지 않고 수도인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         곁에 있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며 지내지 않는가

    ·         분주하게 시비나 일삼고 있지 않는가

    ·         화두가 어느 때에나 또렷또렷하여 어둡지 않는가

    ·         남과 이야기 하고 있을 때에도 화두가 끊임없이 되는가

    ·         보고듣고 알아차릴 때에도 화두가 한결같이 한 조각을 이루는가

    ·         공부를 돌아볼때 부처와 조사를 붙잡을 만한가

    ·         이생에 부처님의 혜명을 이룰수 있겠는가.

    ·         앉고 눕고 편안할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         이 육신으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

    ·         모든 경계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         서산스님의 공부점검법

    ·         상중하의 자리를 불문하고 서로 공경하는가

    ·         남의 허물을 보거나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았는가.

     

    ·         『나옹어록』의 工夫十節目

    ·      색성초월色聲超越 : 세상사람들은 모양을 보면 그 모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모양과 소리를 벗어날 수 있는가.

    ·      하개정공个正空 : 이미 소리와 모양에서 벗어났으면 반드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그 바른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      정숙공正熟功 : 이미 공부를 시작했으면 그 공부를 익혀야 한다. 공부가 익은때는 어떤가

    ·      타실비공打失鼻孔 : 공부가 익었다면 나아가 자취를 없애야 한다. 자취를 없앤 때는 어떤가.

    ·      의식불급意識不及 : 자취가 없어지면 담담하고 냉랭하여 아무맛도 없고 기력도 전혀 없다. 의식이 닿지않고 마음이 활동하지 않으며 또 그때에는 허깨비 몸이 인간세상에 있는 줄 모른다. 이쯤되면 그것은 어떤 경계인가.

    ·      오매항일寤寐恒一 : 공부가 지극해지면 動靜에 틈이 없고 자나깨나 한결같아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없어져도 잃지 않는다. 마치 개가 기름이 끓는 솥을 보고 핥으려 해도 핥을 수 없고 포기하려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과 같나니, 그때에 어떻게 해야 합당한가.

    ·      줄지변절啐地便折 : 갑자기 백이십근 되는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 단박 꺽이고 단박 끊긴다. 그때는 어떤것이 그대의 자성인가

    ·      수연응용隨緣應用 : 이미 자성을 깨쳤으면 자성의 본래작용은 인연따라 맞게 쓰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본래 작용에 맞게 쓰이는 것인가.

    ·      요탈생사要脫生死 :이미 자성의 작용을 알았으면 생사를 벗어나야 하는데, 안광이 땅에 떨어질 때에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      지거처知去處 : 이미 생사를 벗어났으면 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사대는 각각 흩어지니 어디를 향해 가는가

     

    ·         아래사항을 점검해보자

    ·         정견이 바르고 확고하게 섰는가

    ·         수행과 삶이 일치하고 있는가

    ·         화두에 대한 신념이 날로 증장되고 있는가

    ·         물질에 대한 욕구가 조복되어 가고 있는가

    ·         확철대오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원력이 서 있는가

    ·         결제해제없이 항상 계율을 잘 지키고 있는가

    ·         시비심과 승부심이 날로 적어지고 있는가.

     

    (3) 깨달음의 세계

    • 확철대오하면 가슴속이 환히 밝음이 마치 백천해와 달과 같아 시방세계를 한 생각에 밝게 요달하며 가는 털끝만큼의 다른 생각도 없으니, 비로소 구경과 상응하게 된다. 모름지기 당사자가 스스로 볼 수 있고 깨칠 수 있다면 자연히 옛사람의 언구에 휘둘리지 않고 도리어 옛사람의 언구를 굴릴 수 있다. -서장-
    • 화두를 타파하여 깨치게 되면 꿈에서 깨어난 것과 같고 하늘에 백천개 해가 비치는 것과 같다. 그 세계Sms 허공과 같이 무한히 넓어 한정이 없다. 그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평등해서 우열이 없고, 귀천도 없고, 친소도 없고, 시비도 없고, 대립과 갈등 투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만 있다. 모든 존재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기에 남을 위하는 것이 자기를 위하는 것이고, 자기를 위하는 것이 남을 위하는 것이 된다. 깨달으면 자주적이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내게도 남에게 한없이 자애로우며, 모든 순 역경계에 자유자재한 대자유인이 된다. 이는 말로 설명할수 없다.
    • 말과 사유와 경계를 초월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체험을 직접 확인하는 방법밖에는 달리 객관적으로 검증할 길이 없다. 영명선사는 종경록에서 깨달음에 대한 자지점검기준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완벽하게 견성해서 마치 대낮에 물건을 보듯, 그렇게 지혜로울 수 있는가.

    ·      사람 만나고 상황에 대처하며, 색깔을 보고 소리들으며, 발을 들어올리고 놓으며, 눈뜨고 감는것이 모두 밝고 뛰어나 도와 상응하는가.

    ·      부처님의 가르침과 조사들의 말을 깊이 듣고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들을 모두 살펴도 의심스러운 곳이 없는가.

    ·      온갖 질문에 대해 하나하나 따진 뒤 능히 사변을 갖추어 모든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가

    ·      언제 어디서든 지혜가 막힘없이 드러나 생각생각마다 깨어있어 어떤 법에도 방해받지 않고 한순간에도 끊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가

    ·      일체 순경계 역경계와 좋은 경계 나쁜경계가 나타날 때마다, 그 자리에서 모두 알아차려 그것을 타파할 수 있는가.

    ·       온갖 밝은 법문이 마음에 있으니 하나하나의 미세함을 보아 본체가 일어나는 곳을 알며 생사의 뿌리에 어지럽게 미혹되지 않을 수 있는가

    ·       일상의 행주좌와때, 공경히 마주대하고 있을때, 옷입고 밥먹을때, 일을 맡아 처리할 때에도 일일이 진실을 알아볼수 있는가

    ·       부처가 있다 없다, 중생이 있다없다, 칭찬이나 비방, 옳다 그르다 하는 말을 들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가

    ·      온갖 지혜에 대하여 모두 밝게 통하여, 이 모두 통해 에 얽매이지 않으며, 어떤 법도 그 근원을 알수있으며, 세상에 온 어떤 성인의 말에도 의문이 없을 수 있는가.

     

    마음은 본래 물들거나 더럽혀지거나 없어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번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주관과 객관을 나누는 알음알이 때문에 번뇌와 지혜, 생사와 열반이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일뿐이다. 이러한 알음알이가 연기이고 무아임을 깨달으면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님을 알아 평등하고 자유로운 해탈을 이루게 되는데 이를 산은산, 물은 물이라고 한다.

    선지식들아! 법에는 단박()과 점차()가 없으나 사람에게는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다.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친이는 단박에 닦는다.

    자신의 성품을 자기가 깨달아야 하는데, 단박에 깨닫고 단박에 닦아 마친다. 또한 점차가 없다. 일체법을 세우지 않는 까닭으로 모든 법이 적멸한데 어찌 차제가 있겠는가. -육조단경

    오직 돈오라는 한가지 문만으로 해탈을 얻는다. 돈이란 망령된 생각을 단번에 제거하는 것이며, 오란 얻을 것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돈오입문요론

    우뚝하고 당당하며 모든일에 구애되지 않고 의연하다. 시끄러운 곳에 머리를 들이밀고 평온한 곳에서는 다리를 내려놓는다. - 굉지광롤-

    경계의 인연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좋고 나쁨은 마음에서 일어날뿐, 마음이 억지로 이름붙이지 않는다면, 허망한 감정이 어디에서 일어나겠는가? 허망한 감정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면 진심이 깨달음에 따른다고 하셨다. 부디 역순경계 속에서 늘 이와같이 관조하면 길이 고뇌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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